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은 땅거죽이다. 바위가 바람과 눈, 비를 맞고 분해되면서 흙이 되고 땅을 이룬다. 흙에는 정신적 의미가 내포돼 있다. 고향으로서의 땅과 흙이다. 흙의 정서는 사람의 몸과 뼈대를 이룬다. 그러므로 사람은 떠날 때가 되면 흙의 정서로 회귀한다. 인생은 흙에서 태어나 흙 속으로 되돌아가는 행로다.

도시에 살면서도 사람은 늘 흙을 꿈꾼다. 당연하다. 세상은 하늘과 땅으로 분화되는데, 하늘은 신의 영토다. 신은 인간 위에 군림하는 대상이고 하늘은 차갑다. 땅은 다르다. 사람의 삶이 시작되고 끝나는 곳은 땅이다. 땅에서는 따뜻한 온기가 느껴진다.

도예가 손동진, 그도 흙을 만지면 마음이 따스해진다. 40년 가까이 전통 도예를 해왔다. 그게 삶이었다. 도예는 먼저 아버지의 업이었고, 그는 흙의 온기에 빠져 아버지의 업을 물려받았다. 흙을 만지고 물레를 돌리고 글씨와 문양을 새겨 넣었다. 행복한 시간이었다.

처음부터 흙을 만지는 삶이 좋았던 건 아니다

“어릴 때 돈을 마음껏 쓸 수 없었던 이유가 아버지 때문이라 생각했어요. 아버지가 걸었던 길이 싫었어요. 그래서 운동을 했습니다. 그러다보니 도예와는 거리가 멀었어요. 일탈도 많이 했습니다.”

오히려 운동에 매진했다. 흙을 만지는 일은 그저 취미였다. 태권도 도장을 운영하면서 가끔 삶이 무려할 때 흙을 만지는 정도였다. 그러다 어느 순간 흙에 빠져 들었다. 흙의 질감이 좋았고, 온기가 좋았다.

흙을 만지다 보니 어느새 그 세월이 40년 가까이 되어간다. 여러 도예 공모전에서 수많은 상을 탔고, 지금은 광주·전남 미술대전과 전국공예미술대전 심사위원으로 활동한다. 이름 밑으로 명성도 쌓였다. 스승인 광주시 무형문화재 청자 기능 보유자 조기정 선생의 주도로 진행된 강진 청자 재현 사업에도 참여했다. 디자인과 조각 부문을 맡아 작업했다. 그때의 경험이 그에게 전통 자기에 대한 애착을 키웠다.

전통과 현대는 하나의 끈으로 연결돼 있다

그의 손끝에서 탄생된 작품들은 맑은 가을 하늘색 빛 청자에서부터 작고 투박한 생활자기까지 다양하다. 그는 단순한 전통 도자기에 머물러 있지 않다. 과거 조상들이 사용했던 방식과 기법을 이어받으면서 현대적인 감각을 접목시킨다. 그의 작품 속에서는 과거와 현대가 공존한다.

전통과 현대를 아우르려는 그의 연구는 철재자기에서 빛을 발한다. 손동진의 철재자기는 전라도 땅의 황토를 사용한다. 황토가 지닌 철 성분이 가마 속에서 열과 교합하면서 새로운 도자기가 태어난다. 밝은 갈색에서 회색, 황금색, 연한 녹색 등 황토가 빚어낸 다양한 세계가 펼쳐진다. 빛깔만 보면 도저히 황토가 만들어냈을 것으로 상상하기 힘들 만큼 화려한 색채를 보여준다.

“한국적 도예의 기본은 전통에 있습니다. 전통을 무시하고 가볍게 보는 것은 우리 스스로 우리 뿌리를 부정하는 것입니다. 한국적인 게 가장 세계적일 수 있습니다. 전통에 충실하면서 현대적 기법들을 접목하는 방법들을 꾸준히 고민하고 있습니다.”

