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규방 문화 중 하나는 한지 공예(종이 공예)이다. 민간에서 발달한 실내 문화이다. 한지로 일상생활의 소도구를 만들거나 사용하면서 형성된 종이 공예는 가정용 소품 공예였다고 한다. 종이 한 장도 버리지 않고 소중히 여겨 되풀이 사용하던 선조들의 생활 정신과 검소한 마음을 담고 있다.

종이 공예품은 각종 상자를 비롯해 지도, 종이꽃, 지승 용기 등으로 다양하다. 중국 후한 말인 105년에 채윤이 처음으로 종이를 만들어 사용했고, 우리나라에 전해진 것은 그로부터 100년 후인 삼국 시대였다. 통일신라시대의 불경책이 오늘날까지 전해지는 것으로 미루어 그 시대의 종이 질이 상당히 좋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

당시의 종이는 아주 두껍고 닥나무의 섬유질 외에도 비단 섬유를 재료로 사용했다. 비단 섬유는 종이를 강하게 하기 위해 섞어 사용한 것으로 추측된다. 중국에서는 한지를 조선지 또는 고려지라 불렀는데, 기록에는 대개 고려지로 표기되어 있다. 고려지 중에서도 특히 옥색 취지, 비단 종이, 도련이 매끄러운 백수지 등이 높이 평가 되었다

조선 시대에는 닥나무로 만든 한지를 구하기 어려웠는데, 질 좋은 한지는 대부분 중국으로 수출해 귀했던 탓이다. 그래서 종이를 함부로 낭비하지 말도록 했고, 버드나무나 마 줄기를 섞어서 만든 잡추지 같은 허술한 것을 사용했다.

닥나무가 한지 원료로 사용된 것은 우리나라에 종이가 처음 전해졌을 때부터로 보인다. 처음에는 뽕나무 껍질 같은 것도 같이 사용된 듯하지만 흐물거려 닥나무가 종이 원료로 쓰였다. 닥나무는 호남 지방에 먼저 전해져 많은 양이 재배 되었다. 한지의 대명사라 할 수 이는 전주 한지가 생겨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종이로 맘 가는 대로 노는 사람

올해 처음 시행한 ‘광주광역시 공예 명장’ 으로 임명된 오석심, 그의 타고난 손길은 계절과 상관없이 바쁘다. 깊이 들어가면 더 신묘한 매력을 느낄 수 있는 것이 한지 공예이기 때문이다.

“백 번 손길에서 나오는 것이 종이라고 해요. 그 종이로 우리는 작업을 합니다. 그 과정은 쉽지 않아요. 귀한 작업이기도 해요. 손이 쉼 없이 움직이는 여러 과정을 거쳐 하나의 작품이 나옵니다. 다행스럽게도 다른 공예와 달리 결국 내가 원하는 대로 완성 됩니다. 종이공예에 또 다른 매력이기도 하지요.”

한지를 만지는 순간에 밀려드는 감정은 엄마의 품처럼 따스하다. 포근함도 느껴진다. 세계적으로 알아주는 한지. 언제든지 이게 아니다 싶으면 다시 새롭게 할 수 있는 재료여서 부담스럽지 않다.

“최근은 폐지를 이용해 조형물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물고기 시리즈와 2013 플라워 시리즈 꽃 형태의 평면작업을 하고 있어요. 한곳이 아니라 여러 장르를 넘나들면서 작업을 하죠.”

오석심, 그가 여러 장르를 넘나들며 작업을 하는 이유가 있다. 하나의 기법으로만 하다보면 기능이 정채 되는 탓이다. 그래서 생각이 움직이는 대로 종이로 구현을 한다. 일이라고 생각하면 못할 일이다. 그는 다만 종이라는 재료로 맘 가는 대로 노는 것이다.

“저는 전승자가 아니라 종이로 작업하는 공예가입니다. 하나의 소재를 선택했으면 어떠한 방법으로든지 정말 자유자제로 놀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제 작품 주제는 물론이고 재료와 구성이 각양각색 다르게 표현 됩니다.”

집념이 피어낸 혼자만의 길

그는 전통에서 현대의 방식까지 작가로서 참여하는 곳도 다양하다. 그래서일까? 그의 작품 속에는 손이 지나간 무수한 시간들이 누워있다.

