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소리를 한다고 해서 꼭 판소리를 해야 하고 경기민요를 한다고 해서 꼭 경기민요를 해야 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2015년에는 제33회 전주 대사습놀이 학생 전국대회에서 어린이 판소리 부문에서 장원을 했다. 사람들이 나에게 “유송은 양은 앞으로 어떤 국악인이 되고 싶어요?” 하고 물어온다. “전 무엇보다도 국악의 대중화에 앞장서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하고 대답한다.

KBS 창작 국악 동요제 축하 공연

“니가 나를 감당하겄냐? 2시간 30분 동안 아니리와 소리 발림까지 이 모든 것을 틀리지 말고 해야 하는데….” 경험 많으신 고수 선생님 눈에는 내가 시원찮게 보이시는 모양이다. “밥도 더 먹고 살도 더 쪄야 쓰겄다. 하다가 쓰러지면 으짤 거나? 끌끌끌….”

지난 9월 1일 나는 만 9살의 나이로 미산제 박초월 류 흥보가 완창 발표회에 도전했다. 속바지 속치마에 행여 흘러내릴까봐 꽉 동여맨 한복 치마말기에 숨조차 쉬기가 곤란했다. 버선 속에 숨겨진 내 발가락들도 아프다고 난리다. 입이 바싹 바싹 타고, 관중석에 앉아 계신 수많은 관중들도 걱정 어린 눈빛으로 나를 바라본다.

‘옛날 운봉 함양~’, 자! 드디어 시작됐다. 끝나질 않을 것만 같은 이 시간들. 판소리 대목 대목마다 왜 흥보는 ‘들어갔다 나왔다.’를 많이 하는지 정말이지 아니리는 나의 신경을 곤두세우게 한다. ‘잠깐 물 좀 마시고 할게요.’하면서 한편으로는 가슴을 쓸어 내렸다. ‘제발 시간아 빨리 가라.’

호랑이 보다 무서운 선생님

흥보가 완창 발표회를 마치고 기념사진 촬영

작은언니가 집에서 연습하는 ‘사랑가’가 너무 재밌었다. 경로당에서 선생님 노래하실 때 따라했을 뿐인데, 내 목소리가 좋다고 하셨다. 눈코 뜰 새 없는 엄마를 대신해 유치원 원장님 손을 잡고 처음 판소리 학원을 갔을 때 모든 것이 낯설고 싫기만 했다.

처음에 판소리를 시작했을 때는 얼마나 못했는지 선생님께서 키우시는 강아지들(방자와 향단)도 나를 무시했다. 선생님 앞에 방석을 깔고 레슨을 받기 위해 앉아 있으면, 나보다 덩치 큰 방자란 놈이 엉덩이로 나를 밀어냈다. 무슨 말인지도 모를 이야기를 읽고 노래하고, 다 외우는 일은 정말 싫은 일이었다. 지난주에 배운 것들을 완벽하게 못 외워 가면 호랑이 보다 무서운 선생님이 나를 가만히 놔두시지 않는다. 3층 선생님 댁 문을 열고 들어가기 싫어 울었던 적이 수도 없이 많다.

판소리를 배우고 7개월 만에 여수로 처음 대회를 나갔다. 여수 대회는 초등학생 중학생들이 같이 나가는 대회다. 선생님께서는 초등학교 1학년인 내가 예선만 통과해도 잘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처음으로 내가 사람들 앞에 나서는 날이었다. 그런데 나는 그 대회에서 4등을 했다. 선생님도 많이 놀라신 것 같았다.

여수 대회 이후로 나는 나가는 대회마다 상을 받아왔다. 또 그 해 겨울 전국에 판소리대회에서 입상한 아이들만이 출전할 수 있다는 전국 어린이 판소리 왕중왕전 대회에서 최우수상을 받았다. 그리고 우연히 출연한 TV 예능 프로에서 많은 사람들이 내가 1년 동안 받아온 상들을 보고 놀라워했다.

EBS 국제 다큐 영화제 개막식 오프닝 축하 공연

국악 신동이라는 이름을 얻다

어디를 가나 ‘국악 신동 유송은’이라고 소개를 했다. 사실 나는 국악 신동은 아닌 것 같다. 그냥 언니가 했던 소리가 뭔지도 모르고 따라했고, 선생님을 만났고, 혼나지 않으려고 열심히 외우고 노래를 불렀다. 그런데 하다 보니 지금은 우리 판소리가 너무 좋다.

여기저기를 다니다 보면 인터뷰하는 사람들이 꼭 나한테 물어본다. “유송은 양은 왜 소리가 좋아요?” 사실 잘 모르겠다. 그냥 우리 것이어서 좋은 것 같다. 처음에는 나를 힘들게 했던 한복도 이젠 좋다. 만약 내가 판소리를 하지 않았다면, 나는 특별한 아이가 될 수 없었을 것 같다. 판소리는 나를 특별한 아이로 만들어 주었다.

