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스타그램에서 리그램되고 있는 짧은 영상을 보았다. ‘마이크 스웨거 시즌2’에 슬릭과 던말릭이 출연한 편이었다. ‘마이크 스웨거’는 10분 내외 분량의 유튜브 영상 컨텐츠이다. Mnet에서 ‘쇼미더머니’, 여성 래퍼들의 ‘언프리티 랩스타’, 고등학생 랩 대항전 ‘고등래퍼’ 등 래퍼들이 출연하는 서바이벌 프로그램이 성공을 거듭하면서 부활한 콘텐츠이다. 호스트 MC가 게스트를 초대한다. 프리스타일 랩 형식으로 진행된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COLOSSUS by Swan Park, Teo

슬릭은 영상에서 이런 가사의 랩을 했다. “하나 얘기할 게 있어/내가 아니면 아무도 안 할 것 같아서/여긴 아직도 기집애라는 말을 욕으로 한다면서/아직도 게이 같다는 말을 욕으로 한다면서/아직도 아무도 그게 당연하지 않다는 걸 모른다면서/그게 힙합이라고 하면 나는 오늘부터 힙합 관둠”

오랜기간 힙합 씬의 주인공은 남성이었다. 여성혐오를 동반한 마초캐릭터가 빈번하게 등장했다. 내가 접한 몇 안 되는 여성 래퍼들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된장녀’프레임을 운운하며 ‘개념녀’ 안에 들어가고 싶어 하거나 명예남성을 자처했다. 그런데 힙합씬에서 이런 랩을 듣게 되다니, 감격스러울 정도였다.

혐오나 차별에 대해 좀 더 알게 되면서 슬릭은 1,2년 전부터 힙합씬 특유의 가사들이 불편하다고 느꼈다고 한다. 이러한 변화는 음악으로 고스란히 표현되었다.

지난 해 행정자치부가 ‘대한민국 출산지도’를 공개했다. 지도에는 ‘가임기여성인구수’가 표기 되어있었다. 여성을 출산의 도구로 본다는 비판이 일었고, 슬릭은 “여성의 자기결정권은 여성에게 있다”고 주장했다. 또 출생율 책임을 여성에게 전가하는 정부 정책을 통쾌하게 꼬집었다. “(출산지도를 봤을 때) 엄청 놀라거나 하진 않았고 이렇게까지 창의적으로 어리석을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고 슬릭은 여성신문과의 인터뷰에서도 밝혔다.

‘래퍼는 뭘 하는 사람일까.’라는 질문에 대해 슬릭은 답한다. “랩을 포함해서 음악이라는 것은 말보다 더 큰 파급력과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래퍼 또한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자기 마음에 드는 방식으로 하는 사람인데, 내 마음에 드는 건 이 방향이다. 누구를 혐오하거나 불편하게 만들지 않는 것.”

요새 말로 힙합을 ‘1도 모르던’ 내가 슬릭의 앨범을 수없이 듣고 있다. 그녀는 “중요해 팔리는 노래 더 중요한 건 누굴 살리는 노래”라고 말한다. 혐오와 차별적 표현 없는 자기만의 어법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겠다고 말이다. ‘공연장 맨 앞줄에’서서 그녀의 노래가 끝날 때까지 땀 배인 손바닥을 흔들며 그녀를 응원하고 싶다.

슬릭(SLEEQ)

본명 김령화. 2012년 5월 믹스테입 [WEEKLY SLEEQ]을 선보이며 이름을 알렸다. 2013년 데뷔 싱글 'Lightless'를 발표하고, 제리케이가 이끄는 레이블 'DAZE ALIVE'에 합류했다. 2016년 첫 정규앨범 [COLOSSUS]를 발매한 이후 활발한 활동 중이다.

<대동문화 100호. 2017년 5-6월>

박선진 기자  somchanel@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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