“작품을 발표하면 모른 사람들은 종이 작품이라 생각을 못해요. 도자기냐,는 질문을 많이 받아요. 만져보고 들어보고 난 후 깜짝 놀라 종이공예의 매력에 흠뻑 빠져듭니다.” 그가 한지와 처음 인연을 맺었을 때처럼 사람들도 그의 작품에 무엇엔가 홀린 듯 이끌린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학동에 있던 한지 공장에 놀러갔어요. 그냥 한지라는 넓은 강에 빠져버린 것 같아요. 한지에 매료돼 혼자서 미술책이나 백과사전 등을 뒤졌어요. 그런데 한지공예에 대한 전문적인 내용은 어디에도 하나 없었습니다. 그래서 전문지식 없이 나무상자에 한지로 색만 맞추는 작업을 했어요.”

그는 그저 직장생활을 하면서 재미삼아 혼자 한지공예를 했다. 1980년, 그에게 다시 기회가 찾아왔다. 전남도 여성회관에서 각종 수공예를 섭렵하게 되었고 이 기반으로 다시 한지를 만지게 되었다. 그 당시 광주 지역에서는 전문적으로 한지공예를 가르치는 곳이 없어 서울을 오가며 배웠다. 힘든 과정이었지만 새로운 것을 하나씩 만들어내는 것이 그에겐 삶의 기쁨이었다. 어릴 때부터 그는 집념이 강했다.

“스스로 공부하고 싶으면 하고, 말고 싶으면 마는 그런 시대였습니다. 그 시절부터 만드는 것에는 남다른 재주와 재능이 있었다고들 합니다. 다른 아이들보다 만드는 것에는 자신이 있었고 즐겨던 것 같아요. 다른 과목은 괜찮은데 미술만큼은 만점이 나오지 않으면 만점이 나올 때까지 과제를 해냈습니다. 그림을 좋아했고 만들기에 집착했던 어린 시절이 지금의 나로 이어진 것 같아요.”

‘내가 이걸 꼭 팔아야 돼’

형편이 좋지 않았다. 그는 미대를 가지 못하고 바로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마음 한 구석에서는 늘 무언가 만들고 싶은 욕구가 피어났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공예였다. 그의 한지공예 작품은 디자인이 독특하다. 늘 혼자 걸어온 그 길이 있었기에 그만의 독창적인 세계가 열렸다.

“공예를 하다 보니 부족한 부분을 채워야겠다는 생각을 늘 했어요. 그래서 박사과정까지 모두 마쳤던 겁니다. 가족들이 많이 도와줬어요. 벌고자 작업을 했던 것도 아닌데 취미가 경제적으로 도움이 되었던 터라 보람도 컸어요. 내가 좋아해서 하다 보니 팔기 위해 작업은 하지 않아요. 거의 주문 생산이 됩니다. 미리 작업 해놓고 파는 것은 거의 없습니다. 외국 전시 갔을 경우는 많이 팔고 오지만 그 다음 전시가 예약이 됐을 경우에는 아무리 고가인 작품도 판매를 하지 않습니다.”

사람이 살다보면 신세를 질 때가 있다. 간혹 누군가에게 제대로 된 선물을 하고 싶을 때 그는 작업을 한다. 그런데 작업을 하는 동안 갈등이 생기는 경우가 많다. 완성도가 높아지면 더욱 그렇다. 생각했던 것보다 작품이 잘 나오면 잠이 안 올 정도로 고민이 깊어진다.

“시작은 그랬지만 솔직히 실제로 선물을 한 경우는 별로 없어요. 작품을 만들다 보면 애착이 깊어지는 거예요. 쉽게 나오는 작품이 하나도 없으니 그냥 선물로 건네기가 힘들어요.”

내밀지 못한 선물은 결국 다시 그의 작업실로 돌아오게 된다. 작품에 대한 애착이 깊기에 그는 더욱 전문적인 지식을 쌓고 일단 시작하면 모든 신경을 작품 하나에만 집중시킨다. ‘내가 이것을 왜 하지’ 하는 생각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오히려 주문 받아서 상품이 팔려나갈 때 ‘내가 이걸 꼭 팔아야 돼’ 하는 갈등이 생긴다. 그는 숨을 쉬는 동안 갈등이 아닌 작업을 하고 싶다.

대동문화 79호 [2013 11,12월호]

한경숙 기자  webmaster@chkorea.news

<저작권자 © 채널코리아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