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헌성 시인이 추구하는 물질시 = 과학의 시는 근거를 추구한다. 그는 “기존의 관념시가 인간 구조와 사회변혁에 공헌하기보다는 찬양과 유지 역할밖에 한 게 없다는 결론이라면 물리시는 기존 문화와는 달리 사고방식의 전환된 과학적 실증적 산 역할의 변혁”이라고 말한다.

980 · 하늘이 하얀냐 검냐

동지섣달 마당 가운데 눈사람이

분명코 하얗디하얀 백인이였는디

정이월이 되니

거무튀튀한 소인국의 흑인 돼

내가 그렇게나 엊그제를 살았을까나?

사람의 씨가

맹자는 선이다라 순자는 악이다라

하늘 두루 터진 맞바람이라지만

하늘의 씨내림까지 이리저리하니

하느님 본명도 하얗는 지 검은 지가

우주 특이점도 검정였다가 얼마 뒤에야 빛과

나눴다니

하느님보다는 악마가 먼저였으련지

너? 무지개도 못 봤간디 하필이면

하얀냐 검냐 그것만을 왜 묻냐?

그것이다.

물성의 시인 진헌성

진헌성 시인(84)의 최근 시집 제10권 ‘하늘이 햐얀냐 검냐’의 전문이다. 그는 1970년 〈현대문학〉’에 김현승 시인의 추천으로 한국문단에 데뷔, 89년 ‘물성의 시’를 발표한 이래 물질의 근본을 탐구하는 시를 써오고 있다.

물성의 시는 형이상학적 시들이 주류를 이루는 한국문단에서 ‘관념주의’, ‘형식주의’, ‘역사주의’에 치우치지 않고 시의 과학적 접근이 필요함을 보여주었다. 이는 진헌성 시인에게 있어 시작의 단초가 되는 것으로 인간의 정신과 물질이 다르지 않음에 천착하고 있다.

망구를 바라보는 백발의 시인, 그는 의사 시인으로도 유명하다. 80세를 넘으면서 그동안 보고 들을 것을 정리해야 할 필요를 느꼈다는 진 시인. 중학교 1학년 때 진주만 폭격으로 일본이 항복하고 우리는 광복이 되었다.

격동의 세월, 한국전쟁과 민주화의 소용돌이 속을 살아왔다. 따라서 그 가슴 속에는 얼마나 많은 응어리가 들어 있을까. 오후 3시면 병원 일을 접고 서재에 들어가 살아온 세월을 정리하고 있다. 바로 ‘마무리 사고연습’이다.

50대까지는 세상에 대한 의심으로 가득했다. 신과 사람, 의식에 대한 의심과 의구가 끊임없이 일어났다. 더구나 광주사태(광주민주화운동)를 겪으면서 환멸에 가까운 혼동을 느꼈다. 그때 생각한 것이 “너를(밖을) 알아야 내가(갈 길) 설 수 있겠다.”는 것.

그래서 일본으로 유학을 갔다. 길을 찾는 여행이었다. 그리고 결론에 다다른 것이 자연과학이다. “손(신체)이 있어야 정신(기능)이 생긴다. 어린애가 자라면서 의식이 생기고 판단을 하게 된다. 즉, 물질이 먼저다는 결론을 내렸다.

60대부터는 우주가 진화해서 생물이 생기고 사람이 생겼다고 보고, 말 한마디(창조론)로 생길 수 없다는 생각을 했다. 창조가 아닌 자연(물질)의 질서가 원동력이 되었다는 것을 생각하면서 오랜 방황의 막을 내렸다. 인문학에서는 방황을 했지만 자연과학에서는 길을 찾았다. 그렇게 ‘물성의 시’는 내 삶의 지표가 되었다.

시와 과학의 관계는 김기림 시인·문학평론가도 언급한 바 있다. 김기림 시인은 1937년 ‘과학과 비평과 시’를 통해서 “어떠한 시기에 어떠한 시인이나 시단이 혼미에 빠져있다면 시에 대한 과학적 추구의 부족에 있을 것이다.”고 말했다. 진 시인이 추구하는 물질시 = 과학의 시는 근거를 추구한다. 그는 “기존의 관념시가 인간 구조와 사회변혁에 공헌하기보다는 부패의 창조밖에는 한 게 없다는 결론이다. 물리시는 기존 문화와는 달리 과학적 실증적 새 전환"이라고 말한다.

김준태 시인은 진헌성 시를 논하면서 “현미경과 천체망원경을 함께 가진 시인”이라 했다. 카메라가 있을 때와 없을 때의 대상관찰 및 표현에는 많은 차이가 있을 것이다. 시의 서정성에 과학적인 논리가 결합하여 탄생하는 현대시의 새로운 지평은 진헌성 시인이 추구하는 길이다.

