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은 삶이다. 음식 없는 삶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사람은 누구나 통과의례를 거친다. 우리 세시풍속은 수많은 통과의례의 산물이다. 사람이 태어나서 삶을 마감하는 순간까지 통과의례는 계속된다. 큰 틀로 보면 출생, 성년례, 혼인례, 상장례 ,제례 등 5가지 의식을 반드시 통과해야만 했다. 그리고 그 자리에는 늘 통과의례 음식이 놓였다.

음식은 격식을 갖췄다. 출생의례는 먼저 출산 전에 정화수와 수북이 담은 쌀, 긴 미역이 산모를 위해 차려졌다. 출산 후에는 정화수와 밥 3그릇, 미역국 3그릇이 차려진다. 어른이 되면 성년례로 술상을 차린다. 술잔과 마른안주들이 상 위에 놓인다.

혼인례는 대례상이 차려진다. 남향에 청홍색 굵은 초 1쌍, 백미, 대추, 콩, 팥, 용떡, 달떡을 두 그릇씩 준비하고 청홍색 보자기에 암탉과 수탉을 남북으로 갈라놓는다. 이것이 우리나라 통과의례 음식의 기본이다. 각 지방마다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어떤 상이건 시간의 깊이 속에서 상의 형태가 완성됐다.

남도음식에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 있다. 1994년 세상을 떠난 이연채 여사다. 역대 대통령들이 광주를 찾을 때마다 초청돼 음식을 만들었던 사람이다. 수십 년 동안 광주 시내 큰 잔칫집마다 초청받아 상을 차렸던 이연채 선생은 떡살과 다식판 제작에도 솜씨가 좋았던 음식 명인이다. 남도 의례음식장 최영자, 그는 이연채 선생의 조카다. 어쩌면 그의 음식 솜씨는 집안 내력이다.

이연채 여사로부터 음식 솜씨 내림이 시작되다

최영자는 고모였던 이연채 선생에게서 음식을 배웠다. 이연채 선생이 중흥동에서 운영했던 한과 가게가 무척 잘됐다. 갖가지 문양을 곁들인 한과는 정갈하고 맛이 좋았다. 최영자는 고모의 한가 가게에서 일하며 남도 음식을 기본부터 배우기 시작했다. 솜씨가 좋아 금방 고모로부터 인정을 받았다.

어느 순간 최영자도 남도음식의 일가를 이루고 있었다. 광주MBC가 주최한 한국음식 만들기 대회에서 입상하면서 솜씨를 정식으로 인정받기 시작했다. 1989년에는 남도 의례음식장이 됐다.

그리고 최영자는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세계 음식 박람회 경연 대회에서 ‘남도음식 통과의례’라는 주제의 상차림을 선보여 금상을 수상했다. 그의 손끝을 통해 남도의 통과의례 음식이 세상으로 걸어 나오게 된 순간이었다.

그는 남도 음식에 깊은 애착을 가지고 있다. 어쩌면 남도음식이 그이고, 그가 바로 남도 음식이다.

남도 음식에 대한 그의 애착은 제자들에게도 그대로 이어진다. 그의 제자들이 중심을 이륜 전통음식 ‘남도 의례 보존 연구회’는 남도 음식문화 지킴이 역할을 한다. 남도의 음식문화를 지키고, 알리고, 사람들에게 맛의 깊이를 일러준다. 정기 모임을 통해 서로가 만든 음식에 대한 의견을 나누며 음식 내공을 쌓아간다.

고모에게 배우는 시간이 가장 즐거웠던 그는 제자들과 함께 있으면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잊게 된다. “제자들 얼굴만 봐도 좋아요. 제자들이 또 다른 나인 거잖아요. 함께 있으면 시간이 어디로 가는 줄 모르고 집중하죠. 제자들이 이따금 전시회도 하고 운영하는 가게도 잘되고 상도 받아요. 그럴 때면 고모 생각이 나요. 고모가 저에게 모든 걸 알려줬던 저도 이제 제자들에게 제 모든 걸 전수하고 싶어요. 그래서 시간이 늘 빠듯하게 느껴져요.”

최영자는 어린 시절 부엌에서 배운 손맛을 기억하고 있다. 사실 음식 만드는 걸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친정아버지가 집안의 장손이었다. 만날 잔치가 열렸다. 그는 집안 분위기 속에서 자연스럽게 남도음식의 맛과 철학의 깊이를 알아갔다.

어릴 적 시간을 더듬어보면 가장 기억에 남는 음식이 있다. 동치미다. 그게 제일 맛있었다. “동치미를 가을에 담잖아요. 무를 깨끗이 씻어서 소금을 발라 하루나 이틀 저녁 재서 오가리에 담고 국물을 내요. 새우젓하고 찹쌀하고 무를 넣고 같이 끓여요. 대충 끓이면 안 되고 팍 삶아요. 그것으로 동치미 국물 간을 맞추고, 배추는 살짝 간을 합니다. 무, 미나리, 파, 석화(굴)를 넣기도 하고 버무려서 땅에 묻어놓으면 동치미가 완성됩니다.”

맛만큼 중요한 음식 나눔의 공동체적 의미

나누고 베풀 줄 아는 집안이었다. 남의 입에 넣어주는 것이 즐거움이란 걸 그는 어릴 적부터 알고 있었다. 맛있는 음식은 쉽게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 음식을 할 때 잠깐 딴 생각을 하면 음식 맛이 없어진다. 음식은 절대로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대충 만들면 확실히 맛이 달라진다. 그래서 그는 음식을 할 때는 모든 정성을 음식에 전부 쏟는다.

“사람은 서로 같이 음식을 먹으면서 친해져요. 그래서 좋은 음식을 만들어야 해요. 먹는 것에서 인심이 나고, 먹는 것에서 인심을 잃고 그러는 겁니다.” 함께 먹을 줄 아는 나눔, 그것이 남도의 음식 문화의 기본양념이다.

이제 남도음식도 조금씩 변하고 있다. 시대의 변화에 보폭을 맞춰가는 것이다. 옛 남도음식에서는 사용되지 않았던 새로운 재료들이 많이 사용된다. 사실 정성은 기본이고, 음식 맛이 좋으려면 재료가 좋아야 한다. 그는 늘 전통 재래시장에서 장을 본다. 가장 신선한 재료를 고르는 것이 음식의 시작이다.

맛만큼 중요한 것이 음식의 의미다. 그는 남도음식의 맛과 의미를 알리기 위해 해마다 열리는 광주 식품 박람회 남도 음식관 코너에서 전시회를 연다. 음식 문화에 대한 자문 요청도 거절하는 법이 없다.

그는 갖가지 음식에 담긴 의미를 알 때 비로소 진정한 맛을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결혼할 때 준비하는 음식 중에 구절판이 있어요. 구절판의 의미가 무척 재밌어요. 시집가면 귀머거리 3년, 봉사 3년, 벙어리 3년, 그렇게 살라는 의미로 마련하는 음식이죠. 숭어는 플랑크톤만 먹고 사는데 살생을 하지 않아요. 그런 뜻에서 혼례상에는 숭어를 놓아요. 음식 맛도 중요하지만 상차림에 놓인 음식들의 의미를 함께 알 때 진정한 의미의 남도음식을 알게 되는 거예요.”

이것이 최영자가 그의 전통음식을 아끼고 세상에 알리는 방법이다.

대동문화 82호 [2014 5,6월호]

한경숙 기자  webmaster@chkorea.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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