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옥의 인기는 구태여 장황하게 설명하지 않아도 쉽게 체감할 수 있다. 서울에서는 북촌 일대를 중심으로 한옥 열풍이 시작되어, 이제는 카페, 레스토랑, 공예품점, 심지어 병원이나 주민센터에 이르기까지 한옥으로 된 다양한 시설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여전히 한옥은 일반적인 현대 건축에 비해 비용도 많이 들고 사용하면서 관리하고 사용하면서 번거로운 부분도 적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시대에 한옥을 짓는 일은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일까?

짓는 것보다 더 어려운 한옥의 활용

한옥이 인기를 끌면서 한옥으로 된 시설은 고가의 상업 시설이거나 상류층을 위한 고급문화 시설이라는 이미지를 형성하는 경우가 많다. 단순히 한옥을 권장하는 정책적 의사 결정에 따라 용도에 맞지 않는 시설에 막대한 비용을 투입하여 껍데기뿐인 한옥을 만들고 결국 효율적으로 활용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한옥의 전통을 온전히 이어가기를 바라는 분들이 있는 반면 다양한 실험을 통해 한옥이 보다 쉽게 보급되기를 바라는 분들도 있고, 때로는 이러한 이견이 충돌과 논란을 야기하기도 한다. 개별 건축물로서의 한옥이 아니라 마을을 만들고 기존 도시와의 조화를 이루는 것은 또 한걸음 더 나아가 많은 고민과 연구를 필요로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부나 지자체에서 발표하는 한옥마을, 혹은 한옥 단지의 개발 계획은 기대만큼의 우려를 내포하고 있다.

한옥이 단순히 보기에 좋은 집을 짓는 일, 혹은 관광 자원을 만들어 내거나 상업적인 이윤을 극대화할 수 있는 건축물로 인식될 경우 위험성은 더욱 커지며, 이러한 기대가 거품으로 인식되는 순간 한옥의 인기는 그만큼 빠르게 식어갈지도 모른다.

전통문화 지킴이 ‘아름지기’의 한옥 짓는 이야기

‘아름지기’는 우리 전통문화를 지키고 가꾸어 현대에 맞게 창조적으로 계승하기 위해 전통 의, 식, 주 분야에서 다양한 연구와 사업을 하고 있는 비영리 민간단체이다. 한옥을 우리 문화를 담는 그릇으로 인식하는 ‘아름지기’의 몇 가지 시도로부터 한옥이 한때의 유행이 아니라 내일로 이어지는 문화로 뿌리내리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시사점을 찾아볼 수 있을 듯하다.

아름지기 안국동 한옥은 2002년에 설계를 시작하여 2003년 봄에 완공된 아름지기의 사무공간이다. 이 집을 지을 당시 아름지기의 기본적인 목표는 두 가지였는데, 첫째는 한옥의 확산을 위해 모델하우스 역할을 할 수 있는 사례를 만드는 것. 둘째는 오늘날의 사무 공간으로 사용하는데 불편이 없도록 만드는 것이다. 이러한 목표에 따라 서울 북촌의 도시형 한옥으로서 가장 전형적인 규모인 대지 면적 30평 정도의 집을 지었다.

요즘은 전문적으로 한옥을 설계할 수 있는 건축가들도 많고 한옥 짓는 목수를 찾는 일도 그리 어렵지 않지만, 당시는 함께 일할 사람 만나는 일, 적당한 재료를 찾는 일, 현대적인 쓰임새를 위해 어디까지 한옥의 변형이 가능한가 하는 판단까지 무엇 하나 쉬운 일이 없었다. 일례로 창호에 한지 대신 일부 유리를 쓴다거나, 집안에 화장실을 설치하고 냉난방 설비를 도입하는 등 이제는 지극히 당연하게 여겨지는 것들이 당시는 한옥의 전통에 적합할 것인가 하는 논란거리로 계속 대두되었다.

전통문화 지킴이 ‘아름지기’의 한옥 짓는 이야기

안국동 한옥은 그 후로 북촌 일대에 한옥을 짓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좋은 참고 사례가 되었고 지금까지도 누구에게나 열려 있으며, 그 모든 고민과 세세한 과정이 <아름지기의 한옥 짓는 이야기>라는 단행본이 출판되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게 되었으므로 첫 번째 목표는 어느 정도 이루었다고 할 수 있다.

