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자치단체들의 문화정책이 아직도 차별화된 비전을 마련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전시성 행사에만 치중하거나 인프라 시설 갖추는 데 급급하다는 지적이다. 오랫동안 ‘예향’의 고장으로 일컬었던 광주 전남의 문화 관련 올해 업무계획을 들여다보니 그렇다는 이야기다.

광주는 아시아문화중심도시를 내세우며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을 지난해 말 개관했으나 지역민들에게조차 외면당하고 있다. 전남은 관광전남을 부르짖으며 당분간 관광에 ‘올인’하는 모습이다. 광주와 전남 간에 정책적인 공조도 그리 활발하지 않은 것으로 분석된다.

광주시와 전남도, 광주문화재단과 전남문화예술재단이 내놓은 올해 문화예술 분야 주요 업무계획을 입수해 살펴본 결과 광주와 전남 간에 상생의 모습이 드러나지 않고 있다. 윤장현 시장과 이낙연 도지사가 광주와 전남은 ‘한뿌리’라는 점을 강조하고 협력관계를 여러 차례 발표했다. 이 발표가 무색할 정도다.

문화도시를 자처하는 광주와 예향의 전통을 자랑하는 전남의 2016년 문화예술 계획이 무엇인가에 따라 지역의 문화예술 전망을 짐작할 수 있다. 가장 두드러진 것은 ‘관광’을 내세우면서도 지역문화의 특징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비전이 없는 광주시 업무계획 ‘한심’

광주시의 문화관광 분야 목표는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을 핵심엔진으로 꿈꾸는 문화도시 건설’이다. 올해 업무계획에 ‘비전’이 빠져 있다. 이 목표를 비전으로 해석한다면 문화전당에 모든 것을 걸겠다는 구상이다.

지난해 4월 전남대 산학협력단이 용역 보고한 ‘광주시 문화예술진흥 중장기종합계획’에서는 비전을 ‘문화예술의 일상화, 행복한 문화공동체 광주’라고 했다. 정책목표는 7개다. 문화예술 분야의 인력양성, 재원확보, 복지강화, 전통문화 계승, 시민문화 활성화, 국제교류, 문화관광 활성화 등이다.

광주시는 올해 문화예술 정책의 추진방향으로 문화적 도시환경 조성을 통한 세계 속의 매력도시 건설, 고품격 문화예술이 생산‧소비‧유통되는 문화경제도시 조성, 남도의 멋‧맛‧흥이 어우러진 글로벌 관광도시 조성, 콘텐츠산업 인프라 조성을 통한 문화기업육성 및 일자리창출 등을 내세웠다.

매력도시, 문화경제도시, 글로벌관광도시 그리고 문화기업 육성이 핵심이다. 모두 29개 사업계획을 발표했다. 사업 내용을 꼼꼼히 들여다보면 사업 연계효과가 그리 높지 않다. 광주시의 목표가 전남대의 용역보고에서 제시한 비전 또는 목표와 어떤 관계성을 갖는지조차 불명확하다.

광주문화재단의 경영비전은 ‘시민의 문화주체화, 광주정신‧문화의 허브’라고 했다. 이 비전이 재단 조직의 경영적 비전인 것인지 문화도시의 정책적인 차원에서 마련한 비전인 것인지 불명확하다. 성과목표는 문화다양성, 문화가치 극대화, 문화사회 구현 등을 내세웠다.

문화전당과 문화도시 광주를 염려하는 지역 문화계 관계자들의 걱정은 이렇다. 문화전당 개관 이후 3~6개월 정도는 팡팡 터지는 공연이나 전시가 있어야 관심을 겨우 이끌어 낼 수 있다. 그 이후 연쇄효과를 얻으려면 말이다. 문화전당 개관 이후 선보인 행사들의 관람객 추이를 보면 그리 좋은 성과라고 할 수 없다. 벌써부터 맥이 빠진 모습이다.

“대도시 가운데 가장 볼 것 없는 도시는요?”

광주시나 광주문화재단 사업의 면면을 들여다보면 윤장현 시장이 고민하고 있는 ‘포토존’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매력도시나 관광도시가 되려면 관광객이 올 수 있는 광주만의 볼거리가 있어야 하는 것은 당연지사다.

며칠 전 시청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윤 시장은 “광주만의 포토존이 절실합니다.”라고 말하는 데 그 얼굴 표정이 정말 절실해보였다. 그만큼 광주가 볼 게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런 광주시의 문화정책 역시 볼 게 없다고 하면 과한 진단일까.

며칠 전 아침 밥상머리에서 딸아이의 질문에 안타까움이 더했다. “아빠, 우리나라 대도시 가운데 가장 볼 것 없는 도시가 어딘줄 알아요.” “글쎄.” “광주가 광역시 가운데 가장 형편없어!” 그저 충격이었다.

그날 저녁머리에서 아들의 질문은 더했다. “아빠, 서울 여자 친구를 광주에 데려오면 보여줄 만한 데가 어디야.” “글쎄. 대인야시장이나 양림동 구석구석을 보여주면 어떨까.” “에이 그 정도는 어디나 있어.”

이야기를 듣던 아내가 한 마디 거든다. “차라리 여수나 순천으로 데리고 가면 낳겠다.” 며칠 후 아들은 여수, 진주, 부산, 대구를 여행했다.

