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직속 자문기구인 문화융성위원회는 지난 2013년 8월 광주에서 지역문화현장 토론회를 개최하였다. 문화융성위원회가 설립되고 나서 각 지역이 처한 문화적 현실과 특수성을 문화정책으로 반영하기 위해 전국을 순회하며 여는 행사인데 광주를 가장 먼저 찾은 것이다.

그만큼 문화적 측면에서 중앙에서 광주를 보는 시선은 달라져 있다. 대규모 국책사업인 아시아문화중심도시조성사업이 진행 중에 있다는 무게감이 작용한 결과일 터이다.

문화융성위원회는 현 정부의 국정기조 중 하나인 ‘문화융성’ 실현을 위한 구체적 추진전략과 방안을 세우기 위해 출범했다. 따라서 문화융성에 대한 국민의 관심과 참여를 위한 공감대 형성을 중요한 과제로 생각한다.

이를 위해 문화개념의 확대와 문화적 가치의 사회적 확산을 위한 사업들을 전개하고 있다. 그 대표적인 사업이 ‘문화가 있는 날’이다. 매달 마지막 수요일에 영화관, 공연장, 미술관 등 전국에 있는 문화시설을 할인하거나 무료로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또한 지역문화융성 우수사례도 공모하고 있다. 2014년 광주문화재단이 역사문화마을 양림동에서 추진했던 ‘양림성장형 공공미술 프로젝트’가 우수사례로 선정된 바 있다. 주민주도로 작가들과 함께 진행했다는 점이 높은 점수를 받았다.

문화체육관광부는 문화융성을 문화가 융성한다는 의미와, 문화를 통해 국가가 융성해진다는 두 가지 의미로 정의하고 있다. 첫 번째 문화의 융성은 인문, 예술, 콘텐츠, 체육, 관광 등 문화 분야의 역량이 향상되고, 예술가의 창작과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며, 시민들의 문화향유권과 문화다양성이 확대되는 것을 말한다. 두 번째 문화를 통한 융성은 문화의 융성이 다른 사회 분야의 발전에 기여하는 것을 말하고 있다.

그러나 문화융성이 현 정부 문화정책의 근간을 형성하고 있다고 해도 지역에서 실현되고 확산되지 않으면 구두선에 그치고 말 것이다. 지역은 생활의 공간이자 삶의 뿌리가 천착된 곳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역문화융성은 문화융성의 핵심이자 국가 문화발전의 동력임에 틀림없다.

지역문화융성의 실현과 과제

지방문화원진흥법과 문화기본법 그리고 2014년 1월 지역문화진흥법(이하 진흥법)이 마침내 제정됨으로써 지역문화진흥을 위한 3대 기본법은 완성되었다. 법과 제도의 정비에 따른 후속조치로 낙후된 지역문화의 부흥에 대한 기대도 더불어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지역을 돌아보면 문화현장은 여전히 열악하고 해결해야 할 과제들도 산더미처럼 쌓여있다.

2012년 10월 광역단위 13개 지역문화재단들이 현안에 대한 정책 대안과 공동대응을 모색하기 위해 결성한 ‘시·도 문화재단 대표자회의’에서는 현행 진흥법의 한계와 문제점을 지적하고 법 개정을 주장하고 있다.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적하는 부분은 제1조 목적과 제3조 기본원칙 부분이다. 21세기는 다양하고 고유한 각 지역의 문화의 가치를 발현시킴으로써 진정한 지역문화융성이 가능한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진흥법은 20세기의 지방 균형발전 논리에 근거한 ‘지역 간의 문화격차 해소’를 목적으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진흥법의 목적과 기본원칙은 지역의 다양성과 고유성을 바탕으로 한 ‘지역문화 분권’과 ‘지역문화 자치’로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중앙에서 보는 지역문화는 문화자치를 하기에는 지역의 기초역량이 부족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5년마다 수립하는 법정계획인 지역문화진흥 기본계획을 보면 지역문화의 문제점으로 가장 먼저 기초역량 부족을 지적하고 있다. 원인은 관 주도의 사업추진과 하향식 정책 추진, 단기적 성과 지향에 길들여져 자율적이며 지속적인 사업 추진이 어렵다고 본다.

