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간동이라고 들어봤는지 모르겠다. 이름만 들어봤을 때는 그런 동네가 다 있나 싶은 그런 쉽지 않은 이름이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그런 이름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

3년 전인가 경복궁 근처에 직장을 얻게 되어 멀리 통근하기가 싫어 부득이하게 부근을 헤매다가 알게 되었다. 청와대 부근 효자동이나 경희궁의 아침 등 고급 오피스텔이 있는 내자동 지역도 이용하기에는 주머니가 가벼운 월급쟁이한테는 도무지 엄두가 안 나는 곳이다.

좀 복잡한 조계사 부근도 비슷하고 한참 걸어야 하는 서촌을 빼면 결국 갈 수 있는 곳은 북촌뿐이다. 그 가운데서도 사간동은 아직도 싼 집도 많고 상대적으로 조용한 곳이다.

사간동 한옥 골목의 모습. 문화예술계의 명소가 줄줄이 자리 잡고 있는 가운데 우리 전통 한옥의 모습이 이채롭다.

서울 대표적 갤러리 타운가에서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이 있는 조계사 후문으로 나와 옛 한국일보 건물 앞 횡당보도를 건너면 왼편으로 서울시지정 유형문화재 제13호 동십자각(東十字閣)이 나타난다. 길 건너 경복궁 돌담길로는 건춘문, 국립민속박물관과 국무총리공관과 청와대가 줄지어 있다.

그리고 그 건너편에는 대한출판문화협회, 갤러리 현대, 국제갤러리, 금호미술관, 법련사와 불일미술관, 옛 프랑스 문화원(현 폴란드 대사관), 국립현대미술관 건설지(옛 국군 서울지구 병원과 보안사령부 터) 등의 문화예술계의 명소가 줄줄이 자리 잡고 있다. 바로 이쪽이 강북을 대표하는 갤러리 거리 가운데 하나인 사간동이다.

이곳에 현대미술관이 새롭게 들어서고 있다. 출판, 미술, 종교, 국제교류, 레지던스 공간 등의 문화예술계의 명소가 줄줄이 자리를 잡게 될 것이다.

승보 종찰인 송광사 서울분원인 법련사 바로 뒤에는 대한불교 태고종의 본산인 법륜사가 자리 잡고 있다. 그래서 사간동이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는 절 사이의 동네라고 착각해서 ‘사간(寺間)’이라고 생각했다.

‘과연 조선시대 서슬이 시퍼렇던 시기에 궁궐 옆 동네를 불교적인 이름의 사간동이라고 했었을까?’라는 의문이 들어 찾아보니 한자로는 사간동(司諫洞)이다.

조선시대 사극을 보면 “전하 통촉하시옵소서!”라고 떠드는 대간들이 자주 등장한다. 이렇게 왕에게 진언을 올리는 대간은 요즘 언론인과 국회의원의 짬뽕이라고 할까? 그런 그들이 일했던 곳이 바로 사간원이다. 폴란드 대사관 옆 중국 요릿집 연춘관이 그 옛터다.

오늘은 고종의 후궁 집터가 있던 법련사 뒷골목에서 법륜사를 지나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으로 가는 좁고 아담한 골목을 소개하고자 한다.

전통 규방공예 침선 공방인 갤러리 ‘미르’, 전통 우리 음악을 즐길 수 있는 한옥 게스트하우스 ‘소리울’을 지나면 세련된 연두색 대문가 눈에 톡톡 튀는 도자기 체험 공방 인클레이주가 보인다.

누구나 쉽게 도자기를 만들어 볼 수 있는 체험 공방인 이곳에는 홍대 도예과와 네덜란드의 ‘Constanjin Huygens’ 미대를 나온 젊은 도예가 주윤경 작가가 대표로 있다. 생활자기를 예술품으로 승화시키고 그러한 도자기에 꽃을 꽂고 음식을 담는 것이 바로 예술이라고 주장하는 그녀에게 있어 사간동은 미술관이 많아 좋은 곳이었다.

모디돌은 공방촌 작가들의 모듬이다. 젊은 도예가들이 새로운 예술 세계를 꿈꾸고 있다.

소소하고 작지만 예술인 숨결 있는 곳

더욱 소소하고 귀엽고 작은 공방이 어울리는 이곳 사간동마저도 상업 지구화 되어 문화예술을 즐기는 매니아가 아닌 단순 관광객을 위한 장소가 되는 것 같아 못내 안타깝다. 가외동에서 공방을 하다가 북촌이 뜨자 높은 임대료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이곳에 오게 되었다.

