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월 제3묘역의 가장 높은 곳에는 국기봉이 있고 태극기가 조기로 걸려 있다. 필자는 이한열이 묻혔던 6월 9일을 기억하기 위해 이날 오전 이곳을 찾았다. 햇빛이 따사롭게 비추고 있었지만 바람에 날리는 태극기는 오히려 처량해 보였다.

근현대사의 질곡을 간직한 광주교도소는 44년만인 2015년 10월 북구 삼각동으로 이전했다. 새 교도소로 이전한 뒤 문흥동 옛 교도소 터의 활용방안에 대해 아직까지 결론이 나지 않은 상태다.

5.18구묘역

역사는 사건 위에서 기록된다. 우리가 기억하는 역사는 대부분 사건들로 이루어진 기록의 점철이라는 이야기이다. 아무런 사건이 없다면, 정말 무미건조한 시간들이라면 무엇을 기록으로 남길 수 있을 것인가라는 생각이 든다. 사건은 역사를 만들어가는 사초(史草)인 것이다.

지난 촛불혁명도 우리의 역사 속에 중요한 사건이며 기록을 남겼다. ‘촛불’이라는 연약한 국민들이 모여 대통령을 탄핵하고 정부를 바꾸는 선택을 했다. 역사의 흐름을 만들었다. 그 촛불로 인해 이루어진 우리 사회 속의 변화는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다. 6.10항쟁의 도화선이었던 이한열의 죽음도 이제 30년 만에 새 역사를 쓰는 사초가 되고 있다. 그 사초는 촛불혁명을 통해 역사를 완성하고 있다.

80년 5.18을 전후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당해 묻히거나 고문이나 단식 등으로 고초를 겪었던 장소는 5.18구묘역과 광주교도소이다. 5.18구묘역은 37년이 흘렀고 광주교도소는 이전 2년여가 되었지만 정부나 시 당국은 뚜렷한 대책이 없다. 희생자들을 위한 노래는 어디에서 불러야 할까.

대통령이 부른 이름들

“1982년 광주교도소에서 광주진상규명을 위해 40일 간의 단식으로 옥사한 스물아홉 살, 전남대생 박관현. 1987년 ‘광주사태 책임자 처벌’을 외치며 분신 사망한 스물다섯 살, 노동자 표정두. 1988년 ‘광주학살 진상규명’을 외치며 명동성당 교육관 4층에서 투신 사망한 스물네 살, 서울대생 조성만. 1988년 ‘광주는 살아있다’ 외치며 숭실대 학생회관 옥상에서 분신 사망한 스물다섯 살, 숭실대생 박래전.”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5월 18일 광주5.18국립묘지에서 열린 광주민주화운동 제37주년 기념식에서 지난 시기에 죽음으로 이 땅의 민주화를 외친 열사들의 이름을 불렀다.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도 제대로 대접받지 못했던 이들을 기억한 것이다.

어디 이뿐이랴. 5.18국립묘지에 묻히지 못한 열사들의 이름은 그곳에서 불과 500여m 떨어진 곳에 더 있다. 5.18국립묘지 입구를 지나 왼편으로 오르막길을 따라 올라가면 광주광역시 북구 민주로 285, 옛 망월동 3번지인 망월공원묘지이다. 망월동은 ‘옥토끼가 달을 바라본다’는 옥토망월형(玉免望月形)의 명당이 있는 곳이라 해서 그런 이름이 생겨났다.

망월묘지에는 1976년 이후 1묘역에서부터 9묘역까지 4만1,094기를 안치할 수 있는 매장묘지가 조성되었다. 망월묘역 입구로 들어서면 오른 편에 공원관리사무소와 매점이 눈에 띄고 그 뒤편이 이른바 민주열사들이 묻혀있는 제3묘역이다. 이곳에는 일반매장 251기, 개장분묘 204기 등 총 477기가 설치되어 있다. 여기에 민주열사 47기(5기 가묘), 5.18유공자 149(가묘 138기)기가 있다.

제3묘역은 5.18 관련 희생자들이 처음으로 묻힌 곳이다. ‘5.18구묘역’이라고 부르며 5.18 사적지 24호이다. 5.18민주화운동 당시 연고자가 나타나지 않거나 5월 27일 도청 함락 때 희생된 주검 126구가 손수레나 청소차에 실려 와 묻혔다. 이후 이곳은 민주화의 성지로 민중들의 가슴에 남게 되었다.

80년 5월 이후 5.18민중항쟁의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정신계승 그리고 조국의 민주화를 위해 싸우다 산화한 민주민족열사들의 숨결이 스며든 곳이다. 망월동 제3묘역에는 이한열, 이재호, 이철규, 김남주, 강경대, 표정두, 박승희, 박종대 열사 등 수 많은 민주인사들과 경찰이 쏜 물대포에 맞아 숨진 백남기 농민, 1980년 5월의 참상을 세계에 알린 고 위르겐 힌츠페터씨의 유품 등이 묻혀 있다.

5.18구묘역

광주시, 민주화 성지 만들 의지 있나?

1997년 5.18국립묘지가 조성되면서 5.18 관련자들의 유골은 모두 국립5.18묘지로 이장되었다. 현재는 역사의 상징성을 알리기 위해 가묘 형태로 봉분과 비석만 유지하고 있다. 지난 2013년 5월 광주시는 이곳을 민주화성지로 만들겠다며 거창한 계획을 밝힌 바 있다. 아쉽게도 영정을 보관하는 유영봉안소만 있을 뿐 그 계획은 지금 실종된 상태다.

