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견화가 송용(75) 화백이 새로 만든 창작의 산실은 양평에서도 깊숙이 들어갔다. 양평군 용문 덕촌리에 들어서 산기슭을 따라 올라 왼편으로 돌아서니 별장 같은 집들이 늘어선 마을이 나온다. 문인 예술인들이 중심이 되어 조성한 양평 예술인촌. 송용 화백은 이곳 주민이 되어 8년째 살고 있다.

정원을 겸한 마당에는 매화, 살구나무가 꽃망울을 맺었다. 산 아래 벚꽃은 활짝 피었다. 봄날, 이곳은 한적하다. 북적이는 도회지에서 이곳에 오면 고독함을 제일 먼저 느끼리라. 화백은 그런 고독을 찾아서 이곳에 창작의 산실을 꾸몄을 것이다.

“서울 대치동 화실에서 20년 간 작업을 하다 올해부터 사용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곳에서 주로 작업을 하지요.”

객관적 엄정함에 담아낸 주관적 정신주의의 풍경

사실주의 작가로 알려진 서양화가 송용. 그가 즐겨 그리는 소재는 자연이다. 그의 화풍은 산이나 나무, 여울의 흐름이나 집, 꽃이나 과일 등을 묵직하면서도 은은하게 담아내어 척박한 도시인의 감성을 맑게 정화한다는 평을 듣는다. ‘객관적이면서 주관적인 표현의 자유’라는 작품 세계를 추구하는 작가로 평가를 받는다.

미술평론가인 김남수는 송용 작가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인간의 실존이 광대무변한 우주나 자연에 비하면 보잘 것 없고 하찮은 것이지만 그는 자연을 통하여 인간성을 회복하고 인간주의를 실현하려고 하는 의식이 분명한 화가다.(…) 비록 구상 양식의 사실주의 화풍을 추구하고 있지만, 자연의 단순한 재구성이 아닌 작가의 정신주의가 투영된 새로운 자연을 만들어가고 있다는 점이다.(…)그의 작품 세계의 특징 몇 가지를 요약해서 정리를 해보면 자연을 관찰하는 풍부한 감성과 작가 특유의 조형 언어, 정일한 묘사력, 예리한 주제 선택과 자연을 재해석해내는 통찰력, 인간 중심의 회화 사상의 발현, 화려하고도 순도 높은 색채 예술의 마술성 등 한국 화단에서 신자연주의 계열의 대표작가로 꼽을 수 있을 만큼 선두주의 위치에 있다.”

전남 장성에서 태어나 조선대학교 문리대학 미술학과를 졸업하고 1968년 서울에 올라와 쭉 생활하면서도 그는 어릴 적 보았던 자연을 잊지 않았고 기회만 되면 다시 찾아가 화폭에 담았다. 그런 작품은 생활에 쫓기는 도시민에게 향수와 여유를 느끼게 했다. 그는 우리나라 주요 산은 대부분 올랐고 백두산도 다녀왔다.

자연과의 내밀한 교감, 그리고 작품과의 투쟁

사실주의, 신자연주의를 추구하는 송 화백은 양평에서 그림에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망원경으로 조망하듯 화폭에 대상을 넓게 잡아 그리던 것을 이제는 대상에 더욱 가까이 다가가 현미경으로 관찰하듯 크게 담아낸다.

“대치동 시절에는 도시에 살았기 때문에 멀리 찾아가서 그렸다. 양평으로 옮기면서 대상 속으로 들어와 그 속에 파묻혀 보게 되니 자연을 단순화하면서 대담하게 그리는 시도를 한다. 대상과 대화를 하게 된다. 그게 소중하다.

그렇게 어울려 느끼는 분위기, 대상보다 그 분위기가 중요하다.” 이렇게 그린 그림에서 시(詩)의 분위기가 느껴진다. 응시하면 선(禪)의 세계로 들어가는 듯하다. 속기(俗氣)를 떨어버리고, 아침 샘물에 막 씻어낸 얼굴인 듯 우리 앞에 나타났다.

또 원색을 자주 쓰는 것도 자연스런 변화다. “하나하나 보게 되면 각자 분위기가 있고 특색이 있다. 각자 대상을 무시할 수 없고 그 특색을 색채로밖에 할 수 없으니 원색을 쓴다. 그런데 원색을 쓰는 게 어렵다. 어떻게 할 줄 모르겠다. 아직은 머리 아프다.”

송 화백은 지금 내면에서 투쟁을 하는 듯했다. 그동안 해온 것과 하려는 것과의 갈등. 다시 자연에 묻혀 살면서 자연과의 교감에서 얻는 것을 화폭에 다 담고 깊은 화가의 욕심과 그동안 해온 익숙한 것에 안주하고 싶은 마음이 그가 그리는 그림에 반영되고 있다.

그러한 변화는 계획을 세워 추구한 것이 아니고 다양한 시도를 끊임없이 하면서 이루어낸 것이다. 자연에 묻혀서 방해를 받지 않고 그는 작업에 몰두한다.