현대적인 편의라는 두 번째 목표는 아직까지 판단을 유보해야 하겠다. 이 집에 익숙해지면서 한옥의 아름다움을 느끼고, 한옥에 어울리는 가구, 소품, 생활 방식, 삶의 태도와 가치관 등을 체득하면서 스스로는 불편함을 인식하지 못하게 되었으나, 여전히 한옥은 짓기에 비싼 집이고 현대 건축에 비해 비효율적인 부분이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아름지기 함양 한옥은 2006년 ‘한옥 문화 체험관’이라는 이름으로 완성된 일종의 숙박 시설이며, 현재는 그냥 ‘아름지기 함양 한옥’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이 집은 1866년에 처음 지어진 정선 전씨 가문의 종택으로서 550평 정도의 대지에 안채, 사랑채, 곳간채 등 5채의 건물이 있는 전형적인 농촌 반가의 모습을 하고 있다. 종손과 그 형제들로부터 이 집을 기증 받으면서 한옥이 새롭게 조명 받고 있는 서울과 달리, 지방의 한옥들은 여전히 위기 속에 놓여 있음을 알게 되었다.

특히 일반 살림집에 비해 규모가 큰 종택들은 더욱 그러하다. 후손이 잘되면 큰 도시로 떠나고, 후손이 어려우면 그렇기 때문에 그 큰 집을 유지하기 힘들다. 요즘 몇몇 TV 프로그램에서 유서 깊은 종택들과 조상들의 문집, 대대로 이어지는 가문의 음식 등 전통을 이어가는 종손, 종부들을 조명한 몇몇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사실 극히 드문 특수한 경우이다.

한옥의 지속가능한 보존과 활용을 시험하다

아름지기가 이집을 고쳐 지으면서 목표로 한 것은 이러한 종택에 적합한 용도를 찾고 직접 운영하여 지속 가능한 유지 방법을 제시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좌안동, 우함양이라고 일컫는 함양의 아름다운 자연 경관, 그 중에서도 특히 절경인 화림 계곡에 자리 잡은 이 집은 고택에서 휴식과 선조들의 풍류를 만끽할 수 있는 일종의 숙박 시설로 만들어졌다.

사무공간으로 조성된 안국동 한옥과 달리, 함양 한옥은 먹고, 입고, 자고하는 살림 사는 집의 모든 필요를 충족시켜야 했고, 한옥의 아름다움을 유지하면서도 다양한 사람들이 머무는 데 불편함이 없도록 하기 위해 많은 고민의 결과들이 반영되었다.

사람들이 머무는 안채와 사랑채는 한옥의 옛 모습을 지키면서 특히 주변 경치를 감사하는데 최대한 효과적인 공간이 되도록 하였고, 목욕채와 식당채를 독립시킴으로써 현대적인 편의를 충족시키는 공간으로 만들어졌다. 아름지기 함양 한옥 역시 이후 유사한 시설을 만들고자 하는 이들에게 참고 사례로 널리 알려져 있다.

한옥, 사람과 문화를 담는 미래의 집

‘한옥’은 무엇일까? 한옥 열풍이 부는 가운데에서도 아직 ‘한옥’의 정의는 뚜렷하지 않다. 전통적인 구축법, 혹은 기와를 얹고 처마를 내어 단 모양새가 한옥인지, 아니면 건축가들이 파악하는 전통적인 공간의 구성과 비례가 한옥의 본질인지 일반인들로서는 판단하기 어렵다.

우리 전통 건축을 ‘한옥’이라는 말로 규정하는 순간 박제화되어 더 이상의 생명력이 사라져버린다고 이야기하는 전문가들도 있다. 누구나 어렴풋이 떠올리는 한옥의 모양새, 혹은 기억 속에 그리운 풍경은 있으나 뚜렷한 정의로 손에 잡히지 않는다.

