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즐겁다. 어쩌면 저렇게 아기자기 하고 예쁠까. 유과, 정과, 매작과, 각종 과일로 만든 전과류가 눈을 사로잡는다. 먹기에는 너무 아까운, 그래서 한참을 바라만 보고 있는데 주인장이 내놓은 차의 향과 빛깔이 또 눈길을 잡는다. 차를 곁들이니 훌륭한 다과상이 되었다. 이 차는 담양의 상징인 댓잎으로 만든 것이다.

한과, 보는 즐거움 먹는 즐거움

담양군 창평면 삼천리 유영군 씨 댁의 사랑방 풍경이다. 삼천리가 슬로시티로 지정되면서 유영군 씨 댁을 찾는 이들이 부쩍 많아졌다. 유영군 씨 가족이 만든 한과와 조청, 쌀엿, 그리고 차를 음미하고 예스런 정취를 느껴보고 싶어서이다.

광주에서 창평을 가다보면 길가에 유독 많이 띄는 것이 ‘한과’ 안내판이다. 한과는 특별한 날, 그러니까 추석이나 설날, 제삿날이나 집안의 큰 행사 때나 만들어 먹던 과자이다. 명절 때가 되면 한과와 약과를 만드는 일은 여인네들의 큰일 중 하나였다. 유난히 손이 많이 가기 때문이다.

집안이 넉넉한 집에서는 조청을 만들기도 했다. 인절미나 쑥떡, 가래떡을 조청에 찍어 먹는 맛을 60대 전후의 어른들은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장작불이 지펴진 솥 옆에 앉아 엿을 저어가며 밤을 지새던 어머니의 정성만큼 맛있고 달콤하고 쫀득했던 그 맛을….

그 맛을 정확히 기억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 호정식품 대표 유영군 씨(66)다. 그는 그 맛을 잊지 못해 지난 1990년, 마을 주민 8세대와 함께 조합을 만들어 한과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가 사업 제안을 했을 때 함께 하는 주민들도 반신반의했다. 누가 한과를 돈을 주고 사먹겠냐는 것이다. 그러나 2015년 현재 창평 관내에는 한과를 만드는 세대가 50여 곳. 광주에서 창평 가는 도중에 유난히 한과 안내판이 많은 이유가 그 때문이다.

“이제는 먼 과거가 되어버렸지만 어린 시절 어머니께서 만들어주신 한과와 쌀엿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뭉클하죠. 요즘처럼 주전부리가 흔하지도 않던 때 항아리에 넣어두었던 엿, 하얀 가루가 가득 묻어있던 그 엿 한 개 먹으면 참으로 행복했어요. 그런 행복했던 순간, 그리고 할머니, 어머니의 사랑과 정성이 늘 그리웠습니다. 그래서 시작했어요. 한과와 쌀엿은 먹거리를 넘어 민족의 정서와 혼이 담겼다고 생각합니다.”

천년 민족혼 담긴 옛과자, 4대째 맥을 이어

호정식품이라는 상호는 유영군 씨의 호에서 따왔다. 호정(胡靜)이란 그의 성격이 호수처럼 잔잔하다는 뜻에서 고광신 선생이 지어준 호이다. 호정식품은 1990년에 문을 열었지만 손맛은 4대째 맥을 이어가고 있다. 유영군 씨의 할머니가 어머니에게 물려준 그 맛을 유영군 씨가 재현하고 그의 자녀들이 아버지 뒤를 잇고 있기 때문이다. 아내와 큰딸은 상품 개발과 공장 운영을, 둘째딸은 연구를, 아들은 해외 마케팅을 맡고 있다.

“한과의 맛은 조청에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깊은 맛을 낼 수 있을까 늘 고민합니다.”

유영군 씨는 한과 사업이 농촌 경제를 살리고 농민의 소득을 올릴 수 있다고 말한다. 창평 관내 50여 한과 생산 농가에서 한해에 소비하는 쌀은 200여 톤. 20kg 쌀 1만 가마 분량이다. 거기에다 유 대표 공장에서 소비하는 물량(400톤)까지 합하면 창평에서만 일 년에 20kg 쌀이 3만 가마 소비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쌀 소비량이 갈수록 줄어들면서 국민 1인당 하루 쌀 소비량이 2공기도 안된다고 한다. 쌀이 넘쳐나고 천대 받는 시대가 되었다. 그런데 면 단위에서 일 년에 이렇게 많은 양의 쌀이 소비된다는 것은, 분명 농민들에게 반가운 소식이다.

“한과 사업이 좋은 이유가 여러 가지 있죠. 첫째, 조청이나 한과를 만드는 과정에서는 공해나 폐수가 생기지 않고 둘째, 원료를 직접 생산한다는 것이죠. 조청은 쌀과 엿기름만 있으면 돼요. 자신들이 농사지은 쌀로 만들 수 있으니 좋고 셋째는, 쌀 자체로 팔 때보다 한과나 조청으로 판매할 경우 그 수익이 몇 배나 크다는 것입니다.

