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벙어리 기생을 사랑했습니다우리 문화재를 지켜나가는 사람들
김을현 기자 | 승인 2017.09.11 18:45
대동문화 백승현

문화재를 ‘벙어리 기생’이라고 말한 사람이 있다. 문화재는 어떻게 태어났는지, 어떤 주인을 만났는지, 몇 살인지 스스로 말하지 못한다. 그저 자기를 더 아껴주고 사랑해주는 사람에게 팔려만 다닌다. 그래서 ‘벙어리 기생’이라는 것이다.

‘팔만대장경도 모르면 빨래판이다.’라는 책자 이름도 있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는 명구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안목이 있어야 알아보고, 알아야 새로운 인식의 전환이 있다는 말일 것이다. 새롭고 풍요로운 삶을 위해 우리는 밥도 먹어야 하지만 문화와 예술도 절실하게 배고프다. 문화재는 오랜 가치 있는 삶의 흔적이자 민족의 미래를 비추는 역사의 거울이다.

1930년 어느 날 인사동 골동품상 박 씨가 좋은 물건을 호리러 장호원 쪽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날이 저물어 주막집에 들러 저녁상을 받아 밥을 먹고 있는데 마루 끝에서 그 집 고양이도 주막 주인이 준 밥을 먹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던 박 씨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고양이 밥그릇이 청자 대접이었는데 심상치 않게 보였다.

작전이 시작됐다. 주안상을 봐오게 해서 주인에게 거나하게 대접하고는 말했다. “우리 집에 쥐가 많은데 저 고양이를 나에게 파시오. 내 고양이 값은 두둑이 치르겠소.” “제가 술도 얻어먹었으니 거저 드리지요.” 주인장은 속셈이 어두웠다. 박 씨는 고양이 시세 값의 3배인 3원을 치렀고 말했다. “고양이는 자기 먹던 밥그릇에 밥을 주어야 좋아한다는데, 밥그릇까지 함께 가져가도 되겠소?” 마음씨 좋은 주막 주인은 쉽게 허락했다. 박 씨는 마른침을 삼키며 고양이와 고양이 밥그릇을 인사동으로 가져왔다.

고양이 밥그릇은 단골로 거래하던 이나가키라는 일본 골동품상에게 넘겨졌다. 대접 값으로 150원, 고양이 값으로 5원, 도합 155원이었다. 52배나 넘겨먹는 장사였다. 하지만 아뿔싸! 모란이 근사하게 수놓아진 이 고양이 밥그릇은 보물급 청자 대접이었다. 이렇게 일본 골동품상에 팔린 문화재의 운명이 어찌 되었겠는가?

문화재 관리를 우리 뜻대로 할 수 없었던 일제 강점기 슬픈 일화다. 우리 문화유산이 임진왜란과 일제 강점기, 6·25를 거치면서 어떻게 약탈되고 파괴되고 도난당했는지 수많은 문화유산들의 천신만고 끝 생존 이야기를 통해 알 수 있게 된다. 소전 손재형, 간송 전형필, 호암 이병철 등과 같은 우리 문화재를 지킨 큰손들이 있었다. 6·25 때 합천 해인사를 지킨 장지량 제1전투비행단 중령이 있었다. 직지심체요절을 찾아내고 외규장각 도서가 145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오도록 평생을 바친 박병선 박사도 있었다. 구례 화엄사를 지켜낸 차지혁 총경도 있었다. 이 분들은 평생을 또는 혼신을 내던져 문화유산을 지킨 영웅들이었다.

선각자들에 의해 문화재가 지켜져야만 했던 힘겨운 시대를 지나 이제 문화재 보존과 관리와 활용은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영역을 떠나 기관과 단체, 가족, 개인 등 모든 국민의 관심 영역으로 확산됐다.

2016년 통계로 전국에서 문화재 가꾸기 자원봉사활동을 하는 지킴이들이 84,597명이다. 우리나라 지정 문화재수가 13,040건이니 최소 6명의 지킴이들이 문화재를 찾아 알고 지키고 가꾸고 있는 셈이다.

문화재를 보존하는 단계에서 더 나아가 문화재 돌봄 관리사 등 일자리가 만들어졌다. 문화유산 방문교사, 문화재 생생 프로그램, 야행 프로그램, 서원 향교 활용 프로그램이 전국을 수놓고 있다. 문화재를 관광자원화 하는 역동적인 보존 활용 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문화유산 이야기 자원을 영화, 웹툰, 드라마, 영화, 음악, 축제, 테마파크로 만들어나가는 산업으로 돈을 벌어들인 기업도 많다. 서울의 4대궁 및 종묘 관람객이 작년 한해 역대 최대 규모로 1천 357만 명이었다.

다채로운 문화재 보존 활용 프로그램으로 국민의 문화재 향유, 참여 기회를 확대하려는 국가와 지자체의 정책 관심이 필요하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바른 문화재 인식과 보존 의식이다. 알아야 지키고 지켜야 후손에게 물려줄 수 있다. 문화재를 지키는 국민의 손길이 무형문화재로 지정될 때, 지금도 수많은 문화재 보존 현장에서 묵묵히 ‘벙어리 기생’을 사랑하는 지킴이들의 노고가 보상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광남일보 9월 8일 문화산책

김을현 기자  somchanel@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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