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상호 필장은 붓을 통해 인생을 배웠다

뜯고 쪼개고...붓을 사용한 그 사람 마음에 들어 할 때까지

붓글씨는 모든 것을 담는다. 붓글씨는 그 자체로 하나의 세계다. 붓글씨는 반드시 네 개의 친구가 만나야만 완성된다. 문방사우(文房四友)라 했다. 붓과 먹, 벼루와 종이가 필수적이다.

붓의 재료는 오래 전부터 양털과 노루털, 염소털이 가장 많이 사용했다. 하지만 호사가들은 쥐 수염으로 만든 ‘서수필’도 썼다. 크기도 다양하다. 쌀 한말의 무게를 지탱하는 이른바 提斗筆(제두필)이 있는가 하면 쌀 한 알에 수백 자를 쓸 수 있다는 초명(蟭螟)붓도 있다. 초명은 모기눈썹에 모여 사는 작은 벌레 이름이다.

붓의 크기도 다양하다. 짐승의 털을 추려서 모아 원추형으로 만들어 죽관(竹管) 또는 목축(木軸)에 고정시킨 것이 붓이다. 호(毫)의 끝을 봉(鋒), 호의 끝부분 반을 전호(前毫), 그 필두(筆頭)까지의 짧은 털은 부호(副毫)라 한다. 털로 된 모필 이외에도 죽필(竹筆)·고필(藁筆)·갈필(葛筆) 등 특수한 것이 많다.

비만 오면 질척이는 백운동에서 유래, <진들이 붓>

광주 백운동일대를 진다리라고 부르던 시절이 있었다. 80년대까지만 해도 진다리 붓이라면 서울에서도 구입해 갈 정도로 꽤 유명했다. 백운동에서 생산되는 붓은 <진들이 붓>으로 불렸다. 역사를 살펴보자면 이렇다. 당시 백운동 일대는 토질이 진흙이여서 비만 오면 질척이는 진흙탕 길이 되었다. 먼저 진흙길에서 유래돼 <진들이 붓>으로 불렸다. 그러다가 봉선동과 주월동에서 내려오는 시냇물이 만나는 곳에 벽도교 <진다리>라는 다리가 있어 그 명칭을 가져와 60년대 말부터 <진다리 붓>으로 부르게 됐다.

문상호, 그는 진다리(백운동)에서 40년을 넘게 살았다. 스승이었던 박순, 최유일의 기능을 이어 붓을 만들어온 세월이 그의 일생이었다. 국내에서 처음으로 특수한 죽필(竹筆)·고필(藁筆)을 제조에 성공한 장인이 바로 그 사람, 문상호다.

“죽필은 탄력이 강한 만큼 필자가 원하는 대로 필치를 발휘할 수 있어요. 그리고 잘 써져요. 일반 붓과 수입 죽필에 비해 가격이 최고 3배나 비싼 게 단점이지만 한 번 써본 사람은 죽필만 찾더라고요.”

내 뒤에 서줄 사람 누구 없소!

그의 작업실에 들면 언제나 소리가 들린다. 찌지직 찌지직…. 알코올램프의 불꽃에 대나무가 타는 소리다. 장인의 손놀림이 자유롭다. 죽필 한 자루 만드는 데 꼬박 하루가 걸린다. 반드시 1년생 대나무를 골라 강하지도 약하지도 않게 섬유질을 뽑는다. 모든 공정을 수작업으로 이루어진다. 붓 한 자루 만드는 데는 아흔아홉 번의 손길이 닿아야 한다. 아이 다루듯 정성을 다하지 않으면 털이 쉬 따지고 먹도 잘 먹지 않아 보잘 것 없는 붓이 된다.

평생 붓을 만들었지만 붓으로 인해 그는 고민이 깊다. 붓 제작만으로는 생계가 어렵다. 배우려는 사람이 없어 걱정이 크다. “60년대 초부터 백운동 붓은 호황기를 누렸어요. 박정희 대통령이 정책 사업으로 붓글씨를 장려하면서 전국 붓 생산량이 늘어났어요. 칠팔십 년대까지 백운동 붓은 지속적으로 호황기를 누려 전국의 상인들이 선금을 싸들고 와서 만들어 주라고 줄을 섰어요. 그땐 진다리 동네에 사는 사람들은 맥주를 쉽게 사먹을 만큼 꽤나 재미도 봤어요.”

그 시절 맥주는 귀한 술이었다. 값이 비싸서 쉽게 먹을 수 없었다. 유일하게 맥주 맛을 보던 사람들이 붓을 만드는 그들이었다. 돌아보면 정말 그리운 시절이다.

“값싼 중국산 붓이 우리 전통 붓의 명맥을 아주 끊어놓기 전에 기능을 전승할 제자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어요. 13만 원정도 지원이 된다요. 시대가 달라졌는디 누가 적은 돈 받고 하려고 하겠어요. 안타까워요.” 지금은 붓을 찾는 사람도 붓을 만드는 사람도 거의 없다. 이제 전통 붓을 만드는 사람이 광주에서는 그를 포함해 5명뿐이다.

