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병우 작가(65).

그는 여수출신으로 세계적인 사진작가이다.

여수에서 나서 여수에서 유년기 소년기를 보내고 서울에서 학교를 마쳤다. 사진을 하기 전, 그는 회화를 했고, 회화를 하기 전 그는 유도선수였다. 하지만 그의 심미안과 피톨들을 따라 도는 예술적 감흥들은 그를 운동선수로 살게 놓아두지 않았다.

그는 어릴 때부터 바다를 보고, 바다의 소리를 듣고, 바다 냄새를 맡고 자랐다. 해를 품은 것도 바다였고, 달을 품은 것도 바다였고, 별을 품은 것도 바다였다. 바다는 생물이었다. 어느 때는 잔잔하다가도 어느 때는 갈기를 세우며 덤벼들었다. 바다는 그렇게 끊임없이 몸을 뒤척였다. 바다에서 살아 돌아오지 못한 사람도 있었고, 또 삶을 준 것도 바다였다. 그 바다가 있었기에 유년의 삶은 풍요로웠다.

그는 아직도 기억한다. 초등학교 2학년 때 교실 뒤에 걸려있던 그림을. 그 그림에도 바다가 있었다. 크레파스로 그린 그 그림에는 기와집이 큰 나무 아래 엎디어 있었고, 그 기와집 배면으로 멀리 바다가 있었다. 그 그림은 두고두고 작가의 감흥을 이끌어내고, 길라잡이 역할을 했다.

그림 전공 불구 사진에 매력 느껴

전공은 회화. 홍익대학교에서 그림을 공부했지만 그를 매혹시킨 것은 사진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그의 작품들은 회화의 표현기법과 무관하지 않다. 회화적 기법들이 다양해지면서 사진은 회화와 결합하기도 하고, 아예 사진작업으로 회화적 표현을 내는 작가들도 있고, 그 두 개의 세계를 오가는 작가들도 있다. 작가는 후자인 셈이다.

사진과의 만남은 우연이었다. 서울에서 유학할 당시 외삼촌 댁에 머물고 있었는데, 그 외삼촌이 사진을 했던 것이다. 작가는 그 외삼촌의 암실에 들락거리면서 자연스럽게 사진을 접하게 되었다.

모든 예술의 기본은 같다. 심미안과 감수성이 없으면 할 수 없는 것이 예술이다. 그런 점에서 모든 예술은 일맥상통한다. 회화를 전공한 것이 지금의 사진 작업에 큰 도움이 되었다. 그런 작가에게 세상은 모두 작품의 대상이고, 탐닉해야할 대상이다. 그의 작품을 보고 있노라면 새삼 자연에 대한 경외감이 든다. 하지만 그가 고집스럽게 앵글에 담아내는 것은 따로 있다. 그것은 바로 섬과 바다. 사실 소나무 작가로 더 잘 알려져 있는 작가지만 그가 정작 애정을 가지고 있는 대상은 섬과 바다이다.

유년 시절부터 섬 소년을 매혹시키고, 끊임없이 섬 소년을 이끈 것은 바로 섬. 작품 속, 바다가운데 떠있는 아득한 섬은 아릿한 슬픔마저 안겨준다. 작가에게 섬은 어떤 의미일까. 그의 정서 속에는 남도 끝자락 햇볕 바른 고향에 대한 향수와 애정이 지문처럼 남아있다. 기실, 소나무로 세계적 이름을 얻었지만 그가 더 애틋하게 생각하는 것은 섬이고, 그것은 태생적 젖줄이었다.

섬은 그에게 끊임없이 영감을 주고, 그를 다독이며, 그를 이끈다. 다시 말해 섬은 그에게 있어 어머니이자, 자궁이며, 자신의 정체성과 근원을 찾게 해주는 예술적 원천인 것이다. 그런 작가는 세계를 돌아다니며 다양한 풍경을 앵글에 담으면서도 섬과 바다를 잊지 않았다.

“소나무 작가로 알려졌지만 정작 제가 좋아하는 대상은 바다입니다. 소나무가 아버지라면 바다는 나에게 있어 어머니이죠. 바다는 나에게 고향이고, 영감의 원천이며, 가장 마음이 편안해지는 세상입니다.”

그런 작가는 특히 우리나라 섬과 바다에 무한한 애정을 갖고 있다.

