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창원

‘어떤 예술 작품’을 볼 때, 그 작품의 본질적인 내적 문제를 해석하고 평가하는 것 말고도 외적인 문제를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 있다. 그것이 갖고 있는 역사성, 사회성이 작가와 유기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 이유에서이다.

특히 신창운 작가처럼 예술적 성찰과 더불어 인문학적 총화의 결실에서 얻어진 그의 탈장르적인 작품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선 더욱 그렇다. 이 의미는 신창운의 회화 세계를 단편적으로 이야기할 수 없다는 사실을 말해주기도 한다.

예를 들면, 2001~2004년에 제작된 작품 <내 땅에서> 연작 그리고 2005년에 제작된 <사바세계> 등은 기법적인 면에서 전자는 드로잉을 바탕에 둔 반구상·도식화된 기호적 회화이며, 후자는 묘사력이 뛰어난 사실주의적 구상을 띠고 있는 회화이다.

그러나 최근인 2008년부터 2009년에 제작된 <욕망-춤> 연작은 양식적 측면에서 상징주의적이며, 같은 시기에 제작된 <욕망> 연작은 초현실주의적 접근과 동시에 추상적 성격을 띠고 있다. 그렇다면, 신창운의 탈장르적인 작품 세계를 지탱하는 예술적 모티브는 무엇일까? 필자는 이것을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요인에서 기인한다고 보고 있다.

인류학적 시각을 통한 예술 표현의 확대 실험

첫째, 그는 예술적 표현활동을 위해 인문사회학적 소양의 확대를 끊임없이 펼치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넓은 의미에서 문화적인 문제의식에 대한 전반적인 비판 의식이라고 볼 수 있다.

특히 신창운은 이 문제의식을 인류학적 개념으로 끄집어와 그림을 그리는 행위를 확장된 의미의 ‘표현 문화’라고 보는 것 같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표현문화는 한 개인의 독립적이고 탈사회적인 창작물이라기보다는 그를 둘러싼 다양한 조건들 속에서 추출된 하나의 결과물이라고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는 또한 미에 대한 문화적 다양성과 상대성을 인정하는 것이다. 인류학에서는 예술을 어떤 특정한 대상이나 작품의 심미적 측면만을 논의하는 것이 아니고 그것의 사회적, 문화적 의미까지 총체적으로 파악하고자 한다.”

신창운, ‘시각예술’에 대한 예술인류학적 제언’, 2010년, <신이 된 욕망(The desire became gods)>展 도록에서 발췌)

이 글의 요지는 시각 예술의 현상에 대한 해석은 인류학적 입장, 즉 총체적 접근과 비평적 인식하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견해이다. 이 말은 미술 작품 해석론적 입장에서 볼 경우, 다원적인 미술작품 속에서 지칭되는 대상 혹은 비 대상에 대한 어떤 모호함이나 피상적인 것들에 대해서, 획일적이고 절단된 해석이 아닌 다양성을 인정하는 총체적인 접근의 비평이 이루어져야함을 강조하고 있다. 필자는 그의 글을 보면 그가 작가로서가 아니라 오히려 비평가의 시각에서 자신의 예술적 활동을 바라보고 있는 느낌을 받는다.

현대 미술은 다원예술이자 해석미학

단토(Arthur Coleman Danto, 1924~)가 현대 미술을 “철학적인 방식으로 생각해봐야 할 것”이라고 말한 것은 다원주의적인 현대 미술작품에 대한 해석은 의미론적인 문제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신창운은 아티스트이자 인문학자로서 예술 활동을 하고 있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특히, 그는 인류학을 기반으로 예술적 활동에 대한 지식의 획득을 도모하였다. 작가에게서 있어서 인류학적 소양은 매우 다양한 의미를 갖는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인류학을 통해 한 사회의 문화를 총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안목을 갖추게 되었고, 예술은 단순히 시각적 산물이 아닌 인류의 지적소산의 최종 산물임을 인식하게 되었다. 나는 이러한 생각의 연장선에서 우리의 전통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하게 되었고, 그 안에서 자유로운 표현력과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나아가 재료와 기법에 대한 개방성뿐만 아니라 문화비평적 요소까지 하나의 작품에 담아낼 수 있었다.”(신창운, 2011년 -작가 노트에서 발췌)

이런 의미에서 보자면, 신창운의 회화작품은 인류학적 합목적성을 띠고 있다.

물질과 인간에 대한 예술적 재현과 성찰

두 번째, 이 인류학적 합목적성에 대한 문제의식은 ‘물(物)과 인간의 욕망’에 대한 예술적 성찰로 귀결된다. 작가의 말을 빌리면, “작품을 통해 현대인들의 욕망과 불안한 심리를 표현하고자 하며, 나아가 삶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 성찰하는” 것이다.

특히, 그의 회화를 이러한 ‘관계(relation)’적인 입장에서 볼 때, 자신의 작품세계에서 드러나는 물과 욕망에 대한 비판적 의식은 많은 내러티브를 제공한다. 예를 들어 ‘신앙-종교-인간’ 이라는 카테고리를 연결해준다.

이 범주는 그의 회화 세계의 내러티브를 구성하는 핵심적인 구성 요소라 할 수 있다. 이 요소들은 작가의 ‘오성(understanding)’과 ‘상상력(imagination)’의 자유로운 유희의 결실로 회화적 재현을 이루어낸다. 즉, 이 삼면 관계에서 나타나는 일차적인 표상을 구체화시키고, 이 구체화된 도상을 해체 또는 소멸시키고 상징화한다.

이러한 작업과정의 실례로, 그의 초기 작품인 <내 땅에서> 연작은 민간신앙과 관련하여 사회 전반의 문제의식에 대한 의미 전달을 위해 부적이라던가, 동물, 문자 기호 등을 해체, 도식화, 정형화한 회화적인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 욕망에 도전하는 기호학적 미술가

그리고 <욕망> 연작은 직접적이거나 은유적으로 욕망을 상징한 도상들, 예를 들면, 사라스와띠(Saraswati) 여신의 손 위에 물질을 상징하는 돈이 놓여 있는 것이나, 본능적인 성적 욕구를 상징하는 남성과 여성의 나체 부위를 은유적 도상으로 나열하는 방식으로 기호화한 접근 방식을 보여준다. 이 작품들 모두는 상징적 구조화(symbolic structuration)를 통해 의미적 재생산을 이룬다.

최근 작가의 작품은 예전 작품에 비해서 상징적 구조화가 심화되는 현상을 보인다. 이는 다른 말로, 그의 작품이 물성이 해체되고 비물질적인 것으로 내면화되고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 내러티브의 상징적 도상들은 탈이미지화된 추상적 기호를 띠고 있으면서도, 무차별적이지 않고 어떤 리듬이 어울려 정형화 되어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기호적 해석은 수용자의 해석에 따라 여러 가지 견해가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기 때문에 객관적인 해석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그의 그림에 나타나는 알레고리적 도상, 기하학적 기호를 관조하면서 ‘어떤 의미’를 부여할 것인가는 감상자의 몫으로 남겨 놓아도 좋을 것 같다.

대동문화 68호 [2012년 1.2월호]

오윤철 예술철학 박사  webmaster@chkorea.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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