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문화는 그 지역과 주변 환경의 영향, 즉 풍(風;지역성)과 속(俗;인심)의 영향을 받는다. 남도는 질 좋은 개펄과 연근해의 해산물, 평야가 비교적 잘 발달하여 식재료가 풍부하다. 그래서 육지 음식과 바다 음식이 고르게 발달하면서도 서로 간에 기막힌 균형을 이룬다. 여기에 남도민만의 넉넉한 인심에 녹아들어 있다.

남도음식 소중한 문화의 보고

남도음식은 현대 서구의 음식마저도 포용하고 어울리게 하는 묘한 힘과 깊이를 갖고 있어 더욱 소중한 문화의 보고가 아닐 수 없다. 우리 전통음식을 고스란히 지키면서도 얼마든지 창조적인 방향으로 음식 문화를 만들어나갈 수 있는 미래 가능성도 풍부하다.

남도음식이 갖는 일반적인 특성은 무엇인가. 첫째, ‘삭힘과 절임’의 미학이 깃들어 있는 음식 문화다. 둘째, ‘조화와 변화’에 능동적인 음식 문화다. 셋째, ‘외화내비(外華內秘)’의 깊은 맛이 우러나는 융통성의 문화다. 넷째, ‘화이부동(和而不同)’의 어울림과 독특한 남도민의 특성과 닮았다. 그 밖에도 질박하고 감치는 맛과 개미가 깊은 것은 타 지역에서 감히 따라오기 힘든 우리 남도 음식의 맛이다.

또 남도음식의 맛의 비밀은 무엇일까. 한마디로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첫째, 기본 음식(양념 : 소금, 장, 된장, 고추장 등)에 철저하여 깊은 맛을 낸다. 둘째, 기본 음식은 응용성이 뛰어나 다른 음식과의 조화가 기막히다. 셋째, 다양한 식재료를 자연의 이치에 맞게 응용한다는 점이다. 넷째, 매개성(媒介性) 재료의 활용이 뛰어나다. 예를 들면 김치를 담글 때 찹쌀 풀을 넣어주면 쌀의 매개성이 십분 활용되어 음식 간의 중화 작용을 돕고 더욱 깊은 맛을 내게 해주는 것처럼 곳곳에 남도만의 이런 음식 만들기 비법이 숨어 있어서 맛의 비밀의 열쇠를 쥐고 있기도 하다.

삭히고 절이고 무치고… 남도 음식에 깃든 미학

남도 음식의 백미는 ‘삭힘’과 ‘절임’의 미학이다. 삭힘에는 자연의 재료, 인간의 노력, 하늘의 도움이 삼위일체가 혼재되어 있다.

발효시킨 남도 음식으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김치다. 특히 ‘남도 묵은 지’는 오늘날 우리나라에서 발달하게 된 김치 냉장고를 탄생시키게 했던 것이다. 김치 냉장고를 만든 최초의 사람 중에 전라도 강진이 고향인 사람이 있었다. 그가 어느 기회에 경상도에서 식당을 하게 되었고 그 식당에 묵은 지를 공급하게 되었다. 강진 고향 김치 독에 묻어둔 ‘묵은 지’는 양과 거리에 있어서도 그를 불편하게 했다. 그래서 그는 이런 김치나 묵은 지를 맛이 일정하면서도 오래 보관할 필요를 느끼고 김치 냉장고를 개발하게 되었던 것이다. ‘김치 냉장고 탄생 공신’은 ‘남도 묵은 지’라 해도 허언이 아니다.

발효 음식으로 흑산도 홍어를 삭혀서 돼지고기와 묵은 지(김치)에다 탁주를 한잔 걸치는 맛은 천하일미가 아니고 그 무엇이겠는가. 남도 서남해안 지방에서 발달한 이 음식은 바다와 육지, 육식과 채식, 해산물과 육고기와의 균형을 이룬 멋진 음식으로 남도 잔칫상에서 이 음식이 빠지면 최고라 여기지 않을 정도다. 행여 여름철 잔칫상의 상한 돼지고기와 함께 먹는 경우도 중화가 되는 과학이 숨어있는 남도 음식이다.

