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감이란 게 있었다. 매우 탁월했다. 도대체 색을 가지고 무슨 짓을 한 걸까 하는 의문을 수없이 자아내게 했다. 소위 색채의 향연을 펼쳤다. 화가 김유미씨가 10년 전 했던 일이다. ‘회화 속 회화’란 테마로 색채를 통해 맘껏 색기를 내뿜었다. 색채 덩어리를 가지고 놀았던 이 화가는 8, 9년의 휴지기를 거쳐 다른 세계로 훌쩍 건너갔음을 확연히 보여준다.

물론 여전히 색감은 탁월하다. 그러나 달라졌다. 분명코 달라졌다. 예전에 색감 자체에 머물렀다면 이젠 공간적인 감각을 화면으로 끌어들였다. 그래서 미디어적인 분위기가 강하다. 실제로 그는 사진을 먼저 찍어 그 위에다 살짝 리터치를 가하고 형태를 늘어뜨려 오묘한 느낌을 화면에 구사한다. 타이틀은 ‘Impression’이다. 마을이나 도시라는 부제를 넣어 공간의 의미를 확 되살아나게 한다.

공간과 공간이 만나 또다른 공간을

공간이라, 공간은 그가 사랑하는 개념이다. 한창 그는 평면 회화를 그리는 작가로 작업을 했었다. 그러던 그가 어느 날 갑자기 평면을 간단히 뛰어넘어 공간작업에 피치를 올린다. 이른 바 공간 디자이너로서 인테리어와 리모델링을 하며 독특한 공간 해석으로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공간에 대해 남다른 애정과 관심을 쏟았다. 그렇게 오랫동안 공간을 부여잡고 살았다. 현재의 작업을 보면 예전에 공간을 가지고 놀았던 깜냥을 단박에 느끼게 해준다. 공간에 대한 남다른 감각, 그리고 독특한 해석이 캔버스를 뛰어넘어 현실의 세계를 점령한다. 그처럼 강력한 힘이 있다.

공간 디자이너로서 잠깐 시선을 빼앗긴 정도가 아니라 사업체를 잘 굴려 중앙으로 활동 반경을 넓혔고 급기야 중국으로까지 진출했다. 공간 디자이너로서의 활동도 남다르게 했다. 단순히 그 작업만 한 게 아니라 특별한 디자인이 나오면 그걸 어디에건 적용하고 써먹을 수 있도록 매뉴얼을 만들어 보급시켰다.

대단한 발상이다. 그렇게 해서 소위 돈도 벌었다. 그러나 돈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평면을 뛰어넘어 공간을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게 됐다는 예술적 영역의 확대라는 점이다. 소중한 경험이 아닐 수 없다. 어떤 형태의 공간이건 떡 주무르듯 치댈 수가 있게 됐다. 공간을 쪼개고 덧붙이며 조화를 이룰 수 있는 능력을 몸으로 배울 수 있었다. 다시 말해 공간에 대한 자신감이 붙었다. 그걸 평면에 투영해내고 있다.

공간으로 마음을 뺏기고 시선을 뺏겼다고 해서 평면 회화인 개인 작업을 소홀히 하지 않았다. 틈틈이 그렸다. 공간에서 놀다가도 본래 했었던 순수미술 쪽으로 살포시 돌아와 공간에 못다 풀어낸 개념을 캔버스에 옮겼다.

그리고 여전히 2차적 평면에서 공간놀음을 해댔다. 그동안 작업을 멈춘 적이 없었다. 단지 발표만 하지 않았을 뿐이다. 공간 디자인을 하는 틈틈이 순수미술 작업을 지속해왔다. 그리고 그 축적된 역량을 마치 오랜만에 펼치는 듯 캔버스에 옮겨놓았다.

색과 색이 만나 또다른 색채를

지난 해 12월 광주 제희갤러리와 지난 2월 서울 제이제이중정갤러리에서 풀어헤쳐놓은 작품들은 바로 그런 맥락의 작품들이다. 평면과 공간의 만남이고 미디어의 가미이고 색다른 실험성이 덧입혀진 김유미 표 작업들이다.

대개 도시나 마을 등 공간에 대한 탐닉이 세게 나온다. 도시의 느낌, 마을의 분위기를 사진으로 잡고 그걸 길게 잡고 쭉 늘어뜨리거나 아니면 단순 색면으로 분할해내고 추출해 간결성을 보여준다. 과감한 시도다. 색다르다. 이렇게도 작품이 나올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랍다. 그리고 거기에 원래 강했던 색감이 자리를 깔고 얌전을 떤다. 그러니 격조가 높다. 격조 있는 화면, 뭔가를 제시하는 품이 그 자체로 넓고 깊은 듯하다. 언뜻 보면 색면 추상이다. 강한 인상의 색면 추상이다. 면 분할을 적절히 한뒤 거기에다 센 색감을 적절히 잘 배치한다. 세련된 조화다.

핑크빛 톤과 스카이블루의 대비는 산동네에서 그가 잡아낸 풍경에서 추출해낸 색면 회화다. 지중해 그리스의 어느 골목길을 찍어온 사진을 가지고선 그레이와 청녹색이 어우러진다. 세련된 연출이다. 그리고 달과 태양 그리고 지구가 빚어내는 일식과 월식을 또 화면에 구사했다. 빨강, 파랑 등으로….