지난 5월 31일 나는 전주 대사습놀이 학생 전국 대회에 출전했다. 전주 대사습놀이 대회는 많은 훌륭하신 명창 선생님들이 배출된 대회여서 더 의미 있는 대회고 실력 있는 사람들이 많이 출전하는 대회다. 나는 올해 처음으로 전주 대사습놀이 대회를 나갔는데, 장원을 했다. 선생님은 너무 좋아하셨다. 그 전에는 대회에서 나 대신 1등 상을 받아가는 사람들이 너무 밉기도 했다. 그런데 이제는 나 대신 1등상을 받아가는 사람들에게 박수를 열심히 쳐 준다.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해주셨다. “너희들이 지금은 경쟁자들이지만, 나중에는 같은 길을 걸어갈 동료들이다. 친하게 잘 지내야 한다.”

‘화초장~ 화초장~’ 이제 이 대목만 끝나면 완창 발표회도 끝이 난다. 다행히 큰 실수 없이 지나갔다. 10년보다 더 길었던 2시간 30분의 시간이었다. 앞으로 나는 이런 시간들을 몇 번을 더 보내야 진정한 소리꾼이 될 수 있을까?

2015년 9월 5일 완창 발표회를 마친 며칠 후 나는 서울 종로에서 열리는 판소리 페스티벌에 참석했다. 초등학생부터 명인부까지 차례로 나와서 우리 판소리를 청중들에게 들려주는 공연이었다. 유치원생이 하고 내가 소리를 했을 때 많은 선생님들이 내 소리가 많이 깊어지고 영글어졌다고 하셨다. 깊어지고 영글어 졌다는 것이 무슨 말씀인지는 모르겠지만, 긴 시간 완창 발표회에서 소리를 하고 났더니, 이제 10여 분 소리하는 것을 식은 죽 먹기처럼 쉬웠다.

나는 여기저기 공연과 방송 출연을 하다 보니, 한 방송국 프로그램 PD께서 국악의 대중화를 목표로 방송에 출연했던 국악 신동들 중 경기민요 3명(파주, 원주, 예산) 그리고 판소리하는 3명(서울, 남원, 광주)을 뽑아 세노아(세상을 노래하는 아이들)라는 걸 그룹을 만드셨는데, 그 걸 그룹에 뽑히게 되었다.

KBS 국악 한마당 걸 그룹 ‘세노아’로 TV에 데뷔했다

판소리 걸 그룹을 아세요?

처음에는 늘 대회에서 만나 경쟁만 했던 언니들. 나하고 다른 이상한 소리를 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항상 경기민요와 남도민요를 반반 섞어서 공연을 하다 보니, 늘 부르는 남도민요가 아닌 경기민요도 이젠 좋아하게 됐다. 처음에는 서로 경계했던 언니들도 이젠 서로를 응원해 주는 동료로 발전했다. 내가 완창 발표를 했을 때 저 멀리 강원도, 경기도, 충청도, 전라북도에서 나를 응원하러 와준 언니들. 그리고 엄마들이 너무 고마웠다. 사실 판소리를 전공하는 사람들이 경기민요를 하는 사람들하고 어울릴 일이 별로 없는데, PD님 덕분에 우리는 서로 다른 소리를 공부하고 노래한다.

판소리를 한다고 해서 꼭 판소리를 해야 하고 경기민요를 한다고 해서 꼭 경기민요를 해야 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나는 요즘 ‘춘향가’를 배우고 있지만, 또 다른 공연을 위해서 경기민요인 ‘매화 타령’도 배우고 있다.

2012년 여수 전국 국악 경연대회 초등부 4층, 전국 어린이 판소리 왕중왕전 대회 최우수상과 대상을 수상했다. 2014년에는 성주 전국 국악 경연대회에서 학생부 대상, 2015년에는 제33회 전주 대사습놀이 학생 전국대회에서 어린이 판소리 부문에서 장원을 했다.

사람들이 나에게 “유송은 양은 앞으로 어떤 국악인이 되고 싶어요?” 하고 물어온다. “전 무엇보다도 국악의 대중화에 앞장서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하고 대답한다. 두 눈을 꼭 감고 한편의 동화책을 사람들에게 들려주는 것 같은 판소리를 하면, 사람들이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하고 얼씨구 추임새도 해주는 것이 너무 재미있고 좋다. 내가 좋아하는 소리를 많은 사람들이 좋아했으면 좋겠고, 더더더~ 많은 사람들이 우리 판소리를 좋아했으면 좋겠다.

[대동문화 91호. 2015년 11,12월호]

유송은(광주송우초등학교 4학년)  webmaster@chkorea.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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