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사회나 그렇지만 승가에서도 그 구성원들끼리만 사용하는 고유의 언어가 있습니다. 일종의 은어(隱語)이지요. 승가는 특히 세속과 격리된 수행 도량이어서 통용되는 언어가 한결 더 별납니다. 물론 우리나라 불교의 역사가 유구한 만큼 승가의 언어가 저자에 많이 유포되어 일상어로 굳은 것도 많이 있지요. 야단법석(野壇法席)이니, 이판사판(理判事判)이니, 시달림이니 하는 용어들이 그것입니다.

하지만 아직도 세간에서는 좀체 해독할 수 없는 절말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번에는 이 절집 은어로 썰을 까볼까 해요. 먼저, 하안거 해제하고 오랜만에 만난 스님들의 대화를 들어보지요.

오랜만에 단청불사 해볼까

“사형, 한 소식 하셨지요?”

“소식은 무슨, 망상 피우다 날 샜지.”

“그만한 수승 근기로 벌써 예닐곱 철 성만(成滿)이니 신통(神通)을 얻을 만한데….”

“신통은 무슨, 병통(病痛)만 얻었지. 요통, 복통, 두통…. 허허 하긴 그것도 신통(身痛)은 신통인가.”

“화두가 ‘이뭣고’였지요? 본래면목(本來面目)이 어떻던가요.”

“허허, 용맹정진(勇猛精進) 기간 내내 수마에만 붙들려 있었다니까. 본래면목? 그래, 면목 없더이다.”

“히히, 기왕 시은(施恩)을 저버렸으니 방하착(放下着)하고 오랜만에 단청불사(丹靑佛事)나 해올릴까요.”

“거 나쁘지 않지. 반야차(般若茶) 헌공(獻供)하고 부월채(斧鉞采)도 곁들여 거나하게 불사를 해보세나.”

“영산마지(靈山麻旨)하고 화엄경(華嚴經) 법회(法會)는 어떨까요?”

“거참, 농담이라도 그 얘긴 뺍시다. 그렇잖아도 요즘 우리 산사람들이 단월(檀越)들 볼 낯이 없는데…. 단청불사도 은은하게 금단청으로 하고 산철 공부를 하러 다시 올라갑시다.”

이 대화에서 소식(消息)은 깨달음, 망상(妄想)은 잡생각, 수승근기(殊勝根機)는 우수한 자질, 철은 석 달 안거 기간, 성만(成滿)은 졸업, 신통(神通)은 지혜, 수마(睡魔)는 잠, 시은(施恩)은 시주의 은혜, 방하착(放下着)은 내려놓음, 등으로 불가에서 자주 쓰는 용어라 그다지 낯설지 않을 겁니다.

지혜를 주는 반야차, 단청을 하는 불사

한데, 단청불사며 반야차며 부월채며 영산마지며 화엄경 법회에 이르러서는 감 잡기가 좀 어렵지요? 그게 바로 절집 은어랍니다.

단청불사는 ‘절집 건물에 칠을 입혀 부식을 방지하고 치장을 하는 공사’를 말하는데, 여기에서는 술을 마시는 음주행위를 가리킵니다. 술을 마셔 얼굴이 붉어지는 것을 울긋불긋한 단청이 치장되는 것으로 비유했으니 얼마나 멋들어지고 재미납니까.

술은 ‘곡차’라고 하지만 더 멋을 부려 ‘지혜를 주는 반야차’라고도 해요. 곡차하면 진묵대사를 꼽는데 이 술고래 스님이 쓴 시가 또 호방하기 그지없어 인구에 회자되지요.

天衾地席山爲枕 月燭雲屛海作樽

大醉居然仍起舞 劫嫌長袖掛崑崙

천지를 이부자리 삼고 산을 베개 삼아

달 켜고 구름 두르고 바다를 한 잔 술로

크게 취하여 거연히 한 판 춤을 노는데

어허라! 내 긴 옷소매가 곤륜산에 걸릴라

아주 드물기는 하지만 흡연 습을 가진 스님네도 있는 모양이어서 담배를 ‘영산마지’라고 부르며 화투놀이 하는 걸 ‘화엄경 법회’를 한다고 해요. 지난번에 한 무리 스님들이 영산마지를 올리고 화엄경 법회를 한 것이 드러나 사회적 지탄을 받기도 했지요.