그래서일까. 그의 섬과 바다는 생명의 근원 같은 아련함을 품고 있다. 그냥 우리가 늘 보던 섬과 바다지만 그의 작품 속에서 그 섬과 바다는 더 이상 우리가 알던 그 섬과 바다가 아니다.

그의 섬과 바다는 마치 수묵화를 보듯 농담의 선과 면으로 자리한다. 짙푸른 바다색깔, 바다를 닮은 하늘, 검은 빛으로 웅크리고 있는 바위들은 그의 작품 속에서는 색을 죽이고 흑백의 선과 면으로만 자신의 존재를 드러낸다. 섬에 피어있는 꽃들조차도 점점의 흰꽃으로 표현돼 마치 어느 이의 영혼처럼 보인다.

그의 소나무 역시 마찬가지이다. 늘 푸르러 기개의 상징으로 불리는 소나무는 그의 작품 속에서 기개 대신 강인한 생명력을 드러낸다. 게다가 과감히 어느 한 부분에 집중함으로써 섬뜩하면서도 두려움마저 갖게 만든다.

그는 왜 그렇듯 단조로운 색감을 작품 속에 사용할까.

그의 작품에도 여백이 존재한다

그가 유년시절과 청소년 시절을 보낸 그곳은 남종화의 맥을 잇고 있는 고장이었다. 실경산수보다는 이상적 세상을 지향하는 남종화. 남종화에서 여백은 비어있어 차라리 더 많은 말을 담고 있다. 그의 작품에도 여백이 존재한다. 어릴 때부터 늘 보아왔던 그 수묵의 세상을 그는 사진으로 표현해보고 싶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그의 작품을 보고 있노라면 마치 한 폭의 수묵화를 보는 듯하다. 그래서 더 웅숭깊고 비장하며, 애틋하다.

그의 작품은 실경을 담고 있으면서도 왠지 실경이 아닌, 상상의 세계나 선계인 듯하다.

“사진은 곧 빛으로 그린 그림입니다. 저는 나무와 섬을 찍을 때도 동이 트기 직전, 여명의 순간을 찍습니다.”

이 말은 빛을 잘 알아야 좋은 작품을 얻을 수 있다는 말일 것이다. 그의 작품이 갖는 수묵의 느낌은 바로 그 여명의 순간, 막 빛을 품고 깨어나는 모습인 것이다.

국내에서 그가 가보지 않은 섬은 거의 없을 정도이다. 그의 고향인 여수 앞바다를 비롯해 홍도, 완도, 백도, 거제도, 거문도, 진도, 소리도, 속초, 제주도 등 섬이란 섬은 직접 찾아가 눈으로 확인하고 작품에 담았다. 그는 아마 그 섬들이 갖는 각각의 물빛과 돌과 바람과 파도 소리와 냄새들도 다 구분해낼 것이다. 작가는 그 섬에 대한 이야기와 기억과 풍경들을 고스란히 작품에 담아 전시를 통해 우리들에게 보여주었다.

기실 배병우 작가는 처음부터 흑백을 사용한 것은 아니었다. 컬러로 담아낸 섬과 바다도 있었지만 왠지 그 섬과 바다는 아련하지 않았다. 하여 그는 색을 최소화해 섬과 바다를 나타냈다.

그렇게 지금까지 섬과 바다에 몰두해온 작가가 소나무를 찍게 된 것은 낙산사 소나무를 보게 되면서부터였다. 그때가 서른 세 살. 낙산사 소나무를 찍기 시작하면서 그는 전국의 섬과 바다를 찾아다니던 열정으로 소나무를 찾아다녔다. 낙산사 소나무로 처음 소나무를 찍기 시작했지만 지금 그가 가장 좋아하는 소나무 숲은 경주에 있는 소나무 숲이다.

예술가들은 자연과 교감하는 부분이 특별하다. 사람들은 듣지 못하는 자연의 소리를 듣기도 하고, 살아있는 기운을 느끼기도 한다. 그에게 경주의 소나무 숲은 특별했을 것이다.

수묵화 느낌 작품들 유럽서 인기

특히 그의 작품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유럽인들이다. 한국의 전통 화풍인 수묵화의 느낌을 가진 그의 작품들은 유럽에서 꽤나 인기가 있다. 스웨덴, 핀란드, 이태리, 독일, 네덜란드, 벨기에, 스페인 등 유럽 전역에서 그의 작품들이 그를 대신해 한국의 소나무와 섬과 바다를 이야기한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엘튼 존 역시 그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엘튼 존은 우리가 그냥 가수로만 알고 있는데 예술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높습니다. 이름난 미술 콜렉터입니다. 작품을 수집하는 데 있어 굉장히 까다롭습니다. 특히 그는 사진 콜렉터로 유명합니다. 사진 발명시기부터 시작해 사진에 관한 모든 것을 수집합니다. 양과 질에서 박물관을 제외하고는 첫 번째 입니다.”

