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박한 한국미 그려낸 대가

동그마니 그려진 달덩이 속에 들어앉은 한 마리 까치. 서양화가 장욱진이 즐겨 그리던 까치 그림이다. 장욱진은 현대 한국 화단에 자유로움의 흔적을 짙게 남긴 이로 이중섭, 김환기와 더불어 한국미술 근대화의 선구자로 꼽힌다. 해, 달, 가족, 동물, 까치 등 주변의 일상적인 소재를 어린아이처럼 단순하고 순수하게 표현했던 그는 작은 그림에 영원한 동심과 한국적 삶을 담아냈다.

화가의 고향은 충남 연기땅이다. 서울로 이사한 뒤 어려운 가정 형편으로 그림 그리는 일이 결코 환영받지 못했던 어린 시절. 환쟁이가 되면 뭘 먹고 살거냐는 꾸중을 들으면서도 발끝으로 그림을 그려댔다던가. 결국 사물의 내면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살근살근 표현해내던 그는 경성 제2고보, 양정고보를 거쳐 1939년(22세)에는 동경제국미술학교 유학생활을 거치면서 한 순간도 그림을 놓지 않았다.

그림은 일이고 술은 휴식이다

화가는 1948년 김환기, 유영국, 이규상 등과 신사실파 동인으로 활약하였고, 국립박물관 학예관(1945~1947), 서울대학교 교수(1954~1960)를 지내다가 사직한 이후로는 작품 활동에만 몰두했다. 학예관이든 대학 교수든 권위와 틀에 짜인 삶은 좀체 어울리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일까. 그는 늘 허허로움으로 삶을 채워나갔다. 기인 중의 기인 소리를 늘상 들었던 그는 평소에도 “그림은 일이고 술은 휴식이다. 나는 죽을 때까지 그림을 그리며 내 몸과 마음을 다 써버릴 것이다. 남는 시간에는 술을 마시고….” 라고 얘기할 정도로 술을 좋아했다. 한번 술을 마시기 시작하면 열흘이고 보름이고 계속해서 마셨다. 안주라고는 한 줌의 소금이 전부. 정말로 그는 1990년 73세로 생을 마칠 때까지 온 육신을 부려 그림만 그렸다.

장욱진의 그림은 50년대에는 평면적이고 단순한 화면 구성과 원색을 사용한 소박한 작품들이 많았고, 한국적인 풍광들이 더욱 가미되었다. 60년대 들어서는 그의 그림이 더욱 단순해져 몇 가닥의 선만으로 표현하는 그림들이 다수를 이루게 된다.

화가는 여러 차례 개인전을 열었으며, 1978년 분청사기에 그림을 그린 도화전을 열었고, 1983년 판화집을 냈다. 동화, 전설, 이웃 등 친근한 소재를 단순하면서도 대담한 구성으로 그려내었으며, 동양화적인 수법에 동양적 철학사상을 담아냈다는 평을 들었다. 주요작품으로는 <까치>(1958), <두 아이>(1973), <집>(1978), <가로수>(1978) 등이 있으며, 수필집으로 <강가의 아틀리에>(1976)가 있다.

장욱진은 문화관광부 지정 11월 ‘이달의 문화인물’로 선정되었다. 그를 기리는 많은 전시와 행사가 펼쳐지고 화가의 마지막 거처였던 용인의 한옥이 곧 새 단장을 하고 개관할 예정이다. 될 수 있는 한 꾸미지 않고, 과장되게 드러내지 않고, 그저 솔직하고 소박하게 우리 주변의 이야기들을 담아냈던 장욱진. 술 한 잔이 들어가면 늘 그가 읊어대던 말이 있다. “나는 심플하다.”

[대동문화 31호, 2004년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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