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선의 작가 정윤태 조각가

곡선은 생명의 근원이다. 여인의 둔부도 곡선이고, 아이를 품은 임산부의 부른 복부도 곡선이며, 인류의 생명줄인 유방역시 곡선이다. 그런 곡선을 잘 표현해내는 조각가가 있다. 그는 바로 정윤태 조각가(70)로, 그가 보여주는 곡선은 놀랍기만 하다. 정윤태 조각가가 보여주는 곡선은 어디 한곳 멈추거나 주저하지 않는다. 게다가 과장되거나 억지스럽지 않다. 곡선의 시작점부터 마치는 지점까지 한 번에 흐르며 그 긴장과 유연함을 유지한다. 그 곡선을 보고 있노라면 마음이 편안해지며 안에서부터 어떤 따듯한 생의 에너지가 괴는 듯하다.

어디서 그런 힘이 나올까. 브론즈나 돌은 작가의 손안에서 한없이 유순하고 부드러우며 무르기만 하다. 브론즈나 돌을 가지고 자유자재로 곡선을 다루는 작가의 솜씨가 그저 놀랍기만 하다. 어디 곡선뿐일까. 작가가 표현하는 직선 또한 마찬가지다. 작가의 곡선 안에는 직선이 들어있고, 그 직선까지도 슬그머니 곡선으로 마감되며 부드럽다.

곡선의 작가 정윤태 조각가

작품과 작가는 닮는 법

작가의 작품을 보고 있노라면 온갖 소리들이 들린다. 파도 소리도 들리고 바람소리도 들리고 비둘기 소리도 들리고 피리소리도 들리고 웃음소리도 들린다. 모두가 살아있다. 무정물의 사물에 생명을 불어넣는 작가의 진지한 자세는 그대로 작품에 드러난다. 어떤 작품은 도약과 비상의 순간을 포착해내거나 어떤 작품은 지극한 모성으로 아이를 품고 있거나 어떤 작품은 염원의 표정으로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 작가의 작품 속에서 일관되게 읽을 수 있는 것이 염원과 기도이다. 비상의 순간뿐만 아니라 발을 땅에 굳건히 딛고 있는 상태에서도 얼굴은 하늘을 향해 있다.

“제 고향이 바로 완도였습니다. 바닷가였죠. 고기를 잡아 생계를 이어갔는데, 풍랑이 일면 배가 뜨지 못해요. 또 고기를 잡다가도 바다 한가운데서 풍랑을 만나면 살아 돌아오지 못했지요.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늘 하늘을 올려다보며 기상을 살펴야했습니다. 그게 작품속에 녹아들어간 것입니다."

고향 사람들에게 하늘은 곧 생과사의 주관자였고, 경외의 대상이었다. 자연스럽게 작가의 의식 안에는 고향에서 느꼈을 하늘과 바다에 대한 두려움이 내재되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작품 속에 그 하늘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천지인, 그의 작품을 이루는 요소는 바로 천지인, 그 완전한 조합이었다.

작품과 작가는 닮는 법. 아무리 감추려 해도 작가의 모든 것은 작품 속에 드러나기 마련이다. 작가의 작품 속에도 작가의 얼굴이 들어있었다. 미소가 들어있는 눈 꼬리와 기름한 얼굴들, 가느다란 선들이 영락없이 작가의 표정이었고, 얼굴이었다.

당시 완도에서 광주까지는 여덟 시간이 걸렸다고 했다. 선착장까지 걷고 또 걷고, 마침내 배를 타고 나와 다시 버스를 타야만 도착할 수 있는 곳이 광주였다. 초등학교 3학년 때, 고향을 떠나는 그 여덟 시간의 긴 여정동안 작가는 어떤 다짐을 하고, 어떤 꿈들을 품었을까.

“제가 뭘 하겠다고 마음먹으면 꼭 이루고야 마는 집중력이 있습니다. 그 어떤 시련에도 좌절하지 않았지요. 그때 집을 떠나오면서 열심히 살자고 스스로에게 다짐했습니다.”

삶을 올곧게 살아왔다는 작가가 특히 강조해 보여주었던 작품은 한 사람의 손이었다. ‘손가락으로 바위를 뚫어라’는 문구가 양각으로 새겨져 있는 작품은 실제 모델이 있는 손이라고 했다. 일 잘하는 일꾼의 손을 사진 찍어 작품을 하다 다시 그 손을 직접 보면서 마무리 완성을 했다고 했다.