망월 제3묘역의 가장 높은 곳에는 국기봉이 있고 태극기가 조기로 걸려 있다. 필자는 이한열이 묻혔던 6월 9일을 기억하기 위해 이날 오전 이곳을 찾았다. 햇빛이 따사롭게 비추고 있었지만 바람에 날리는 태극기는 오히려 처량해 보였다. 김형중의 책 <평론가 K는 광주에서만 살았다: 걸어본다>에서 “점점 낮아지는 봉분들과 휘날리는 현수막과 생뚱맞게 우뚝 솟아있는 국기봉, 거기 걸린 태극기는 지상에서 가장 잘 어울리지 않는 곳에 서 있는 것 같았다.”라고 표현했다.

소설가 홍희담의 작품 <깃발>에서는 “인하는 망월묘역에 가면 그래도 마음이 가라앉곤 했다. 죽은 자들도 있는데, 총 맞아 축고 매맞아 죽고 육신이 갈가리 찢겨서 죽은 자들도 있는데”라며 이곳에 묻힌 이들의 참혹함을 설명하고 있다.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가 지난 2016년 8월 민생투어를 위해 광주에 왔다가 망월동 민족민주열사묘역을 찾은 적이 있다. 입구에 ‘전두환 대통령 마을 방문 기념비’라는 깨진 비석이 땅에 박혀 있다. 김 전 대표는 흙을 발로 걷어낸 뒤 “밟을 수는 없다”며 슬쩍 비켜갔다. 이 비석은 담양 한 마을에서 1982년 전두환의 방문을 기념하기 위해 세웠던 것으로 5월 단체들이 비석을 크게 부수어 망월묘역 입구에 묻어놓은 것이다.

광주교도소

광주교도소, 복합문화공간 변신 추진

광주에 감옥이 처음 생긴 것은 1908년 7월 대한제국 때였다. 지금의 충장로 옛 학생회관 골목길에 형옥이 있었다. 국사범이나 정치범 등 중죄인은 서방면 현 동강대 건너편 경양역(역참)에 따로 수감됐다. 조선총독부는 광주감옥을 인수해 운영하다가 서방면 동계리(현 동구 동명동)에 감옥을 새로 지어 1912년 5월 이전했다. 부지 7,666평 중 구내가 2,729평으로, 감방은 4개동이었고 병감동이 1개동이었다. 광주감옥은 1923년 5월 광주형무소로 이름이 바뀌었다.

광주교도소라는 이름으로 바뀐 때는 1961년 12월이었다. 광주교도소는 1971년 7월 북구 문흥동으로 이전했다. 유신독재 시절과 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민주인사들이 이곳에 수감돼 고문을 당하기도 했다. 1982년에 박관현, 신영일 열사가 수감되었다. 이곳에서 복역 중이던 이들은 함께 5.18 진상 규명과 교도소 내 처우 개선을 요구하며 3차례에 걸쳐 40여 일간의 단식투쟁을 벌였다. 투쟁 중 박관현은 숨졌고, 신영일은 건강 악화로 출소한 뒤 민주청년 운동을 벌이다 1988년 5월 투병 중 운명해 망월 제3묘역에 묻혔다.

근현대사의 질곡을 간직한 광주교도소는 44년만인 2015년 10월 북구 삼각동으로 이전했다. 새 교도소로 이전한 뒤 문흥동 옛 교도소 터의 활용방안에 대해 아직까지 결론이 나지 않은 상태다. 옛 광주교도소는 5.18 당시 계엄군이 주둔해 있으면서 담양과 순천 쪽으로 이동하는 차량과 시민들에게 총격을 가해 수십 명이 희생된 곳이다. 또 시민들에 대한 고문이 자행된 역사적 공간으로 5.18 사적지 22호로 지정돼 있다.

광주시는 이 터에 민주·인권·평화도시의 복합문화기능 공간조성을 추진하고 있다. 민주인권평화센터, 인권교육훈련센터, 세계인권미술관, 인권평화기념공원, 인권유스호스텔 등을 건립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한 기본계획용역은 2년여 걸쳐 추진되어 지난 2014년 2월에 보고된 바 있다. 문제는 이 사업이 추진되려면 문흥동 부지를 국가에서 양여받아야 한다. 문흥동 옛 광주교도소는 법무부 소유로 교도소 부지 10만6,771㎡를 포함해 전체 19만7,021㎡에 달한다.

법무부는 옛 광주교도소 터에 미결수를 수용하기 위한 구치소를 건립할 계획이었다. 광주시는 옛 부지를 무상양여 받기 위해 지난 2016년 6월 법무부에 구치소 대체부지(3만~4만평)를 2곳이나 제안했지만 뚜렷한 진척이 없었다. 다만 2016년 11월 기획재정부가 법무부에서 요청하면 승인 여부를 검토하겠다는 입장으로 약간 선회했다. 더욱이 문재인 대통령이 광주공약사업으로 정했기 때문에 이전부지 무상 양여에는 큰 문제가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광주시는 올 연말까지 무상양여에 따른 대체부지 협의를 해나갈 방침이라고 한다. 속도가 얼마나 빨라질 것인지 기대된다. 법무부가 무상 양여의 조건으로 제시한 옛 광주교도소 부지 내 놀이형 법체험 테마파크인 ‘솔로몬 로(law)파크’ 조성을 요구하고 있다. ‘솔로몬 로파크’의 정체성에 따른 지역민들의 반발을 어떻게 해결하느냐가 새로운 과제가 되고 있으나 큰 문제는 아닐 것으로 보인다. 의향 광주의 역사적인 사초의 현장이 5.18구묘역과 광주교도소라는 점에서 기록화와 공간성을 정비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대동문화 101호. 2017년 7-8월.

정인서 기자  somchanel@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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