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의 일이다. 수중문화재의 존재가 알려진 전남 진도군 군내면 오류리 바다에서 500여 점의 유물이 쏟아졌다. 고려청자 265점에 용무늬 청동거울과 임진왜란 당시의 포탄, 전통악기 장고의 원형인 요고(腰鼓ㆍ허리가 잘록한 장고)까지 나왔다. 도기로 만든 요고가 발굴된 것은 국내에서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 바다는 삼국시대 초기부터 조선까지의 역사를 간직한 '수중문화재의 보고'였다. 발굴 유물은 삼국시대 초기 토기부터 임진왜란 당시 포탄으로 사용된 석환(石丸)에 이르기까지 거의 전 시기를 망라한다.

특히 발굴된 이형도기(異形陶器ㆍ신라와 가야에서 성행한 특이한 형태의 도기) 2점은 장고의 원형인 요고로 밝혀졌다. 이형도기를 본 따 요고로 복원한 악기장 이복수씨는 말한다. "대칭으로 보이는 좌우 울림통 크기가 미세하게 다르고 울림통 끝 부분에 소리의 공명을 위한 울림테가 있는 점으로 볼 때 악기로 판단된다."

사실 요고가 발견될 무렵 그 물건이 악기라는 걸 누구도 짐작하지 못했다. 시간이 지나 요고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어원과 그 뿌리를 세상에 알린 사람이 바로 악기장 이준수씨였다.

“지난 해 요고가 발견되면서 제가 할 일이 무엇인지 뚜렷해졌습니다. 악기 이름들의 어원과 뿌리를 찾아 기록으로 남기고 싶어요. 그러기 위해서 여기저기 저희 문화와 교류했던 해외 여러 곳들도 다녀야 하고, 일이 많아요.” 이 꿈을 실현하려면 그가 가진 모든 재산을 털어도 부족하다. 하지만 그는 해낼 수 있다는 믿음의 마음을 다지고 있다.

배움 속에서 소리를 피우다

광주광역시 무형문화재 제12호인 악기장 이준수, 그의 손을 통해 가야금과 거문고가 소리를 얻는다.

국악은 우리 계례의 유구한 역사와 전통 속에서 고유의 장단과 가락으로 발전했고, 소리 안에 민족의 얼과 멋이 담겨 있다. 혼이 깃든 소리와 놀이는 슬픈 가락으로 심금을 울리기도 하고, 때로는 신명나는 놀이한마당을 연출했다.

광주시 남구 서동 ‘광일국악사’에서 이준수씨는 매일 우리 소리의 영역을 넓히고 있다. 그는 어떻게 악기와 인연을 맺었을까?

가정 형편이 어려워 그는 겨우 초등학교만 졸업했다. 중학교 진학이 어려워지자 큰 형의 권유로 전주 아리랑 농악단에서 활동을 했다. 12발 쌍모를 돌리고 매구(꾕과리), 소구, 자구 공연을 하면서 50여 명의 단원과 함께 전국 공연을 다녔다. 국악에 대한 타고난 끼를 느끼고 전통국악인의 꿈을 키웠다. 그는 희망을 성취하기 위해 배움을 선택했다. 국악기 제작가 고(故) 김광주 선생의 문하에서 꾸준히 국악기 제작 기능을 전수 받았다.

주간에는 일을 하고 야간에는 공부를 해서 중학 과정 검정고시를 합격하고 야간 고등학교에도 진학했다. “아쉽게도 바로 대학은 가지 못했습니다. 살아가면서 늘 숙제였습니다. 10년 전에 딸아이와 수능을 함께 봤지요. 따로 공부한건 없고요. 살면서 얻은 상식으로 시험 봤어요. 나쁜 점수는 아니더라고요. 저 같은 사람은 특별전형으로 들어가도 된다고 하던데 그러고 싶지 않았습니다. 절차를 밟고 싶었어요.”

