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걸음을 멈추지 않고 한 걸음 한 걸음 가다보니 정상에 서 있었습니다.”

그는 매일 산에 오른다. 산은 친구이자 스승이며 삶의 전부다. 김홍빈, 그가 히밀라야 K2 정상에 오르는 과정을 담은 영상을 본다. 날씨가 좋지 않다. 화면에는 언제나 눈보라가 몰아친다. 등반 과정 동안 3일만 날씨가 맑았다. 나머지는 눈이 내렸다. 차갑고 딱딱한 바위 바닥에 텐트를 치고 그가 밤을 보낸다. 해가 뜨면 다시 산에 오른다. 칭칭 울리는 로프를 오랜 시간 동안 끼고 한 걸음 한 걸음 산을 오른다. 오르면서 그는 무슨 생각을 할까?

히말라야 생명과 죽음의 사선 위에 서다

역경은 인생역전의 기회일 뿐이라고 말하는 산악인 김홍빈 씨는 열손가락을 산에서 잃었다.

오르던 길이 다시 막혔다. 경사가 심하다. 산을 오르던 사람들의 발걸음이 더뎌지기 시작한다. 뻗으면 손에 닿을 듯한 구름은 무심하게 그 광경을 지켜본다. 다시 산을 오른다. 눈 위를 걷고 또 걷는다. 드디어 저만치 정상이 보인다. 산은 그에게 전부였다. 산을 통해서 그는 자신을 발견한다.

“산은 항상 거기 있어요. 서두르지 않아야 합니다. 조급하면 끝나요. 산행을 하다보면 한두 번은 좋은 날씨가 찾아와요. 그때를 생각하며 마냥 기다리는 거죠.”

지난 7월 그는 히말라야 K2 정상에 올랐다. 그는 히말라야 14좌 중 7곳의 정상에 올랐다. 산은 제 모습을 그냥 보여주지 않는다. 날씨가 항상 흐렸다. 걷는 매순간이 죽음과의 조우였다. 눈뜨기가 어려웠고, 자칫 발을 잘못 디디면 그곳이 벼랑이었다.

“모두가 다 이렇게 지켜주는 덕이 커요. 이번에도 K2 여신이 안전하게 갈 수 있게 살려보내준 것 같아요. 돌려보내준 게 아니라 살려준 거죠. 뭔가 더 힘든 일을 앞으로 계속 하라고 보내주지 않았나 생각해요.”

그는 히말라야 14좌 중 7곳의 정상에 올랐다. 산은 제 모습을 그냥 보여주지 않는다.

매킨리에서 열 손가락을 잃고 목숨을 얻다

“고3 때 언론을 통해 사람들이 산에서 캠핑하는 장면을 보게 됐어요. 멋있다고 생각했어요. 그 당시에는 캠핑 문화가 대중화가 되어있지 않았기 때문에 쉽게 접할 수 없는 문화생활이었지요. 여유 부리며 즐기는 사람도 몇 없었어요. 꼭 한 번은 거대한 산에 오르고 싶었죠. 대학에 들어가자마자 동아리 산악회를 제 발로 직접 찾아갔어요. 암벽 등반부터 시작해 산에 점점 깊이 빠져 들었죠.”

그는 산이 좋았다. 무엇보다 산에 다니는 사람들과의 만남이 좋았다.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 속에는 악인이 없다. 그들과 함께 새하얀 히말라야를 넘어가 보고 싶었다. 그들과 함께 꿈도 키웠다.

“처음엔 유럽 알프스에 가보고 싶었어요. 가는 꿈을 꾸니 하나씩 이루어지더라고요. 각 시도에서 선발 추천으로 다녀온 산들이 많아요. 내려오면서 히말라야 14좌의 꿈을 키웠고요. 여러 번 산을 오르다 보니 장비도 직접 만들 수 있게 되더라고요.”

산은 만만하지 않다. 한없이 너그러워 보이지만 생명을 걸고 올라야 한다. 그에게는 잊을 수 없는 기억이 있다. 지난 91년 북미 최고봉인 매킨리 등반 중 동상이 걸렸다. 결국 열 손가락 모두를 절단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산에 오른다. 사고가 일어난 그곳에서 잃은 것도 있었지만 많은 것들은 더 많았다. 마지막 정상 5,000미터 지점을 두 번 시도했으나 모두 실패했다.

“먹는 것이 부실했어요. 잠만 잤습니다. 고산증도 생겼어요. 죽음의 문턱에서 썰매로 구조가 됐어요. 저의 몸을 꽉 묶어야 할 상황이었는데, 썰매에 온 몸을 의지하면서도 왼손으로 가슴을 안아야 된다는 생각을 했어요.”

