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전칠기의 장인 김기복 옹

나전은 칠기에 나전으로 장식했다는 의미다. 칠기는 옻칠이 된 그릇을 뜻하고, 신라시대에는 금테칠기도 있었다. 금으로 문양을 만들기도 했을 만큼 귀했다.

나전의 재료는 전복껍질로 만든 것과 소라껍질로 만든 것으로 나누어진다. 소라껍질은 빛깔이 맑고 투명하다. 전복껍질은 무지갯빛처럼 화려한 빛깔을 낸다. 나전칠기를 기법상으로 구분하자면 주름질 기법과 끊음질기법으로 나눌 수 있다. 주름기법은 실톱 등을 이용해 문양을 오리는 기법이다. 끊음질기법은 전복껍질을 얇게 선으로 잘라 문양대로 칼로 끊는 작업을 뜻한다.

광주는 칠과 먹, 목탄이 많이 생산돼 3흑(黑)의 고장으로 명성이 높았다. 사적 375호인 신창동 유적에서 칠기 용기와 도구가 발굴돼 칠공예의 오랜 역사를 증명하고 있다.

김기복, 그는 나전과 칠 제작 기법, 그리고 작품의 조형미까지 두루 갖춘 명인이다. 통영에서 태어나 16세부터 57년 동안 나전칠기의 맥을 잇고 있다. 통영 나전칠기 기술학교에 입학해 송주환 선생께 기술을 전수 받은 뒤 18세 때 광주로 왔다. 특히 옻을 말려서 칠하는 기법인 <건칠> 방식의 기법에 능하다.

옻칠이 좋아, 벌레도 안 먹고 좀도 안 먹고...

광주 남구 서동에 있는 김기복(73) 선생의 집, 그의 집 마당에는 아담한 화단이 있다. 이름 모를 풀꽃들이 파르르 떨며 차가운 봄바람을 이겨낸다. 겨우내 추위에 얼어서 말라붙어 있다가 다시 꽃잎을 피워내기 시작한 어린 동백나무도 그의 오래된 하늘 아래 같이 서 있다. 동백이 꽃을 피우듯이 그는 나전칠기를 만든다. 김기복의 봄날이 다시 환하게 시작된다.

동백나무를 심기 3년 전(1997년), 그는 세계 어디에 내놔도 뒤지지 않을 명품 나전칠기 작품을 구상했다.

“이거이 뭐이냐믄(무엇이냐면) 건칠(삼베, 칠, 황토가루)로 만든 것이여. 디자인 잡아가꼬 황토가루를 여러 번 모양이 나올 때까지 계속 발라. 땅속에 파묻어도 썩질 않아. 일본사람들이 건칠을 정말로 좋아 한다꼬. 우리나라는 아직 건칠에 대해서 잘 몰라. 전통 기법하고는 완전히 틀리거든.”

고향을 떠나 이곳에 터를 잡은 지 57년째다. 광주사투리가 약간 섞여 들지만 그의 통영사투리는 작품 <화병>에 새겨진 문양처럼 곧고 변함없다.

“나전칠기도 전통 공예품이야, 생각하지 않으면 대충대충 만들어져뿔어. 옛날 자개상품으로 팔리던 것들은 떨어지고 깨지고 그랬어. 어렵게 배운 기술을 좀 더 연구 했으면 좋았을 긴데. 낸중에 내가 죽고 없더라도 작품은 남아 있을 기다. 남들도 그렇게 생각했으믄 좋았지 않겠나. 먹고 살라고만 했어. 아까운 사람들이 많아.”

하나를 하더라도 제대로 해야 된다는 그의 말처럼 머리 쓰고 연구해야 내공이 몸에 베인다. 남들이 가지고 있는 문양들. 그에게는 특별하지 않다. 그는 자기만이 문양을 연구했다.