전시장에 찾아온 이들이 화들짝 놀란다. 여전히 색감이 좋다고…. 김유미, 죽지 않았다고. 죽을 리가 있나. 오히려 더 무장을 하고 색다른 조형성을 가지고 돌아왔는데. 색감이 뛰놀면서 공간이 적절히 배치되는 조형감이 어긋나지 않게 조화를 이룬다.

감각적 색채 묘사의 완결성 돋보여

그는 이번에 특이한 경험을 했다. 완전히 특이한. 그동안 느끼지 못했던 감정이라며 작가는 웃는다. 보인단다. 무엇인지가 확실히 보인단다. 무엇이 부족하고 부진한지가 뚜렷해졌다. 이처럼 명쾌하게 보인 적이 없었다면서 이제 뭔지 알겠다는 거다. 눈에 보이지 않던 게 명확히 보이니 마치 시각장애인이 눈을 뜨는 것 같은 광명 세계가 따로 없다. 이번 전시회를 통해서 얻은 결실이다. 그거다.

“스스로 생각해도 색감은 자신 있어요. 어떻게 휘둘러도 자연스러우면서도 세련된 색감을 보여줄 수가 있거든요.”

그런데, 문제는 화면 안에서의 완결력이다. 그게 부실했던 거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할지 방향이 잡힌다. 이 여세를 몰아가고 싶다고 고백한다. 그동안 공간디자인과 순수미술을 병행했지만 맘껏 작업을 하지 못했던 갈증이 저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일었다. 그 갈증을 확실히 풀어내련다.

“그동안 보이지 않았던 작은 티끌이 보였다는 것은 좋은 징조예요. 앞으론 정말 좋은 작품을 할 수 있을 거 같아요. 꼭, 반드시 하고 말거예요”

그리고 그게 될 때까지 매진할 각오고 태세다. 포스트 모던하면서도 자신의 정체성이 투영된 작업을 부끄럽지 않게 해낼 자세다. 이 여세를 몰아 오는 11월 인사동에서 개인전을 가질 예정이다. 지금과 같은 맥락이면서 조금 다른, 진일보한 작업들을 선보일 것이라고 확실하게 약속한다.

전시 자주 해야 성숙한 작품 그릴 수 있어

개인전을 자주하고 싶단다. 그동안 본격적으로 작업에 매진하지 않아 개인전보다는 주로 아트페어 쪽으로 작품을 내보내곤 했었다. 그러나 이젠 작업에 몰입할 예정이고 그에 따라 개인전을 자주 열 계획이다.

김유미는 소위 작가란 전시회를 자주 가져야 성숙해질 수 있다고 여긴다. 어떤 공간에 자신의 작품을 10점이고 20점이고 쭉 걸었을 때 감이 잡히고 성숙과 발전의 기틀을 잡아낼 수 있다고 말한다.

맞는 말인 것 같다. 한 공간에다 자신의 작품을 쭉 내걸 때 아무 생각 없이 걸 수는 없다. 또 판박이 그림을 매번 걸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렇게 걸고 나면 어떤 테마로, 어떤 콘셉트로 작업을 몰아갈 것인지가 선명해진다. 그리고 자신이 지향하는 바가 단박에 드러난다. 그게 없을 때 전시회란 이름 아래 작품을 내놓을 수가 없다. 스스로 부끄러워서. 그리고 그렇게 했을 때 작품의 정체성과 컬러가 확연히 도드라지며 무엇이 부족하고 무엇이 강한지가 선명하게 보여진다. 아트페어는 작품성을 지향하기 보다는 상품가치적인 측면을 더 많이 따지기 때문에 작가의 기량을 올리려면 전시회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작품 질료에 대한 실험을 도모하고자 한다. 에폭시도 부어보고 재료간의 화학작용의 과정도 지켜볼 요량이다. 충분한 실험을 통해 자신만의 조형 감각을 만들어내려고 한다. 또 있다. 순수미술도 좋지만 상업 부분과의 콜라보레이션도 생각해보고 있다. 인테리어, 패션, 가구 등과 매칭해서 예술의 일상화를 도모하려고 한다.

우와, 욕심이 많다. 많은 걸 우적우적 수용해 가능한 것을 자신의 조형성으로 채택하려고 한다. 잘 될 듯하다. 왜, 열정이 크므로. 화가 김유미가 다양한 재료의 실험과 공간의 새로운 접목을 통해 깊고도 넓은 예술 세계를 구축해내고 있다.

이미 어느 정도는 발걸음을 내딛었다. 힘찬 발걸음으로 가고자 하는 목적지에 뚜벅뚜벅 다가서고자 한다. 캔버스에 펼쳐지는 공간 놀음과 색채 향연이 또 어느 방향으로 선회하며 멋진 조형성을 갖출지 정말 궁금하다.

대동문화 81호 [2014 3,4월호]

김영순 광주문화재단 정책연구팀장  webmaster@chkorea.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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