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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월 대보름 낙수(落穗)
조상열 발행인 | 승인 2020.02.07 18:10
대동문화재단 조상열 대표, 문학박사

정월 대보름은 예부터 농경사회에서는 큰 명절로 성대하게 지냈다. 대부분의 세시풍속이 대보름을 전후하여 집중되어 있는데, 이는 주로 태음력을 사용하는 농경사회에서는 달의 운행에 따라 계절을 산정했다.

풍요와 다산(多産)을 상징하는 달은 여성원리 또는 지모신(地毛神)의 신앙체계와 관련되어 있어서 생산과 밀접한 관계를 지닌 것으로 인식되어 왔다. 여성들에게 매달 찾아오는 생리(生理)를 달거리 또는 월경(月經)이라 하는 것도 바로 달의 변화에서 생산의 의미를 찾았기 때문이다.

정월 대보름에 대한 기록이 최초로 나타난 것은 <삼국유사(三國遺事)>권1 <기이(紀異)> 편이다. 신라 21대 소지왕 즉위 10년, 왕이 정월 대보름을 맞아 경주 남산의 천천정(天泉亭)에 올라 달구경을 하던 중 쥐와 까마귀가 왕에게 다가와 울었다. 쥐가 사람의 소리로 말하기를“저 까마귀가 날아가는 곳을 따라가시오”하였다. 왕이 기마병으로 하여금 따라가게 하였는데, 병사는 남산 피촌에 이르러 돼지 두 마리가 싸우는 것을 구경하다가 까마귀를 놓치고 말았다. 병사가 까마귀를 찾아 길에서 헤매는데, 이때 한 노인이 연못에서 나타나 왕에게 올릴 편지 한 통을 바쳤다. 왕이 편지를 받아보니 겉봉에“開見二人死 不開見一人死(개견이인사 불개견일인사)”라고 적혀있었다. 내용인즉 ‘편지를 열어보면 두 사람이 죽고, 열어보지 않으면 한사람이 죽는다.’는 섬뜩한 내용이다. 왕이 열어보지 않고 한 사람만 죽는 것이 좋겠다고 하자, 신하가 아뢰기를 “두 사람은 서민이요, 한 사람은 왕을 가리킬 것입니다.”고하여 왕은 봉투를 열어보라고 했다.

왕명으로 봉투를 열어보니 안에 편지 내용이‘射琴匣(사금갑)’곧 ‘거문고 통을 쏘아라’라고 쓰여 있었다. 왕이 대궐의 거문고 통을 향해 활을 쏘게 하니, 두 연놈이 꼬꾸라졌는데, 향(香)을 태우는 승려와 왕비가 간음하고 역모를 꾀하려다가 발각이 된 것이다.

결국 편지 내용대로 두 사람이 죽음을 당했으니, 만일 편지를 열어보지 않았더라면 왕이 죽음을 당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마터면 목숨을 잃을 뻔한 왕은 자신에게 이를 알려 준 까마귀에게 보답하기 위해 정월 보름날을 ‘오기일(烏忌日)’이라 명명하고, 해마다 약식(약밥)을 지어 제사를 지내도록 했다. 이 제사의 풍습이 남아 ‘달도(達道, 모든 일에 조심한다는 뜻)’라고 전해진다.

이후 나라에서는 처음 까마귀를 왕에게 안내한 쥐, 병사가 탔던 말, 돼지 등을 고맙게 여겼으며, 정월의 첫 번째 돼지날, 쥐날, 말날, 에는 모든 일을 삼가고 약밥으로 제사를 지내게 했다.

보름날은 까마귀밥은 주지만, 집에서 기르는 개는 밥을 주지 않는 풍습이 있다. 굶주린 개가 까마귀에게 준 약밥을 빼앗아 먹자, 사람들은 하는 수 없이 개를 기둥에 묶어 기르게 되었고, 동시에 까마귀밥도 높이 매달게 했다. 풍성한 보름날 기둥에 매여 밥도 못 얻어먹는 개 신세의 꼴이 불쌍하기만 했다.

여기서 잘 차리지 못한 초라한 정월 보름 차례를“개 보름 쇠듯 했다.”라고 하는 말이 유래한다.