“그림 같은 거? 필요 없어. 디자인 나오면 그때마다 달라. 가지고 있는 그림은 사실 필요 없게 되거든. 여그까지 올라믄 목공부, 칠부, 나전부 삼개부를 다해야 해. 아주 전공을 하려면 칠 자개는 꼭 해야 하고. 카슈칠보단 옻칠이 중요해. 모르는 사람들은 카슈칠을 옻칠이라 하는디 차원이 달라. 쉽게 말하자믄 카슈칠은 초등학생이 배운 것이고 옻칠은 대학원생 수준이라 생각하믄 돼. 나전의 원칙은 옻칠로 해야된다꼬. 절에 가믄 스님들 밥통 안 있냐, 밥그릇 먹고 닦아가꼬 있등가. 왜 안 씻고 그러게 해두냐믄 옻칠을 했기 때문이야. 음식을 먹고나믄 세균침범을 못하게 하는 것이 옻칠이여. 그렇게 먹고 닦아만 놓고 또 엎어 놨다가 다시 먹고 그러잖아. 그만큼 옻칠이 좋다는 거여. 벌레도 안 먹고 좀도 안 먹고 좋아.”

하늘과 땅의 이치를 담는 나전칠기 문양

무수히 많은 작품을 만들었다. 따로 아끼는 작품은 없다. 다만 제일 공이 많이 든 작품 <화병>에는 눈이 더 오래간다.

“건칠로서는 대작이여. 5년 정도 걸린 작품인데 엄청 고생했제. 징그럽게 고생했어. 암놈과 수놈을 따로 맞췄어. 키가 큰 것은 수놈, 작은 것은 암놈이제.” 그의 만든 모든 나전칠기 문양은 거의 쌍으로 디자인 된다. 하늘과 땅 그리고 물과 불로 이루어진 그림이다. 봉황은 하늘을 날고, 원앙은 물에서 논다. 그러니까 하늘과 땅의 의미가 함께 스민다. 집 방안에서 쓰는 물건이기 때문에 쌍의 의미를 강조시킨 것이다.

“건칠은 처음에 새끼로 하는 것이여. 얼릉 말해서 도자기로 말하자면 물래식이야. 둥근 거 밖에 안 되는 거여. 나는 모가 나고 사각 모양이 나는 그런 것들을 연구했어. 스티로폼으로 각을 만들어 삼배 옻칠해가꼬 안에 틀이 잽히면 스티로폼을 빼뿌러. 한 번 바를 때 조절을 잘 해야 해. 잘 안되면 며칠이 지나도 마르지가 않아. 갈라져 뿔고. 이후에 삽화 질 하고 또 바르고 또 삽화 질 또 바르고 징해, 아주.”

나전칠기는 무척 시간이 많이 걸리는 작업이다. 오랜 시간 탓일 것이다. 작업을 하지 않고 약속이 없을 때는 항상 작품 50여점이 놓여있는 차가운 방에서 하루를 보낸다. 작품들과 함께 있는 것이 그는 좋다. 그가 만들었지만 세월이 지나 이제는 작품들이 그의 삶을 증명해주기 때문이다.

“나 열여덟부터 기술 배우느라 아침 밥 묵고 날 새고 그랬어. 그 당시에는 무엇이든 배우기 힘들고 어려웠잖아. 부자들만 사가는 가구잖아. 그래서 사람들이 많이 기술도 배우고 그랬어. 광주도 300군대가 넘었다꼬. 엄청 많았제. 한집에 직원 30명이 넘게 있었어. 지금은 모르겠어. 몇 사람 있을긴데. 남들은 추억도 여럿 가지고 있을 긴데 내는 이것밖에 없어. 노는 것도 모르고 살았어. 몇 사람이라도 생각을 바꿨다면 훨씬 더 좋았을 텐데 하나의 상품으로만 생각 해뿌니까 할 수 없는 거제. 이것이 우리 대한민국을 대표 할 수 있는 것이 되겠구나라고 생각했으믄 달라졌을긴데….”

고향 떠나 55년, 무형문화재가 되다

그에게 나전칠기는 단순한 돈이 아니었다. 그것은 전통의 문화였고, 우리의 삶이었다. 그랬기에 하나를 만들어도 작품으로 승화시키고 싶었고, 공모전 준비에는 항상 정성과 시간을 아끼지 않았다. 그렇게 나천 칠장의 예술은 시작된다.

