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를 종합적으로 볼 수 있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 아내가 고맙다. 그녀는 남편에게 ‘늘 좋다는 소리를 경계하라’는 말을 한다. 진정한 명창이 되려면 귀명창을 멘토로 두어야 한다는 말이 있다. 얼쑤의 귀명창은 이희정 씨다.

마을의 고샅문화가 살아있던 그 시절, 아이들은 고샅을 뛰어다니면서 동무를 불렀다. “○○야~! 노~올자!”

그들에게 있어 놀이는 ‘놀자’가 아니라 ‘노~올자’였다. ‘노~올자’에는 살가움과 순수, 운율이 살아있다. 그래서일까, 그 시절 아이들은 딱히 놀만한 놀이기구가 없어도 ‘잘 놀았다.’ 흙, 바람, 햇살, 그런 것만 있어도 잘 놀고 행복했던 아이들을 더욱 신나고 설레게 한 것은 연희패가 동네에 들어온다는 소문이었다. 연희패의 ‘굿’ 소식은 동네 사람들에게도 희소식이었다. ‘굿판’은 인근 사람들을 한 자리에 모이게 했고 노동에 지친 몸과 마음을 ‘노근노근’ 풀어주었다.

화려한 무대나 조명이 없어도 마을 광장에 빙 둘러 앉아 연희패들의 해학과 소리에 젖어들다 보면 어느 순간 구경꾼이 연희패이고, 연희패가 관객이 되기도 했다. 춤을 잘 추지 못해도, 소리를 잘 하지 못해도 그 ‘판’에서는 부끄럽지 않았다. 아이들도, 어른들도, 남자든, 여자든 신명이 나면 어깨를 들썩들썩, 엉덩이를 흔들흔들, 흥에 겨워 ‘굿판’에 빠져들었다.

서양의 무대 예술은 정형화된 틀 속에서 객석과 무대를 이분한다면 굿판의 매력은 이렇듯 ‘내가 너이고 네가 나’인 공동체 문화를 추구했다. 이렇듯 신명나는 우리의 ‘굿판’이 사라지고 있는 요즘 그 ‘마당판’을 이어가는 이가 있다. 전통문화연구회 얼쑤 대표 김양균(52) 씨다.

잘 산다는 것은 잘 노는 것이다

김양균 씨는 2009년부터 ‘광주예술난장 굿+판’을 펼쳐왔다. 보이지 않는 수많은 어떤 기운들이 응집되고 확산되는 느낌, 그래서 울컥해지고 귀에 딱 달라붙고 몸에 딱 붙는 원시의 소리, 그런 울림이 대중들에게 다가왔다.

“○○댁, 굿 보러 가세 하고 찾아오는 동네 아짐의 목소리, 누구야 노~올자 하는 아이들의 호명 소리가 사라지면서 정겨운 우리의 ‘굿판’이 사라졌습니다. 물질이 정신을 지배하면서 하루하루 먹고 살기 급급한 현대인들에게 ‘굿판’은 사치스러운 단어일지 모릅니다. 그러나 현대인들의 꿈은 건강하게 잘 사는 것입니다. 잘 산다는 것이 뭔가? 건강하다는 것이 뭔가? 저는 잘 노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잘 먹고, 잘 싸고, 잘 자고, 잘 노는, 그런 순환적인 삶을 사는 것, 그것이 잘 사는 것이고 지금은 그런 순환적 삶이 어느 때보다 절실합니다.”

김양균 씨의 말이다. 김양균 씨는 2009년부터 ‘광주예술난장 굿+판’을 펼쳐왔다. 이 마당판은 연 3일 간 계속해서 공연을 벌인다. 그래서 누구도 하지 않는 일이었다. 예산도 많이 들고 국내외에서 공연단도 모셔 와야 하고 관객들이 올 수 있도록 널리 알리기도 해야 하고 무대도 꾸며야 하고 해야 할 일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양균 씨는 올해로 5회째 판을 준비하고 있다.

“이 굿판은 형식에 구애를 받지 않고 또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수 있어요. 특히 가족 단위 관객이 많습니다. 이른 저녁 먹고 아이들 손잡고 별빛 달빛 쏟아지는 초가을, 공연을 보고 있는 풍경을 생각해보세요. 아마 그 아이에게는 평생 잊지 못할 풍경이 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 풍물굿을 대중에게 내놓자

얼쑤가 전문예술 단체로서 자립할 수 있었던 것에는 김양균 씨의 아내 이희정 씨의 지지가 큰 힘이 되었다. 그는 얼쑤 문화체험 터에서 도예 체험실을 담당하고 있는 도예가이다.

얼쑤는 1992년 창단되어 수많은 공연을 통해 국악 장르의 실험성과 예술성을 인정받고 있는 전통 타악 그룹이다. 그런데 20년 동안 얼쑤를 이끌고 있는 김양균 씨는 음악을 전공한 게 아니라 공학도이다.

“80년대 젊은이들은 어떤 형태로든 사회정치 변혁의 물결에 동참하였는데 나는 가톨릭 청년 운동을 하다가 조직적인 차원에서 사물을 배우게 되었죠. 그런데 사물은 하면 할수록 묘한 매력이 있는 거예요. 보이지 않는 수많은 어떤 기운들이 응집되고 확산되는 느낌, 그래서 울컥해지고 귀에 딱 달라붙고 몸에 딱 붙는 원시의 소리, 그런 울림 같은 것을 느끼게 되면서, 풍물굿을 대중화해보자 하는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죠.”