그렇다면 한옥을 규정하기에 앞서, 한옥에 무엇을 담을 것인가를 고민한다면 그 과정에서 점차 답을 찾아나갈 수 있지 않을까? 한옥이 우리의 정서와 문화를 담고 있지 않다면, 그것은 강남의 어디쯤에 빌딩을 올리는 일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름지기는 두 번의 한옥 짓기 이후 그 속에 우리 문화를 담는 시도를 지속하고 있다. 안국동 한옥에서는 2004년부터 매해 전통 의, 식, 주 문화와 관련된 전시가 열린다. ‘우리 그릇과 상차림’, ‘우리 옷, 배자’, ‘아름지기 가구전-절제미의 전통에서 실용을 찾다’ 등 우리 전통의 원형과 새로운 해석, 실험을 선보이는 전시이다.

좌대, 쇼케이스 등에 작품으로 선보이는 일반적인 갤러리 전시와 달리, 안국동 한옥에서의 전시는 모든 작품들이 마치 일상에서 그 자리에 놓여있는 듯한 느낌으로 자연스럽게 집안 곳곳에 자리를 잡아 관람객들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그래서 멋진 작품을 보았다는 느낌보다는 저마다의 집에서 적용해보고 싶어지고 더 나아가서는 ‘한옥살이’에 대해 구체적으로 이해해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우리 정서와 마음을 한옥에 담아 즐겨보자

‘가락(家樂)’은 집과 동네에 문화를 담는 또 다른 시도이다. 우리의 집, 한옥에 우리의 소리, 국악을 담는 작은 공연은 2007년 첫 공연 당시 모두가 반신반의하던 시도였다. 마이크나 스피커 없이, 전문적인 공연장이 아닌 일반 가옥에서의 공연도 쉽지 않을뿐더러 좁은 공간에서 연주자와 청중이 가깝게는 1미터도 되지 않는 거리에서 함께 호흡한다는 것이 가능할지 의문이었다.

그러나 소리를 조정하는 전기 장치 없이도 한옥은 그 자체가 울림통이 되어 주었고, 소수의 관객과 가깝게 만나는 공연은 연주의 감동을 배가시켰다. 북촌 한옥의 유행에도 불구하고 상업적 공간, 사유화된 공간만이 존재하며, 세컨드 하우스의 양산에 의해 마을이 공동화된다는 문제 의식에서 출발한 ‘가락(家樂) - 한옥에서 우리 음악 듣기’ 공연은 국악계에서도 크게 이슈화되면서 2011년까지 5년간 13곳의 한옥에서 13가지의 우리악기를 통해 총 40회 공연을 성공적으로 지속하였다. 무엇을 담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한옥의 새로운 가치를 이끌어낸 것이다.

내일의 한옥, 그 너머를 꿈꾸며

아름지기는 2010년부터 ‘Heritage Tomorrow Project’라는 이름으로 한옥에 대한 새로운 고민을 시작하였다. 한옥을 중심으로 한 젊은 건축가들의 생각을 이끌어내는 일종의 건축 공모전이지만, 단순히 공모와 시상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주제 개발과 프로젝트 진행 과정에서의 다양한 세미나, 전문가 좌담회 등을 통해 교육과 공동의 고민을 유도하는 데 집중한다.

‘이상의 집터에서 내일의 한옥을 생각한다’, ‘한옥과 한옥 사이, 정주를 위한 집과 길’, ‘기억의 장소, 윤리의 건축’으로 이어진 ‘Heritage Tomorrow Project’의 주제는 한옥의 정의에서 시작하여 오늘날의 건축으로서 한옥의 의미와 새로운 가능성을 묻고, 우리의 도시 환경에서 한옥이 어떻게 기존의 상황과 조화를 이루어야 하며 한옥을 넘어 우리 도시와 정주의 바람직한 방향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으로 점점 더 확장되었다.

아직 한옥에 대한 답을 찾기는 어렵다. 그렇지만 그 해답은 ‘한옥’ 자체에 대한 질문보다는 이 시대, 우리의 정체성, 우리의 문화에 대한 질문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며, 그 목표는 보기에 좋은 집, 관광 자원 만들기가 아니라 우리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는 우리들의 집에 있을 것이다.

대동문화 72호 [2012 9.10월호]

장영석 재단법인 아름지기 사무국장  webmaster@chkorea.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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