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태어나서부터 생을 마감할 때까지 마디마디마다 행하는 관혼상제(冠婚喪祭). 우리는 이런 것을 통과의례라고 하는데 통과의례에는 반드시 음식이 따른다. 이때 나누는 음식이 의례음식이다.

지난 해 국민들에게 가장(?) 사랑을 받았던 방송은 요리 프로가 아니었을까 싶다. 일명 쿡(COOK)방. 종편에서는 물론 공중파 방송에서도 연예인과 셰프들로 팀을 꾸려 음식 관련 프로를 경쟁적으로 제작하였다.

방송에 나온 셰프들은 연예인을 능가하는 인기를 얻으면서 광고 모델, 강연, 집필 등 종횡무진 하는 모습이다. 그래서일까? 요즘 청소년들 사이에는 ‘셰프’ 열풍이 불고 있다고 한다.

즐겁게 음식을 만들고 그것을 맛있게 먹는 모습은 기분 좋은 일이다. 그러나 ‘음식을 쇼를 하듯, 또 운동경기를 하듯 저렇게 소란스럽게, 경쟁적으로 만들어야 할까’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음식을 만들고 그것을 나누는 것은 음식 자체에도 의미가 있지만 그 음식에 담겨진 마음과 정성 또한 소중하기 때문이다. 엄마의 밥상이 늘 그립고 애틋한 것은 그 때문일 것이다.

요란하지 않으면서도, 있는 듯 없는 듯 항상 우리를 따뜻하게 해주는 엄마의 밥상처럼 묵묵히 ‘전통의례음식’을 만들고 가르치고 연구하는 이가 있다. 최영자씨(81)와 이은경씨(52) 모녀이다. ‘전통’이라거나 ‘의례’라는 말이 이제는 진부하게 들리는 요즘, 20여년 넘게 이바지 음식을 만들고 폐백상을 차리고 한과를 만들어온 이들의 삶은 참으로 행복해보였다.

술맛도 모르면서 간은 어찌 이리 잘 맞추노

최영자씨는 남도의례음식장(광주광역시 무형문화재 17호)이다. 사람은 태어나서부터 생을 마감할 때까지 마디마디마다 행하는 의식이 있다. 백일, 돌, 결혼, 회갑, 고희 등등, 관혼상제(冠婚喪祭)가 그것이다. 우리는 이런 것을 통과의례라고 하는데 통과의례에는 반드시 음식이 따른다.

이때 나누는 음식이 의례음식이다. 의례의식에는 각기 규범화된 의식이 있고 그 규범과 의식에 따라 차려지는 음식 또한 달랐다. 뿐만 아니라 의례음식은 지역마다 내용이나 만드는 방법이 달랐는데 남도지역에 전해오는 의례음식을 전수 받고 전수시키고 있는 이가 바로 최영자씨다.

“요즘이야 의례음식이다 뭐다 구분하지만 제가 클 때만 해도 여자라면 자연스럽게 의례음식을 배웠고 할 줄 알아야 했어요. 물론 솜씨 차이는 있었죠. 우리 친정은 머슴을 둘 셋씩 둘 정도로 농사도 많이 짓고 또 종가라서 일 년이면 제사도 많고 행사도 많았어요. 그러다 보니까 음식을 만들 기회가 많았고 또 어머니가 솜씨가 좋아서 동네 잔치든 집안 행사든 마른 자리에서 일을 하셨어요.”

최씨가 살았던 시대만 해도, 손끝 야문 여자들이 대접(?)을 받던 시절이었다. 바느질을 잘 한다거나 수를 잘 놓는다거나 음식을 잘 하면 진자리(설거지 같은 일을 하는 것)가 아닌 마른자리에 앉아서 일을 도왔다. 최씨의 어머니도 딸들에게 그런 부분을 강조했다고 한다.

“제가 술을 빚으면 간이 딱 맞다고 했어요. 그러니까 사람들이, 시집도 안 간 처녀가, 술맛도 모른 처녀가 어쩌면 이렇게 술을 잘 빚냐고 칭찬들 하셨죠. 제 술맛 때문에 다른 데 안가고 우리집에서 쭉 일한 머슴도 있었어요.”

여느 처녀들처럼 집안일을 돕다가 21살에 결혼한 그녀는 광주에 신접 살림을 차리고 슬하에 1남4녀를 키우며 전업주부로 생활해왔다. 그러던 어느날 남도의례음식 무형문화재 7호이며 당고모인 이연채 여사가 광주에 산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이연채 고모님은 아버님의 고종사촌 동생이죠. 고모님은 친정이 광산이씨 대종가이고 시댁 또한 벌죽하여서 전통음식을 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지만 고모님께서 언젠가 그런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시부모님이며 고모부님이 얼마나 까탈스러웠는지 그 입맛 맞추다 보니까 솜씨가 늘었다고. 신선로며 다식, 구절판 등 전통음식에 조예가 깊으셨는데 특히 폐백닭은 일품이었어요.”

