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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등산에 저녁 구름 피어나고···남은 여생(餘生), 자연과 더불어 살리라
임영열 시민기자 | 승인 2017.09.20 15:40
광주광역시 세하동 동하 마을에 있는 ‘만귀정’ 광주광역시 문화재 자료 제5호

무덥고 습했던 여름이 슬그머니 꼬리를 감추고 떠난 자리에 서늘한 가을바람이 헤적이며 들어오고 있다. 자연의 시계는 어김없이 가을로 접어들고 있다. 누구도 거스를 수 없는 자연의 이치다. 본디 인간은 자연에서 태어나 자연에서 살다가 자연으로 다시 돌아간다. 인간뿐 아니라 모든 살아있는 존재들의 숙명이다. 여기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자연과 함께 노년을 지내고 후학들을 가르치며 풍류의 삶을 살다 간 선비의 흔적이 오롯이 남아있는 곳이 있다.

늦게 돌아온 사람, 효우당(孝友堂)의 만귀정(晩歸亭)

광주광역시에서 송정리 가는 광·송간 도로를 시원스럽게 달리다 보면 극락 교차로가 나온다. 좌회전하여 순환도로 옆길로 빠져나와 서창 방향으로 가다 보면 송정 평야의 넓은 들이 펼쳐진다. 들판 한가운데를 관통하며 극락강이 흐르고 있다. 그 옛날 이강에 배들이 드나들며 세곡을 운반하고 보관했던 큰 창고가 있었다. ‘광주의 서쪽에 있는 창고’라 하여 ‘서창(西倉)’이라 불렀다. 담양에서 흘러온 극락강과 장성에서 발원한 황룡강의 두 물줄기가 만나 사실상 호남의 젖줄 영산강이 시작되는 풍요로운 곳이다. 이곳, 광주광역시 세하동 동하(洞荷) 마을 어귀에 ‘만귀정(晩歸亭)’이 있다.

한 뿌리이지만 잎과 꽃이 서로 만나지 못해 서로를 사무치게 그리워한다. 꽃말은 ‘이룰 수 없는 사랑’ 이란다

마을 입구 청량교 다리를 건너서자 붉은 양탄자를 깔아놓은 듯 ‘꽃무릇’이 무더기로 피어 있다. 마스카라 짙게 바르고 속눈썹을 높이 치켜든 붉은 꽃이 이파리 하나 없이 매끈하고 긴 꽃대를 쑥 밀고 올라와 고즈넉한 연못 정자를 빨갛게 불태우고 있다. 푸른 연잎들과 대조를 이루며 붉은 실타래를 풀어놓은 채 가을의 화신(花信)을 전하고 있다. 한 뿌리 이면서도 잎과 꽃이 서로 만나지 못해 사무치도록 그리워한다고 해서 상사화(想思花)라고도 한다. 만귀정의 붉은색 단청과 어울려 가을 분위기를 한 껏 돋우고 있다.

연못 주위에 피어 있는 꽃무릇. 연밥과 조화를 이뤄 아름답다

지금으로부터 약 270여 년 전인 1750년경 조선 영조 때 남원에서 이곳으로 이거한 선비가 있었다. 흥성장씨(興城張氏) 효우당(孝友堂) 장창우(張昌羽 1704~1774)다. 이곳에 정착한 효우당은 만귀정을 짓고 후학을 가르치며 자연과 더불어 여유 있는 삶을 살아갔다. 지금도 이곳 동하마을은 흥성장씨의 동족 마을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정자의 명칭 ‘만귀정(晩歸亭)’은 효우당(孝友堂)이 노년의 인생을 자연과 더불어 보내겠다는 ‘영귀(詠歸)’의 뜻으로 해석한다. 자연경관이 아름다워 당시 시인 묵객들이 찾아와 시를 짓고 서로의 흥취를 돋은 곳으로 유명하다. 이쯤 해서 만귀정에 걸려 있는 효우당의 ‘만귀 팔경(八景)’을 감상해보자.

