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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자에서 백자로... 한국 도자 역사의 '타임캡슐'무등산 자락 종합 가마터, 사적 제141호 ‘충효동 요지’
임영열 기자 | 승인 2020.02.04 08:36

국가 사적 제141호 '충효동 요지' 보호각

국가의 기운이 쇠약해질 대로 쇠약해진 고려 말, 무능하고 부패한 왕조는 왜구들의 노략질로부터 그들의 백성을 지켜주지 못했다. 오로지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변방의 백성들을 내륙 깊숙한 곳으로 철수시키는 일이었다. 이른바, 백성들이 사는 섬을 비우는 ‘공도정책(空島政策)’이 전부였다.

공도정책으로 서남해안의 웬만한 섬들이 텅 비게 되자 왜구들은 좀 더 내륙 깊숙이 침탈해 들어온다. 고려 시대 대표적인 청자 생산지, 강진의 대구만 일대와 전라북도 부안의 변산반도 유천리 일대의 가마터가 왜구를 피해 모두 비워지게 된다. 고려의 하이테크 산업이었던 청자의 생산은 중단되었고, 강진의 도공들은 흙 설고 물 설은 광주 무등산 자락으로 들어와 새로운 가마를 열었다.

충효동 요지 보호각 안에 있는 가마터. 거의 원형 상태로 발굴 되었다

시대를 너머 색을 너머, '청자에서 백자'로

조선 초기에 작성된 인문지리서, ‘세종실록 지리지’의 <무진군 편>에 따르면 “무진군 동쪽 이점(梨岾)에 자기소(瓷器所)가 한 곳 있고 북쪽에 도기소(陶器所)가 한 곳 있다”라는 기록이 있다. 무진군 동쪽 이점은 현재의 광주광역시 북구 충효동의 배재 마을을 말한다. 과거에는 배재의 한자 이름, ‘이치(梨峙) 마을’로 불렸다.

도자기의 원료가 되는 백토(白土)가 고갯길 여기저기 쌓여 있는 모습이 마치 달빛에 배꽃이 떨어진 모습과 흡사하다 하여 배꽃 고개, ‘배재’가 되었다. 왜구를 피해 무등산으로 들어온 도공들은 도자기의 중요한 원료가 되는 질 좋은 고령토와 땔감과 물이 풍부한 배재마을에서 새 시대, 조선의 분청사기와 백자를 생산하게 된다.

분청사기 조화 모란문 장군

분청사기 조화문 제기

무등산 북서쪽 자락에는 그들의 흔적이 오롯이 남아 있는 곳이 있다. 배재마을 입구에서 충장사를 지나 광주호가 있는 충효동으로 가다 보면 무등산 수박으로 유명한 금곡마을이 나온다. 금곡마을에서 풍암 저수지로 가는 단풍나무숲길 언덕에 ‘충효동 요지’와 분청사기 전시실이 있다.

이곳은 일제 시대 때부터 광주 가마, 무등산 가마, 석곡면 가마 등으로 불리며 명품 자기를 생산하던 곳으로 막연하게 인근 사람들에게 회자되고 있었다. 1961년 학계에 최초로 소개되면서 국립중앙박물관의 지표조사를 통해 상감청자 조각과 분청사기 조각을 채집하였다. 근처에 6기의 가마터가 흩어져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그 후, 1963년 국립중앙박물관과 1991년 국립광주박물관의 발굴 조사에 의해서 인화문, 박지문, 조화문 분청사기와 백자 조각 등이 출토되면서 충효동 요지가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분청사기 전시실에 도공들이 도자기를 굽는 과정을 미니어처로 제작해놓았다

두 차례의 발굴 결과 가마 퇴적구의 층위 조사를 통해 15세기 분청사기 가마의 구조를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도굴로 파괴된 가마도 있었지만, 2호 가마는 총길이 20 여 m의 터널식 가마로 아궁이와 출입구 도자기를 넣는 번조실과 굴뚝이 거의 원형 상태로 발견되었다.

원산지와 생산자 표시는 품질에 대한 자부심

충효동 요지는 고려 말에서 조선 초기까지 70~80 년간 자기 생산이 지속되다가 16세기 초에 중단된 것으로 밝혀졌다. 초기에는 상감문과 인화문 분청사기를 만들었으나 중간에 박지문, 조화문, 귀얄문 등 제작이 간편한 분청사기를 만들었다. 그 후 백자의 생산이 본격화되면서 백자 가마로 성격이 바뀌었다.

분청사기 조화 모란문 '全羅道' 명 항아리

왜구를 피해 고향을 떠나온 사기장들은 무등산 자락에서 자기를 빚었지만 영롱한 청자의 비취 빛이 나오지 않았다. 흙과 물과 땔나무가 바뀌었기 때문이다. 고심한 끝에 흰 흙으로 분장을 해서 만들어 낸 것이 분청사기가 되었다. 분청사기는 고향을 떠나온 도공들의 고뇌와 슬픔이 담겨있는 도자기다.

분청사기 상감 '光州' 명 매병

도요지에서 출토된 자기는 분청자기와 백자가 주종을 이루었으나 청자도 소량 출토되었다. 발굴 결과 연대별로 순서에 따라 맨 위쪽에서 백자가 나왔고, 그 밑에 분청자기가, 가장 아래에서는 청자가 나왔다. 세월의 더께에 따라 층층이 시간의 지층을 이루며 잠들어 있던 도자기들은 깊은 잠에서 깨어나 국립광주박물관 수장고에서 각자의 시간을 증언하고 있다.

도자기에 새겨진 '光'은 메이드 인 광주를 나타내는 브랜드명이다

도자기에 새겨진 도공들의 실명은 품질에 대한 자부심의 표현이다

이 중에서 분청사기는 왕실에 공납할 정도로 최고의 품질이었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이 충효동 요지에서 출토된 도자기에는 특별한 명문들이 새겨져 있다. 도자기의 생산지를 증명하는 ‘광(光)’이라는 명문이다. 이는 ‘메이드 인 광주’라는 원산지 표시다. 광일, 광산, 광별, 광공, 광무 등의 명문도 있다.

분청사기 귀얄문 마상배. 말 위에서 마시기 편하도록 만든 술잔이다. 도자기에 한글이 새겨진 최초의 사례다

귀얄로 분장된 마상배에는 ‘어존’이라는 한글 음각이 되어 있는데 이는 도자기에 한글이 새겨진 최초의 사례다. 도자기를 만든 도공의 성씨나 이름, 관청명이 표기된 것도 있다. 이는 지방관요로서 브랜드와 품질에 대한 자부심의 표현이다.

1998년 일본으로 밀반출되었다가 20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와 보물 제1993호로 지정된 위패 모양의 상감 분청사기, ‘필문이선제부조묘지’도 충효동 요지에서 만든 것으로 밝혀졌다.

분청사기 상감 필문 이선제 부조묘지. 보물 제1993호. 1998년 일본으로 밀반출 되었다가 20년만에 고향으로 돌아왔다. 국립광주박물관 전시

충효동 요지는 고려 말 청자에서 분청사기를 거쳐 조선의 백자로 이어지는 변천 과정을 잘 보여준다는 점에서 한국 도자 역사의 타임캡슐과 같은 중요한 문화 유적이다. 1964년 8월에 국가사적 제141호로 지정되었다.

<대동문화 116호. 2020년 1~2월 호>

임영열 기자  youngim147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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