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 인간, 자연과 인간이 통하는 것, 그것이 문인화.

김영삼부부가 작품에 열중하고 있다

강심장에 출연한 왕종근이 남종화가로 잘 알려진 이의 작품을 하나 가지고 나왔다. 오랫동안 진품명품을 진행했던 왕종근은 방송에 출품되었던 작품을 당시 1백만원을 주고 구입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현재 이 작품의 가격이 얼마나 가겠냐고 물었다. 게스트들은 각기 2백, 5백, 어떤 이는 1천만원까지 불렀다. 그러나 정답(?)은 80만원.

나는 그 말을 듣고 순간 놀라고 당황했다. 어떻게 저런 일이 있지? 작가 이름값만 쳐도 어디인데...그리고 옛것은 시간이 지날수록 그 가치가 올라가지 않나? 이런 나의 생각에도 맹점은 있었다. ‘한국화 = 옛 것, 옛스러운 것’이라고 단정 짓고 있으니 말이다.

“동양화, 사군자, 문인화, 그러면 사람들이 고리타분하게 생각합니다. 그래도 한옥일 때는 한국화가 집안 어디에 있어도 잘 어울렸는데 요즘은 대부분 아파트잖아요. 최첨단까지는 아니어도 현대적인 것이 집안을 다 채우고 있는데 전형적인 한국화, 사군자가 그 집안에 어울리겠습니까? 흐름이라는 것이 있잖아요? 이제는 한국화도 예전의 기법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도, 소통의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문인화가 우송헌(遇松軒) 김영삼씨의 말이다. 그는 최근 인기리 방영된 <해를 품은 달>을 비롯한 <로얄패밀리> <불굴의 며느리> <위기의 여자> <황금물고기> 등의 드라마에 자신의 작품을 협찬했다. <해를 품은 달>에서는 주인공 연우의 방에 그의 작품이 걸렸다. 대한민국의 상위 1%로 속하는 사람들의 삶을 다룬 <로얄패밀리>에서는 그룹 회장인 김영애의 집무실 탁자 뒤로 그의 그림이 걸렸는데 최고로 절제되고 세련된 현대식 가구 속에서도 그의 작품은 들뜨지 않고 자연스러웠다.

그가 추구하는 문인화는 바로 이런 것, 통(通)이다. 문인화의 그 깊고 오묘한 정신은 지키되 무한의 변화를 추구하는 것. 전통 사극에서도, 현대극에서도 잘 어울릴 수 있는 변화, 즉 인간과 인간, 자연과 인간이 통하는 것, 그것이 문인화가 대중들로부터 멀어지지 않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요즘도 영화나 드라마에 작품을 협찬하고 있다. 문인화의 정신이 현대인의 마음에 자리하기를 생각하며 드라마 대본을 미리 받아보고 그것과 통(通)할 수 있는 그림을 그려낸다는 그의 말을 듣고 있자니 그가 꼭 연기자 같다.

우리는 행복을 연기한다

“맞아요. 우리 부부가 연기를 잘했나봐요.”

서예가이자 우송헌의 아내 효정(曉井) 최인숙씨가 옆에서 거든다.

“딸 둘, 아들 하나를 두었는데 셋 다 이 길을 가요. 아이들이 이 길을 간다고 할 때 가지 말라고 했어요. 전업작가로 살아가는 것이 힘들다고. 그랬더니 그럼 엄마는 행복하지 않냐는 거예요. 그런 건 아니지만 규칙적으로 사는 것도 행복할 것 같더라 했더니 굉장히 충격을 받더라구요. 결국은 못 말렸어요. 그래서 우리 둘이 한 말이 있어요. 우리가 너무 연기를 잘했는갑다고. 그래도 애들은 부모의 길을 간다고 하니까 우리가 잘못 살아온 삶이 아니구나 자랑스럽고 좋아요.”

효정이 화사하게 웃었다. 그 모습을 지극히 바라보는 우송헌을 보니 가화만사성이라는, 액자 속에서만 존재하는 듯 한 그 말이 툭 튀어나온 듯 했다. 인터뷰 내내 우송헌과 효정은 서로에게 미안해하고 고마워하며 예술가로서 지지와 격려를 멈추지 않았다. 효정은 자신이 맞벌이라도 하여 남편이 가사를 잊고 마음껏 스케치 여행도 떠날 수 있도록 지원하지 못함을, 우송헌은 촉망받은 서예가였던 아내가 자신과 자녀의 뒷바라지 때문에 꿈을 내려놓은 게 아닌가 하여 미안해했다.

“아내가 맞벌이를 하는 화가들이 마음 편히 그림 그리고 마음 편히 스케치 다니는데 나는 남편의 작업을 활발하게 지원하지 못하구나 싶어서 항상 미안하죠. 화가들은 열흘이든 보름이든 스케치 가고 그러잖아요. 그러나 이 사람은 책임감 때문에, 항상 가화만사성을 지키고 싶은 생각이 있어서 그러지 못하고. 그래서 웃으면서 그랬어요. 미안하다고. 그래도 내가 춤추고 다니는 것보다 났지? 그랬더니 아니래요. 춤추면 허리라도 건강해진다고. 그래서, 고깃집 하는 것보다 났겠죠? 그러니까 또 아니래요. 고깃집을 하면 고기라도 먹을 수 있지 않느냐고. 그럼 미안해서 어떻게 하냐고 하니까 미안해하지 말래요. 늘 공부하는 모습이 자기와 아이들에게 엄청난 에너지를 주고 있다고. 이런 에너지를 어디에서 얻을 수 있냐고.”