하긴 엘튼 존뿐일까. 세계 유명 콜렉터들은 그에게 러브콜을 보낸다.

작품에서 뭘 보여주고 싶냐는 물음에 작가는 잠시 뜨악한 표정을 지었다. 작품은 보는 이에 따라 각기 달라진다는 진리를 나는 잊은 것이다. 아마도 그것은 연신 꿈틀대는 소나무가 주는 경외감 때문이었고, 그의 작품 속에 들어있는 섬이 주는 어떤 비감함 때문이었을 것이다.

돌아오는 답은 명쾌했다. 우문현답이었다.

“그냥 보는 이에 따라 달리 보이겠지요. 무용을 하는 사람은 나무가 마치 춤을 추는 것처럼 보일 테고, 동물학자는 나무가 스네이크로 보일 테고, 누군가는 그냥, 그림으로 보는 이도 있을 테고, 또 신화의 무대로 보는 이도 있겠죠. 그들이 보는 대로 보면 그만입니다.”

오랫동안 나무를 찍어온 작가답게 그는 숲에서 많은 정보를 알아챈다. 건강한 숲과 병든 숲을 알아보고, 숲의 나이를 짐작한다. 수령 백 살 전후의 나무가 많으면 숲이 융성하고, 그 수령을 넘어가면 숲이 쇠퇴한 느낌을 받는다. 숲을 이룬 나무들이 20~30년생이면 어린 숲이다. 그는 그 나무들에게서 자연스럽게 인간을 본다.

“우리의 숲은 서양의 숲에 비래 아직 어려요. 서양은 개인이 가꾼 숲만 해도 어마어마하죠. 그래서 숲과 나무에 대한 스토리가 많아요. 나무와 관련된 신화도 많구요. 사람은 그곳에서 휴식을 얻고 영감을 얻는데, 우리는 아직 그러지 못해요. 지금은 조금씩 숲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하고 숲을 가꾸는 이들도 늘어나고 있지만 아직 서양의 숲에 비하면 우리의 숲은 어려요.”

왜 우리에게도 나무에 대한 전설이 없고, 나무에 대한 이야기가 없고, 숲이 없겠는가마는 그에게 아직 우리 숲은 어리기만 하다.

파주 해이리 방문 때마다 대나무 식재

그가 살고 있는 곳은 서울 동부 이촌동.

서울 부촌에 살고 있는 작가는 파주 해이리로 산책을 나갈 때마다 그곳에 다녀갔다는 흔적으로 나무를 심고 있다. 소나무를 심고 싶었지만 워낙 가격이 비싸 대신 대나무를 심고 있다고 했다.

그가 심은 대나무는 시간이 가고 세월이 갈수록 울울창창 깊은 그늘을 간직한 숲이 될 것이다. 그렇게 한 세상을 이루고, 사람들에게 많은 이야기를 선물하고 상상력을 자극할 것이다. 그 대나무 숲은 작가에게 하나의 나무이자, 또 하나의 섬일 것이다.

섬은 그렇게 다양한 형태로 그의 안에 존재할 것이다.

그는 지금도 좋은 사진을 얻기 위해 탐험 중이다. 세상은 넓고 그를 기다리는 것들도 많다.

그런 작가는 지금 서울 예대에서 제자들에게 자신이 체득한 것들을 알려주고 있다.

“아직 작품에 대한 아쉬움이 많습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죽을 때 그랬습니다. 내가 가치 없는 작품을 만들어서 신과 인간에게 미안하다고 말입니다. 마찬가지로 저도 아직은 많이 아쉽습니다. 작품이란 평생을 노력해도 작가가 만족하는 작품을 얻기가 어렵죠. 그런 점에서 더 노력해야지요.”

그가 만족하는 작품은 과연 어떤 것일까.

사진을 예술적 경지로 완벽하게 끌어올린 그는 아직 목이 마르고, 겸손하다.

대동문화 88호 [2015 5,6월호]

은미희 소설가  webmaster@chkorea.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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