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제18대 대통령 선거가 막 끝난 임진년 세모(歲暮)에 한학자 우천(又泉) 김경욱(金炅旭) 선생을 뵈었다. 선생은 어려서부터 한학을 배워 평생 한 길을 걸어온 외곬선비이다.

우천당은 간재(艮齋)의 학통을 받은 선친 노천(蘆泉) 슬하에서 공부를 해 호남 유학의 맥을 이어왔다. 30세에 고향(전남 곡성군 입면)을 떠나 광주에서 연찬을 해 온 그의 계림동 서재를 찾아 달보드레한 호박차를 나누며 시절담을 나눴다.

베푸는 것(以德施仁)이 정치의 근본, 분열과 대립을 걷어내고 통섭과 화합으로 바꾸어야 하는 역사적 책무가 주어져 있다고 강조하는 우천 김경욱 선생.

학문은 한가할 겨를이 없는 것

-우천 선생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청안하신지요. 요즘 어떻게 지내십니까?

예, 반갑습니다. 저야 늘 그렇듯 독서하고 연구하고 그렇게 지냅니다. 학문이라는 게 배우면 배울수록 궁금한 것이 더욱 늘어나니 어디 한가하게 노닐 겨를이 있나요. 타고난 성정이 그러하고 또 소싯적부터 그렇게 길을 들였으니 다른 도리가 없지요.

-이번에 우리 국민들이 새 지도자를 뽑았습니다. 대선 결과를 놓고 실망한 측도 있고 기대를 거는 측도 있습니다만, 대통령 당선자에게 어떻게 나라를 이끌어야 하는지 충고를 한 말씀 해주시지요.

뭐 별다른 게 있겠습니까. 모두가 어떻게 해야 할지는 알면서도 실천을 하지 않으니 문제이지요. 공부자(孔夫子)께서 말씀하셨듯이 덕으로써 다스리고 인을 베푸는 것(以德施仁)이 정치의 근본입니다.

진보니 보수니 하면서 이념적으로 편을 가르고 서로 다투는 작금의 행태는 유학자적 관점에서 보면 매우 바람직하지 않은 사회 현상입니다. 새 대통령은 이 분열과 대립의 악폐를 통섭과 화합으로 바꾸어야 하는 역사적 책무가 주어져 있습니다.

덕으로써 베푸는 정치가 새 정부의 과업

-어떤 방법으로 그 과업을 실현할 수 있을까요.

그 방법은 바로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의 실현에 있다고 봅니다. 덕치(德治)란 인의예지신이 국민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실현되는 사회를 이루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지도자가 솔선수범해 자신과 자기 주변부터 바르고 깨끗하고 화목한 분위기를 만들어내야 하지요.

<논어(論語)> 「위정편(爲政編)」에 보면 ‘정치를 덕으로써 하는 것은 마치 북극성이 제자리에 있고 뭇별이 그를 두르고 있는 것과 같다.(爲政以德 譬如北辰居其所而衆星共之)’고 했습니다.

지도자가 패권(覇權)을 휘두르지 않고 덕치를 베풀면 하늘의 별자리가 제 자리를 찾는 것처럼 국리민복이 저절로 이루어진다는 가르침이지요. 지도자가 화합의 정치를 하면(仁), 정의가 바로 서고(義), 사회가 화목하게 되고(禮), 나라가 슬기로워져 잘 살게 되며(智), 그리하여 백성들에게 신망을 얻게 됩니다(信). 요즘 자주 얘기되는 탕평인사가 제대로 실천되면 비로소 지도자의 인(仁)이 작동되었다고 할 수 있겠지요.

우천 선생은 고전을 비롯한 우리 문화유산을 올바로 이해하고 이의 보존과 관리에 힘쓰지는 문화운동을 꾸준히 펼쳐왔다.

-선생님은 그동안 한문 고전의 번역이나 문화재 수집 연구, 학술 논문 발표 등에 큰 업적을 쌓으셨습니다. 지금까지의 공덕을 간추려 주시지요.

