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크라테스의 아내는 왜 ‘악처’되었을까?

서양화가 노의웅(72).임순임(66) 부부를 만나면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철학자로 존경받는 소크라테스는 왜 자기의 아내를 ‘악처’로 만들었을까 하는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만약 그의 아내가 태어날 때부터 ‘악처’의 DNA가 있었다면 수많은 사람들을 감동, 감화 시켜 다른 삶을 살게 하였듯이 자기와 가장 가까운 아내를 변하게 했어야 맞고 그 반대라면, 그런 환경을 만든 소크라테스의 책임이 아닐까 하는 억측(?)을 하고 싶었다.

봄바람이 부는 이유

광주광역시 말바우시장 건너편 언덕배기에 있는 그의 집에서는 무등산이 한 눈에 들어온다. 잔디가 잘 가꾸어진 작은 마당과, 담장 밑으로 줄줄이 심어져 있는 철쭉, 세한도에서 본 듯한 소나무 한 그루가 작가의 풍류를 짐작하게 한다. 1층에서는 살림을 하고 2층은 작업실이다. 처음에는 작업실이 광주시내에 있었으나 시간에 구애 없이 그리고 싶을 때 언제든지 그릴 수 있게, 또 아내와 함께 작업을 하기 위해 집안에 작업실을 꾸몄다.

작업실에는 꽃비가 내리고 있었다. 동백꽃처럼 생명력이 넘치는 꽃들이 뚝뚝 하늘에서 쏟아졌다. 노의웅 씨의 ‘구름천사’시리즈이다. 그런가 하면 저 땅 속 깊은 곳의 물을 우듬지로 길어오르는 춘삼월의 산이 거기에 있었다. 이는 임순임 씨가 그려내는 풍광이다. 그녀는 수없는 터치를 가해 온기 없는 산에 생명의 기운을 불어넣었다.

여느 바람보다 봄바람을 생명의 원천이라고 하는 것은, 바람이 불지 않으면 겨울을 내기 위해 자신의 몸속에 있는 물기를 밖으로 내보낸 나무들이 밑둥에 머금고 있는 물을 가지 끝까지 보낼 수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봄바람에 나무들은 봄을 알고 뿌리를 더 깊게 뻗어 물줄기를 우듬지까지 올려보내 봄을 알린다.

임순임 씨에게 있어 노의웅 씨는 봄바람이다. 자신도 모르는 달란트를 발견해내고 그녀가 온산을 초록으로, 연분홍으로 물들일 수 있게 바람을 불어주었다. 반면 노의웅 씨에게 있어 아내는 ‘구름천사’다. 어린시절 그는, 크레파스와 도화지가 없어 냇가의 둔덕에 누워 하늘을 도화지 삼아 수없는 그림을 그렸다. 토끼, 달, 구름, 사자, 어머니, 산 등.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것을 구름 위에 그렸다. 자신이 그린 구름이 사라지면 저 멀리서 또다른 구름이 그의 눈앞에 펼쳐졌다. 어린시절, 상상으로 그려본 그 세계는 오늘날 고스란히 그의 붓끝에서 재현되고 있다. 그것이 그의 ‘구름천사’ 시리즈이다. 가난하여 도화지를 살 수 없었던 소년에게 무한대의 도화지가 되어준 구름처럼 아내는 지금까지 그가 하고 싶은만큼 작품 생활을 할 수 있게 묵묵히 지원해주었다.

아내의 전폭적인 지원 중의 하나는 2002년 가졌던 <노의웅 100원 특별전>. 개인전을 할 때마다 도움을 준 지인들에게 보은의 뜻으로 개인전을 하고 그 작품을 지인들에게 선물을 하려고 했다. 그런데 받는 사람들이 부담을 느낀다는 주변의 조언을 듣고 다른 방법을 찾다가 그림 한 점에 100원만 받고 주기로 했다. 당시 그의 그림은 호당 30만원이 넘었다. 언론을 통해 ‘100원 특별전’을 접한 사람들의 발걸음이 이어졌다. 하루 평균 3,500여 명. 전시기간 동안 3만여 명이 다녀갔다고 한다. 여기저기서 ‘역시 예향 광주다’라는 칭찬과 격려가 이어졌다. 그러나 그의 이런 행보를 삐딱하게 보는 이들 또한 많았다. 상처와 보람을 함께 준 전시회였지만 그가 이런 전시를 할 수 있게 용기를 준 이가 아내였다.

세상에서 가장 좋은 친구

어느날, 노의웅 씨는 지인들과 스케치를 나갔다가 아내에게도 그림을 그려보라고 캔퍼스를 마련해주었다. 그런데 웬일인가? 아내의 첫 그림은 그를 깜짝 놀라게 했다.

