돌아보면 언제나 네가 있었다

오래전 도서관에서 ‘인도 방랑’ ‘티베트 방랑’을 인상 깊게 읽은 적이 있다. 일본에도 이런 사진작가가 있었구나 하고 감탄했다. 그때만 해도 오늘날처럼 여행서가 봇물을 이루던 때가 아니어서 그랬겠지만, 여행도 아니고 ‘방랑’이란 제목은 참 자극적이었다.

작가 나름대로 ‘존재의 열병’을 앓던 때여서 1970년대 초엽, 변방의 나라 혹은 신비에 싸인 나라를 여행한다는 것 자체가 파격이었고 매혹이었다. 엄청난 고행의 기록이었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이번에 후지와라 신야는 ‘돌아보면 언제나 네가 있었다’라는 사진을 곁들인 산문집을 냈다.

‘저자의 말’을 읽어보니 일본의 지하철 안에서 읽을거리로 비매품인 무가지(메트로 미니츠)에 6년 동안 연재한 글을 이번에 책으로 엮은 모양이었다. “전철로 이동하는 15분에서 30분쯤 되는 짧은 시간 동안 사진과 기사를 훑어보고, 회사에 도착하면 이내 쓰레기통에 던져 넣는다.”는 미니 북인 듯싶었다.

책 전편에 흐르는 인간에 대한 따듯한 시선이 마음을 훈훈하게 때로는 눈가를 촉촉하게 한다. 일본 전국 혹은 도쿄를 중심으로 엮어진 이야기는 일본인의 고독과 현대인의 병리현상의 하나인 소통의 부재와 허무가 똬리를 틀고 앉아 있어 마치 나의 초상인 듯한 착각마저 일으키게 한다.

혼자 있기 좋아하여, 침잠해 들어가며 책이나 파는 나 같은 인간에게는 그것을 즐기는 사디즘적 기질과 맥이 통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것을 견디지 못하여 절망하지 않는 것을 보면.

저자가 말한 마지막 대목이 이 작품을 대변한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닐 듯싶다.

“슬픔 또한 풍요로움이다. 거기에는 자신의 마음을 희생한, 타인에 대한 한없는 배려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또한 그것은 결코 인간에게 없어서는 안 되는 꺼지지 않은 성화(聖火)이기 때문이다.”

수국이 필 무렵

여기에 수록된 글들은 그러므로 실화이며 때론 저자 자신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많지도 않은 열네 꼭지의 이야기들이다. 상점에서 눈을 맞추며 짧은 몇 마디라도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던 사람들이 어느덧 기계화되어가는 모습들, 무표정과 차가운 기운들을 느끼며 당연시하는 풍조가 어떤 사람들에게는 진저리쳐지는 날선 도시의 풍경이기도 하다.

어쩌면 우리의 모습이기도 한. 어떤 이들은 스스로 자신을 위리안치하여 가두는 사람들도 있다. 존재의 이유도 모른 채 아니 알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 늘어나는 사회, 자본의 논리에서 저만치 물러나 떠도는 삶들이 안쓰럽기 짝이 없다. 돈이 있다고 다 살아지는 것이 아니며 노력한다고 해서 그만큼의 보상이 돌아오는 것도 아닌 사회, 희망보다는 절망이라는 이름에 더 익숙한 사람들의 슬픔, 그 슬픔이 풍요로움이라면 적어도 젊음이라는 특권이 주어지는 상황이라야 한다는 인식이 앞선다.

‘수국이 필 무렵’에서는 평생 수국만을 찍는 아마추어 사진작가 이야기이다. 수국 같은 사진 모델을 사랑인 줄도 모르고 사랑한 남자, 평생 그리움과 동행한다면 그것은 형극이 아니라 축복인 것이다. 그의 삶에 윤기를 더하고 그로 인하여 언제까지나 수국을 찍을 것이며 전시회를 열 것이므로.

‘바닷가의 도메 씨와 목걸이와 제로’는 바닷가 마을의 ‘도메’ 할머니가 주인공이다. 날개를 다친 갈매기 ‘제로’와 버림받은 개 ‘목걸이’에게 먹이를 제공하며 슬픔을 이겨내는 방법을 터득한다. 여든 네 살의 이 할머니는 4년 전에 아들을 교통사고로 잃었다.