남도음식 중에서 절임의 꽃은 젓갈이고 그 젓갈의 비밀은 소금에 있다. 간수를 쫙 뺀 소금이어야 음식이 쓰지 않고 달고 깊은 맛을 낸다. 소금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남도의 또 다른 음식은 바로 굴비. 간수가 완전히 빠진 천일염으로 조기를 켜켜이 재는 ‘섶간’은 별다른 냉장 시설이 없던 옛날, 조기를 오래 보관하며 먹기 위한 방법이었다. 하지만 단순히 소금에 절이는 것만으론 저장 기간에 한계가 있어 남도에선 새로운 굴비 보관법과 굴비 요리를 발달시켰으니, 보리가 든 항아리에 묻은 보리 굴비와 고추장 항아리에 박아두고 먹던 고추장 굴비다. 항아리 속에서 숨 쉬며 발효된 남도 음식인 것이다.

‘무침’의 미학에 숨은 화이부동(和而不同)의 정신

무침에는 서로 다른 재료가 들어감을 의미한다. 멋모르는 외국인들이 보면 각 재료를 섞어서 고유의 맛이 사라질 것이라고 걱정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화합하여 모나지 않되 같지 않으며 독특한 것이 ‘화이부동’ 아니겠는가. 바로 무침이 그렇다. 전어회 무침, 목포 먹갈치, 서대회 무침, 섬진강 꽃게 무침 등 그 이름만 들어도 침샘이 자극을 받는다.

남도 동부 육군(여수, 순천, 광양, 고흥, 보성) 주변에는 유난히 무침이 발달한 이 지역의 특징은 섬진강 보성강 등이 흐르고 민물고기 등 건강상 함부로 할 수 없었던 자연의 조건에다, 임진왜란의 중심에 섰던 남도민과 유달리 의병이 많은 이 지역의 특징은 정(情)과 어울림[協]이다. 마치 남도인의 특성을 닮았다.

무침의 비밀의 열쇠는 ‘식초’의 응용이 따른다. 식초나 막걸리에 식재료를 무쳐서 버무린 음식을 먹음으로써 더위를 이기고 건강을 돕는 일거다득의 지혜가 들어있는 것이다. 막걸리를 이용한 서대회(무침)에 돌산 갓김치를 곁들여 먹는 맛이야말로 ‘남도 일번지 음식’이라 해도 과장이 아니다.

남도음식 맛의 열쇠 간직한 기본 음식

전복 찜과 전복 장은 또 다른 남도 음식이다. 전복장을 만들어보자. 전복장용 전복을 고를 때는 한입 크기로 편하게 먹을 수 있는 1kg에 20∼25미 정도의 크기가 적당하다. 설탕이나 청 등을 넣지 않고 채소 국물의 자연스런 단맛과 대추와 마늘장아찌로 감칠맛을 더 한다. 전복외의 부재료는 취향에 따라 조절할 수 있으나 대추나 마늘장아찌를 넣지 않는다면 양파청이나 매실청이라도 조금 넣어야 한다. 간장양념이 완성되면 맛을 보고 채소국물로 간을 조절하는데 작은 전복을 심심하게 양념해 통째로 먹을 수도 있고, 다소 짜게 양념해 작게 썰어 먹어도 되므로 취향에 따라 조절한다.

완성된 전복장은 껍데기에서 떼어 전복입을 떼어 낸 뒤 살은 먹기 좋게 하고 내장은 참기름을 살짝 넣고 밥을 비벼 구운 김에 싸 먹으면 별미이다. 전복장 간장은 양념장으로 쓰거나 다시 전복장 담그는 데 사용해도 좋다.

광산 김씨 가문의 집장 만드는 법

남도 음식문화는 지역성과 식재료로만 이루어지지 않았다. 풍(風)과 속(俗)이 어우러져 이루어진 문화다. 풍이 자연이라면 속은 인심 즉 문화다. 남도는 ‘예향’이라 하였고 ‘의절(義節)의 고장’이라 했다. 의절로 훌륭한 가문도 많아서 일일이 다 손 꼽지 못할 정도다. 여기에서는 광산김씨 가문과 여흥 민씨 가문의 남도 음식 한두 가지를 소개하고자 한다.

집장은 잔치음식의 맛을 돋우거나 가을철 즉석에서 비벼 먹는데도 자주 사용되었다. 음력 7월에 메주를 띄우는데 집안에서는 주로 세 가지 방법을 쓴다.

