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서로 안고 산다

물이 산을 안고 돈다

산은 나무를 안고

나무는 새들을 안고

아빠 엄마는 나를 안고 간다

나는 풀꽃을 안고

풀꽃은 개미를 안고

우리는 모두가

서로서로 안고 산다

아동문학가 이성자 교수(사진 리일천)

어린 시절 품은 한 편의 동화, 옛이야기는 평생토록 힘이 된다. 서로 앞을 다퉈 미래로 달려갔지만 그곳에서 기다린 것은 어린 날 꿈꾸던 일만이 아니었다. 내 스스로 만든 아픔과 고독 속에서 방황 할 때, 나를 지탱하게 했던 것은 유년의 아름다운 기억이었다.

동화(동시)는 그림책과 동화구연으로 발전하며 시대가 요구하는 콘텐츠를 만들어 내고 있다. 어쩌면 최후까지 남을 세대 간의 소통 창구가 아닐까. 이성자 교수가 걸어 온 길을 살펴보면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진화되어 온 아동문학이 보인다.

기다림과 격려의 힘

아동문학은 참고 견디는 일이다. 어린이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긴 시간이 필요하다. 아동문학을 하면서 성급하게 결과를 바라지 마라. 아이들의 한 살은 시간의 양으로 계산할 수 없다. 특히 초등학교 3-4학년, 10살을 전후한 아이들의 상상력은 무한하다. 이 때의 독서가 평생을 좌우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동문학은 어린이들에게 등불을 켜주는 문학이다. 오래 참고 성장을 기다리며 칭찬과 격려로 용기를 북돋아주는 일이 중요하다.

가슴 한편, 누구나 어린 시절의 방이 있다

이성자 교수가 아동문학에 발을 디딘 것은 많이 늦었다. 하지만 ‘만나야 할 것을 만난다’는 인연법처럼 40세를 넘어서 아동문학을 시작했다. 그에게 첫 점(点)을 찍은 사람은 아동문학에 눈을 뜨게 한 전원범 교수다. 그리고 조태일 시인이다. 이성자 교수는 “내 인생의 길을 튼 사람”이라고 표현한다. 조태일 시인은 “학생을 가르칠 운명을 타고 났다”며 격려와 용기를 주었다. 그의 내면에 똬리를 틀고 있던 문학성이 되살아 난 것이다.

한번은 꿈속에서 조태일 시인(당시 광주대 학장)을 만났다. 그는 다 떨어진 바바리코트를 입고 찾아와서 이성자 교수에게 낡은 코트를 입혀주고 떠났다.

비록 늦깎이로 문학을 시작했지만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다. 그런 연유로 이성자 교수에게는 많은 제자들이 생겼다. 앞으로도 늦깎이 문인들이 공부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자 한다. 아동문학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동심을 살린다. 좋은 책을 읽고 공부할 환경이 조성되면 좋은 작품이 많이 생산 될 것을 믿는다. 아동문학은 어린이를 위함도 있지만 자신을 성찰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신안안좌초등학교 작가초청(2011)

아동문학(동시, 동화)은 한 몸이다

이성자 교수는 ‘서울로 간 허수아비’(윤기현), ‘화요일의 두꺼비’(러셀 에릭슨)를 추천한다. 구성과 개연성 등 기본에 충실한 작품들이다. 자신의 작품으로는 동시에서 ‘손가락 체온계’와 동화에서 ‘별사탕 달사탕’을 꼽는다.

엄마는 아이가 아플 때면 겨드랑이에 손가락만 집어넣어도 안다. 배가 아프면 엄마가 배를 쓸어주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엄마의 손은 그냥 약손이 아니었다. 혼신의 기를 모으고 진정한 사랑을 담았다. 목숨과도 바꿀 수 있는 사랑이었다. 손가락 체온계는 귀신같이 정확하다.

‘별사탕 달사탕’에서도 별과 달을 모두 사탕으로 만들어버리는 재주에 감탄을 하게 된다. 노랗게 빛나는 별똥별의 꼬리, 이 얼마나 신비한 세상인가. 더구나 할머니의 지혜는 말로만 끝나지 않는다. 할머니가 준비한 별사탕 달사탕은 평생을 먹고도 남는다. 한번 새겨진 좋은 기억은 어려운 고비를 넘어가는 힘이 되기 때문이다.