“아들을 잃은 도메 할머니는 집에 틀어박혀 날마다 울며 지냈다. 울음을 멈춘 도메 할머니는 놀랄 만큼 순식간에 늙었다. 그런 도메 할머니 앞에 제로가 나타난 것이다.”

후지와라 씨가 찾아간 바닷가에서 만난 이들 할머니와 제로, 목걸이는 물상처럼 멀리서 바라볼 수밖에 없는 이들이었다. 할머니에겐 이들이 마치 자식인 듯 애정이 묻어났으며 아픈 동물들도 잘 따랐다. 할머니가 세상을 떠나자 갈매기 제로도 곧 이어 죽었고 늙은 개 목걸이도 산을 향해 걸어갔다.

소녀에게 말을 걸었다는 이유로

‘거리의 소음에 묻혀 사라질 만큼 작고 보잘 것 없는 것’이란 이야기는 일본 사회를 제대로 들여다 본 것 같은 충격을 받았다. 한 남자가 피를 흘리며 도쿄의 시부야 거리에서 주저앉아 있다. 모두들 못 본 척 지나치는 데 후지와라 씨는 그럴 수 없었다. “괜찮으세요?”라는 질문으로부터 이야기는 시작되었다. 그를 부축해 맥도날드 가게로 들어갔다.

그가 피를 흘리는 이유는 “소녀에게 말을 걸었다”는 이유로 소년들로부터 심한 구타를 당했다는 것이다. 60대의 정신과 의사가 그 남자였다. 그는 병원을 운영한지 34년 째, 우울증으로 자살한 소녀가 8명이었다. 충격을 받은 그는 자신도 다른 의사에게 정신과 치료를 받으며 오래된 임상기록만으로는 이 시대의 청소년들을 치료할 수 없다는 이유를 가지고 거리로 나섰다.

요즘 아이들이 어떤지, 어떤 생각으로 살아가는 지, 그는 그런 것들을 알고 싶었다. 그러나 그는 말을 걸었다는 이유만으로 세 번이나 폭행을 당했다. 돌아버린 남자로, 성폭행 범죄자로 그들은 인식한 걸까. 이것이 일본 사회인 것이다. 어른은 존중받을 수 없는 사회, 복지비를 갉아먹는 쓰레기쯤으로 아는 것은 아닐까.

늙는다는 것도 고독한데 이처럼 푸대접 받아서야 장수가 대수일 수만은 없을 것이다. 일본 사회의 기저라는 배려심, 예의, 친절조차도 의심스럽다. 그러나 작은 일에 더 감동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라는 것에 희망을 걸어본다. 슬픔도 풍요이며 배려가 성화처럼 타오르는 사회를 꿈꾸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므로.

*저자는 여행기 ‘인도 방랑’ ‘티베트 방랑’을 써서 일본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킨 작가이자 사진작가이다.

*저서로는 인도 방랑. 티베트 기행. 동양 기행. 아메리카 기행. 돌아보면 언제나 네가 있었다.*수상은 ‘동양 기행’으로 마이니치 예술상. ‘소요유기’로 기무라 이헤에 사진상 수상.

**--- 석유를 다루는 제가 보기엔 이래요. 그 때문에 또 어마어마한 제트 연료를 대기권에 뿜어내는 비행기를 타고 여러 사람이 인도에 가요. 교통수단을 이용해서 물자를 반입하고 히말라야 깊숙이 들어가요. 그래서 소량의 쓰레기를 집어 오지요. 빈 청량음료 하나 가지고 오는 데 너무나 많은 양의 석유를 소비하게 돼요. 그게 다시 지구온난화에 일조해서 히말라야의 눈을 녹이고 있어요. 나쁜 영향을 끼치려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자기모순 아닌가요?“

***도대체 뭐지? 이런 대도시 건물 옥상에 씨앗이 굴러다니고 있다니! 그것도 주워서 보니 한 종류가 아니라, 모양도 색도 여러 가지였다. 이상하다, 누군가가 버렸을 리도 없을 텐데.---수수께끼가 풀렸다. 새가 한 짓이었다. 신의 장난이 아닌, 새의 장난.

책명---돌아보면 언제나 네가 있었다

저자---후지와라 신야

출판사--푸른수정가---13.000원

대동문화 68호 [2012년 1.2월호]

문향선 (수필가)  webmaster@chkorea.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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