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추가 지났다고는 하지만, 폭염은 잦아들지 않고 전력 비상주의보가 연일 매스컴을 통해 전해지던 8월 어느 날. 9대째 가업을 잇고 있는 옹기장인 이학수(61) 공방을 찾았다. 그는 아침부터 시작한 항아리에 근개질을 하는 중이었다. 그런데 항아리 안에는 구멍이 숭숭 뚫린 깡통에 담긴 숯불이 이글거리고 항아리 주변에서는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이 더위에 무슨 숯불인가 싶었다.

“큰 그릇을 할 때는 무너져 내리니까 밑에는 말리면서 해야 해요. 더워서 에어컨을 켜도 숯불 때문에 소용없어요.”

발로는 연신 물레를 돌리면서 도개를 잡은 왼손은 항아리 안쪽에서, 수레를 잡은 오른손은 항아리 바깥쪽에서 손바닥을 마주치듯 안팎을 맞춰 그릇 벽을 고루 두들겼다.

공방을 돌아보니 흙일을 하는 작업장 같지 않게 티끌 하나 없이 정리 정돈이 잘 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흙일을 하면서도 그의 옷에는 흙이 묻어 있지 않다. 그런 그의 모습에 더러는 오해를 하기도 한다.

그의 옹기는 모두 시(詩)이다

작업도 못하면서 아버지(이옥동/중요무형문화재 제96호 옹기장) 후광으로 인간문화재나 되려는 게 아닌가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가 자신의 모습과 공방을 이렇듯 단정하고 깨끗하게 하는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옹기에 대한 일반인의 인식 변화와 이 일을 배우려 하는 후배들에게 희망을 주고자 함이다.

“지금은 옹기에 대한 인식이 좋아지고 있지만 예전에는 옹기 작업은 대접을 받는 일은 아니었죠. 더군다나 경제적으로도 풍족한 삶을 유지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옹기를 만드는 사람 스스로가 자신을 잘 관리하고 주변을 깨끗하게 하여 뭔가 교육적인 면모를 보여주면 돈도 벌고 예술적인 성취도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다산 선생이 강진 유배 초기 머물렀다는 사의재(四宜齋)가 생각난다.

다산 선생은 생각과 용모와 언어와 행동, 이 네 가지를 바로 하여 자신을 경계하였다. 이학수 씨도 정갈하고 공간과 몸을 바탕 삼아 자연을 빚어내고자 늘 자신을 경계한다고 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맵시 좋은 항아리가 완성되었다. 이곳에 쌀을 담으면 쌀항아리가 되고 된장을 담으면 된장항아리가, 또 효소를 담으면 효소항아리가 된다. 무엇이든 거부하지 않고 담는 대로 그것을 품어주는 모양새가 어머니의 품이라고나 할까. 그의 항아리는 선이 아름답고 단아하다. 그런 그의 항아리에 소설가 한승원 씨는 이렇게 말한다.

“이학수 씨의 옹기는 모두 다 시(詩)다.”

자연으로 돌아가 가업을 잇겠습니다

이학수 씨는 미력옹기(보성군 미력면 도개리) 주인장이다. 그가 옹기의 길로 접어든 것은 1976년부터다. 그의 아버지 이옥동 옹(1911~1994)은 강진에서 옹기를 만들다 1950년대 보성군 미륵면 도개리 현재의 미력옹기가 자리 잡은 곳으로 이주를 하였다. 그의 집안에서 언제부터 옹기를 만들었는지 정확한 기록은 없지만 300여년 전부터 옹기를 만들어왔다고 들었다. 아버지는 4형제 중 맏이였는데 4형제가 모두 옹기를 빚었다. 그중 아버지와 작은아버지(이래원)가 옹기장 인간문화재이다.

그도 어렸을 때부터 옹기 만드는 것을 자연스럽게 접했지만 아버지는 그에게 흙일을 시키지 않았다. 어머니도 아들과 외출을 하다 누군가 아들에게 “아버지는 뭐하시냐?”라고 물어 그가 “옹기를 만든다.”라고 대답을 할라치면 얼른 그의 입을 손으로 틀어막았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뿐만 아니다. 관공서에 근무하는 사람들이 공방을 방문할 때면 으레 돈을 주지 않고 옹기를 가져가는 것을 보고 몹시 불만스러웠다고 한다.

부친은 아무리 가업이라고는 하지만 독자(1남 1녀)인 그에게만은 이 일을 물러주지 싶지 않았다. 하여 보성에서 중학교를 마친 그를 인천으로 시집 간 딸에게 보내 그곳에서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다니게 했다. 아버지의 바람대로 그는 중앙대학교 국문과에 진학했고 문학을 하면서 학교 선생으로서의 삶을 꿈꾸었다.