이 작업은 농한기에 합니다. 농외소득으로 이어지고 농한기에 일손 창출도 할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쌀 80kg를 운반하려면 물류비가 아무래도 많이 들지만 조청으로 만들면 무게가 절반으로 줄어듭니다. 그러니 물류비를 줄일 수 있어서 좋고 특별한 기술이 없어도 만들 수 있습니다.”

이후로도 유 대표의 한과 애찬론은 한참 계속되었다. 그때 옆에 있던 딸이 “기술 없이도 누구나 만들 수 있다.”는 아버지 말에 제동(?)을 걸었다.

“조청이나 한과, 누구나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닌 것 같아요. 저도 10년째 이 일을 하고 있지만 할수록 어려워요. 아버님은 어렸을 때부터 증조할머니, 할머니가 하시던 것을 봐왔고 그 맛을 기억하니까 쉽다고 하지만 저는 지금도 어려워요.”

큰딸 유수진 씨(38)의 말이다. 신방과를 나온 그녀는 방송국에 근무하다 10년 전에 아버지 사업에 뛰어들어 지금은 호정식품 운영 전반에 걸쳐 관리를 하고 있다.

“아버지는 항상 새로운 것을 추구하세요. 이렇게 생각해봐라 하시면서 자꾸 아이디어를 주시죠. 아버지는 항상 최초였어요. 엿으로 사업을 하겠다고 한 것도, 한과로 사업을 하겠다는 것도 또 대나무로 차를 만드는 것도 최초였죠. <동의보감> 등 의학 서적도 많이 보시고 늘 연구하고 겉으로 보면 정적으로 보이지만 굉장히 역동적인 분이세요.”

농가 소득도 올리고 소비자 건강도 챙기고

유영군 부녀가 한과 외에도 새로운 상품으로 개발한 것은 ‘대잎차’와 ‘대잎엿’이다. 늘 연구하고 새로운 것을 찾던 부녀의 아름다운 동행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대잎차’는 11개 국에서 수출되고 있고 ‘대잎엿’은 매니아층이 형성되어 있다.

담양은 예부터 대나무의 고장이다. 그런데 대나무는 대부분 바구니 등 생활용품을 만드는 데 사용했는데 요즘은 의약품을 비롯하여 그 영역이 넓어지고 있다. 유영군 씨도 대나무를 이용하여 차와 환, 액기스, 분말을 만들었다. 분말은 국수를 만든다든가 떡을 만들 때 한과를 만들 때 천연 색을 내는데 사용한다. 그가 생산하는 ‘대잎차’는 한 해 20톤. 차를 만들기 위해 관내 90여 가구에서 대나무 잎을 사들이는데 쓸모없이 버려진 댓잎을 이용하니 농가 수입도 올려주고 대나무의 찬 성분이 몸의 열을 내려주어 스트레스가 많은 현대인들의 건강까지 챙겨줄 수 있으니 일석이조다.

아가, 너희 지방에는 이런 음식도 있구나!

새로운 상품 개발과 연구에 매진하던 그에게 암이라는 빨간불이 켜졌다. 암이란 안의 기운이 순환이 잘되지 않을 때 생길 수 있다. 유수진은 댓잎의 찬 기운과 엿의 뜨거운 기운을 이용하여 몸의 기운을 순환시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고 그것이 댓잎과 쌀엿이 만난 ‘대잎쌀엿’이다.

쌀엿은 엿기름과 쌀만 가지고 만들다. 엿기름에는 소화 촉진제 성분이 있고 쌀은 몸을 따뜻하게 하는 기능이 있어 소화가 되지 않을 깨 쌀엿을 먹으면 소화가 잘 되고 몸이 찬 사람이 먹으면 몸이 따뜻해진다. 여기에다 대나무의 찬 기운을 섞으니 자연이 주는 오묘함일까, 입안이 껄껄하고 자꾸 입이 말라서 음식을 먹지 못하겠다는 사람들에게 좋은 치료 효과를 준 것이다.

“입이 말라서 혹은 입이 써서 아무 것도 먹지 못하겠다는 사람들이 대잎쌀엿을 먹고 입안에 침이 된다고 하면서 이것을 평생 만들 거냐고 물어요. 앞으로도 계속 먹어야겠는데 맥이 끊어지면 어떠냐는 거지요. 이런 말을 들을 때 제가 이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이 행복해요.”

유수진 씨의 말이다. 그녀를 신나게 하는 일은 많다. 담양에 사는 아가씨가 예비 시댁에 인사차 가면서 호정한과를 선물로 사갔다. 예비 시어머니는 “아가, 너희 지방에는 이런 음식도 있구나!”하면서 칭찬을 받았다는 말을 들었다.

지킨다는 것은, 인내와 헌신과 용기가 필요하다. 엿과 조청이라는 시장이 형성되지 않았을 때 시장을 개척하고 그것을 지역 주민과 나누면서, 전통을 지켜가는 부녀의 아름다운 동행이 2015년 한해의 끝을 더욱 따뜻하게 해준다.

대동문화 91호 [2015 11,12월호]

정명혜 남부대 언어치료청각학과 교수  webmaster@chkorea.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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