“그 사람들은 돈 벌고 난 작품 위주로 나간다는 생각으로 하루를 버티고 살었어, 다 나보고 과대망상증이 걸렸다고 미쳤다고 했제. 나는 그 사람들하고는 생각이 완전히 틀렸지. ‘봐라, 누가 잘 산가 몬 산가(못 산가)는 끝에 가서 보자, 느그들하고는 방향이 틀리다. 이눔들아, 내가 어떻게 되는가봐라.’ 내 속으로 이렇게 만날 말하고 그랬다꼬.”

스스로의 생각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하기 위해 그는 밤이고 낮이고 작업에 몰입했다. 그의 집 옆에는 큰 교회 하나가 있다. 옛날에는 종소리가 크게 울렸다. 가까운 거리였지만 그 종소리를 듣지 못할 정도로 몰입했다. 일에 파묻히면 어느새 날이 새고, 딸들은 가방을 매고 학교에 갔다. 그는 시간이 어떻게 지나가는 줄도 모르게 살았다.

가구시장이 바뀌면서 많은 사람들이 나전칠장 업을 그만두었다. 그에 말을 빌리자면 끝이 난 거다. 하지만 그는 살아남았다. 그는 자기 이름이 걸린 작품도 남아있고, 광주에서도 인정해 주는 명인(무형문화재)이 되었다. 결국 그의 망상이 옳았던 것이다. 그가 무형문화재가 된 것은 2010년 6월16일, 고향을 떠나 온지 꼭 55년 만이었다.

“서류 낼 때까지는 내가 될까 싶었는데, 몇 년 기다리니까 갑자기 연락이 왔어. 기분이 좋았제. 방송에도 나왔지만 처음엔 말도 못하고 살았어. 말 그대로 벙어리로 살았제. 경상도서 왔다하면 사람들이 싫어할까 봐 벙어리처럼 살았다꼬. 그래가꼬 한 1년 사니까 말이 통하대. 그나마 그 시절엔 나전칠기 기술자라하믄 인정을 해줬다고. 경제적으로 부족하게 살진 않았어. 중간 위치에서 그럭저럭 살았제. 무엇이든 안 그래? 기반 잡힐 때까지는 다 그래. 힘들게 살지.”

김기복, 그가 만들어낸 작품들 속에는 눈물이 있다.

“작품 하나 사고가 나뿔믄 하늘이 무너져. 갈고 닦고 며칠 해가꼬 완성 다 됐는디 제일 마지막에 사고 나는 경우가 있잖아, 그러믄 고치도 몬하고 빼도 박도 몬한다고. 망쳐뿔믄 연구하고 다시 고쳐야 해. 머리에서 안 떠오르고 할 때는 지쳐뿌러, 딱 죽고싶어진다꼬….”

그때마다 그는 사직공원 팔각정에 올라가 남몰래 많이 울었다. 그리고 다시 이것을 어떻게 복원할 수 있을까 몇 날 며칠을 연구했다. 그렇게 세월은 흘렀다. 너무 공 들여 만든 물건들인 까닭에 딸들이 달라고 해도 선뜻 내주지 못한다. 며칠 전에는 딸집으로 보냈던 나전칠기를 되찾아왔다.

“저것도 딸집에서 가꼬 와 뿔었어. 우리 사우(사위)는 그것 딸 주지, 그냥 가지고 가뿐다꼬 농담을 하는디도 그냥 가꼬 와뿟어. 아무리 가꼬 오라해도 안 가꼬와. 그래서 내가 가서 그냥 가꼬 와 뿟제. 어찌게 만든 것인디. 딸들한테 안주고 사회에 기부 한다꼬 말해놨제.”

그가 웃는다. 딸들에 대한 미안함 속에 작품에 대한 사랑이 함께 깃든 웃음이다. 그에게 나전칠기는 또 다른 자식이었다. 동백꽃이 떨어지기 전에 그의 손에서 새로운 자식 하나가 꽃잎처럼 태어날 것이다.

[대동문화 70호, 2012년 5. 6월호]

한경숙 기자  webmaster@chkorea.news

<저작권자 © 채널코리아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