아픈 경험 때문에 은행 빚을 빌려 무리해서 3년 전에 이곳을 구입했다. 선견지명인지 집값이 2배 가까이 올랐지만, 주위 공방 친구들이 점점 떠나기에 전혀 달갑지 않다. 얼마 전 바로 옆집에도 음식점이 생기는 등 술집 같은 이 동네 정서와 맞지 않는 곳이 우후죽순 생겨 또 안타깝다고 한다.

젊은 예술인들이 문화 공동체를 만들어 상호 재능 기부 형태로 문화 행사들을 만들어나가고 있다.

예술 문화 공동체와 재능 기부의 위대한 힘

8년이나 공방을 하니 친구 박순미 한국화 화가를 비롯해서 국립대학 토목공학과 교수, 한국화가, 방송작가, 은행원 등 제자들도 많다. 등단한 사람도 적지 않아서 2013년부터는 본격적으로 문화 공동체를 만들어 상호 재능 기부 형태로 강의와 파티 등의 모임을 하려고 한다.

인터뷰를 한 날에도 10여 명의 친구들과 제자들이 직접 만든 도자기에 맞는 요리를 준비해서 선보이는 파티를 열고 있었다. 완성된 도예가가 아니라 연구해 나가면서 서로 교학상장하면서 같이 커가는 자유로운 도예가를 꿈꾸는 그녀의 겸손함이 마음을 끈다.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인 김미희 작가가 후배와 함께 하는 공방 모비들도 부근 골목에 위치하고 있다. 모비들은 영화에서 프랑스 애들이 안고 다니는 드레스풍의 ‘비스크 인형’ 즉 ‘구체 관절 인형’을 만드는 곳이다.

그녀는 남들처럼 수입한 프랑스 인형이나 틀을 사용하지 않고 직접 창작적인 원형을 도자기처럼 구워내고 다듬어서 만든 인형에 우리 한복을 입히는 것을 좋아한다. 원래 사간동 큰길가에서 공방을 했는데 비싼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해 이전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 동네를 떠나려 했지만, 주윤경 대표의 만류와 미술관이 많은 이곳의 문화적 혜택을 포기할 수 없어 부근 골목 끝집으로 이전하게 되었다. 사간동은 북촌 초입의 한옥 골목으로 유명한 곳이지만 너무 구석에 자리 잡고 있다 보니, 길 잃은 사람이나 들어오는 곳이라는 탄식에 마음이 아프다.

옛 사간동은 골목골목마다 자리 잡은 한옥이 전부로 한때 쪽방으로도 유명했던 곳이다. 지금도 몇몇 한옥은 직장인들이 한 칸씩 겨우 잠만 자는 곳이다.

하지만, 국립현대미술관이 점차 완성되어 감에 따라 이곳 골목도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우후죽순 술도 파는 식당 등이 들어서고 있다. 보통 5년 임대계약을 하고 들어오니 내년에 폭등할 임대가를 생각하고 미리 돈을 좀 올려주더라도 손해는 아니라는 계산이다. 그러니 영세공방이나 갤러리들은 다 이곳을 떠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동양과 서양, 과거와 미래 보여주는 문화 거점

북촌은 이미 대기업의 프랜차이즈 매장이나 체인점들로 꽉 차면서 우리 전통문화의 멋을 만끽하고 맛을 느끼는 것이 어려워졌다. 현대 문화예술이라도 좋으니 옛 모습과 어울리는 곳으로 발전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미 국적 불명의 퓨전 식당과 가방 가게, 유명 브랜드 커피숍만 늘어간다. 그리고 이제 사간동까지 변해가고 있다.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차 한대 안다니던 골목에 외제차들이 교통 체증을 유발시키고 있다. 옛 모습이 어떤 곳이었는지도 모르게 계속 바꿔가는 골목과 이 지역 사람들 마음속에 우리 문화예술이 얼마나 잘 버틸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선다.

하지만, 이러한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우리 전통 공방과 문화예술 진흥을 위해 심혈을 기울이는 서울특별시와 종로구청, 그리고 우리의 주윤경·김미희 작가들과 같이 각기 다른 도자기를 통해서 전통과 현대, 동양과 서양을 이어주고 있어 사간동의 내일은 밝을 것으로 기대해 본다.

대동문화 74호 [2013 1.2월호]

하도겸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사  webmaster@chkorea.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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