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문학가 김옥애

얼음이 녹는다는 우수 무렵엔 겨울과 봄의 특별한 향기가 묻어난다. 동화 작가 김옥애를 만나면서 그런 내음을 맡았다. 겨울처럼 차가우면서도 따스한 봄 날 같은 그런 분위기랄까.

언젠가 광주 평화방송의 ‘행복한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잔잔히 흘러나왔던 그녀의 목소리가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아동문학을 하게 된 숙명적인 과정과 그 길에 들어서서 흔들림 없이 살아 온 이야기들을 다른 청취자들도 그때 혹시 들었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그녀는 이번 인터뷰를 쑥스러워했다. 이미 다른 매체에서 했었던 말들을 되풀이 하게 되면 독자들이 식상 날 수가 있고, 신선한 맛이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어찌되었건 그녀의 집에서 커피를 나누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고, 보람 있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동화작가 ‘김옥애’ 하면 먼저 전남 강진을 떠 올리게 된다. 강진은 그녀의 고향이기 때문이다. 젊은 날 광주에서 학교를 다녔고, 광주에서 생활하면서 오랜 문학 활동을 하였지만 강진은 역시 그녀의 고향이다. 그래서 그녀는 최근에 고향 바닷가 마을에 십 오평 남짓한 작은 집을 마련했다. 그곳으로 책과 자료들을 옮겨 놓고 일 주 일에 한 두 번씩 고향을 찾는다.

2013년에 발간 된 그림 동화집 <흰 민들레 소식>은 그녀의 오두막 글방이 있는 마을을 배경으로 쓴 동화다. 마을에 있는 가우도 출렁다리와 도예학교와 미역 공장 등이 친근하게 글 속에 녹아 있다. 아마 지금쯤은 마을 곳곳에 흰 민들레가 봄소식을 전해 주기 위해 땅 속에서 힘찬 기지개를 펴고 있으리라.

문학소녀의 꿈

다형 김현승 시인에게 인정을 받다

거실에 선 김옥애 작가

위에서 말했듯이 김옥애는 해방 다음 해인 1946년에 강진읍에서 태어났다. 그곳에서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졸업 한 후 광주로 올라 와 전남여고에 합격했다.

요즘은 고등학교가 평준화 되어 어떤 학교가 좋은 지 쉽게 알 수가 없지만 그 당시엔 명문 고등학교였다. 시골 여중을 졸업한 후 높은 경쟁률을 뚫고 들어 간 그 학교에서 그녀는 문학의 씨앗을 심었다.

“선생님은 여고 시절에 문학 공부를 혼자서 하셨습니까?”

궁금해서 묻는 말에 그녀는 대답했다.

“클럽활동 문예반 활동을 했어요. 백일장에도 참여했었고, 글이 뽑혔고, 글이 뽑히자 우쭐해졌고, 문학소녀로서 인정도 조금 받았어요.”

여고 시절엔 주로 시를 습작했다. 먼 훗날 시인이 되는 꿈을 꾸기도 했다. 한글날 기념 백일장에서 ‘가을빛’이란 주제로 시를 써서 차상을 받았을 때의 감동을 그녀는 지금도 잊질 못한다.

“그때 시인 윤삼하 선생님이 우리 문예반 선생님 이셨고, 제 시는 김현승 선생님이 심사를 하셨거든요. 그 당시엔 그런 선생님들이 유명한 시인인줄 전혀 몰랐어요.”

그러나 교육대학으로 진학을 했고, 후에 발령을 받아 초등학교에서 아이들과 함께 생활 하면서 그녀는 시를 뒤로 했다.

“현장에서 아이들의 동심을 만나고, 또 결혼을 해서 아이들을 낳아 기르다 보니 시 대신 동화가 제 곁으로 다가 왔어요.”

그렇게 시작한 아동문학이었다. 그녀는 곧바로 1975년 광주일보 신춘문예와 1979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동화가 당선되었다. 그래서 동화작가로서 아동문학의 길로 들어섰다.

“70년대만 해도 아동문학가가 별로 없었어요. 학교에서 여 선생님이 귀했듯이 아동문단에서도 여자 동화작가는 많질 않았답니다.”

