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인 노희설(48)과 정경아(47). 그들은 올 여름을 그 어느 해보다도 바쁘고 의미 있게 보내고 있다. 연극 <발톱을 깎아도> 공연 준비 때문이다. <발톱을 깎아도>는 지난 3월에 개최된 제23회 광주연극제에서 최우수 작품상을 수상하여 전국연극제에 광주 대표 작품으로 출품 공연된다.

<발톱을 깎아도>는 항구 도시 변두리에서 살고 있는 노부부 이야기다. 노희설과 정경아는 이 작품에서 주인공 노부부 역을 맡았다. 귀도 잘 들리지 않고 관절로 잘 걷지도 못하는 아내를 위해 요양보호사의 지원을 받고 싶은 남편은 요양심사단 방문을 앞두고 아내에게 더 심하게 아픈 척할 것을 훈련시킨다. 실제 부부이기도 한 이들은, 힘든 삶 속에서도 의지하며 살아가는 노부부의 모습을 능청스럽게 보여주어 관객들을 웃기고 울렸다.

노씨 부부가 이 무대에 더 몰입할 수 있었던 것은 올 2월, 노씨의 어머니를 여의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연극의 리얼리티를 높이기 위해 그들은 어머니가 살아생전에 쓰시던 물건으로 무대를 꾸몄다. 연극이지만 실제 어머니가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대사를 주고받고 동선을 만들어내는 그들의 모습은 연극을 뛰어넘는 큰 감동을 주기에 부족함이 없다. 두 배우는 노련한 연기력으로 광주연극제에서 남·녀 연기상을 받았다.

문제아, 연극배우로 무대에 서다

노희설 씨의 말을 빌리자면 학창 시절 그는 꿈도, 공부에 대한 열정도 없었던 ‘문제아’였다고 한다. 그러던 그가 ‘연극’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고등학교 3학년 때.

“국어시간이었어요. 선생님이 시를 읽어보라는 거예요. 내가 시를 다 읽었는데, 선생님도 친구들도 조용해요. 순간 당황했죠. 그런데, 짧은 정적이 지나자 친구들이 와~! 하면서 박수를 치는 거예요. 선생님도 ‘너, 성우 한 번 해봐라.’ 그렇게 말씀하시고요.”

딱히 꿈이 없었던 그에게 선생님의 칭찬 한 마디는 커다란 계기를 마련해주었다. 그때부터 성우가 되겠다는 꿈을 꾸게 된 것이다. 그는 성우가 되려면 다양한 목소리 연습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당시 광주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던 극단 드라마스튜디오를 찾아갔다. 그곳에는 배우의 꿈을 가지고 온 또래의 학생들이 많았다.

“극단에 들어간 지 3일 만에 대표님이 연기를 잘한다고 배역을 주겠다는 거예요. 난생 처음으로 진실 되게 칭찬을 받아본 순간이었습니다. 너무 좋았어요.”

그해(1985년) 그는 연극 <멀고 긴 터널>로 데뷔, 전국연극제에서 신인 연기상을 받았다. ‘문제아’로 학교에서는 관심 밖이던 그는 처음 시작한 연극판에서 ‘연기상’을 받자 대학에 진학하여 본격적으로 연기 수업을 받고 싶었다. 중앙대를 비롯하여 한양대학교 서울예전에 지원했으나 실패하고 만다.

“실기나 내신에서 많이 부족했죠. 그러니 합격할 수도 없었지만 ‘연기 하는데 대학이 무슨 필요가 있어’ 하면서 무슨 철학이라도 있는 것처럼 대학을 거부했어요. 그런데 살다 보니 학력이 분명 발목을 잡기도 했지요. 젊은 시절 전문적으로 공부를 했더라면 깊이 있는 배우가 되었을 것인데 아쉬움도 있었어요. 결혼 후에야 대학에 갔습니다.”

대학 진학을 포기한 그는 좀 더 넓은 무대에서 활동하고 싶어 76극단에 입단했다. 그런데 그는 3일 만에 광주에 내려오고 만다. 76극단에는 당시 연극계의 기라성 같은 선배들이 활동하고 있었는데 사는 모습이 열악하여 20대 그로서는, 충격이었다고 한다.

배가 고프지 않고 연극도 할 수는 없을까?

“저는 ‘배가 고파도 연극은 포기 못 한다’, 그렇지는 못했던 것 같아요. 연극과 생활이 같이 가야 하는데 그때 본 선배님들의 모습은 그렇지 않았어요. 그만큼 내가 연극을 사랑하지 않았다는 뜻도 됩니다. 하지만 지금도 저는, 연극과 생활이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어요. 물론 모든 연극인들의 꿈이 그렇겠지만 그게 쉽지 않으니까 이 길이 더 어렵죠.”

