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년 동안 어느 기자가 쓴 칼럼을 문발 사이로 훔쳐보듯 즐겨봤다. 나름 팬들도 많다. 사람들은 자기가 하고 싶은 말들을 대신해 주는 그 칼럼 속에서 울고 웃고 외쳐댔다. 문발에 가려진 세상은 은밀하면서 아름답고 아팠던 일들이 무성했다. 그 너머로 훔쳐본 필자의 눈은 하루하루 흔들렸고, 그의 언어와 마주치지 않기를 원했다. 칼럼을 쓰는 동안 그는 무엇을 봤을까?

그가 마지막으로 쓴 글은 이러했다. <쓰는 동안 쫓아다녔던 것이 무지개가 아닌가, 혹은 ‘헛것’들이 아니었나 싶은 생각이 지금 든다. 그러나 오래 생각해 보니 세상은, 사람은 헛것인 무지개를 잡기 위해 늘 하늘을 부유하고 있었다. 배후 같은 것은 처음부터 없었다.>

짧지만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 문장들이었다. ‘어떤 일의 드러나지 않는 이면’ 같은 것, 필자가 가끔 농담으로 던지던 ‘달의 뒷면’ 같은 세상을 본 것일까? 그렇다면 그의 눈앞에 가늘게 쪼갠 대나무를 촘촘히 엮어 밀도 높은 발을 만들어 걸어두고 싶다.

발은 가리개다. 햇볕 가림이 일차적인 목적이지만, 외부의 시선으로부터 공간을 보호하려는 뜻이 더 요긴했다. 안방처럼 사적인 공간에서 문을 연 채로 외부인의 시선을 차단하는 데는 가리개만한 물건이 달리 없다.

비밀스럽지 않으나 그렇다고 공개적으로 드러내고 싶지도 않은 내밀한 사적 공간, 그것도 의습을 제대로 갖추어 입을 수 없는 무더운 여름철에 발은 필수적이었다. 또한 실내에서는 남녀유별의 오랜 관습을 돕는 기능을 하기에 매우 유효한 물건이기도 했다. 널리 알려진 수렴첨정이라는 말이 상징하듯이, 왕실과 같은 내명부의 여성은 실내에서 대신을 접견할 때도 발을 늘어뜨려 시선을 비꼈다.

죽렴, 상품이 아니라 작품

박성춘, 그가 엮어낸 발에는 대나무 본연의 결이 고스란히 살아 있다. 3대째 죽렴을 만들어온 전남 담양의 이름난 장인이다. 전남 담양은 유달리 단단한 대나무가 남도 고유의 장인정신과 만나 풍성한 죽공예문화를 꽃피운 고장이다. 그는 담양 죽공예문화의 주요 품목인 ‘대나무로 만든 발’을 3대째 만들어온 토박이다.

오래 전부터 그의 솜씨는 남달랐다. 어린 시절부터 대나무를 만져온 그의 흉터투성인 손은 부러질망정 휘어지지 않는다는 대쪽에서 무명실 굵기 만큼의 가느다란 잔살을 뽑아낸다. 이 잔살들을 명주실로 엮여 완성된 죽렴에는 기계로 만들었다면 결코 남아 있을 수 없는 대나무의 마디와 결, 그 색깔까지 고스란히 살아있다. 자연미와 인공미, 그리고 실용성의 절묘한 어우러짐이다.

그는 거북무늬가 새겨진 죽렴(구문렴)으로 전승공예대전에서 몇 번 입상을 한 적이 있다. 전라남도 지방문화재로 지정되기도 했다. 평생을 바쳐온 장인으로서의 삶에 대한 조그마한 보상을 받은 셈이다. 그 명성을 이용해 평생 짊어지고 온 가난에서 벗어날 길을 찾아봄직도 하련만 고집스럽고 독선적이기까지 한 우리 시대의 장인들이 다 그렇듯 밥 굶지 않고 자식 교육 시킨 것만으로 만족한다. 오늘도 한여름의 땡볕 아래 진한 땀을 흘리고 있다. 그가 만들려고 하는 것은 상품이 아니라 작품인 까닭이다