매 순간이 죽음과의 조우였다. 눈뜨기가 어려웠고, 자칫 발을 잘못 디디면 그곳이 벼랑이었다.

죽음을 딛고 다시 산으로 향하다

그는 장갑을 벗었다. 서서히 손은 얼어가고 있었다. 손의 상태는 갈수록 악화됐다. 한 달 정도 상황을 지켜봤다. 까맣게 된 손이 말려들어갔다. 다른 나라에서 수술을 했다. 손가락을 잃었지만 그는 목숨을 건졌다. 사실 병원이 포기한 상태였다. 시체를 찾아가라고 통보까지 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그는 기어이 다시 일어났다.

“현지 교민 중에 오갑복 씨라는 분이 있어요. 그분이 많은 도움을 줬어요. 외국에서 산행을 하다 구조를 받게 되면 구조 헬기가 민간 병원으로 이송해요. 근데 제가 갔던 곳은 가톨릭 병원이었어요. 그곳에서 무료로 치료로 받을 수 있게 도움을 줬어요. 민간 병원이었으면 엄두도 못했을 거예요. 외국인이 무료로 치료를 받은 것도 그 병원에서는 처음이라고 했어요.”

7번 수술을 했다. 정말 고통스러웠다. 나중에는 그 스스로 손가락을 잘라 달라고 애원했다. 고통스러운 것보다 나은 선택이었다. 마지막 7번째 수술대 위에서 결정했다. 그는 누구도 원망하지 않았다. 후회도 없다. 그의 꿈이 전부 산에 있기 때문이다.

“저는 장애를 가진 것에 깊이 생각해보지 않았어요. 물이 흐르듯 그냥 흘러 가는대로 몸과 마음을 맞기고 있어요. 그렇게 살고 적응하고 따라갔을 뿐입니다.”

“내가 좋아하는 산에 가서 내 잘못으로 다쳐 온 것이라 누가 등 떠밀려서 간 것이 아니잖아요. 누굴 원망할 필요가 없습니다. 물론 죽고 싶었던 마음도 들지 않았던 것도 아니지만 굉장히 힘들 거라 생각은 했어요. 특히 우리나라 사회에서 살아가는 것은 걱정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사실 알래스카에 가서도 고국에 다시 들어오지 않으려고도 했다.

열 손가락을 잃고 난 이후 몇 개월 후 그는 붕대 감은 손으로 다시 산으로 갔다. 선후배들과 함께한 산행이었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산과 사람들과 희석되어 가고 있었다. 극복이란 말도 그렇고 사고 일어난 이전에 생활로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

김홍빈은 두려워하지 말고 끊임없이 도전하라고 말한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부터 등산은 시작된다

“물론 불편한 것은 없지 않았던 것은 아닙니다. 어떤 도움이라도 받아야 했습니다. 처음엔 속옷이라도 내 손으로 입어보았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했어요. 지금은 내손으로도 거의 무엇이든 할 수 있게 되었죠. 물론 아직도 신발 끈을 묶는 것은 힘들지만 하나하나 넘어서는 것들이 재밌다고 표현이 될지는 모르겠으나 힘들다는 표현보다는 더 나은 것 같아요.” 양말도 신을 수도 없었다. 신으려고 펜치를 사다 연습을 했다. 찢어진 양말이 수십 켤레다. 대소변도 가리지 못했다. 속옷도 혼자 입지 못했다.

“정말 혼자 팬티를 입고 울었던 기억이 납니다. 벌써 20년에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할 수 없는 것보다 할 수 있는 것들이 훨씬 많아졌습니다. 사람은 자꾸 욕심이 생기는 것 같아요. 대소변만 가려도 좋겠다고 했는데 사고 이전에 꿈꾸었던 8천 미터 산을 하나씩 오르면서 꿈을 이루고 있으니 행복할 뿐입니다.”

산에 올라가다보면 어려움이 있다. 또 다시 어려움이 생긴다. 그러나 훈련을 통해 인내를 지키는 방법을 알았다. 그는 아직도 멈추지 않았다. 8천 미터 이상의 14좌 등반은 그의 꿈이다. 가슴에만 묻고 살아 왔었다. 지인을 통해서 더 좋은 기회가 온다. 그들을 통해서 다시 도전이란 가능성을 갖고 살아간다.

사고로 이어진 좌절 속에 수많은 생각들이 그를 괴롭히기도 했다. 다시는 산에 오르면 죽을 수도 있다는 의사의 말, 하지만 산에 대한 열정을 저버리지 않는 그는 김홍빈이다.

대동문화 74호 [2013 1.2월호]

한경숙 기자  webmaster@chkorea.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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