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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관계 전환점…대등하게 충돌하면서 공존하는 새 패러다임 시대”
이동호 기자 | 승인 2019.08.14 08:29

한일관계가 악화일로를 걷고있다. 일본은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에 대한 경제보복 조치로 한국에 대한 무역수출규제를 강화한데 이어 화이트리스트(수출심사 우대국)에서도 배제했다. 이같은 상황에서도 전쟁의 아픔과 강제징용 희생자들을 끊임없이 기억하는 일본인들은 아베 정권을 향해 경고등을 울린다. 올바른 역사 인식을 공유하고 서로 간 우정의 연대를 구축하는 것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지금, 뉴스1은 이들의 평화를 향한 흔들림 없는 움직임을 조명하고 관계 개선을 위한 해법을 모색하고자 한다.
 

주문홍 목사(63)가 지난 5일 오후 일본 규슈 기타큐슈시(北九州市) 고쿠라기타구(小倉北?) 오타마치(大田町)에 있는 재일대한기독교회 고쿠라 교회 옆 서남한국기독회관 자료실에서 강제징용 조선인 사진과 자료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뉴스1 조아현 기자

일본 규슈 후쿠오카현(福岡?)에 있는 기타큐슈시(北九州市)는 일본의 식민지배 하에 강제로 끌려온 조선인 노동자들이 유입되는 '현관'이었다.

특히 야하타제철소(八幡製鐵所)는 일본 근대제철공업의 발상지였고 후쿠오카 중부에 있는 지쿠호(筑豊) 지역의 풍부한 석탄 자원에 힘입어 일본의 군사산업을 한층 확장시켜주는 역할을 했다.

그 밑바닥에는 강제징용 조선인들의 생때같은 목숨이 '소비'되고 있었다.

기타큐슈에는 강제연행 유적지가 다수 집중돼 있다. 야하다 제철소, 관몬터널, 고쿠라 탄광, 다카마츠 탄광, 오다야마 묘지, 휴우가 묘지 등 열 손가락으로 다 셀 수 없을 정도다. 지쿠호 지역에는 15만명이 넘는 조선인이 탄광에서 가혹한 노동을 당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곳을 찾아오는 한국인과 일본인들에게 조선인 강제연행의 역사를 낱낱이 전하는 안내자가 있다.

일본에서 인권운동가로 활동한 고 최창화 목사로부터 바통을 넘겨받은 재일 대한기독교회 고쿠라 교회 주문홍 목사(63)다.

그는 "강제징용으로 끌려와 아무렇게나 묻혀 사라진 무연고 조선인 유골, 무명(無名)이라는 것은 제국주의 침략 역사의 상징"이라고 말했다. 세상에 둘도 없는 존엄한 인간의 존재를 한낱 무명의 유골로 만들어버리는 전쟁의 참혹함을 이보다 더 잘 나타낼 수 없다는 것이다.

주 목사는 지난 5일 고쿠라 교회에서 진행된 <뉴스1>과의 인터뷰를 통해 최근 한일 양국간 벌어지는 대립 양상을 두고 "한일관계에 전환점이 온 것"이라며 "대등하게 싸우고 충돌해가면서 서로 공존해 나가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시대가 온 듯하다"고 통찰했다.

다음은 주 목사와의 일문일답.

― 어떻게 일본에 정착하게 됐나. 크리스천 비율이 굉장히 적은 일본인데 고쿠라 교회가 어떻게 세워졌는지 궁금하다.

▶나는 1983년 고베 한인교회에 있다가 1995년 고 최창화 목사가 돌아가시고 1년 뒤에 부임했다. 최 목사의 유지를 받들어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기타큐슈는 탄광을 토대로 공업지대가 형성돼 있었기 때문에 수많은 조선인들의 노동력이 강제로 동원됐다. 강제징용 조선인 등 정치 난민들 가운데 신앙심 있는 사람들이 모여 설립한 것이 고쿠라 교회다. 올해가 설립 92주년이다.