“이 사람이 나에게 시집올 때는 정말로 좋은 서예가가 되기 위해서 왔는데 가정, 애들을 키우면서 어쩔 수 없이 공백기가 있었죠. 아내는 늘, 가슴 속에 글씨를 써야겠다는 생각을 한날한시도 잊은 적이 없어요. 너무 힘들어서 취업을 하려고 하니까 취업하지 말래요. 자기는 직장인이 아니라 예술가와 결혼했다고. 정말 가난했을 때도 나에게 어렵다는 표현을 한 번도 한 적이 없어요. 그런 것들이 고맙죠. 고마우니까 더 열심히 하게 되고 서로 신뢰하게 되고. 글씨를 써왔기 때문에 이해하는 폭도 넓고. 글씨를 쓰는 사람으로서 가족들에게 헌신하고, 서로 이해를 해주니까 좋은 모습이 되었어요.”

김영삼 작품

우송헌예가전을 꿈꾸며

문인화와 서예가를 부모로 둔 이들의 자녀들에게는 웃지 못 할 에피소드도 많다. 큰딸이 유치원 다닐 때였다. 하루는 유치원 선생님으로부터 심각한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선생님 왈, “아이가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듯해요. 다른 아이와 달리 검정색 크레파스만 가지고 놀고 그림이 온통 검정색”이라는 것. 이렇듯 세 자녀는 부모의 영향으로 크레파스보다는 먹과 더 친했고 하루 종일 먹 가는 소리를 들으면서 자랐다. 홍익대 미대를 조기 졸업하고 국비장학생으로 중국에서 유학중인 둘째 딸 김보련 양의 글이다.

“아버지는 하루에도 마음이 수 십 번 바뀌는 감정의 소유자이다. 한껏 흥에 취해 그림을 그리시다가도 그 흥이 몸에서 다 빠져나가면 더 이상 그 그림을 그리지 않는다는 것을 나는 안다. 내가 예술가가 되기로 마음먹은 결정적인 이유는 늘 생각을 게을리 하지 않고 성취한 후에는 또 다른 작품세계로의 연구하는 아버지의 모습이 참으로 좋았기 때문이다. 그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내 앞에 앉아있는 아버지가 58년생인지 85년생인지 전혀 감이 없어질 정도다.”

우송헌은 1958년 진도에서 태어나 중학교 2학년 때 쓴 붓글씨 한 점이 진도교육장상, 도교육감상을 수상하면서 그림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 금봉 박행보, 희재 문장호, 소암 현중화 선생으로부터 사사를 받았다. 2001년부터 예술의 전당 서예아카데미 외래교수를 하면서 서울과 광주를 오가다가 5년 전에는 아주 작업실을 서울 인사동으로 옮겼다. 서울로 작업을 옮긴 것은 그의 작업을 한번 턴할 수 있는 인연을 만들어주었다. 배우 정혜선과의 만남이 그것이다. 정혜선은 <황금물고기>에서 취미로 한국화를 하는 이사장 역을 맡았는데 극의 몰입을 위해 문인화 스승을 찾던 중 우송헌과 만남을 갖게 된 것. 그것이 인연이 되어 MBC 드라마에 작품을 협찬하게 되었으며 이런 작업을 통해 그는 문인화의 현대화를 더 추구할 수 있었다.

우송헌은 비롯 주거지를 서울로 옮겼지만 여전히 매주 한 차례씩 광주에 내려와 제자들을 지도하고 화우들과 교류를 한다. 그의 일주일은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대학(대전대학교)과 아카데미 등에서 작품 지도로 바쁘지만 2년에 한 번씩 개인전(총 11회)을 개최할 정도로 부지런하고 부단하게 노력해왔다.

우송헌의 가족을 보니 사박자, 부모와 스승과 아내와 자녀가 참으로 조화롭게 서로의 그늘이 되어주고 있음을 알겠다. 중학교 시절, 학교를 일주일이나 빼먹고 그림을 그리던 아들을 혼내지 않고, 흔쾌히 그림을 그리라고 지원하던 아버지, 그리고 수강료를 한 번도 받지 않고 기꺼이 지도를 해준 스승(금봉), 생활고를 한 번도 내색하지 않고 정신적 지지가 되었던 아내, 그리고 자신의 길을 따라오는 아이들. 이 네 박자가 우송헌의 오늘을 있게 하지 않았나 싶다.

우송헌은 요즘 아내와 세 자녀와 함께 합동전을 할 꿈을 꾸고 있다. 그날이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조만간 우리는 우송헌예가전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대동문화 70호, 2012년 5.6월호]

정명혜 남부대 교수  webmaster@chkorea.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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