또한 지역문화 인력의 서울 및 수도권 집중으로 문화인력이 부족하고 지역인재 양성 및 활용 시스템이 미비하며 중앙과 지역 간 협력을 위한 문화행정 거버넌스 취약으로 지역 문화정책의 체계적 추진을 위한 시스템 구축의 어려움을 지적하고 있다. 즉 지역의 기초역량 부족이 지역 간 문화 격차 및 문화향유 불균형 현상을 야기하는 것으로 보고 있기 때문에 이의 해소가 진흥법 제정의 목적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러한 중앙의 관점은 지역의 시각과는 상당한 온도 차이를 느낄 수 있다. 지역에서는 지역 간 문화격차 해소 차원에서 중앙정부 주도로 서울과 같은 수준으로 문화시설을 건립하고 예술창작을 지원하는 것은 지역을 문화융성의 주체가 아니라 객체로 전락시킨다고 본다.

이는 지역 간의 문화격차를 해소하여 문화수준을 상향조정하는 균형발전의 관점이냐 또는 서울이나 수도권 보다는 문화수준이 떨어지지만 지역문화의 특성과 고유의 결을 살려나가는 문화분권 및 문화자치의 관점이냐 차이로 볼 수 있다.

문화분권과 문화자치의 관점 존중해야

지역 간 문화격차 해소 차원에서 시행된 대표적인 사업이 2009년부터 시작된 문화예술진흥기금의 지역협력형 사업이다. 이 사업은 국비와 지방비 매칭 방식으로 시행하고 있지만 이 지역협력형 사업의 확대는 지역을 중앙정부 정책사업의 수탁 사업소로 전락시켜 궁극적으로 지역문화의 다양성을 훼손하는 결과를 유발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정부정책으로 설계하여 모든 지역이 똑같이 시행하는 방식으로 어떻게 지역문화의 특수성이 반영 되냐는 거다. 지역협력형사업의 시발점이 정부의 문화정책이어서 지역의 정책결정권은 처음부터 제한적일 수밖에 없는 한계를 안고 있었다는 점이다.

또한 지역문화융성의 실현을 위해서 지역문화재원의 확보는 필수적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지자체들은 재정적자에 허덕여 지역문화의 재정 안정성이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는 상황이다. 더군다나 문화예술진흥기금은 2017년 사업예산 편성이 불가능할 정도로 내년이면 기금이 완전 고갈할 예정이다.

진흥법에서는 재원 확보에 관한 지자체의 책무만을 명시했을 뿐, 국가 차원의 지역문화진흥기금 설치나 구체적 재정 확보 계획은 빠져있어 법의 실효성이 의문시 된다. 문화 관련 목적세의 신설, 지방세인 레저세의 과세 대상 확대, 담배소비세 등에서 징수하는 (가칭)지방문화세 신설 등 다양한 지역문화 재원확보 방안을 적극적으로 모색해야 할 것이다.

21세기 문화융성은 문화예술의 변화 및 새로운 트렌드, 소비자의 취향과 시장변화, 시대적 요청 등에 대한 적극적 대응전략과 새로운 문화정책의 추진 결과로 나타난다. 이를 주도하는 동력도 문화예술을 기반으로 한 창의적 콘텐츠로부터 나온다.

이러한 맥락에서 작년 11월 개관한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의 역할과 기능 속에 21세기 새로운 문화정책의 비전과 문화융성을 주도할 핵심영역이 포함되어 있다. 아시아문화의 창작과 교류의 플랫폼이자 경계를 가로지르는 융·복합 콘텐츠의 산실이며 기획, 창·제작, 시현, 유통에 이르는 문화콘텐츠 산업 구현을 핵심과제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화융성의 거점 인프라 역할을 해야 할 문화전당은 지역의 문화융성을 추동할 책무가 있다. 문화융성은 지역에서 실현되고 지역을 통해 확산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역과의 긴밀한 소통, 특히 지역 문화예술계와 협력과 교류를 통해 지역이 문화융성에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여건 형성과 재정적 지원이 요구된다.

지역문화융성의 방향은 결국 중앙 중심적 사고에서 벗어나 지역의 다양성과 고유성의 가치를 잘 발현시킬 수 있도록 지역문화의 자율적 발전을 지원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할 것이다. 이때 국민의 정부 때 확립된 문화정책의 기조인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는 팔길이 원칙이 잘 지켜져야 한다.

이러한 방향성을 가지고 지역을 바라보는 시각도 바뀌어야 한다. 중앙의 문화융성정책의 실질적 파트너로 인정하는 문화분권의 관점과 고유한 문화자원이 존재하고 문화민주주의가 구현될 삶의 터전이 지역이라는 문화자치의 관점을 존중해주는 노력이 그것이다.

대동문화 93호 [2016 3,4월호]

박선정 광주대학교 겸임교수  webmaster@chkorea.news

<저작권자 © 채널코리아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