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교는 꼬막의 주생산지

꼬막은 청정갯벌에서, 뻘배를 타고 꼬막을 채취하는 어민들

벌교. 그 이름만 들어도 강렬하다. 그 이름에서는 전라도 색깔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여수에 가서 인물자랑 하지 말고, 벌교에 가서 주먹자랑 하지 말라” 홍선대원군의 호남 팔불여를 패러디한 말에서도 벌교가 주는 느낌은 사람들에게 아주 강한 인상으로 각인되어 있는 것 같다.

소설 태백산맥의 주 무대로 많은 사람들에게 잘 알려진 이곳이 근 10여 년 만에 다시 유명세를 떨친 것은 꼬막 때문이었다. 요즘 사람들은 벌교하면 ‘꼬막정식’으로 벌교의 먹거리를 먼저 떠올린다. 벌교읍내를 가면 너도나도 원조라며 꼬막정식을 판매하는 식당들로 즐비하다. 모든 거리의 음식점이 하나같이 ‘원조간판’을 내세우기 바쁜 모양새다.

바야흐로 벌교는 꼬막이 제철을 맞았다. 혹독한 추위를 견디며 더 단단하고 야무진 속살을 자랑하는 꼬막이 제 맛을 내는 계절이 온 것이다. 쌀쌀한 늦가을 바람과 함께 시작된 갯마을 꼬막채취는 이른 봄 따스한 봄바람에 벚꽃이 흩날리는 때까지 이어진다.

여자만(汝自灣) 주변의 섬들과 이곳 벌교의 갯벌에서 생산되는 꼬막은 전국의 78% 유통시장을 형성하고 있다고 한다. 여자만 갯벌에서 생산되는 모든 꼬막은 벌교의 상진항을 통해 읍내에 집산지를 이루고 전국으로 유통되어진다.

벌교꼬막 유통의 대가 ‘동진수산’

꼬막의 대부 장동범 동진수산 대표

벌교가 꼬막으로 다시 알려지게 된 배경에는 40년을 넘게 오로지 벌교꼬막과 갯벌을 연구해 온 동진수산 장동범(61, 장암리) 대표의 열정이 숨어 있었기 때문이다. 때로는 장씨의 이름 석자가 벌교꼬막을 대신할 정도다.

동진수산은 보성군 벌교읍 장암길 굽이굽이 여자만 갯벌이 펼쳐지는 곳에 숨어 있는 듯 보이지만 꼬막을 찾는 많은 사람들에게서 이미 익숙한 이름이다. 공식적으로는 4대째 수산업을 운영하고 있는 동진수산은 이곳에 터를 잡고 살아 온 조상대대(10대째)로 꼬막유통을 주업으로 하며 살아왔다.

농림수산식품부 신지식인으로 선정된 동진수산 장 대표는 꼬막과 갯벌연구에 일평생 열정을 바쳐온 수산인 중 한 사람이다. 그가 벌교꼬막 유통사업을 위해 지역에서 이뤄놓은 사업이 많다. 2001년 제1회 벌교꼬막축제를 기획 운영했고, 갈수록 낙후되어가는 변방의 갯마을과 읍내의 상가를 살려내기 위해 많은 고민도 했다.

그의 고민이 거듭될수록 벌교꼬막은 새로운 시각으로 사람들을 끌어 모으는데 적중했다. 지금 벌교 읍내거리 어디를 가더라도 꼬막정식을 판매하는 식당들로 붐을 이룬다. 연휴에는 자리를 차지할 수 없을 정도로 인산인해를 이루는 꼬막정식의 식단을 만든 것도 바로 장대표의 아이디어였다.

제1회 벌교꼬막축제에서 꼬막을 이용한 음식만들기 품평회를 열었는데, 거기에서 선정된 48가지 음식들을 간추려 꼬막정식상을 만들면 되겠다는 생각이 죽어가는 읍내 상권을 살리는 계기가 되었다. 그로인해 벌교꼬막이 더 많이 사람들의 사랑을 받게 되었다.

태백산맥 문학길도 식후경

국내 꼬막유통의 80%에 육박하는 벌교시장

동진수산 꼬막유통 사업장에 가면 사업장을 알리는 간판이 보이지 않는다. 담벼락에 수산인 신지식인을 증명하는 상징물이 이곳의 역사를 대변해준다. 그의 사업장 건너에는 숙박을 하며 갯벌체험을 할 수 있는 펜션과 마당에는 뻘배와 갯벌 탐사 도구들이 쌓여있다. 그리고 수조를 만들어 언제든 실내에서도 갯벌의 생태를 이해할 수 있는 체험학습장이 마련되어 있다.

사업장 안에는 대형음식점을 방불케 하는 연회석도 있다. 이곳의 용도는 갯벌체험을 오는 손님들에게 벌교꼬막으로 음식을 만들게 하는 실습장으로 사용되고 있다. 벌교꼬막이 사람들에게 더 많이 알려지기를 원하는 동진수산 장동명 대표의 소망이 사업장 곳곳에서 숨을 내쉬고 있다.