업적이라니 과찬이구요, 선친의 가르침을 따라 나름대로 꾸준히 연찬을 해온 정도지요. 현재 자그마한 고전연구소를 열어 거기에서 후학들과 함께 활동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한문 서적과 고문서, 고서화, 옛 간찰 등을 수집 연구하는 한편, 번역 작업과 논문 집필을 하고 있지요.

그동안 8천여 권의 한문 서적과 7천여 장의 고문서, 3백여 점의 고서화, 간찰을 수집했습니다. 그리고 20여 권의 고전과 7천여 장의 고간찰을 해제 번역하고 수십 편의 관련 논문을 집필했지요. 또한 각 문중의 의뢰를 받아 문집 간행도 많이 했습니다.

고전을 비롯한 우리 문화유산을 올바로 이해하고 이의 보존과 관리에 힘쓰지는 문화운동을 꾸준히 펼쳐왔습니다. 그러다 보니, 문화재에 대한 감식 능력도 자연히 생기게 되고 훼손된 문화재를 원형대로 복원하는 기술도 차츰 습득이 되더군요.

가치를 모른 채 함부로 망가뜨리고 내버린 문화재들의 가치를 드러내고 원형대로 복원해 보존하는 작업은 국가나 학술 기관에서만 전담할 일이 아니라 국민 모두가 함께 힘을 모아야 제대로 성과를 거둘 수 있어요. 그러려면 먼저 우리 고전과 문화재에 대해 공부를 해야 하고 줄기찬 연찬과 애정으로 이를 보존 전승해 가야 합니다. 말로만 문화 사랑을 외칠 게 아니라 열심히 독공을 쌓고 행동으로 이를 실천해야 하지요.

우리 문화유산의 가치 드높인 일평생

-그러한 선생님의 식견을 높이 사 각 단체에서 선생님에게 많은 일을 맡기신 걸로 아는데 그동안 어떤 활동들을 하셨던가요.

1970년대 말 광주문화방송 자료 조사부에서 고전 자료 해석과 분류를 맡아 했고, 1980년부터 5년 간 광주일보 향토문화연구소에서 상임 국역위원, 1988년부터 3년 간 광주전남 사료조사 연구위원, 1991년부터 5년 간 광주광역시 고전 전문위원, 2005년부터 4년 간 전남대학교 호남학 연구위원으로 일했으며, 2010년부터는 전남대학교 고전 국역 전문위원을 맡고 있습니다.

5살 때부터 선친 무릎 아래서 한문을 배운 이래 학교 문턱에도 가보지 않고 고전 공부만 해온 셈이지요. 제 고향이 곡성군 입면 약천리로 약수가 유명한 곳인데 선친의 아호도 그 지명을 따 노천(蘆泉)이에요. 저도 선친의 학문 정신을 이어받는다는 뜻으로 아호를 또 우자를 써서 우천(又泉)으로 지음 받았습니다. 선친은 간재 전우(田愚) 선생의 학통을 이어받은 호남 학림이신데 평생 두문자정하면서 도의 선양에만 몰두하신 분이지요.

-선친에 대한 존경과 애정이 지극하시군요. 끝으로 앞으로 계획하고 있는 일이 있으면 말씀해주시지요.

고향에 선친과 선현들의 학문 정신을 전승할 아담한 학사를 꾸밀 구상을 하고 있습니다. 산자수명한 전원에 선현의 얼을 기리는 비탑을 조성하고 후학들이 도의를 닦을 학당을 세울 작정입니다. 그동안 글을 써서 푼푼이 모은 경제가 조금 있으니 이를 기울여 제 생애 마지막 서원을 이루려고 합니다.

그리고 현재 집필 중인 책을 완성하는 것이 올해 목표입니다. 정치하는 이들이나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쓴 약이 될 수양서를 몇 해 전부터 쓰기 시작해 현재 마무리 단계에 와 있어요. 자신의 영달을 위해 국민들을 속이는 정치인들의 위선을 밝히고 국민들에게 진실만을 이야기하는 참된 지도자상을 그려낸 수상집입니다.

이렇게 누추한 우생의 집을 방문해 주어 감사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감사합니다.

대동문화 74호 [2013 1.2월호]

한송주 전 전남매일 논설실장  webmaster@chkorea.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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