瑞石明月 무등산에는 밝은 달이 떠 있고

龍江漁火 황룡강에는 어부들의 불빛이 있네

馬山淸風 마산에는 맑은 바람 산들거리며

樂浦農船 낙포에는 농사를 위한 배가 오가네

漁燈暮雲 어등산에 저녁 구름 피어나고

松汀夜雪 송정에는 흰 눈이 밤을 밝히며

錦城落照 금성에는 아름다운 저녁노을

野外長江 들밖에 길고 긴 강물이 흐르네

만귀정 주변 아름다운 낯과 밤의 풍경을 8폭의 그림으로 그려놓았다. 마치 8폭짜리 병풍을 보는 듯 눈에 선명하게 들어온다. 정자에서 바라보는 무등산과 황룡강의 경관도 잘 묘사해 놓았다. 정자에는 효우당의 만귀정 원운시 외에도 후손인 장안섭의 시를 포함에 약 40여 편의 시문들이 걸려 있다. 일제 강점기 시대에도 ‘만귀정 시사(晩歸亭時社)’라는 시모임이 있었다. 이를 기념하는 ‘만귀정 시사 창립 기념비(晩歸亭詩社創立記念碑)’가 정자 옆에 세워져 있다.

주위의 꽃향기가 엄습해 온다는 ‘습향각’

셋이라서 더 좋다

처음 만귀정은 극락강이 바라보이는 이 곳에 후학을 가르치기 위해 초당으로 지어졌다. 언제인가 없어진 것을 훗날 이곳에 동족마을을 이루며 살고 있던 장창우의 후손들이 선조가 후학을 가르쳤던 옛터에 그 유덕을 기리기 위하여 정면 2칸, 측면 2칸 팔작지붕의 만귀정을 1934년에 중건하였고 그 후 1945년에 중수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효우당이 이곳에서 일가를 이루었듯이 만귀정에는 세 개의 정자가 일직선으로 나란히 서 있다. ‘습향각(襲香閣)’과 ‘묵암정사(默菴精舍)’다. 만귀정 경내의 연못에는 3개의 섬이 있다. 각각의 섬에는 습향각을 가운데 두고 만귀정과 묵암정사가 서로를 그리워하고 있다. 세 개의 정자는 다리로 연결되어 있다.

광산 군민들이 묵암 장안섭의 공덕을 기려 세워준 정자 ‘묵암정사’

만귀정 계단을 내려와 연못의 다리를 건너면 습향각이 있다. 정면·측면 한 칸짜리 조그만 팔작지붕 정자다. 이 집은 1940년에 효우당의 7 세손 묵암 장안섭이 지었는데 사방 연못 주위의 ‘연꽃 향기가 엄습하여 온다’는 뜻의 이름이다

습향각에서 좁디좁은 나무다리를 은하수 오작교 건너듯이 조심조심 건너면 묵암정사가 대숲을 뒤로한 채 꼭꼭 숨어 있다. 묵암정사는 송정 읍장을 역임한 효우당의 후손, 묵암 장안섭의 공로와 덕행을 기리기 위해 1960년 광산 군민들과 친지들이 성금을 모아 건립해준 습향각과 같은 크기의 정자다.

습향각에서 묵암정사로 가는 좁은 나무다리. 노거수 한 그루가 받침대에 의지에 어렵게 생명을 이어가고 있다

들어갈 때는 취하더라도, 나올 때는 깨고 나오라

모든 문화재에는 그 문화재의 가치와 정신을 숨겨놓은 비밀 코드가 있다. 만귀정에도 암호가 숨겨져 있다. 만귀정을 지나 습향각으로 가는 축대 밑에 직사각형의 제단처럼 만들어진 매끈하고 긴 석재 하나가 살짝 놓여 있다

‘취석(醉石)’과 ‘성석(醒石)’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만귀정에서 습향각으로 가는 쪽에 취석이라고 새겨져 있고 반대편에는 성석이라고 새겨져 있다. 들어갈 때는 술에 취해 있더라도, 나올 때는 술을 깨고 나오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만귀정 축대 밑에 살짝 놓여 있는 ‘취석’과 ‘성석’ 만귀정의 비밀코드

또 다른 해석으로는 이곳에서 꽃향기에 취해 있다가 나올 때는 꽃향기에서 깨서 나오라는 뜻으로, 만귀정에 흠뻑 취하여도 돌아갈 때는 깨서 돌아가라는 뜻이다. 봄이 오면 벚꽃이 흐드러지고, 여름이면 배롱나무 진홍빛으로 물들며, 가을에는 연못가 상사화 붉게 수를 놓고, 겨울에는 늙은 소나무가 흰 눈 꽃으로 장관을 이루니, 그게 어찌 쉬운 일 이겠는가! 사시사철 꽃대궐을 이루는 만귀정은 광주광역시 문화재자료 제5호로 지정되어 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광주광역시 문화재 홍보를 위해 ‘오마이뉴스’에도 게재하였습니다.

 

임영열 시민기자  youngim147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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