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영 감독은 고문의 다양한 방법을 영화에 등장시켜 고문이 다시는 있어서는 안된다는 시대 의식을 담고 있다.

<남영동1985>는 얼핏 보면 ‘고문’에 관한 영화처럼 보인다. 그도 그럴 것이 영화 내용의 90%를 고문하는 장면에 할애하고 있으니 그런 말이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한데 그 이면을 들추어 보면 이 영화는 ‘악의 평범성’에 대해서 말하고 싶었던 감독의 의중을 읽을 수 있는 영화이기도 하다.

고 김근태의 수기 <남영동>(<이제 다시 일어나>의 개정판)은 김근태가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당했던 고문의 기억을 비롯해 그가 고문 사실을 폭로했던 재판 기록, 아내와 나눈 옥중서신을 담고 있다. 하지만 영화 <남영동1985>는 김근태의 수기에서 재판 기록과 옥중 서신 등을 생략하고 ‘고문’의 기억만을 호출해낸다.

한국 현대사에서 지워져서는 안 될 기록들

<남영동1985>에서 묘사되는 고문의 장면은 끔찍하다. 그리고 고통스럽다. 그것은 지독하게 있는 그대로 묘사된다. 정지영 감독은 이 고문을 다양한 방식으로 전달하지만 그 근본에는 고문, 그 자체를 보여주겠다는 의지가 분명하다. 이렇게 날것 그대로의 고문을 전시했을 때라야 다시는 고문의 폭력이 재발하지 않을 것이라는 간절함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그 어떤 것도 아닌 ‘고문’ 그 자체를 보여주며 참혹한 역사가 반복되지 않기를 염원하는 것이다.

<남영동1985>는 ‘고문’을 보여주기로 작정한 영화답게 고문의 강도가 더 강해지도록 하는 구조를 취하고 있다. 물고문으로 시작했던 영화는 고문 기술자인 이두한(이경영)이 등장하면서 고춧가루 고문과 전기 고문으로 이어지며 관객들에게 참혹한 감정을 안겨준다.

<남영동1985>는 극영화답게 ‘고문’에 집중하면서도 극적인 장치를 곳곳에 배치하고 있기도 하다. 김종태(박원상)가 남영동으로 끌려오는 장면을 플래시백으로 간결하게 처리한 것이랄지, 지독한 고문에 시달린 김종태가 자기 합리화를 위해 아내의 환상과 마주하는 것 등이 그 예에 해당된다. 여기에다 고문의 강도와 함께 고문하는 사람들의 획책이 악랄해지도록 구조화되어 있는 것도 이 영화의 특징이다.

특히 고문에 합세하는 남영동 사람들에게 캐릭터를 부여하기 위해 애쓴 것과, 고문 기술자 이두한의 캐릭터를 고문 전문가로 설정하여 그가 고문에 대해서 자부심을 갖도록 한 것은 흥미로운 대목이기도 하다.

이와 함께 김종태의 영웅적인 모습을 부각시키기 위한 장치를 마련해 놓은 것도 극적인 요소다. 이 영화가 지하실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이루어지고 있음에도 극적일 수 있는 것은, 김종태의 최후 진술성 발언의 절묘한 타이밍 때문이다. 실재했던 사실보다 더 과장되었을 김종태의 올곧은 역사 인식을 엿볼 수 있는 그 순간을 말한다.

조작과 날조를 통해 김종태를 ‘폭력혁명을 계획하는 빨갱이’로 만든 시나리오가 완성된 후에, 김종태는 항복을 확인 받으러 온 윤사장(문성근) 앞에서 박정희의 유신 독재와 전두환의 광주 학살이 반민주적이라고 일갈한다.

정지영 감독은 고문의 다양한 방법을 영화에 등장시켜 고문이 다시는 있어서는 안된다는 시대 의식을 담고 있다.

폭압의 역사에 맞서는 불굴의 인간 의지

그러니까 <남영동1985>는 핵심적인 이야기를, 고문의 시니리오가 완성된 것처럼 보였던 바로 그 직후에 배치해 놓음으로써 한 인간의 존엄을 넘어 폭압의 역사를 바로 세우려는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이렇게 이 영화는 고난의 한계 상황에서도 자신을 이겨낸 한 인간에 대한 예우를 표하면서 관객들에게 엄혹했던 한국 현대사를 고발하고 있는 것이다.

단지, <남영동1985>가 고문의 희생자인 한 인간의 불굴의 의지만을 보여주는데 그쳤다면 정지영 감독의 이름값에 걸맞지 않는 영화가 되었을 것이다. 감독은 ‘고문당하는 자’가 아닌 ‘고문을 행하는 자’들의 무비판적인 삶의 태도에도 문제를 제기하며 영화의 품을 넓히는 것이다. 김종태에게 행해진 22일 간의 고문기간 동안 그의 옆에 있었던 국가공무원들의 이야기를 동시에 진행시키고 있다는 말이다.

정지영 감독이 이 영화 속으로 끌고 들어오는 사회과학 텍스트는 한나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다. 이 저서에서 강조하는 아렌트의 주제는 ‘악의 평범성’인데, 감독은 이를 적극적으로 영화 속에 대입시킨다.

<남영동1985> 속에서 고문에 가담한 사람들의 모습은, 2차 세계대전 때 유대인을 거리낌 없이 학살했던 나치 관료 아이히만을 염두에 두었다. 아이히만은 히틀러의 지시를 받아 유대인을 효과적으로 학살했던 인물인데, 독일 패망 후 체포된 그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임이 밝혀졌고, 이런 사실이 전 세계적으로 충격을 줬다.

그러니까 아렌트의 구절을 인용해 정지영 감독 역시, 인류의 온갖 악행들이 광신자나 반사회성 인격 장애자들이 아니라, 체제의 요구에 순응하여 자신들의 행동을 보통이라고 생각하는 관점을 가지게 된, 평범한 사람들에 의해 행해졌음을 고발하는 것이다.

국가 권력과 고문 직업의 죄를 고발하다

<남영동1985>에서 역시 남영동 사람들은 ‘고문’이 직업,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사람들이다. 그들은 그저 직업으로서의 고문을 무비판적으로 자행했던 사람들로서 주변의 장삼이사들과 다르지 않은 모습을 보여준다. 야구광인 강과장(김의성)은 아들과 함께 야구장을 찾게 될 날 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백계장(서동수)은 행여나 운동권 여동생이 자신의 직장으로 올까봐 전전긍긍하며, 이계장(김중기)은 변심한 애인 때문에 술 먹고 들어와서 김종태에게 화풀이를 하는 등의 언행이 그려지는 것이다. 남영동을 벗어나면 일상 속에서 일희일비할 범부들이, 아무런 죄책감이 없이 저지르는 수많은 고문들은 그래서 더욱 소름 끼치고 살 떨리는 것이다.

정리하자면, <남영동1985>에서 정지영 감독은 ‘고문’의 물리적인 폭력을 전시하는 것은 물론, 국가공무원들인 남영동 사람들을 통해 ‘악의 평범성’에 주목하며 ‘생각하지 않은 것이 남영동 사람들의 죄’였음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우울한 것은, ‘생각하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27년 전 보다 계속해서 늘어날 수밖에 없는, 신자유주의 혹은 금융 자본주의가 지배하는 잿빛 하늘을 바라보아야 한다는 점이다.

조대영 광주독립영화협회 대표  webmaster@chkorea.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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