평범한 가정의 가장도 하고 싶고 배우도 되고 싶었다는 노희설. 그는 연극판에 뛰어든 후 연극도 하고 생활인으로서 번듯하게 살기 위해 안 해본 일이 없을 정도라고 한다. 그중에서 그가 20년 넘게 하고 있는 일은 성우와 방송 진행자.

1990년, 광주MBC에서 CM 성우를 시작으로 방송 활동을 해온 그는 재치 있고 구수한 입담으로 인기를 모으고 있다. 특히 광주 교통방송에서는 개국에서부터 지금까지 18년째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어 운수 가족들에게는 아주 친근한 형이자 동생 같은 방송인이다.

연극 부부 무대 위에서 부부로 서다

정경아(포커스시어터 단원) 씨는 연극 경력 27년인 베테랑 연극인이다. 연극 외에는 다른 일을 해본 적이 없다. 중학교 시절, 광주시립극단에서 청소년 단원을 모집한다는 광고를 보고 찾아간 것이 연극과의 인연의 시작이었다. 그곳에서 그녀는 ‘군계일학’이라고 평가될 정도로 선배 연극인으로부터 칭찬을 받았다.

여고 시절에는 박윤모(광주시립극단 예술감독) 씨가 그녀의 학교에 부임해 오면서 연극반을 만들었다. 그녀는 <배비장전>에서는 방자역을, <작은아씨>에서는 막내역을 맡아 학교 무대에 서면서 연극 수업을 받게 되었다.

그녀가 정식으로 프로 연극 무대에 데뷔한 것은 1987년 <햄릿>에서 오필리어 역을 맡은 후부터다. 연극계의 열악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연극판을 떠나지 않고 활동을 하다 연극 <홍당무>를 통해 노희설 씨와 한 무대를 선 것이 인연이 되어 1995년 결혼을 했다.

그 후 노희설 정경아 부부는 매년 1~2편의 작품에 참여하여 무대에 섰다. 그러나 노희설씨는 한동안 연극판을 떠나있었다. 방송일이 많아지고 또 가장으로서 역할이 주어지면서 쉽게 시간을 내기가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노희설씨는 “마흔까지만 열심히 일하고 마흔 넘어서는 하고 싶은 연극 맘껏 하면서 살자”고 아내와 약속했다.

그 약속대로 그는 연극판에 돌아왔던 8년여 동안 연극계를 떠나있었어도 연기상을 받았다. 무대에는 서지 않았지만 연극에 대해 ‘촉’을 세우고 끊임없이 감각을 잊지 않으려는 단련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여기에는 연극판을 지키고 있었던 정경아 씨의 역할이 컸다.

“비롯 남편은 연극을 하고 있지는 않았지만 연극판을 떠나진 않았죠. 언젠가는 돌아올 곳으로 생각했고, 그런 마음이 연기상 수상으로 더 많은 동력을 부여받았던 것 같아요. ‘연극만 하고 살자’는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지만 이제 아무리 바쁘더라도 1년에 2~3편씩은 작품을 하려고 해요.”

목소리, 연극, 배우, 성우 그리고…

정경아 씨는 연극배우일 뿐만 아니라 ‘설사운드’의 메인 성우이기도 하다. 노희설 씨는 성우로 활동하고 있는 자신을 비롯하여 후배들을 위해서, 또 광주의 성우 시장의 현실화를 위해서 광주시 북구 용봉동의 한 오피스텔을 빌려 녹음 시설을 만들었다.

“광주의 성우 시장은 아주 열악합니다. 광주 권만으로는 시장이 좁은 데다 녹음료나 성우료가 서울시장의 1/10도 안되는데도 저가 경쟁을 하는 바람에 더더욱 어렵죠.”

‘설사운드’는 노씨 부부의 제2의 인생 무대이다. 그곳에서 노씨 부부는 자신들의 작업도 하지만 성우 지망자들에게 교육도 하고 있다.

“배우든 성우든, 작품에 대한 분석력이 없으면 안 돼요. 단지 목소리가 좋다는 것 하나만으로 성우가 되겠다고 오는 학생들이 있어요. 책을 읽을 줄은 알지만 그 행간에 숨은 많은 이야기를 담아내지 못하면 그것은 그냥 소리일 뿐이죠.”

연극판에서 30여년 가까이 다양한 삶을 구현해왔지만 지금도 또 다른 삶을 위해 부부는 서로에게 묻고 답하고 분석한다. 그래서 좋은 작품으로, 좋은 배우로 관객과 만나고 싶다. 두 부부의 연기력이 빛을 발해 전국연극제에서의 낭보가 들려오길 기다려본다.

대동문화 83호 [2014 7,8월호]

정명혜 남부대 언어치료청각학과 교수  webmaster@chkorea.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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