얼쑤는 창단한 지 10년이 되던 2002년, 광주광역시 남구 양과동에 있는 폐교(부지 4,000평)를 구입하여 소공연장과 풍물 강의실, 도예 체험실, 염색 체험실 등 생활 속에 전통문화를 결합시키는 얼쑤 문화체험 터를 운영하며 2003년에는 전문 예술단체로 지정되어 전문 예술인으로 활발한 활동을 펴고 있다.

현재 얼쑤는 김양균 씨를 비롯하여 급여를 받는 상근 단원만 9명이다. ‘문화로 밥 먹고 살기’ 힘들다는 지방에서 ‘문화로 밥 먹고’ 살 수 있다는 것은 얼쑤의 경쟁력이고 자랑이기도 하다.

얼쑤 도예 체험실 운영하는 도예가

얼쑤가 전문예술 단체로서 자립할 수 있었던 것에는 김양균 씨의 아내 이희정(49) 씨의 보이지 않는 지지가 큰 힘이 되었다. 이희정은 얼쑤 문화체험 터에서 도예 체험실을 담당하고 있는 도예가이다. 그녀의 요즘 작품 소재는 ‘달’과 ‘여체(女體)’이다.

“제가 50을 앞두고 있다 보니 갱년기에 접어든 여성들의 삶이 보이는 거예요. 장자에 나오는 목계(木鸂)처럼 일희일비하지 않고 깊고 뭔가 원숙한 여인의 삶이….”

‘목계’란 ‘나무로 만든 닭’을 뜻한다. 장자는 자신의 감정을 제어할 줄 아는 능력을 목계지덕(木鸂之德)이라 했다. 장자가 자신의 감정을 잘 다스리고 교만하지 않고 상대를 잘 배려하고 헤아릴 줄 아는 마음을 목계로 표현했다면 이희정은 흙을 이용하여 중년 여성의 삶을 목계지덕 갖춘 여인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의 말을 빌리면 도계(陶鸂)다. 그녀의 도계(陶鸂)는 참으로 아름답다. 언뜻 보면 백조 같기도 하고 사슴 같기도 하고 우아한 발레리나 같기도 하다.

전통 타악 그룹 얼쑤의 대표 김양균 씨는 무대를 종합적으로 볼 수 있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 귀명창인 도예가 아내 이희정 씨가 늘 고맙다. 그녀는 남편에게 ‘늘 좋다는 소리를 경계하라’는 말을 한다.

김양균 씨와 이희정 씨는 성당에서 만나 부부가 되었고 두 딸을 두었다. 딸들도 해금과 대금을 전공하고 있다. 이 부부는 인문학 서적을 자주, 많이 읽는다. 그래서 생각하는 바, 추구하는 세계가 비슷하다. 이희정 씨는 책을 읽다 “이거 어떻게 생각해?”하고 남편에게 불쑥 말은 건넨다. 대답이 없다. 그래도 이희정 씨는 남편이 자신의 말을 들었다는 것을 안다. 대답이 없으나 대답을 듣는 귀를 가진 이희정 씨의 남편에 대한 신뢰가 어쩌면 오늘날 얼쑤를 만든 힘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저는 공연을 기획할 때부터 리허설까지 다 보거든요. 작품 연습을 하는 것을 보면 어디가 불편하다, 미흡하다, 다른 방법이었으면 좋겠다 그런 느낌은 있어요. 공연 내용뿐만 아니라 조명, 의상, 무대 장치까지….”

김양균 씨는 무대를 종합적으로 볼 수 있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 아내가 고맙다. 그녀는 남편에게 ‘늘 좋다는 소리를 경계하라’는 말을 한다. 진정한 명창이 되려면 귀명창을 멘토로 두어야 한다는 말이 있다. 얼쑤의 귀명창은 이희정 씨다.

“작년에 얼쑤 20주년 기념콘서트와 전시회를 준비하다 공연 한 달 전에 모든 것을 취소했어요. 우리 집 식탁 벽에 간단한 메모를 적어놓는 칠판이 있는데 그곳에 아내가 이런 말을 써놓았더군요. 뭘 하려 하지 마. 그때 번쩍 드는 생각이, 내가 20주년이라는 틀에 얽매여서 사는구나라는 거였죠.”

김양균 씨는 20년 동안 앞만 보고 달려온 얼쑤도 쉬어야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공연을 취소하고 쉬자고 하니까 단원들은 ‘뭘 하지 않는다’는 불안감과 연습실 밖에서의 생활들이 낯설어서인지 ‘쉼’으로부터 오는 일상들에 적응하지 못했다. 그러나 도시락 싸서 산행도 하고 광주에서 목포까지 자전거 타고 가는 추억도 만들면서 커피도 내려 마시는 여유도 알았다.

‘뭘 하려 하지마’는 작은 메모로 남편에게 ‘쉼’의 의미를 부여한 이희정과 그 뜻을 잘 헤아릴 줄 아는 김양균. 그들은 ‘쉬는 게 쉬는 것이 아니라 내 자신을 달궈가고 있다’는 것을,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는 부부다.

대동문화 75호 [2013 3.4월호]

정명혜 남부대학교 교수  webmaster@chkorea.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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