평생 제작한 전통악기만 4000점

1985년에 광주로 내려와 지금까지 국악사를 운영하면서 악기 제작과 여러 연주법을 터득했다. 공부도 혼자 하면 별로 재미가 없다. 울림창연구회라는 소리 배움터를 만들어 우리 국악에 대해 함께 공부하고, 애착의 영역도 넓혀 나갔다.

“처음 광주 내려 왔을 땐 정말 힘들었어요. 끼니를 거른 적도 많았지요. 나와 아내는 그렇지만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컸습니다.” 돈이 없어 차를 구입할 수 없었다. 가야금을 양쪽 손에 5대씩 들고 장거리를 걸어야 했다. 10년 동안은 학원과 학교를 찾아 다녔다. 그 시간이 없었다면 이준수의 지금이 가능했을까? 그날들을 생각하면 못 할 게 하나 없다. 긍정의 힘으로 밤낮을 가리지 않고 악기 제작에 몰입한다. 그가 제작한 악기는 1년이면 대략 120점 이상이고, 그 동안 4000점을 넘게 만들어냈다.

“제 딸도 가야금을 합니다. 딸도 그렇지만 많은 국악인들이 저의 악기로 연주 하면 기분이 무척 좋습니다. 그 소리만 듣고 있어도 생의 보람을 느낍니다.”

40여 년 동안 악기를 만들다 보니 궁금한 점도 많아졌다. ‘어떻게 이런 소리가 날 수 있을까? 왜 이런 모양일까?’ 그는 혼자 많이 생각하고 연구도 한다. 특수 재료로 만든 악기도 적지 않다.

전통악기를 연주법으로 분류하면 관악기, 현악기, 타악기로 나누어진다. 그는 27종 50여 가지에 달하는 모든 전통악기를 제작하고 있다. 관악기는 대금, 단소, 태평소, 피리, 소금 , 퉁소가 있다. 현악기는 가야금, 거문고, 아쟁, 개량악기 등이 있고, 타악기로는 장구, 북, 징, 꽹가리, 대북, 모듬북 등이 있다. 그 외에 국악소품과 전통 무용소품, 전통공예품도 만든다.

엄지와 둘째손가락 사이, 단단하게 뭉쳐있는 옹이

악기의 재료와 제작과정은 혼과 정성이 담겨있어야 한다. 예컨대 가야금의 울림판(공명)은 30년이 넘은 오동나무 원목을 먼저 반타원형으로 깎아 3년 이상을 자연 상태에서 건조시킨다. 울림판을 받쳐주는 뒤판은 밤나무를 1차 가공 후에 그늘에서 말린다.

현을 만드는 명주실은 원사를 합사(60종사) 한 뒤 3가닥으로 꼬아 12현을 만드는데 산조용, 정악용, 병창용에 따라 꼬는 굵기가 각각 다르다. 현을 받쳐주는 안족은 벚나무, 대추나무, 돌배나무를 사용해 만든다.

관악기에서 ‘대금’의 재료는 담양과 하동에서 얻는다. 해풍으로 자란 대나무로 양쪽에 골이 파져있는 쌍골대를 사용한다. 악기 제작에 거의 평생을 바친 장인의 엄지와 둘째손가락 사이에 단단하게 뭉쳐있는 옹이에서 고집스런 세월이 느껴진다.

이준수씨는 말한다. “우리의 전통국악은 반드시 민족정신과 혼이 담긴 전통국악기로 가르치고 연주되어야 합니다. 해외 수출을 확대하기 위해 전통국악기 전수관을 설립하고 후학들을 양성해야 해요. 제작한 악기들을 등록상표에 따라 정부가 구입해서 각 기관에 보급해 준다면 전통국악기가 그 맥을 유지하고 더욱 활성화될 것입니다. 사라져가는 오동나무는 국악기 제조뿐 아니라 한약제통, 장롱 등 용도가 다양해요. 정부의 재배 시책이 정말 절실합니다.”

대동문화 88호 [2015 5,6월호]

한경숙 기자  webmaster@chkorea.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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