궁중용 발을 대표하는 ‘구문발’

<담양 죽렴장>을 보면 지천에 대나무를 두었으니 담양은 죽렴의 전통을 잇기가 다른 어떤 지역보다 상대적으로 유리했다고 기록 되어있다. 또한 국내에 전통 발을 제작하는 기능을 가진 장인은 통영의 조대용과 박성춘 두 명뿐이다. 박성춘은 궁중용 구문발을 부친을 이어 평생 제작해 왔으며, 기술 수준 또한 정상급이다. 발을 엮어가는 솜씨가 빠르고 능숙할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 전체의 제작과정을 전통적인 방법으로 충실하게 구현한다.

“발을 만드는 데 쓰는 주재료는 갈대와 대나무였습니다. 전통사회에서 일반인들은 구하기 쉽고 제작하기도 용이한 갈대를 많이 썼고, 궁중이나 사대부가에서는 가늘게 쪼갠 대나무를 촘촘히 엮어 밀도 높은 발을 만들어 걸었어요. 한 때 조선의 궁중에서 갈대발을 쓴 기록이 있으나 지체 높은 집에서는 죽렴, 즉 대나무를 주로 썼지요”

대나무 발을 제작하는 과정 자체는 그다지 복잡하지 않다. 발틀에 날주을 걸어 가늘게 쪼갠 대오리를 씨줄 삼아 엮어나가면 된다. 그러나 궁중에서 쓰던 발은 민간의 그것과 달리 기술적으로 정교한 솜씨를 요한다. 문양으로 은은한 구문을 놓아 일정한 격조를 갖춰야 했기 때문에 국가에 속한 능숙하고 경륜이 높은 장인만이 제작했다. 경국대전(經國大典) 공전 경공장에 소속된 염장(薕匠)이 그 역할을 담당했다.

조름질처럼 삶을 살다

죽렴을 제작하는 과정에서 핵심 공정은 단연 대오리를 균일하게 뽑아내는 조름질 이다. 조름질은 조름틀 철판에 뚫린 구멍에 대오리를 끼워 점차 옮겨가며 원하는 굵기로 훑어내는 것이다. 이 때 관건은 대오리를 뽑아내는 과정에서의 힘을 어떻게 조절하느냐에 달려있다. 힘 조절에 실패하면 자칫 대오리가 끊기는 일이 발생한다. 그의 삶도 힘 조절이 필요했다.

“돈 벌어서 이이들 가르쳤던 거 하나 하고, 종묘의 세계문화유산을 내가 다시 복원 할 수 있었다는 것이 큰 기쁨이 됐어요.” 몇 백 년 가더라도 이름은 남을 것이다

“전성기 때 이후로는 이거 해서 먹고 살지는 못해요. 다들 안한다고 해요. 애들 키우면서 사람 만들겠다는 심정으로 했어요.” 다행히 아이들이 잘 커줬다. 잘 나가던 큰 아들이 사고로 고생하고 있지만 그 고통을 이겨내는 것도 문발을 엮으면서 참선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서 50년 세월이 훌쩍 넘었다.

“지금 하는 것도 감각으로 해요. 굵고 가늘고 둥글고 모가 나면 안 됩니다. 모두 가늠으로 해야 하는 작업이라 시간이 지나면 감각이 둔해집니다. 수 십 년을 하니 이 정도가 된 거죠. 옛날에는 전기도 없었잖아요. 그때는 석유도 사지 못해서 달밤에 다 쪼갰어요. 능숙하니 손에 박혀서 가능한 일이지 큰 작업은 엄두도 못내요. 그래서 전수자가 없는 것이 더욱 안타까운 일이죠.” 말을 하는 그의 얼굴에 진한 아쉬움이 내려앉는다.

사는 인생사가 그렇다. 욕심 부리면 될 일도 잘 풀리지 않는다. 무던히 가는 사람만이 오래 걸을 수 있다. 대나무에서 시작된 그의 길은 여전히 대나무 위를 흐르고 있다.

대동문화 78호 [2013 9,10월호]

한경숙 기자  -081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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