 

<대보름날 풍습과 금기>

대보름의 민속은 매우 다양한데, 설이나 추석처럼 차례를 지내기도 하고 오곡밥, 찐밥이라고 하는 약밥, 마을 수호신에게 지내는 남녀로 편을 갈라 여자 쪽이 승리해야 풍년을 기약한다고 하는 줄다리기, 광주 광산구 칠석동의 고싸움놀이 등이 있다. 강강술래가 여성적인 놀이라면 고싸움은 가장 남성적인 놀이로 예전에는 고싸움을 하다가 사람이 죽는 경우도 허다했는데, 그럴 때면 시체를 거적으로 덮어 한쪽으로 치우고, 고싸움을 계속할 정도로 그 격렬함이 대단했다고 한다. 그 외도 농악, 연날리기, 달집태우기 등이 있다.

대보름날 밤에 뒷동산에 올라가 달맞이를 하며 소원 성취를 빌고 1년 농사를 점치기도 한다. 달빛이 희면 많은 비가 내리고 붉으면 가뭄이 들며, 달빛이 진하면 풍년이 오고 흐리면 흉년이 든다고 하였다. 대보름의 풍년과 복을 비는 행사로는 놋다리밟기, 지신밟기, 쥐불놀이, 줄다리기, 차전놀이 등이 있으며, 그 밖에 더위팔기도 있다. 쥐불놀이는 대개 정월부터 대보름 사이에 행해지는데, 논두렁의 잡초와 병충을 없애며, 재가 날려서 거름이 되는 효과가 있었다.

대보름에는 찹쌀과 밤, 대추, 꿀 등을 넣어 쪄서 만드는 약식을 만들어 먹는다. 또 오곡밥을 지어 먹으며, 아침 일찍 부럼이라고 하는 껍질이 단단한 과일을 깨물어서 마당에 버리는데, 이렇게 하면 1년 내내 부스럼이 생기지 않는다는 부럼깨기가 있다.

아침에는 데우지 않은 찬 술을 마시는데, 이를 귀밝이술이라 하며, 일 년 내내 귀가 잘 들리고 좋은 소식만 듣게 된다는 의미가 있다. 소지왕 이래 지역마다 약밥이나 보리밥 등을 나물과 함께 담장 위에 얹어 놓아 까마귀가 먹도록 했는데, 이를 까마귀밥을 차린다고 했다.

정월 대보름에는 묵은 나물과 복쌈을 먹는 풍습도 있었다. 고사리· 버섯· 호박고지·무말랭이·가지나물·산나물 등을 말려두었다가 보름날이나 그 전날 나물을 무쳐 오곡밥이나 약밥과 같이 먹도록 했는데, 묵은 나물을 먹으면 그 해에 더위를 타지 않는다고 한다. 김이나 취잎사귀로 오곡밥을 싸서 먹는 것을 복쌈이라고 하여 복이 들어온다고 믿었다.

한국은 전통적인 농경사회였으므로, 정월 대보름에는 이에 피해가 될 것을 미리 경계하는 금기가 많았다. 대보름에는 찬물을 먹지 못하게 했는데, 여름 내내 더위를 먹으며, 논둑이 터진다고 생각했다. 비린 것을 먹지 말라는 금기도 있었다. 보름날에 비린 생선을 먹으면 여름에 파리가 준동하고 몸에는 부스럼이 생긴다고 여겼다.

보름날 까마귀에게는 밥을 주지만, 집에서 기르는 개에게는 밥을 주지 않도록 했다. 개에게 밥을 주면 개가 여름 내내 잠만 자고 파리가 많이 달려든다고 보았다.

칼질을 하면 상서롭지 않다고 보아 보름날에는 칼질을 하지 않았으며, 집의 문에 키 작은 사람이나 아이가 가장 먼저 출입하는 것을 삼갔는데, 만일 그럴 경우에는 농작물이 잘 안 자란다고 생각했다. 대보름날 아침에는 마당을 쓸지 않았는데, 마당을 쓸면 한 해 복이 나간다고 여겼고, 오후에 빗자루질을 할 때에도 바깥쪽이 아니라 안쪽을 향하도록 했다. 이와 같이 정월 대보름은 한해의 풍요와 기원을 기원하는 의미를 담고 있었다.   <글 조상열 대동문화재단 대표>

 

조상열 발행인  ddmh2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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