그러나 그가 대학 생활을 시작하던 1974년은 유신으로 인하여 대학생들의 갈등과 고민은 깊었고 그 또한 그것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 학생운동에 참여한 그는 그로 인해 골병이 들만큼 몸과 마음이 진창이 되었다. 어떻게 사는 게 옳은 것인지 회의가 들었다. 그때 그는 루소의‘자연으로 돌아가라’라는 말을 떠올랐다. 자신의 힘으로는 어찌해볼 수 없었던 현실을 이기는 것은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는 자퇴를 하고 훌훌 고향으로 돌아와 가업을 잇겠다고 선언하고 만다.

“흙은 거짓말을 못해요. 흙 앞에만 앉으면 내가 야비한 사람 같아요. 입만 열면 거짓말이 시시때때로 나오는 내 자신을 보면서 ‘아, 조금 더 정직하자. 조금 더 깨끗하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죠.”

아버지는 결코 그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아버지의 반대는 1년여 계속 되었다. 그러나 자식을 이기는 부모 없더라고 1976년부터 그에게 옹기 만드는 법을 전수해주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작한 그의 옹기 인생은 1990년 아버지와 작은아버지가 인간문화재로 지정된 후부터는 옹기장 전수자(1990) - 이수자(1994) - 전수교육 보조자(1996)로서 이어지고 있다.

1990년부터는 ‘미력 옹기’라는 브랜드를 붙여 옹기 시장에 선을 보인 ‘미력 옹기’는 전통적인 방법으로 제작되어 ‘미력 옹기= 숨 쉬는 항아리’라는 인식이 높아지면서 한국 옹기의 대표적인 브랜드로 자리잡아갔다.

“미력 옹기의 시장 점유율은 2~3% 정도 될 것입니다. 그런데 인지도는 50%가 넘는 것 같아요. 그만큼 미력 옹기의 브랜드 가치가 높다는 뜻이죠.”

민화를 그리는 아내 이화영

이학수 씨의 아내 이화영(59) 씨는 민화 작가다. 그러나 그는 옹기장 이수자로 시아버지로부터 옹기 만드는 법을 전수 받아 남편과 함께 ‘미력 옹기’를 이끌어가고 있다. 처녀 시절, 장성에서 교직 생활을 하던 그녀는 신문에 게재된 이학수 씨의 시를 보고 그를 찾아갔다.

“저는 그의 시를 보고 40대 중반쯤 되는 아저씨인 줄 알았어요. 옹기를 빗으면서 문학을 한다고 하는데 그런 삶을 저도 살고 싶었거든요. 그래서 어떻게 하면 그런 삶을 살 수 있는지 그분에게 여쭙고 싶었어요. 내 삶의 스승을 찾아간 것이 남편을 만나게 되었죠.”

그때 그녀의 나이 22살. 두 살 터울이던 그들은 추구하는 바가 비슷했다. 만난 지 6개월 만에 결혼을 했다.

“친정 아버지가 그랬어요. 지금은 옹기가 사양길이지만 언젠가는 빛을 볼 것이다. 네가 그곳으로 시집을 갔으니 옹기를 붙잡고 꼭 배우도록 해라.”

그러나 시아버지는 그녀가 물레 작업장에 앉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둘의 이상은 높았으나 경제적인 어려움을 이겨낼 수가 없었다. 아파트가 대중화되고 플라스틱과 유리 제품이 주방을 차지하면서 옹기를 찾는 이가 뚝 떨어졌기 때문이다. 이씨 부부는 생계를 해결하기 위해 1984년 보성읍에 안경점을 차려서 낮에는 안경점에서, 아침과 저녁에는 옹기를 빚었다. 그 와중에도 이학수 씨는 단국대 대학원에서 도예를, 이화영 씨는 삼육대학원에서 시각 디자인을 공부했다.

이학수 씨는 전승공예대전에서 특별상과 대한민국 도예 대전에서 대상을 수상하면서 옹기 장인으로서 자신을 곧추 세워나가면서 남도대학과 호남대학교 대학원에서 10년 동안 후학을 가르쳤다. 이화영 씨는 민화에 입문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대한민국 문화미술대전 대상뿐만 아니라 각종 미술대전에서 특선, 입선을 하면서 두각을 나타났다. 그녀는 인간의 생애를 담은 ‘생애도’를 10개의 화폭에 옮기는 작업 중이다. 뿐만 아니라 ‘십장생’을 비롯한 자연의 풍경을 10개 작품으로 만들 계획인데 작품 당 크기가 100호를 넘는다.

“대작 시리즈를 기획해놓고 과연 내가 이것을 완성할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을 때 남편이 큰 힘을 주었어요. 할 수 있다고….”

이씨 부부의 2남 1녀는 현재 목회자이지만 조만간 아버지의 뒤를 잇겠다는 뜻을 밝히고 있고 이씨 부부도 그들이 돌아올 것을 기쁨으로 기다리고 있다. 그리하여 이씨 부부는 그들의 꿈꾸었던 옹기 학교를 자녀들과 함께 꾸려갈 희망에 오늘도 물레질에, 붓끝에 힘이 솟는다.

대동문화 78호 [2013 9,10월호]

정명혜 남부대 언어치료청각학과 교수  webmaster@chkorea.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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