오래오래 몸속에 남아서 혈관을 타고 흐르는 동심. 사람들은 어린 시절을 지나고 한창때를 지나서 할머니가 되고 할아버지가 된다. 꿈에 그리던 어린 시절로 돌아가면 뒤뜰에 피어있는 꽃 한 송이에도 부자가 되는 것이다. 동화 같은 이야기 한 편을 간직하지 않았다면 얼마나 삭막한 삶일 것인가.

동화는 첫째 재미를 주어야 한다. 둘째 재미 속에 교훈을 품어야 한다. 셋째는 예술을 지향한다는 것이다. 동화를 읽으며 생명의 소중함, 다양한 개성의 상호존중, 꿈과 이상, 자연과 생태계의 기본법칙을 알게 된다. 어떤 상황에서도 최선을 다하는 힘, 동화는 끝없는 매직이다.

친정 어머니와 셀카놀이(2013)

풍선 같은 사람, 안정을 주는 사람, 함께 꿈꾸는 사람

대한독서문화예술협회 부설 그림책 연구회의 심명자 회장은 “교수님은 나에게 풍선 같은 사람”이라고 말한다. 노란 풍선에 공기를 가득히 채우고 푸르른 창공을 날아오른다. 세상은 그림책이 되고 멀리서 손짓하는 것들이 그립다.

아동문학과 그림, 만화 등에서 활동하고 있는 윤미경 씨는 “안절부절못하다가도 교수님 목소리에 안정을 찾는다”고 한다. 그만큼의 세월이 녹아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누군가의 품이 된다는 것, 어린 시절에 부모님의 품은 모든 것이 가능한 세상이었지 않았던가.

이성자 교수와 제자들의 만남, 그것은 일상과 같은 일이어서 한밤중에도 스스럼없이 전화를 걸게 한다. 그러한 일들이 아직 써지지 않은 한 편의 동화 같다. 함께 꿈꾸고 함께 노래하는 문학, 아동문학으로 만난 길벗들의 삶을 눈앞에서 본다. 아동문학은 흐드러지게 어울려 피는 봄꽃들의 세상인 것을.

다리

엘리베이터 안에서

처음 만난 나를 보며

-안녕?

너는 웃으며 인사했어

서로 아는 사이도 아닌데

인사하는 너를 보며

-안녕?

나도 엉겁결에 따라서 했지

우리 사이에

금세 다리가 놓이는 거야

그 짧은 인사 한 마디로

이성자 시인은 전라남도 영광 출생으로 광주대학교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명지대학교에서 문학박사를 받았다. 1992년 아동문학평론과 199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어린이문화신인대상 문학부문에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다. 계몽아동문학상, 눈높이아동문학상, 한정동아동문학상, 방정환문학상, 우리나라좋은동시문학상, 한국아동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동시집으로 ‘너도 알거야’, ‘키다리가 되었다가 난쟁이가 되었다가’, ‘입 안이 근질근질’, ‘손가락 체온계’, ‘엉덩이에 뿔 났다’ ‘피었다, 활짝 피었다’ 등이 있으며 동화집으로 ‘내 친구 용환이 삼촌’, ‘형이라고 부를 자신 있니?’, ‘두레실 할아버지의 소원’, ‘쉿! 특급 비밀이에요’, ‘뭐가 다른데?’, ‘딱 한 가지 소원’,‘펭귄 날다’ 등이 있다. 그림동화로는 ‘함께 놀고 싶어요’, ‘넌, 멋쟁이야’, ‘등나무 그늘방석’, 꿈틀꿈틀 지렁이 때문에‘ 등이 있다. 2011년 작품 ‘송두리째 다 내놓았어’, 2013년 작품 ‘넌 멋쟁이야’는 초등교과서에, ‘혼자 밥 먹는 날’은 중학교 국정교과서에 실렸다. 이성자 교수는 다음카페에 ‘이성자의 문예창작교실’로 소통방을 내고 있다. http://m.cafe.daum.net/klsja3

총 26권의 작품집 발간

대동문화 101호. 2017년 7-8월.

김을현 기자  somchanel@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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