"이 작품에 제 조각의 철학이 담겨있습니다. 쉬지 않는 손, 머물지 않는 정신을 표현한 것이지요.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손가락으로 바위를 뚫어라. 5센티미터의 양각으로 새겨져 있는 그 문구가 인생의 격구처럼 느껴진다. 기실, 그 작품은 직선이어서 힘이 넘친다. 아니, 직선 같은 곡선이다. 직선과 곡선이 동시에 느껴지는 그 양면성에서 오히려 삶을 움켜쥔 억센 힘이 느껴진다. 살다보면 곡선만 있는 것은 아니다. 때때로 창살 같은 직선은 우리의 삶을 아프게 찌르고 든다. 하지만 작가의 직선 같은 곡선은 때로는 직선이 주는 진취적인 힘이 느껴진다.

곡선의 작가 정윤태 조각가

100억 원 상당의 작품들 기증

정윤태 조각가는 조각의 불모지였던 이 지역에 조각의 생명을 불어넣은 작가이기도 하다.

“조각은 쉽게 접근할 수 없도록 만드는 장애요소들이 많아요. 우선 먼저 제작비용이 많이 든다는 것이 문제죠. 브론즈나 돌을 마련하기도 쉽지 않고, 또 제작기간도 오래 소요되지요. 거기다 작업과정과 운반하는데 들어가는 경비와 힘도 만만치 않아 다들 꺼릴 수밖에 없죠.”

사람들이 꺼리는 길을 가는 작가는 최선을 다했다.

작가는 작품의 주제를 주변에서 찾는다. 그 중에서도 가족은 작가에게 많은 영감과 과제를 안겨주는 금맥이기도 하다.

"세상살이의 기본은 가정입니다. 가화만사성이라는 말이 있듯 가정이 화목해야 살아갈 에너지를 얻고 원만한 사회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부모를 공경하고 효도하며 사는 것, 거기에 삶의 참 진리가 들어있습니다. 우리는 거기서 출발해 자신의 지평을 넓혀가야 합니다. 옛날에는 군사부일체라 해서 스승과 임금과 부모는 같다고 봤습니다. 그러니 모든 것은 효에서부터 출발하지요." 작품에서도 그 같은 작가의 생각이 여일하게 나타난다. 헌데 작가는 학교를 퇴직하고 나서 이런저런 병에 시달렸다고 고백했다. 우울증은 작가의 삶을 위협했다. 그런 와중에 작가는 지난해 4월, 자식처럼 아껴오던 작품들을 남부대학교에 기증했다. 배포 크게도 100억 원에 상당하는 작품들이었다. 그 안에는 이렇게 저렇게 수상한 작품들도 들어있었다. 가족들의 반응이 궁금하다고 했더니 작가는 처음에는 가족들의 반대가 컸지만 나중에는 자신의 뜻을 이해하고 함께 응원해주었다고 대답했다.

“남은 게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오직 작품밖에 없었지요. 헌데 그것을 아무 조건 없이 기증해버렸으니 당연히 서운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컵에 가득 담긴 물을 비워내면 가벼워지듯이 저에게도 그런 일이 일어났습니다. 아픈 것이 언제 그랬냐싶게 씻은 듯이 나은 거지요. 지금은 건강합니다.”

그렇게 작품들을 떠나보내고 나자 작가를 괴롭히던 병이 나은 것이다.

곡선의 작가 정윤태 조각가

그런 작가가 걸어온 길이 다채롭다. 길이 다채로운 만큼 이력 또한 화려하다. 광주․전남 예총부회장, 조선대학교 미술대학 학장, 그렇게 작가는 자신만의 세상을 고집하지 않고 자신이 가진 것들을 사회에 환원하거나 나누며 살아왔다. 그 중 하나가 문화전당 앞에 있는 자유의 종이다. 그 자유의 종에 새겨진 조각문양은 그가 재능기부한 작품들로 광주의 정신과 상징들을 담고 있다. 사방에 새겨져 있는 광산 고싸움과 5.18의 형상, 무등산의 입석대와 서석대, 광주학생독립기념탑이 바로 그것이다.

작가는 조심스럽게 앞으로의 계획도 말했다. "십이지신상을 만드는 겁니다. 열두 가지 동물을 만드는 것인데, 매년 그 해에 맞는 동물을 만들어 볼 계획입니다." 작가의 손에서 탄생할 그 십이지신들이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다.

대동문화 101호. 2017년 7-8월.

은미희 소설가  somchanel@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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