일생의 꿈 무형문화재 “이루고 나니 허전해”

평생을 걸고 걸어온 길에 후회는 없다. 2005년에는 오랫동안 바랐던 예향 광주의 필방 맥을 잇는 무형문화재가 되었다.

“무형문화재 서류 내놓고 딱 10년 걸렸어요. 막상 되고 나니 허무하더라고요. 이것이 희망인데 이루고 나니 맥이 빠졌어요. 목표가 없어졌잖아요. 요런 것은 마음대로 되는 일도 아니고, 일력으로 되는 일도 아니니 세상 부러울 것이 없다고 생각했는디, 그것도 아닙디다.”

목표를 이루면 또 다른 희망이 생기기 마련인 법, 그에게도 다시 도전하는 것이 생겼다. 중형문화재가 되는 것이다. 다른 것이 좋아 보여서가 아니라 비워진 가슴을 채우기 위함이 크다.

그는 좁은 공간에서 같은 일을 반복하는 삶을 스스로 택했다. 답답했던 시간도 있었다. 스스로 갇혀서 자신만 보았던 시간이 가끔은 부끄럽다.“나 같이 한 공간에서 오래 일한 사람은 마음에 여유가 없어요. 자신이 최고인줄 알아요. 두 번째라하믄 서운할 정도로 아집이 강해요. 나가서 보니 잘못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어요.” 남을 생각할 시간도 여유도 없었던 시절이었다. 붓을 구입하러 온 사람들이 단지 싸게 구입하려고만 해서 구진소리만 하고 간다고 생각했다.

“사람들이 붓이 잘못 만들어 졌다고 하면 그렇게 마음이 언짢아요. 근디 그것이 아니었어요. 사람들이 한 말들을 새겨 들었으믄 더 일찍 붓의 깊이를 알아 차렸을 것인디, 생각하면 마음이 아파요.”

그는 이제 붓을 사러온 손님들이 쓰다가 이상이 있으면 언제든지 다시 가져오라 한다. 기꺼이 교환해주겠다는 말이다. 단 조건이 하나 있다. 어디가 잘못 되었는지 정확하게 설명해야 한다. 그는 설명들을 꼼꼼히 받아 적고 다시 그 붓에 대한 분석을 진행한다. 뜯고 쪼개고 책을 펼친다. 붓을 사용한 그 사람 마음에 들어 할 때까지 그 고단한 작업을 반복한다. 부족했던 많은 것들을 얻었다. 그리고 사람들과 소통하는 방법도 알았다.

붓을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배우다

그에게 정말 고마운 사람이 있다. “실질적으로 서울 대신당 할아버지께 제대로 배웠어요. 밀양에서 붓을 만들다 서울로 올라와 서울에서 제일 큰 필방에서 일한 분이에요. 남들이 하지 않는 지적도 많이 해주고, 붓을 구입 할 때는 항상 테스트를 해보고 샀어요. 여러 개 중 하나라도 불량품이 나오면 두말할 것 없이 다시 내려 보냈어요. 서운하게 생각은 하지 않는 게 당연해요. 스승과 같은 분이세요.”

그는 대신당 할아버지께 많은 지적을 받고 붓에 대한 연구를 깊이하게 됐다.

“95년부터 3년간 한국문화보호재단에서 경복궁에 12공방을 만들어 다른 전공 사람들과 모여 같이 작업하게 되었어요. 그때 공부도 많이 하고, 많은 생각들을 했어요. 문화재 관련된 사람들이 모이다보니 많이 듣게 되고 전통에 대해서 쉽게 공부할 수 있는 기회더라고요. 글씨 쓰는 선생님들을 찾아가 붓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했을 때고요. 참 좋았어요.”

그가 만난 붓을 사용한 사람들은 붓을 만드는 사람보다 붓에 대한 지식이 더 많았다. 오기가 생겼다. 그들보다 더 많은 노력을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일본을 다녀온 다음에는 우리 전통에 대한 깊이도 함께 느꼈다. 그래서 우리나라 전통 붓에 대한 연구도 많이 하게 되었다.

“기업청에서 초청받아 일본을 갔어요. 거기서 놀란 게 정오 12시가 되믄 넓은 전시장 안이 따뿍 차가꼬 발디들 틈이 없어요. 우리지역은 평일에는 사람들이 별로 없잖아요. 문화 차이가 난다는 것이 참 별라 보입디다.” 그는 일본사람들의 친절함과 신뢰와 성실함은 배워야 한다고 말한다. 나라마다 색이 있다. 하지만 붓 제작만큼은 일본과 중국보다 앞설 수 있다는, 아니 이미 앞서 나가고 있다는 확신이 마음속에 가득하다.

문의: 광주 광역시 남구 백운동 631-8번지 (062-652-2106)

[대동문화 69호, 2012년 3.4월호]

한경숙 기자  webmaster@chkorea.news

<저작권자 © 채널코리아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