태권도 7단의 투박한 손이 도자기의 복잡한 문양들을 채워 나간다. 그 채움은 욕심이 아니다. 문양들이 빛나게 채워질 때 그의 마음은 오히려 비워진다. 그가 만들어낸 철재자기의 겉 표면은 그의 손을 닮았다. 황토를 덧바르기 때문이다. 손으로 만졌을 때 느껴지는 촉감이 다른 매끈한 자기와 다르게 다가온다.

황토에 함유돼 있는 철분이 고온의 가마 속에서 유학과 결합해 만들어낸 다양한 색상은 질리지 않은 자연미를 그대로 전달해준다. 색상은 글씨나 문양 위에 바르는 유약의 두께로 구현하는데 밤색이나 검은색, 빨간색 등 다양하다. 이러한 투박함과 자연미에 매료돼 그는 철재자기 제작에 많은 시간을 보냈다.

“물론 다른 방법도 있습니다. 저는 도자기에 무언가 채워지는 게 좋습니다. 채울 수 있는 공간은 작지만 생각을 다 들어 내보이고 싶은 공간입니다.” 그는 여백의 미보다 채워지는 아름다움을 선택했다.

오래 참고 오래 견뎌야 피는 생의 꽃

도자기는 불의 심판을 두 번이나 받는다. 아무리 예쁘게 빚어도 불을 잘못 견디면 버려지는 운명이다. 초벌구이 하고 유약을 바르고 다시 두 번 1300도 불 속으로 들어가 심판을 받은 게 도자기다. 거기서 작품이 한 점 나온다는 건 행운이다. 어찌 보면 도자기는 사람의 삶과 닮았다. 오래 참고 오래 견뎌야 생의 꽃이 핀다.

“그 걸 참았기 때문에 지금 이 순간까지 지켜오지 않았나 싶습니다. 운동도 메달 따기 위해 엄청난 많은 시련과 고통, 좌절이 있습니다. 그러나 금메달은 하나뿐입니다.”

도자기나 운동은 집중력이 부족하면 안 된다. 참아내야만 메달을 얻을 수 있다. 북구 전통공예학교에서 후진 양성에 힘을 모으고 있는 그 시간에도 그는 말한다.

“그동안 구매자들의 선호에 따라 작품 활동을 해 왔다면 앞으로는 정말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나만의 작품을 만드는 게 꿈입니다. 이젠 꿈이 아닌 현실로 될 수 있도록 해야죠. 지금 진행 중이고요.”

“전통도예는 도전해볼 만한 가치가 충분한 분야입니다. 하지만 배우려는 사람들이 많지 않아 안타까워요. 전통에 대한 자부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나이를 가리지 않고 함께 이 길을 가고 싶습니다.”

그의 작품 속엔 겨울 이야기가 많다

나뭇가지에 아슬하게 쌓여있는 하얀 눈덩이들이 세상을 반짝이게 한다. 손동진, 그의 눈도 반짝인다. 자연스럽게 흘러내린 유약에 물결이 철렁거리는 겨울바다와 닮아있다.

최근의 만든 작품 20점도 겨울 이야기다. 흙을 빗고 모양을 새기고 유약을 바르고 마지막 가마 불을 거쳐 귀한 자식이 나온다. “모든 도자기에는 기쁨과 슬픔이 공존해요. 어떤 자식은 반듯하고 어떤 자식은 마지막 가마 불에서 나왔을 때 기쁨과 슬픔, 좌절을 주기도 합니다. 도자기는 마지막 한순간을 위해 수많은 시련과 착오의 과정을 걷지요.”

도자기는 불길 속에서 피는 꽃이다. 그의 삶도 다르지 않았다. 그러므로 그가 만든 철재자기에서는 삶의 깊이가 느껴진다.

대동문화 81호 [2014 3,4월호]

한경숙 기자  webmaster@chkorea.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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