벌교는 소설 태백산맥의 고향이기도하다. 우리나라 해방정국의 극심한 혼란 속에서 좌익과 우익사상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을 때 그 한가운데 벌교가 있었다. 그래서 벌교에 가면 소설 태백산맥에 등장했던 많은 소재와 장소들이 보존되고 있다.

읍내를 가로지르는 하천을 중심으로 ‘태백산맥문학기행길’이 만들어져 벌교의 역사가 한눈에 읽혀진다. 중도방죽 길에서 소화다리를 지나 벌교의 상징인 홍교다리에 이르면 길 따라 소설속의 이야기들이 가슴속에서 꿈틀거린다. 그러다보면 책에서 무녀의 딸이 꼬막 삶는 모습과 벌교 사람들이 즐겨먹던 짭조름한 꼬막요리가 떠올라 견디기 힘들 정도다.

하천 좌우로 펼쳐진 읍내거리는 그야말로 꼬막정식을 판매하는 음식점들이 장사진을 이루고 있으니 벌교를 한 바퀴 둘러보는 것도 꼬막정식을 배불리 먹어본 후에야 정신을 차리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꼬막은 조상 대대로 즐겨 먹던 해산물이었고, 임금님 수랏상에 올려진 8미중에 포함되어 진상되었다. 또한 모든 제사상에 빠지지 않고 제일 먼저 올리는 음식이기도 했다. 선사시대의 유적들 중에 패총이 발견되어진 것을 보면 꼬막이나 조개류의 식품들은 인류의 역사와 뗄 수 없는 관계임을 증명하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꼬막과 조정래 작가와의 얽힌 스토리가 많다.

꼬막의 원래 표준어는 ‘고막’이었는데, 소설 속에는 꼬막을 소재로 한 이야기가 곳곳에 있었다. 벌교가 주 무대인 소설 태백산맥을 완필하고 나자 출판사에서는 ‘고막’이 표준어라며 작가에게 수정을 요구했다. 작가는 벌교에서는 꼬막으로 부른다며 끝까지 수정을 원치 않았다. 그래서 태백산맥 소설에는 ‘꼬막’으로 표기되어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이후 일반에서 많이 사용하는 언어를 표준어로 등재하자는 제안이 이루어지고 나서야 ‘꼬막’이 표준어로 되어 원래 이름을 되찾게 되었다. 이처럼 본토 음식이 주는 영감은 작가에게 있어서 문학의 한부분에 커다란 영향을 가져다 준 셈이다.

벌교꼬막 수산업의 미래

벌교의 상징 홍교. 대하소설 태백산맥에도 꼬막이야기가 나온다

벌교 여자만의 갯마을 사람들은 요즘 고민이 깊어졌다.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갯벌이 언제나 풍족함을 주었는데 이제는 꼬막 종패가 무더기로 폐사하는 일들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지구의 온난화 때문에 수온상승의 원인을 첫째로 꼽고 있지만 평생 갯벌을 일구며 살아 온 사람들에겐 삶의 터전을 잃는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갯벌에서 자연산 꼬막의 양과 종패를 뿌려 양식하는 꼬막들이 갈수록 줄어들었다. 그래서 값이 해마다 부쩍 오른다. 천정부지로 치솟는 벌교꼬막의 가격은 이곳에서 갯벌을 일구는 사람들도 감당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동진수산 장동범 대표는 그래서 더욱 마음이 무겁다. 이것에 대비해서 인근의 득량만과 서남해안 갯벌이 좋은 곳에 종패를 공급해 주었는데 그곳 사정도 마찬가지다.

1995년부터 벌교의 꼬막이 중국으로 많이 수출되기도 했는데 모두 연구용이었다. 우리가 자연에만 기대고 방만해 있는 사이 다른 나라에서는 선진기술을 이용한 수산업이 각 분야에서 진가를 발휘하고 있다. 다소 늦은 감이 들지만 장동명 대표는 꼬막의 생태를 더 깊이 연구하고 신음하는 갯벌을 살려내는 일에 이제 남은 생을 다할 생각이다. 장씨의 젊은 아들 내외가 도시생활을 접고 내려와 가업을 잇겠다고 하니 한 편으로는 답답하기도 하지만 대견하기도 해서 마음이 착잡하다.

이제는 언제 위기가 몰아닥칠지 모르는 갯벌을 보고 가만히 넋 놓고 있을 수만 없는 일이다. 과연, 여자만 갯벌은 다시 자연 상태로 돌아올 수 있을까. 이곳 사람들은 벌교의 수산업이 활발해져 꼬막종주국으로 자리를 지켜나가길 간절히 바라고 있다. 그것은 평생을 꼬막과 갯벌연구에 몰두해 온 벌교 동진수산 장동범 대표의 바람이기도 하다.

동진영어조합법인 동진수산 / 전남 보성군 벌교읍 장암길 231-2 / (061) 857-5314

[대동문화 92호. 2016년 1,2월호]

정지승 여행작가  webmaster@chkorea.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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