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초순은 런던 올림픽 경기 중계를 보느라 밤잠을 설쳤다. 여러 종목 의 경기를 보면서 우리 민족 전통의 경기는 겨우 태권도뿐인데도 그마저 세계화에 이르지 못해 제외 검토 대상 종목이 되었다는 소식을 접하면서 역시 올림픽은 유럽 중심 축제라는 인상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하기야 태권도마저도 전통 민속 무술인 택견을 일본의 가라데나 유도처럼 세계화를 위한 연구 끝에 정리할 것이라 하므로 할 말은 없다.

오늘날 국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각종 축제나 전국체전에서마저 전통 경기보다 외래 경기 종목이 주류를 이루고 있어도 이를 세계화의 추세라고 관행처럼 여기고 있어 안타깝다. 이제 우리나라도 경제력이 10위권 안에 접어들었고, 덩달아 유럽 중심 체육 경기 종목에서 당당히 5위권에 올라선 국력을 갖추게 되었다. 우리는 지금 예술 분야에서도 수준급에 올라 한류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뒤늦게나마 천하게 여기던 우리 전통에 대한 재인식이 시작되고 지역마다 지역 정체성 찾기에 나서고 있다. 또한 능률을 핑계로 획일화를 추구하던 문화마저 국지화와 개성화가 새로운 과제가 되어가고 있다. 근래 서울 중심 표준어를 지키면서도 지역 사투리의 가치를 보존하자는 기운이 일고 있는 것도 이런 추세의 하나다.

세계 곳곳에 씨름 형태의 경기가 있다

올림픽 경기를 시청하는 동안 올림픽 경기 종목이 동양 중심으로 옮겨올 때는 전제로 먼 훗날 채택할 만한 경기 종목을 생각해 보았다. 그중에서 가장 가능성이 높은 종목을 꼽으라면 씨름이라 할 수 있다. 힘을 겨루는 씨름의 형태는 칼싸움이나 활싸움, 사격에 앞서 세계 곳곳에서 아주 옛날부터 행해졌다.

대표적인 것을 들라면 일본의 스모, 몽골의 부흐가 있고 러시아의 삼보, 스페인의 루차키나리아, 아이슬란드의 팽, 스위스의 쉬빙겐, 터키의 카라쿠지크 따위가 있다. 오늘날 올림픽 경기 종목이 되어 있는 레슬링은 그리스의 씨름을 발전시킨 것이다.

어느 때 씨름의 형태가 올림픽 경기 종목이 되리라고 미리 예단할 수는 없지만, 그때를 대비해서라도 아니면 우리 전통을 되살려낸다는 점에서도 전통 씨름의 원형을 찾아 육성할 필요를 느끼게 된다.

씨름은 전통 경기의 백미였다. 해방 전후만 하더라도 축제에는 반드시 씨름판이 벌어졌고 학교 운동회 때도 빠짐없었던 경기였다. 씨름판이 벌어지면 임시 장이 설 정도로 많은 관람객이 몰렸기 때문에 새 시장을 열 때면 난장 씨름이라 하여 송아지나 황소가 상품으로 내걸려 어떤 굿판보다 많은 인파를 동원하곤 했다.

우리 조상들은 아주 오래 전부터 힘겨루기를 위해 들독 들기를 하거나 씨름을 했다. 고구려 벽화인 만주 통화성 집안현 통구의 각저총 석벽에 씨름 모습이 나온다. 고려사에는 씨름경기 기록이 여러 곳에 나오고 송나라 서긍이 고려를 다녀간 뒤 쓴 <고려도경>에도 고려 사람들의 씨름을 ‘고려기’라고 소개하고 있다.

바른씨름은 호남 오른쪽씨름이다

전통 씨름이 전국 대회의 모습을 갖춘 때는 일본 식민 시절인 1927년이다. 당시 일본에서 스모의 열기를 보고 귀국해 서울고등보통학교에서 체육 교사로 근무했던 강낙원 씨 등 교사들이 중심이 되어 1927년 9월 서울 휘문고등보통학교에서 제1회 ‘전조선씨름대회’가 열리고 36년 여운형 씨를 회장으로 추대한 뒤 조선일보가 주최하여 ‘전조선씨름선수권대회’를 열었다.

광복후 48년에 열린 제29회 ‘전국체육대회’ 때 처음으로 경기 종목으로 씨름이 채택되었다. 당시 씨름은 오늘날 획일화된 왼씨름 외에 오른씨름이 따로 있었다.

왼씨름은 오른손으로 허리띠를 잡는데 견주어 오른씨름은 왼손으로 허리띠를 잡는 방법이다. 왼씨름은 왼손잡이에게 유리한 씨름 방법이다. 호남 지방에서 유행해온 오른씨름은 힘이 약한 왼손은 허리띠를 잡고 힘이 센 오른손으로 샅바를 잡기도 하고 잡지 않고 손기술을 발휘할 수도 있어 오른손잡이가 유리하다.

그러므로 경상도에서 행해온 왼씨름은 허리 기술과 다리 기술이 주류를 이루지만 호남 씨름은 오른손을 이용한 무릎치기, 오금치기, 잡치기, 꼭뒤집기, 등샅바 잡아치기 등 기술을 발휘해 씨름 기술이 훨씬 현란하다.

이 때문에 어려서부터 오른씨름으로 단련된 호남 사람들이 전국체육대회 때 대부분 최고상을 차지했다. 이처럼 두 가지 방식의 씨름이 25년 만인 1972년 전국체전 때 경상도 씨름이라 할 왼씨름으로 획일화되어 호남 장사들이 빛을 잃고 호남 씨름의 전통이 역사에서 사라지게 됐다.

당시 왼씨름으로 통일시킨 것은 일제시대인 1927년 서울고보 체육교사들이 학생들을 시켜 씨름 실태를 조사했는데, 오른씨름은 경기도와 호남에 국한되어있고 왼씨름이 다른 모든 지역에서 행해졌다는 보고가 있다는 변명을 내걸었다.

말도 아닌 소리다. 충청도 사람들도 왼씨름을 했다지만 전라도와 충청도 경계에서 수십 년 계속된 논산 씨름은 두 도 대표의 힘겨루기가 계속되던 역사가 있다. 이 씨름판에서 충청도 사람들도 오른씨름을 했다. 이점은 40여 년 전 현장에서 확인한 바다. 어째서 왼씨름을 오늘날 오른쪽을 뜻하는 바른씨름이라 하는가. 왜 레슬링은 여러 경기 방법이 존속되고 있는가.

고구려 벽화의 씨름도 오른씨름이다. 김홍도의 풍속도 씨름 장면도 왼손으로 허리춤을 잡은 오른씨름 형식이다. 물론 김홍도 그림의 씨름을 ‘띠 씨름’이라고 구분하고 있지만 국민의 대다수가 오른손잡이인 것을 염두에 둔다면 오른손 곧 바른손씨름이 씨름의 본류이다.

경위야 어떻든 전라도 사람들은 전라도 사투리가 중한 문화재이듯 오른씨름도 지켜가야 할 중요 문화유산으로 인식해야 한다. 오른씨름을 부활시키는 것은 지역의 자존심이기도 하다.

대동문화72호 [2012 9.10월호]

김정호 광주향토문화연구소장  webmaster@chkorea.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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