처음 3년은 혼자 살았다. 별이 눈앞에서 쏟아질 것 같고 시침소리가 크게 들렸다. 어떤 때는 무섭기도 했다. 그럴 때 그는 그림에 모든 것을 쏟았다. 하루 5시간 이상 8시간가량 작업을 한다. 옛날 그림과 다르게 과감하게 시도하고 싶은데 나이가 들면서 그게 어려워진다고 송 화백은 고백했다. 그래서 집중해서 많이 그리려니 시간이 부족하다.

“복잡한 일이 있으면 안 되니까 휴대폰까지 없애고 싶은데 그건 어려울 것 같다.” 그는 30년 피웠던 담배도 끊고 말술로 마시던 술도 거의 안 마신다. 작품에 몰두하기 위해서다.

그의 예술적 영감은 원천이 자연이다. 자연에서, 계절의 변화에서 그는 영감을 많이 받는다. 자연 속에 살면서도 그는 산을 찾는다. “설악산에는 매년 간다. 매년 갈 때마다 다르다. 계곡을 가도 다르다. 단풍에 탱글탱글한 햇빛을 보면 살아있는 기쁨을 느낀다.” 작품에 몰두하는 예술가의 행복이 느껴진다.

그의 작품을 보고 있노라면 인상파의 화풍이 떠오른다. 송 화백은 고호, 고갱 등 인상파 화가를 좋아한다고 했다. 서양화가 오지호, 임직순 화백의 영향을 받아 송 화백의 그림은 터치가 굵고 인상화 화풍이 엿보인다.

송 화백은 조선대에서 오지호 화백으로부터 소묘, 수채화 등을 배웠다. “조선대학교 부속중학교에 다닐 때 공모전에 그림을 내려고 했는데 학교에는 미술교사가 없었다. 조선대 부속여고에 오승우 씨가 교사로 있어 찾아갔더니 아버지 오지호 선생을 소개해주었다. 오지호 선생이 데생을 가르쳐주었다.”

송 화백은 조선대학교 부속고등학교를 거쳐 조선대 문리대 미술학과에 입학하여 화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68년 서울에 올라와 미술 활동을 하여 1971년 국전에 첫 출품하여 특선에 뽑혔다. 이후 목우회 구상 공모전에 입상을 하고 1978년부터 목우회 사무국장으로 일했다.

삶과 그림 세계가 일치된 순일한 화맥 일궈

고 이성부 시인은 송 화백을 위한 「Y에게」라는 시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그대는 어린 시절 외로웠기에/다른 아이들이 볼 수 없는 더 많은 것을 잔잔하게 볼 수 있었다. 외로운 눈이 밤이 깊어도 기다림으로 혼자 빛나고/먼 개울음 소리, 솔바람 소리에도 모습을 모르는 아버지 얼굴을 볼 수 있었다./겨울밤 도둑기차를 탄 그대의 가출이/새벽녘 폭격으로 허물어진 명동거리에 이르고…/그대는 청년이 되고서도 늘 외로웠기에/그대의 외로움을 날카로운 창으로 만들어/어둠 속으로 어둠 속으로 던져 보냈다./어둠의 심장에 꽃혀 어둠의 고요함과/어둠의 함성을 뜯고/함께 피 흘리며 울 수 있었다.….

송 화백은 민족 분단과 6.25, 그리고 가족과 헤어지고 추위와 굶주림에 시달려본 사람으로서 한 시대의 처절한 상황과 가족적 비극을 응결시킨 외로움을 고집스럽게 자기 작품 세계로 승화한 작가라고 평가된다.

송 화백의 작품의 풍경과 정물에는 그 외로움과 자연을 정직하게 재현하려는 내면의 뜨겁고 단단한 마음이 쓸쓸하고 외로운 분위기의 화폭 속에 고스란히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그는 그 내면의 단단함을 고스란히 이겨내면서 순일한 삶을 살아온 도저한 정신세계를 보여주고 있다.

1974년 개인 화실을 처음 만들어 후진 양성에 나섰고 1979년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17회 개인전을 열었다. 현대미술초대전(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미술대전(서울시립미술관), 한국의 수채화전(문예진흥원 미술회관 기획), 고구려 발해 유적지 답사전(롯데갤러리), 한국미술99 인간 자연 사물전(국립현대미술관) 등 단체전에 참여했고 파리, 시카고, 프랑크푸르트, 베를린, 모스크바, 북경, L.A, 동경, 하노이, 소피아, 이스탄불, 뉴델리 등 해외전에 출품했다.

현재 한국미협 고문·한국전업미술가협회 고문·한국수채화협회 고문·무진회 고문·강남미술가협회 고문·목우회 자문위원·신작전 자문위원·세계미술교류협회 회장으로 활동 중이다.

대동문화 82호 [2014 5,6월호]

정유철 기자  hsp3h@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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