최씨는 이연채 여사 집에 드나들면서 딸을 넷 둔 엄마로서 딸 폐백만은 자신의 손으로 해주고 싶었다고 한다. 그래서 열심히 고모님께 배웠고 그런 조카의 모습에 흡족해 하던 이연채씨는 그녀에게 남도의례음식을 배워보면 어떻겠냐고 권하게 되었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평범한 주부였던 최영자씨가 오늘날에는 가장 바쁜 할머니(?)로 성장하게 된 것이다.

그녀는 1994년 광주YWCA ‘일하는 여성의 집’에서 강의를 시작으로 호남대학교, 남도향토음식박물관, 전통문화관에서 전통음식강좌를 해왔고 지금도 하고 있다. 인터뷰 전날에도 남도향토음식박물관에서 딸 은경씨와 함께 외국들에게 한국음식체험 교육을 시켰다고 한다.

광주YWCA에서 처음 강의를 할 때만 해도 레시피가 없었다. 그래도 그의 강의는 매회 모집인원이 초과되었다. 그녀에게는 레시피를 능가하는 ‘눈대중’이라는 탁월한 DNA가 있었기 때문이다.

전통은 서두르지 않는다

최영자의 둘째 딸인 이은경씨(52)는 남도의례음식장 이수자이자 남도전통음식연구소 소장이다. 지난 해 10월, 어머니와 함께 광주시 서구 농성동에 남도전통음식연구소를 차렸다.

“어머니나 저나 외부 강의를 많이 나가죠. 그런데 그곳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짧은 시간에 배워야 하니까, 깊게 들어가기가 어려웠어요. 전문적으로 혼례음식이나 전통음식을 배우고 싶어하는 사람들은 담양에 있는 어머니집에 오셔서 배웠는데 그것도 한계가 있어서 연구소를 개소했어요. 전통음식에 대해 관심을 갖게 하려면 그것을 지도하고 전수하는 사람을 양성하는 것, 그것이 저의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어머니에게 하나라도 더 배워서 그것을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것도요.”

이은경씨는 어머니의 ‘눈대중’과 ‘손끝’의 감각을 레시피로 만들었다. 어머니에게 있어 딸은 든든한 지원군이고 딸에게 있어 어머니는 큰 스승이다.

“어머님은 늘 말씀 하시죠. ‘전통은 서두르지 않는다. 기본을 닦아라.’라고. 여기 오시는 분들 중에는 어떤 음식 하나를 선택해서 그것만 빨리 배우고 싶어해요. 하나만 배우면 빨리, 또 예쁘게 만들 수는 있으나 응용을 못해요. 전통음식을 하려면 진득하게 꾹 참고 견뎌야 자신의 이력서를 2-3장 정도 쓸 수 있는 스펙을 쌓을 수 있어요.”

그래서 일까, 이은경의 이력서는 3장이 넘어간다. 1999년 한식조리기능사를 시작으로 전통음식지도사, 전통혼례음식기능사, 전통병과기능사, 양식.일식.중식기능사, 아동요리지도자, 식품가공기능사까지 다양한 자격증을 가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수상 경력이 화려하다. 제1회 전통음식경연 광주.전남대회 전통폐백분야 종합우수상을 비롯하여 김치응용요리경연대회, 통과의례음식 대상 등 온갖 대회에서 상을 휩쓸었다. 그러나 지난 해부터는 대회에 참여하지 않는다고 한다. 제자들에게 그 기회를 주고 싶기 때문이다.

제자들은 그녀의 마음을 알았는지 짧은 기간에 대상을 비롯한 최우수상, 동상 등을 수상했다. 올해는 제자들과 전시회도 하고 의례음식에 관한 책도 펴낼 계획이다. 늘 학구적인 자세를 견지하는 이은경씨는 2011년에 남부대학교 식품영양학과를 졸업하고 지난해에 대학원에 진학하여 남도의례음식장 이수자로서 소명을 다 하고 있다.

“전통음식은 하면 할수록 ‘참으로 지혜로운 음식이구나’라는 생각을 합니다. 이 일을 만나게 해주고 가르쳐주시는 어머니가 계셔서, 또 저와 함께 연구하고 배우는 제자들이 있어서 얼마나 행복한지 몰라요.”

모녀이자 동료이고 동반자인 최영자·이은경씨. 그들은 오늘도 연구소 문을 열고 들어오는 제자들이 있어 외롭지 않고 그들과 함께 배우고 가르칠 수 있어 기쁘다.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라고 했던 공자의 말처럼.

대동문화 93호 [2016 3,4월호]

정명혜 남부대 언어치료청각학과 교수  webmaster@chkorea.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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