“사상만 없으면 적이 생길 리 없고, 전쟁이 없으면 자연 질서대로 살 수 있는데, 그것을 알면서도 안 되는 일”이라고 진 시인은 말한다. 따라서 무엇보다 첫 번째는 “둘리지 마라”는 말이다. “나한테도 너(문화)한테도 둘리지(이용당하지) 마라. 자연과학적 윤리의식으로 돌아오라”며 문화를 꽃이라고 비유했다. 진 시인은 특히 유신문화에 둘리지 말라고 강조했다.

현대문화는 꽃과 같은 사기다. 꽃은 누가 봐도 좋아지는 매혹의 꽃으로 유혹해서 벌과 나비를 모아 자기의 씨를 보존하려는 사기를 행함이듯, 문화가 꽃이라면 꽃과 같은 사기로 기존 문화를 유지하기 위한 공작이다. 하니 시도 서정보다는 근원을, 심미적인 찬미보다 문화의 근본을 생각해야 한다.

아인슈타인은 이 우주란 에너지다. 물질로 환원할 수 있는. 또한 열역학 제1법칙 볼츠만과 함께 에너지의 무한보전이란 우주 물리계의 회전변환, 병진변환과 시간변환을 말하며 “모든 대칭에는 그에 대응하는 불변량이 존재한다.”는 독일의 에미 뇌터 수학자는 유물론에 결정적 근거를 준 사람들이라며 전적으로 공감했다라 말한다. 그리고 진헌성 시 연구서의 이운룡, 이명재, 김은전 교수들은 본격적으로 자연과학을 시에 점목한 최초의 시사적 시인에 속한다고 평했다.

진 시인은 바둑도 등산도 낚시도 않고 오직 시를 쓰고 책을 쓰는 것이 전부다. 1969년 주기운 시인(4년 선배)과 2인 시집을 낸 이후로 10번째 시집을 냈다. 스스로 보고 듣고 사유한 모든 것을 쓰고 싶다. 사람들조차도 잘 뵐 수 없어 미안하다며 시집이 나올 때면 모든 지인들에게 책을 선물하고 있다고 한다.

진 시인이 당부하는 또 한마디 말은 “자기로 살아라. 절대 남으로 살지 마라.”고 했다. “살다보니 내가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더라. 내가 산다고 생각했으나 사실 유전자가 살았지 실은 내가 산 게 아녔고, 내가 말한 것 같지만 말조차도 이미 누가 했던 말이며 모든 것이 제로다. 즉, 나는 0였다라.”

문득 그의 시가 이곳저곳에서 보인다. 양림동 담벼락에 붙어있는 진헌성 시인의 시를 보며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시인으로 의사로 사는 모습만을 보고 부러움의 시선으로 시인의 성장과정을 보면서 눈물어린 공감을 하게 된다. 홀어머니 밑에서 공부하던 나날, 진 시인에게는 종교이상이 된 어머니와 헌신적인 아내. 또 현실과 미래를 한 발짝씩 개척해 온 시인의 작품과 인생 앞에 숙연해 진다.

“강물이 바다에 이르듯 글은 뜻에 이르러야(진헌성 시인의 어머니 말씀)”

진헌성 시인은 어머니에 대한 사랑이 각별했다. 도봇장수를 하면서 진 시인을 길러낸 어머니는 “산이 높아도 깊은 골짝 없이 높겠느냐, 멀리 굽이돌아 달아나는 강물도 끝내는 바다에 이르러야…. 먼 뜻이 있어야지 대충 따라만 가면 뭣한다냐?”며 진 시인의 첫 시집 서문에 ‘덕으로 성을 쌓으라’고 써주셨다 한다.

서정주 시인의 ‘자화상’에 “자신을 기른 것은 8할이 바람이었다.”고 했다면 진 시인을 기른 것은 8할이 어머니, 아니 그 이상이었다고 본다. 진 시인의 서재에 10여권의 앨범 중에 대부분은 어머니의 사진이었으니. 단군영정을 모시듯 어머니의 사진이 걸린 서재를 보며, 함께 무등산을 바라 본 시간이 오래된 과거처럼 느껴진다.

1185 · 걸상 하나

담배 한 짬은 아니지만

차 한 잔의 시간은 있을 법하다

아리스토텔레스 거인의 말년도

뒤배 보는 이 없어지니

고향 에이보이아 섬 카르키스로 가서 병사했다라

만 냥 아내 내가 버리면 뉘 뒷배 볼꼬?

하늘은 너무 멀고 땅은 너무 가깝고

걸상이나 하나 놓고 가얀가.

[대동문화 91호. 2015년 11,12월호]

김을현 기자  somchanel@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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