교회가 처음 만들어진 1927년이라는 해는 끔찍한 사회적 공포감이 조성된 시기였다. 1923년 관동 대지진 이후 조선인 6000여명이 학살당하고 불과 4년 정도 흐른 시점이었다. 그런 시대적 아픔과 절망 속에서 교회가 자리잡았다. 최 목사는 1960년 30세의 나이로 부임한 이후 반평생 동안 재일동포가 겪는 차별을 타파하고 인권개선을 위해 투쟁했다. 1973년에는 지쿠호 지역 곳곳에 방치돼 있던 강제징용 조선인 유골을 거둬 납골당에 안치하는 일에 힘써왔다. 2018년 12월 기타큐슈시가 발간한 역사책 '기타큐슈시사 50년'에는 최 목사의 인권운동 이야기가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다.

―기타큐슈에 남아있는 조선인 강제연행 흔적을 알리는 데 오랜 기간 힘써온 것으로 알고 있다. 관련 유적지를 방문하는 한국인들이 꽤 많다고 들었는데.

▶주로 현장을 안내한다. 젊은 사람들은 조선인 강제징용 역사를 잘 모른다. 그래서 답사를 가기 전에 강의도 하고 현장을 함께 걸으면서 강제징용 역사에 대해 이야기를 주고 받는다. 감사한 것은 끊임없이 사람들이 온다는 점이다. 주로 오다야마 묘지나 휴우가 묘지 등 조선인 강제징용의 유적지를 몸소 둘러보고 한국으로 돌아간 방문객들이 지인들과 함께 재방문 하는 경우가 의외로 많다. 그렇기에 더욱 성심성의껏 기대에 어긋나지 않도록 안내한다.

―직접 강제징용 유적지를 직접 둘러보는 한국 사람들의 반응은 어떤가.

▶학교에서 강제징용에 대한 이야기는 듣지만 정작 피부에 와닿는 건 없다. 사실에 입각한 교육이 약한 편이다. 시험 문제에 자주 나오는 것도 아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여기는 현장이다. 증언자가 있고 수많은 증거자료도 남아있다. 70~80년을 훌쩍 뛰어넘어 지나간 역사와의 생생한 만남이 펼쳐지는 것이다.

― 고쿠라 교회 옆 서남한국기독회관 자료실에 강제징용 조선인과 관련된 수많은 사진이나 문서가 전시돼 있다. 자료실이 좁게 느껴질 정도로 양이 방대한 것 같다. 어떻게 수집하게 됐나.

▶하야시 에이다이(林えいだい)라는 작가가 있다. 후쿠오카현 지쿠호에서 태어나 와세다대학 문학부를 졸업한 뒤 지쿠호 탄광과 전쟁을 기록하는 작업을 해왔다. '청산되지 않은 쇼와', '지워진 조선인 강제징용 기록' 등 조선인 강제징용 문제와 관련된 수많은 저서를 남겼다. 고 최창화 목사와 연이 닿은 것을 계기로 내가 이사장직을 맡고 있는 서남한국기독교회에 관련 자료를 기증했다.

― 최 목사의 뜻을 이어받아 '노 모어(NO MORE) 왜란(倭?)!'을 만들었다고 알고 있다. 어떤 모임인가.

▶1952년 임진왜란 400주년을 맞이해 '노모어 왜란'이 만들어졌다. 고 최창화 목사는 일본이 임진왜란과 근대 일본제국주의를 바탕으로 조선을 침략한 사실을 진심으로 반성했다면 근현대사에서 전쟁과 원폭의 비극은 없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일본에서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사실상 영웅으로 칭송받는다. 이웃을 침략해 짓밟아도 자랑거리인양 표현되는 것은 장래 평화를 만들어내는 일과 거리가 멀다. 잘못된 자국중심주의 교육이고 사관(史觀)이다. 그걸 바꿔내기 위해 활동을 하는 것이다.