오십 대 중반에 이르기 전 그녀는 32년간의 학교생활을 접었다. 학교에서 아이들 가르치는 시간에 글이라도 한 편 더 써 볼 욕심에서였다.

“부모님들께서는 선생님의 글쓰기를 어떻게 받아 들이셨어요?”

그녀는 소리 없이 웃다가 말문을 열었다.

“그게.......우리어머니가요. 내가 결혼 전에 글을 쓴답시고 책들을 사 오고 배 깔고 엎드려 뭔가 끄적거리면 ‘네가 아무리 그래 봤자 우리 집안의 학 조부님을 따라 가려면 어림도 없다’고 하시더라고요.”

그 ‘학 조부님’이란 분을 그녀의 어머니도 사실 보지 못했고 집안에서 듣기만 했었다. 하물며 그녀에게 낯설게 들리는 것은 너무 당연했다.

2011년 여름에 그녀는 마량 포구에서 청자동화 <그래도 넌 보물이야>란 작가 사인회를 한 적이 있었다. 그때 주변 사람들의 말을 통해 그 ‘학 조부님’이 바로 강진의 금릉 팔경(金陵八景)을 지은 경회 김 영근(景晦 金永根 1865-1934)임을 알게 되었다.

“선생님은 영랑 김윤식 시인과도 관계가 있다고 하던데요?”

“예.”

“그 분과는 어떻게 되신가요?”

“제 할아버지는 누나가 하나 있는 남매였대요. 그 누나가 시집을 가서 영랑 시인을 낳았고, 저는 할아버지의 손녀에요. 우리 아버지와 영랑 시인은 외사촌 관계이고 저는 오촌 조카인 셈이지요.”

그렇구나. 사람이 태어나 어떤 일을 할 때는 본인의 피나는 노력이 필요하겠지만 가계에 흐르고 있는 유전자 같은 것도 있는 모양이구나. 어쩐지 그녀가 조상들에게 문학의 피 한 방울을 물려받은 사람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특히 최근에 강진시문학파기념관에서 펴낸 <동화로 만나는 영랑 김윤식 > 전기를 집필하게 된 일은 그래서 특별한 의미가 담겨 있을 것만 같다.

“선생님은 지금 동화작가로서 행복하시나요?”

그녀는 자신 있게 그렇다고 대답했다.

작가는 작품으로 말한다

마음을 먹었다면 치열하게 글을 써라

동화로 만나는 영랑 김윤식 시인 / 그래도 넌 보물이야

동화는 어린이를 주 독자로 하는 아동문학의 장르에 속하지만 인간의 삶 속에 없어서는 안 될 영양소가 아니겠는가. 특히 창작 동화보다 전래 동화 속에는 우리 조상들의 얼과 문화가 베여 있어서 어린이들의 인격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이렇게 어린이들을 위해 글을 쓴 김옥애 동화작가는 그날도 바빠 보였다. 동화를 쓰는 일도 중요하지만 가족을 위한 봉사도 빼놓을 수 없는 일이기에. 그녀는 가족들이 있는 광주와 글 방 강진을 부지런히 오고 간다. 어느 쪽도 놓지 않으며 살아가고 있다.

“프로가 되려면 죽느냐 사느냐 치열한 자세가 필요하죠.”

그녀는 글을 쓰지 않으면 마음이 허전하고 비어짐을 느낀다고 했다. 특히 해가 바뀔 무렵의 늦가을엔 눈물이 날 만큼 공허해진 감정이 두렵다고 했다. 그동안 그녀는 제12회 한국아동문학상, 제5회 광주일보문학상, 제28회 한국불교아동문학상, 광주예술문화특별공로상 등을 수상했다.

“선생님은 상도 많이 받으셨네요.”

“그건 모두 지나가 버린 과거일 뿐이지요.”

그녀는 지금 현재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지금 구상 중인 동화에 대해 물었다.

“구상 중인 동화요? 결과가 나오면 글로 대답해 드릴게요.”

벌써 한 시간 가량의 시간이 훌쩍 지나버렸다. 커피 잔 속에 묻은 문학의 향기를 남겨두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대동문화 93호. 2016년 3,4월호]

김을현 기자  somchanel@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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