첫째, 보리 가루를 물목아(수분 조절: 물을 주어서) 쪄낸 방법과 둘째, 통밀과 흰콩(白太)을 삶아서 띄우는 방법, 셋째, 복더위에 두엄 속에 넣어서 띄우는 방법이 있다. 메주가 띄워지면 바구니에 면 보(헝겊)를 깔고 다독거려 바람이 잘 통하는 응달에 3~4일 정도 띄운 후에 상태를 봐서 실 같은 것이 나오는 것처럼 발효되면 비로소 말려서 가루로 빻는다. 그리고 보리밥을 묽게 하여 식힌 다음 이 메주가루와, 고춧가루, 소금, 무를 썰어 한나절 정도 응달에서 말린 것과 절임 고춧잎, 무청, 고추 등을 넣는다. 이때 묽은 정도에 따라 농도가 묽으면 소금으로 간을 하고 되면 간장(청장)으로 간을 하여야 한다.

여흥 민씨 가문의 깻묵장 만드는 방법

다음으로 장고추장 만드는 방법이다.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지만 여흥민가의 또 하나 자랑할 만한 음식은 장고추장이다. 이 장고추장으로 음식을 하면 깊은 맛을 내는데 이는 집안의 비법이라고 할 수 있다.

만장고추장은 전통간장에 구멍 떡(장떡)을 익힌다. 다 익으면 둥둥 뜨게 되는데 그러면 건져서 치댄(으깨고)다음 고춧가루, 메주가루, 식혜로 만든 조청을 잘 섞고 간장으로 간을 맞추어 발효시킨다.

여흥민가의 자랑 깻묵장은 설 지나고 햇 장이 만들어지기 전 봄철에 담가먹는 별미장이다. 메주를 두어 덩이 남겨 두었다가 겨우내 잘 발효되었던 동치미 국물을 끓여 식힌 후 메주와 깻묵을 함께 넣고 담가서 보름 만에 먹는 장이다. 장이 익으면 깻묵은 건져내고 장과 메주를 한데 섞어 버무려 파, 마늘 등을 송송 썰어 넣고, 참기름, 깨소금을 듬뿍 넣어 양념하여 먹는다.

여흥 민씨 집안의 독특한 명가 음식은 ‘진석화 젓’이다. 천연 굴을 ‘석화’라 한다. 영양이 매우 풍부한 식품인데, ‘진석화 젓’을 담글 때는 신선한 석화를 준비한다. 화순의 여흥민가는 내륙이므로 고흥에서 많이 나는 굴을 구하다보니 진석화 젓을 귀히 여겨 자랑할 만한 음식이 되었다. 10~15°c의 온도에서 6개월가량 삭혀야 곰삭아 감칠맛이 나는 진석화 젓이 된다. 고흥(특히 두원) 석화는 알이 굵어 석화를 진간장에 담가서 1년이 지나면 고약처럼 찐득하게 된다. 진석화 젓을 안주로 먹으면 술의 향취와 석화젓의 새콤한 맛이 아주 조화롭다.

만드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간장은 집에서 담근 해묵은 집간장으로 하며 간장이 짤 경우에는 끓일 때 물을 넣어 염도를 낮춘다. 염도가 약하면 석화가 녹아버리고 강하면 짜다. 20일 가량 지나면 간장을 따라내 솥에 붓고 충분히 끓이는데 처음 부은 간장의 양이 끓인 뒤에도 그대로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유약을 바르지 않는 입 구멍이 좁은 항아리가 공기와의 접촉이 적어 좋다.

남도 음식에도 온고지신과 법고창신의 정신을

이밖에도 자랑하고 싶은 남도음식이 너무 많다. 닭장 떡국, 매생이 탕, 한정식, 키조개 삼합, 우족탕, 애저찜, 떡갈비, 함평과 장흥의 한우 비빔밥 등등 일일이 다 열거할 수 없이 다양한 남도의 음식이 즐비하다. 이런 전통을 제대로 알고 나서 현대적인 감각을 섞어서 창조적인 요리를 한다면 온고지신(溫故知新)이나 법고창신(法古創新)의 정신이 아닐 수 없다.

대동문화 77호 [2013 7,8월호]

민경숙 선유(仙有) 음식 연구소장  webmaster@chkorea.news

<저작권자 © 채널코리아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