역사적 아픔에 동고(同苦)하는 일본인들을 알게 됐을 때 우리의 시야도 넓어진다. '노모어 왜란' 행사는 올해 28회째를 맞이했다. 일본 사람들과 과거 제국주의 침략의 역사를 반성하고 한국과 가교의 역할을 만든다. 큰 일은 아니다. 그 지역에서 도와주고자 하는 사람들과 역사를 반성하고 미래를 위한 메시지를 남긴다. 작은 일이지만 사방에서 모이면 큰 빛이 되리라 생각한다. 그런 사람들이 늘어날수록 일본의 우익화에 브레이크를 걸 수 있는 강력한 장치가 될 수 있다고 본다.

―'노모어 왜란' 모임 대표를 맡고있는 가와모토씨가 최근 부산 일본 영사관 앞에 설치된 평화의 소녀상 앞에서 무릎을 꿇어 화제가 됐다.

▶가와모토 요시아키(75)와는 오랜 친구사이다. 당시 의식적으로 한 행동은 아니었다. 역사적 부채의식을 가지고 있었는데 소녀상을 보는 순간 저절로 무릎을 꿇게 됐다고 한다. 소녀상은 맨발이다. 아직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한 소녀들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미안한 마음을 표현한 순간 사진이 찍힌 것 같다. 앞으로 한일 관계에 있어서도 귀중한 장면이 되리라 생각한다. 우익세력은 이런 일을 비난하기도 하지만 일본인이 사죄를 하고 있다는 것은 소중한 일이다.

―최근 한국의 강제징용 배상판결로 인한 일본의 무역 수출규제 조치로 양국 관계가 연일 갈등의 골이 깊어지는 모양새다. 일본 안에서의 분위기는 어떤가.

▶일본인은 근현대사를 간단하게 가르친다. 이웃나라를 지배했다는 정도만 안다. 식민지 역사가 얼마나 가혹하고 한 민족의 언어와 역사, 생명까지 빼앗는지 그 처참한 실태를 잘 모른다. 그 맥락이 아베정권까지 이어지는 것이다. 우리 입장에서는 약점을 잡아 공격을 당하는 입장이지만 이곳 사람들은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한국 정치가들의 책임도 크다. 단적으로 말하면 나태하다. 일본에 대해 공부하고 연구하지 않는다. 과거 역사문제를 들춰서 감정적으로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는 안된다. 식민지 강제연행이나 위안부 문제를 분석하고 대응할 수 있는 인재와 인맥을 만들어야 한다. 당했다고 이야기만 하는 것에서 그친다면 결과는 건설적이지 않다.

한국과 일본은 서로 떼어낼 수 없는 숙명적 관계다. 문재인 대통령의 경우 민주화의 성과로 당선됐고 프라이드가 강하면서도 주체성을 발휘해 할 말은 하는 경향이 있다. 일본은 앞서 이런 정권은 만나보지 못했기 때문에 (다루기)힘들어 하는 측면도 있다. 이제까지 과거사를 양보해왔던 사람들은 일선에서 은퇴했다. 한국도 이제 전환점이 찾아온 것이다. 대등하게 싸우고 충돌해가면서 서로 공존해나가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열어나갈 시대가 왔다.

―마지막으로 한마디 한다면.

▶지난달 25일 일본 지식인 78명이 아베정권의 수출규제 강화조치에 대해 우려하는 입장문을 냈다. '일본 정부가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를 즉각 철회하고 한국 정부와 냉정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아베 수상은 일본 국민과 한국 국민 사이를 가르고 양 국민을 대립 반목케하는 행위를 그만두라는 대목'도 눈에 띈다. 일본 안에서도 이런 움직임이 있다는 것을 언론이 잘 전달해주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너무 일방적인 건 좋지 않다. 다양한 의견이 있는 것이 건전한 정권이다. 일본 참의원 선거가 끝났지만 절대적 다수도 아니고 정부를 비판하는 양심세력도 건전하게 남아있다. 일본 정부가 지금과 같은 입장을 유지할수록 손해가 될 것이다.

 

 

뉴스1 <뉴스커넥트>를 통해 제공받은 컨텐츠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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