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주거 시스템에서는 공급자와 수요자 사이의 관계만이 설정되어 왔을 뿐 정부나 공적 기관의 에너지가 투여될 수 있는 여지가 적었다. 따라서 지나친 획일화와 표준화와 병행하여 공간의 질은 저하되어 갔으며, 이러한 현실에서 미래에 대한 대비를 한다는 것은 어려워 보인다. 그래서 지금 우리에게서는 테크놀로지에 기반을 둔 사이버 아파트 이상의 논의가 진전되지 않고 있다. 공간의 질에 대한 논의나 주거 문화에 대한 담론은 형성되지 못하고 있다.

해방 이후 우리나라는 격변기를 거쳐 왔다 해도 과언은 아니다. 경제 기준으로 보면 6.25 전쟁 후 200달러에서 현재 20,000달러를 넘어서서 100배의 경제 성장을 하여 오는 변혁의 시대를 우리는 동시대적으로 살고 있다.

가치관의 혼란은 건축 분야에서 더욱 혼란스러워진다. 우리나라의 급성장과 개발 시대를 거치는 동안 인구 성장과 도시화로 많은 건축이 필요했다. 그러나 고령화 사회로 진입하면서 개발과 건설이 곧 경제 활동이라는 등식의 관계는 끝나고, 개발이 되었지만 수요자의 변화에 따른 건축 시장의 침체 현상은 건축의 시장과 메커니즘의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민간 건축만이 아니라 공공 건축에서도 도시계획과 개발에서도 관련되어 있다.

대한한국은 아파트 공화국이다

먼저 한국의 아파트 주거 문화에 대해 생각해보자. 주택의 절반을 차지하는 아파트는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주거 형태로 우리나라 주거 문화의 상징이다.

1970년대 전체 주택수의 1.9%이던 아파트 비율은 1980년대를 기점으로 급격하게 증가하여 2000년대 들어 전체 주택수의 47.7% 차지하고 있다.

아파트 건설을 통한 주택의 대량 공급은 대규모 주거 단지를 조성하면서 국민들의 주거 문제를 단기간에 해결해버렸다. 1962년에 완공된 최초의 대단위 아파트인 ‘마포 아파트’를 시작으로 1972년 주택건설 촉진법 제정과 주택공급 정책에 따라 고층 고밀 공동주택이 일반화되었다.

2010년 기준 전국의 주택 보급률은 101.9%에 도달하였고 수도권은 99.0%로 선진국의 주택 보급률 수준에 근접했다. 전체 주택 건설에서 아파트 건설이 차지하는 비중은 1992년 81.6%에서 2009년 77.8%로 감소되었지만 아파트 건설은 우리나라 주택건설을 여전히 선도하고 있다. 2010년 기준 아파트수는 8,185,063호로 전체 주택 13,883,571호의 59.0% 수준이다.

1960년대 이후 빠르게 진행된 산업화와 도시화로 인한 핵가족화는 넓은 단독 주택보다 간편한 아파트 생활에 대한 선호를 촉발했다. 그리고 서구적 생활의 편리성으로 인한 아파트 문화의 보편화에 기여했다.

그때부터 우리나라에서 아파트는 주거 공간이자 높은 투자 가치를 가진 재산 증식 수단으로서의 2중적 성격을 지니게 되었다. 아파트는 도시 재개발이나 신도시 개발 등 대규모 주택 단지 조성 시 시세 차익을 얻을 수 있는 투자 대상이자 가격 상승으로 인한 재산 증식 수단으로 인식됨에 따라 아파트에 대한 투기적 수요 증가하게 되었다. 아파트는 ‘살 집(house of living)’이 아니라 ‘팔 집(house of sale)’이었던 셈이다.

동일한 형태의 주거 공간을 특징으로 하는 아파트는 거주민들의 생활 방식을 획일화하고 서열화한다. 신규로 개발되는 주거지의 대부분은 아파트 단지로서 토지의 고밀 이용에 따른 도시 경관의 획일화 초래 및 도시의 지역적 정체성을 상실하게 만들어버렸다.

고급 아파트 거주는 우리나라에서 중산층 이상이 되기 위한 일종의 자격증이 되어 버렸다. 아파트는 규모와 가격을 쉽게 비교할 수 있어 어느 지역의 어떤 아파트에 살고 있는지가 거주민의 사회적 신분 상징이 되어버렸다.

또 아파트 문화로 인한 공동체 의식의 약화가 큰 문제가 되고 있다. 아파트의 건축적, 공간적 특성에 따라 커뮤니티 의식이 변질되고 주민 공동의 외부 공간이 주동 배치에 의해 남겨진 공간으로 취급되고 단지의 폐쇄성으로 전통적 공동체 의식이 변질되어 버렸다.

아파트는 중산층의 자격증

그러나 부동산 경기 침체 및 주택 보급률 초과로 재산 증식 수단으로 아파트의 매력이 점진적으로 약화되고 단독 주택 시장이 확대되고 있다. 오피스텔, 도시형 생활주택 등의 수요 급증, 1인‧2인 가구, 노령 인구 등을 위한 소형 임대 아파트 등의 수요 증가 등에 대응하는 다양한 아파트 유형의 개발이 지속되고 있다.