“아내에게 이런 재주가 있었구나, 처음 발견했습니다. 내가 태어나서 가장 잘 한 일 중에 하나는 아내에게 그림을 그리게 한 일입니다.”

노의웅 씨는 미대를 졸업한 후 강단(호남대학교)에서 제자를 양성하고 줄곧 작품 활동을 해왔으나 아내 임순임씨는 그림을 배운 바 없는 전업주부였다. 그런 그녀에게 붓을 들게 한 것은 남편 노의웅 씨였다.

노의웅씨는 뛰어난 교육자이다. 칭찬이 학습자에게 얼마나 큰 동기유발을 하는지 잘 아는. 그는 아내가 처음으로 붓을 잡던 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 후로도 그는 아내의 작업에 대해 칭찬을 이어갔다.

“남편 어깨 너머로 배운 것이니 얼마나 잘 그리겠어요? 그래도 남편은 칭찬을 많이 해줬어요. 용기를 얻었죠. 그림을 그리게 되면서 내 일이 있다는 자부심, 목적 있는 삶을 살고 있는 듯한 뿌듯함, 성취감, 그리고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졌어요.”

노의웅 씨 가족은 딸과 사위까지 그림을 그리고 있다. 그래서 가족전을 두 차례가 가졌다. 2년 전에는 노의웅.임순임 부부전을 가져 주변의 부러움을 사기도 했다.

“아내가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면서 둘이 스케치를 자주 나가요. 여행도 더 자주하게 되고, 봄날 야외스케치를 하다보면 송홧가루가 부옇게 아내의 머리 위로 내려 앉아있어요. 그런 풍경을 보는 것이 행복합니다. 이렇게 같이 할 수 있음이. 나만 좋다고 나만 좋은 거에 빠지지 않고 아내도 그림을 좋아하는 것이 얼마나 다행이고 행복인지 모릅니다. 같은 것을 좋아한다는 것은 행운이고 행복이고 더 없는 축복입니다.”

그는 후배들을 만나면 “너희 집사람에게 취미로 그림을 그리게 해라”라는 말을 종종 한다. 대부분의 남자들은 퇴직 후 외롭다고 한다. 같이 놀아줄 친구도, 약속도 점점 줄어들기 때문이다. 자녀들도, 아내도 자기 나름의 생활리듬이 있어 돌아온 남편, 아빠와 놀아줄 만큼 시간이 넉넉하지 않다. 시간이 있다고 해도 딱히 같이 할 놀거리가 없다. 노의웅씨는 나이들수록 부부만큼 친한 친구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노후를 생각해서 아내에게 붓을 건내 준 것은 아니지만 아내의 숨은 끼를 발견하고 그것을 개발하는데 지원을 아끼지 않다보니 퇴직한지 7년이 지난 지금도 365일 24시간을 같이 있어도 행복하다.

그는 지난 1월 말에도 미얀마로 온가족이 스케치 여행을 다녀왔고 설 연휴에도 남해안으로 여행을 다녀왔다. 온가족이 그림을 그리기에 목적 있는 여행이 되고 가족 간의 대화도 풍성하다고 한다. 올 여름에는 부부간에 ‘무작정 떠나는 섬여행’을 할 계획이다. 선착장으로 가서 그곳이 어디든 무조건 가장 빨리 뜨는 배를 타고 들어가 그곳에서 스케치를 하다 또 다른 섬으로 이동하면서 서남해안 섬을 화폭에 담을 계획을 가지고 있다.

노의웅미술관, 2,500여 점 확보 예정

노의웅씨 부부의 꿈은 노의웅미술관을 짓은 것이다. 몇 년 전부터 미술관을 짓기 위해 함평, 나주, 담양 등 여기저기 알아보았으나 무산되었다. 그의 순수한 마음이 자꾸 왜곡 되는 게 싫어서 온전히 자신의 힘으로만 미술관을 짓기 위해 광주교도소 인근에 부지를 확보했다. 전시공간은 50여 평, 수장고는 그보다 5배 정도 크게 지을 생각이다. 미술관을 위해 작품도 2,000여점 확보하고 있다. 앞으로 500여 점을 더 준비할 예정이다. 그가 수없는 개인전을 통해서도 작품을 판매하지 않는 것은, 이렇듯 개인미술관을 짓기 위해서이다.

지금도 하늘을 보며 어린애가 되어 상상의 날개를 편다는 노의웅씨. 화사함과 풍요로움, 편안함이 있는 그곳에 초옥 하나 짓는 게 꿈이었던 그에게, 머지 않아 초옥이 아닌 ‘노의웅미술관’이라는 거대한 꿈이 펼쳐지길 기대해본다.

대동문화 87호 [2015 3,4월호]

정명혜 남부대 언어치료청각학과 교수  webmaster@chkorea.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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