‘부월채(斧鉞菜)’는 ‘큰 도끼 작은 도끼로 저민 채소’라는 뜻으로 절집에서 만든 한자말인데 소고기와 돼지고기를 가리킵니다. 스님이 고기 먹는 것을 아직도 마뜩찮게 보는 우리나라 풍습 상 드러내놓고 고기 안주 달라고 발설하기가 뭣해서 생긴 은어지요.

닭고기는 ‘울타리를 뚫고 날아온 채소’라 해서 ‘천리채(穿籬菜)’이니 이 정도면 이 은어를 만든 이에게 작명상이라도 드려야 할 판 아니에요? 그런데 한글세대 스님들은 이 풍류 넘치는 한자 은어가 못마땅해 노골적으로 ‘도끼나물’, ‘저민나물’이라고 한다네요.

국수는 스님네 좋아해서 ‘스님의 미소’라 불려

절집 말이 그렇다는 얘기지 육고기 좋아하는 스님들 별로 많지 않습니다. 제가 겪어본 바 스님네들 대부분 채식이 생활화되어 있어요. 스님네들이 좋아하는 음식을 꼽으라면 아마 첫 번째가 국수일거여요. 특히 동지섣달 기나긴 밤 출출할 때 끓여먹는 국수 맛은 평생 못 잊어한다고 하네요.

국수를 예부터 ‘승소(僧笑)’라고 합니다. 국수 소리만 들어도 스님이 벌쭉이 웃는다는 의미지요. 국수와 더불어 두부와 떡도 스님네들이 좋아해 ‘승소’라고 했답니다.

그런가 하면, 술을 만드는 누룩을 ‘객담(客談)’이라 불렀어요. 옥담(玉潭) 이응희(李應禧 1579~1651)의 문집인 <옥담유고>라는 책에 ‘밀[小麥]을 희게 찧으면 승소(僧笑)가 되고 노랗게 찌면 객담(客談)이 된다.’고 기록되어 있어 이 절집 은어가 오래전부터 쓰였음을 알 수 있어요.

또 어우당(於于堂) 유몽인(柳夢寅 1559~1623)의 <어우야담>에 목은(牧隱) 이색(李穡)이 어느 절에 들렀을 때, 스님이 떡과 함께 ‘승소를 적게 내니 승려의 웃음 적어라(僧笑小來僧笑小)’는 구절을 내놓으며 대구(對句)를 청하자 ‘객담이 많이 오니 객의 담소 많구나(客談多至客談多)’로 응대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요.

법화경 공부 마치고 지혜죽을 먹다

팥죽을 ‘지혜죽’이라고 합니다. 법화경(法華經) 공부를 마치면 책거리로 팥죽을 먹었다고 해서 그렇게 부른답니다. 가을에 끊인 아욱국은 얼마나 맛있던지 문 걸어 잠그고 몰래 먹는 ‘몰래국’이다.

또 극장을 ‘안과’라 하고 삶은 계란을 ‘찐 감자’라고 하며 오징어를 ‘오처사’라고 부른다.

자, 마지막으로 좀 쇼킹한 은어 하나 소개하고 마칠까 해요.

‘생사리’라는 말이 있어요. 생사리란 스님이 살아 있을 때 몸에서 나오는 사리를 말합니다. 예로부터 도력이 뛰어난 스님은 열반하기 전에 미리 사리를 방광하는 일이 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도 용성 스님 등 생사리를 시현한 고승의 생사리탑이 있어요.

그런데 파계해서 낳은 자식을 ‘생사리’라고 한답니다. 원효 스님도 설총이라는 생사리를 생산했고 성철 스님도 불필(不必)이라는 생사리를 생산했으니 파계 끝에 사리를 얻는 오묘한 불가의 도리를 어찌 헤아려야 하는지요.

대동문화 72호 [2012 9.10월호]

한송주 월간 <송광사> 편집장  webmaster@chkorea.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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