주택 수요의 변화에 따른 민간의 자생적인 주택 유형의 개발 및 보급 증가와 민간의 새로운 주택 및 단지 개발이 시도되고 있다. 땅콩 주택, 외콩 주택, 동호인 주택, 도시형 타운 하우스 등이다.

또 주 5일제가 정착됨에 따라 여가의 중요성이 증대되어 여가 생활을 중시한 세컨드 하우스나 전원주택, 전원형 타운 하우스 등의 주택수요 증가가 시작되었다.

한편 도시 경관, 도시 디자인의 중요성이 날로 높아지고 있어 공공 부문은 다양한 주택 및 주거지 유형의 개발을 위한 정책 추진 중이다. 그래서 주택수요 변화를 반영하기 위한 새로운 택지 및 도시 개발 방안의 강구 및 제도개혁 추진이 지자체나 정부가 추진하는 주거 정책의 과제가 되고 있다.

새로운 주택유형의 보급은 민간이 주도적으로 담당하되 공공은 다양한 주택유형 개발을 위한 건축 설계 시장의 개선 및 지원책 강구, 건축 문화 진흥을

위한 교육, 홍보, 계도 정책의 민관 공동 병행 추진을 시도해야 한다.

한옥의 미래 정체성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

한편 사회변화와 함께 한옥이 전통주택으로서 한국인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중요한 역할을 미래에서도 담당할 수 있을 것인지 성찰해보아야 한다. 한옥은 한국의 전통주택으로서 한국인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중요한 문화 요소이지만 근대화 과정에서 상당 기간 동안 단절되었다.

그러나 1970년대 이후에 아파트 일변도 건설과 주거 생활에서 새로운 주거형을 원하는 사람들이 늘었으며, 한옥은 ‘건강주택’, ‘문화 자원’ 등 새로운 시각으로 재조명되었다.

그러나 한옥은 도시 지역에 건축되면서 토지 이용률을 높이는 주택 배치와 구성이 경제적인 주택 유형이라는 시대적인 흐름에는 부정적 평가를 받아왔다. 특히 경제 소득의 향상, 생활양식의 변화, 건축 공간의 확대, 새로운 주거 양식의 경험을 거치면서 한옥에 대한 요구 기준과 건축의 가능성도 동시에 높아졌다. 이에 따라 한옥의 현대적인 출현과 현대적 생활 기준에 부합되는 현대 한옥으로의 변신은 불가피하다.

전통한옥의 지속성과 현대적 모델 개발 시급

한옥이 현대주택으로서 거주자들에게 사랑받는 주택이려면 전통한옥의 문화적 건축적 특성 이외에 주택의 일반적인 요구 조건을 동시에 고민하지 않으면 안 된다. 현대에서 도시 주택은 토지 용적률을 높여서 토지의 경제성을 만족시켜주어야 하며, 이는 한옥도 예외가 아니다.

한옥은 그러한 경제적 논리 이외에도 기본적으로 한옥이 가지는 가장 독특한 특징으로서 문화적 특성이 있다. 한옥이 어떻게 변한다 하더라도 문화적 특징을 가지면서 경제성을 추구하는 지속가능성이 있어야 한다. 한옥으로서 집합 주택의 유형은 역사적인 관점에서도 그 가능성을 고찰할 수 있다.

이러한 특성을 고려하자면, 전통주택인 한옥이 나타나는 현상의 빈도나 통계적 수치가 주는 일반적인 현상으로서 의미가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시대 변화와 거주자의 잠재적 욕구가 어떻게 미래지향적으로 표출될 것인가는 충분히 전개되지 않는 부분에 대하여는 가능성과 분석을 통하여 예측 혹은 제안 시뮬레이션을 통하여 탐색하게 되는 특별한 고찰이 될 수도 있다.

한옥은 현재의 편리함과 미래지향적인 생활모습을 반영하는 현대적 생활이 가능하게 되는 주택을 원하는 소비자들의 욕구를 반영해야 한다. 그러한 면에서 한옥은 일반주택의 기능적 요구사항을 만족하고 동시에 한옥의 공간과 의장에 나타난 특성을 지키는 모델로서 개발, 모델 개발이 적극 시도되어야 한다.

향후 2020년경에는 주택 보급률이 100%가까이에 도달할 것이라 예상되는 이 시점에서 우리는 머지않은 미래에 어떻게 생활을 해나갈지에 관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요즘의 ‘마을 만들기’나 ‘살기 좋은 공동주택 만들기’, ‘행복 아파트 만들기’ 등의 논의가 시작되고 있다. 주거 문화에 대한 논의는 다양한 각도에서의 접근해 실험과 조사와 제도를 보완해 나가야 한다. 주거 건축은 바로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삶의 터전을 바꿔나가기 위한 생명 운동이자 철학이기 때문이다.

대동문화 79호 [2013 11,12월호]

손승광 교수 동신대학교 건축공학과 교수  webmaster@chkorea.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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