많은 가족들이 이런 대화를 나눌까 싶다. 광주시가 ‘포토존’을 만들기 위한 특별한 대안모임을 운영하고 있다는 소식은 듣지 못했다. 윤 시장의 고민은 혼자만의 우려인 것일까. 당장의 사업수행도 중요하지만 장기적인 비전과제를 마련하고 일관성 있는 정책추진을 모색할 필요성이 지적된다.

이에 대한 반응도 엇갈린다. 서영진 광주문화재단 대표는 “광주만의 포토존을 함께 꾸미는 방안을 마련해보겠다”고 했다. 한우일 서비스디자인협회 광주지회장은 “포토존 같은 표피적인 것 말고 자랑하고 싶은 문화나 이야기, 사람이 즐기는 무엇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했다.

전남도, 숲과 섬 중심 ‘관광’ 차별화

전남도는 광주시와 다른 방식의 문화정책을 마련했다. 전남도는 올해 문화관광 분야의 비전으로 ‘매력 있는 관광문화, 행복한 도민의 삶’을 제시했다. 품격 있는 관광‧문화‧경관 조성으로 매력 전남을 구현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가장 우선이 관광이고 이를 위해 문화와 경관이 뒷받침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명확한 방향성이다.

전남도의 주요 추진계획 14개 중 문화관광 분야는 9개로 관광이 5개, 문화가 3개, 경관이 1개였다. 그만큼 확실하다. 이낙연 지사가 취임 이후 숲과 섬을 관광의 주요 목표점으로 삼은 것과 같은 연장선상에 있다.

전남관광은 5천만명 시대의 조기 실현을 과제로 하고 있다. 전남문화예술재단을 전남문화관광재단으로 확대 개편한다. 매력 있는 관광자원은 전남에서만 볼 수 있는 차별화된 관광자원 개발을 목표로 한다. 섬과 숲이라는 특별한 자원을 바탕으로 문화와 생태 중심의 개발, 중국과 일본의 역사적 인연을 내세우는 관광전략 등은 눈여겨볼만 하다.

관광객 유치 마케팅 측면에서는 전세항공기나 크루즈 활용, 중국 특화상품, KTX를 활용하는 남도여행 할인꾸러미, 관광지 순환버스 남도한바퀴 등은 관광객의 체류관광을 유도하는 상품으로 보인다. 관광객 환대서비스 실천을 위해 친절, 청결, 안전, 질서라는 4대 키워드를 선정해 중점 추진한다.

광주시와 전남도가 상생 협력하는 관광네트워크는 지난 2013년 9월에 만든 광주전남관광진흥협의회 운영을 활성화하고 2015년 7월에 결성한 호남권관광진흥협의회의 공동협력 사업을 본격 추진한다는 정도다.

문화예술 분야에서는 문화융성 및 문화콘텐츠 산업 육성 차원에서 남도문예 르네상스 추진이라든가 전라도 정도 1000년 기념사업 발굴, 구전설화와 같은 지역 문화자원을 활용한 문화관광 자원화를 추진할 계획이다. 남도작가의 우수작품을 소개하는 ‘남도 갤러리’ 누리집을 운영한다는 것도 뒤늦은 감은 있지만 의미 있다. 이 경우는 광주 작가들도 상당수가 전남이 고향이라는 점에서 광주시와 공동 운영했으면 바람직할 것 같다.

경관이 아름다운 전남만들기는 전남 베스트 경관 10선을 선정해 대중국 관광마케팅으로 활용한다. 도민 중심의 경관만들기 추진단 운영이라든가 프로젝트 매니저 및 특별업무(TF)팀 운영, 지역 토속자원 디자인 상품화 등을 구상하고 있다.

말의 성찬보다 실질적 협력 절실

전남도의 업무추진은 사실상 모든 계획이 관광과 연결되어 있다. 관광객 유치가 전남도의 경제활성화와 직결된다는 생각인 듯싶다.

올해 전남문화관광재단으로 개편 예정인 전남문화예술재단은 역시 관광에 방점을 찍을 계획이다. 이에 대한 구체적인 업무계획은 아직 마련되지 않았다. 전남도가 관광을 목표로 한 만큼 재단도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재단은 지난해 예향 전남의 정체성 확립을 위한 창의적인 사업이 미흡했다고 내부적 평가를 한 바 있다. 올해는 비교우위에 있는 전남의 문화자원을 활용한 문화예술사업을 확대키로 했다. 업무방향은 남도문화의 재발견과 차별화된 관광서비스 구축이다.

주요 사업 내용으로는 예향 전남의 비교우위 자원을 활용한 차별화된 문화상품 발굴 및 확산에 주력키로 했다. 재단 조직도 기존의 문화예술진흥 업무는 변함없이 수행하고, 관광 기능을 추가하여 문화와 관광 병립형 재단으로 개편한다. 중국 관광객 유치를 위한 상품개발 및 마케팅 지원, 관광 산업을 위한 관련 전공자 및 경험자 등으로 조직 정비를 추진키로 했다.

전남도나 전남문화재단의 경우는 관광이라는 핵심어가 존재한다. 아쉽게도 광주시나 광주문화재단은 이러한 핵심어를 찾을 수 없다. 문화전당을 핵심엔진을 한다는 구상이지만 실제로는 불과 3~4개 사업이 연계 고리를 갖고 있을 뿐이다. 결국 전체 사업의 연계 상생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분석이다.

광주와 전남이 한뿌리라는 점을 강조한다면 지금의 업무계획으로는 말의 성찬에 불과하다. 전체 사업의 비전이나 연계효과, 상생방안 등에 대한 구체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대동문화 93호 [2016 3,4월호]

정인서 기자  chkorea9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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