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소리는 한이고 신명이다. 소리꾼 한 명이 고수(북치는 사람)의 장단에 맞추어 창(소리), 말(아니리), 몸짓(너름새)을 섞어가며 긴 이야기를 엮어간다. 판소리는 순조(재위 1800∼1834) 무렵 전성기를 맞는다. 권삼득, 송흥록, 모흥갑, 염계달, 고수관, 신만엽 등의 소리꾼들이 이때 유명했다. 이들에 의해 장단과 곡조가 오늘날의 형태로 발전했다. 동편제(전라도 동북지역)·서편제(전라도 서남지역)·중고제(경기도·충청도) 등 지역에 따라 소리의 특색이 나누어진 것도 그때였다.

판소리가 발생할 당시에는 한 마당의 길이가 그리 길지 않았다. 또 판소리는 열두 마당이나 존재했다. 그러나 현재는 판소리 다섯 마당 또는 판소리 다섯 바탕인 춘향가·심청가·수궁가·흥보가·적벽가만이 전승되고 있다.

동초제 춘향가는 정정렬제 춘향가를 토대로 하고 있다. 그러나 정정렬제 춘향가는 ‘적성가’, ‘산세 타령’같은 이름난 옛 명창들의 더늠이 새로 짠 소리로 대체되어 있는 것이 흠이다. 그래서 김연수는 이 춘향가에 옛 명창들의 더늠도 살리고 동리 신재효의 사설도 참고해 ‘동초제 춘향가’를 새롭게 짰다. 그것을 오정숙에게 가르쳤고, 이 춘향가가 이일주와 방성춘 등에게 전수됐다.

동초제 춘향가는 크게 ‘백년가약’, ‘이별’, ‘수난’ 그리고 ‘재상봉’의 대목으로 나뉜다. 동초제 춘향가는 ‘기산영수’ 대신 정정렬제 더늠인 ‘꿈 가운데 어떤 선녀’로부터 시작한다. 정정렬 제에 없는 ‘기산영수’, ‘신세 타령’ 등의 옛 더늠도 넣었다. ‘천자풀이’, ‘사랑가’, ‘이별가’, ‘신연 맞이’, ‘기생 점고’, ‘십장가’, ‘옥중가’, ‘과거장’, ‘농부가’, ‘옥중 상봉’, ‘어사 출도’같은 주요 대목은 모두 정정렬 제를 따라 전승됐고, 또 여기에 ‘만복사제’, ‘맹인 문복’, ‘과부 등장’ 등의 소리 마디가 더해졌다. 공연 시간이 8시간 이상이 소요되는 ‘대춘향가’이다. 그래서 동초 김연수는 늘 ‘정정렬 낳고 춘향가 낳았다’고 이야기했다.

방성춘 명창은 판소리는 우리의 정신이고, 전통 국악예술의 꽃이요 백미라고 말한다.

집념 하나로 버틴 우리 가락 일생

광주광역시 남구 서1동에 자리잡고 있는 ‘방성춘 판소리 연구원’, 그곳이 바로 동초제 춘향가의 맥을 잇는 영토다. 박동진, 조상현, 성창순, 안숙선 등과 함께 판소리 5대 명창으로 불리 우고 있는 중요 무형문화재 제5호 오정숙 명창의 제자 방성춘. 그는 동초제 판소리를 세상의 가치로 되돌리고 있다. 그 구성진 성음을 수많은 제자들에게 전수하고 있는 것. 그의 제자들은 ‘사랑가’ 한자락 하고서는 긴 숨을 돌린다. 방성춘도 동초제 춘향가 중 ‘사랑가’를 즐겨 불렀던 때가 있었다.

“이도령과 성춘향이 사랑가로 노는 곡이요. 가사를 깊게 생각해 봐요. 우리가락은 가사를 음미할 줄 알아야 희로애락 표현을 잘 할 수 있제라. 한 번 들어 보실라요?”

사랑사랑 내사랑이야 어허둥둥 내 사랑이지야 삼오신정 달밝은 밤 무산천봉 완월 사랑 목락무변 수여천에 창해같이 깊은 사랑 월하에 삼생 연분 우리 둘이 만난사랑 어허둥둥 내사랑이지야.

“이웃 동네에 소리하신 선생님이 계셨어요. 화투친 어르신들께 단막극을 가르치고 우리 악기와 소리를 가르쳐 주셨제라. 명절 때믄 넓은 벌판에 가설극장을 만들어 주시기도 하셨는디…. 그라믄 단막극 배운 어르신들은 무대에서 그동안 갈고 닦은 재능을 보여 줬응께 말 허나마나 좋은 일이지라.

어머니가 소리를 참 좋아하셨어요. 내 나이 13살 때 구경하던 어머니는 선생님께 무작정 찾아가 딸에게 소리를 가르쳐 달라고 했제라. 선생님은 그라믄 딸 하나 없는 셈 치고 살라고 말씀하셨다고 한디.

어머니는 딸 다섯 중 제 바로 윗 언니가 곱고 이쁘장하게 생겼응께 소리를 배우라고 했제라. 근디 언니가 못한다고 했어요. 그래서 나헌티 그라믄 니가 가서 해볼래 물으시더라고요. 그 말에 흥이 나서 어머니 손잡고 바로 선생님 집으로 갔제라. 그날부터 내 인생은 정해진 거나 다름 없제라우”

심청가, 춘향가, 흥보가 완창으로 명창의 반열에 올랐다.

어야, 소리는 몸과 마음이 같아야 쓴다네!

그는 소리의 깊이에 빠졌다. 학교를 다녀오면 곧장 소리를 배우러 선생의 집에서 늦은 밤까지 연습하고 집으로 돌아와 잠만 자는 시간이 많았다. 소리와 함께 걷는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28살 무렵 그는 큰 인연을 만났다.

“그 시절 충장로 학생회관에 오정숙 선생님께서 소리를 하러 오셨어요. 성함만 들었지 한 번도 뵌 적이 없었어요. 그날 공연을 보지 않았다면 지금 내가 이 자리에 있을까 싶어요.”

세상에서 처음 듣는 소리였다.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다. 그는 어릴 적 그의 어머니가 소리 선생에게 무작정 찾아갔던 발걸음처럼 그 길로 보따리 싸서 선생님을 찾아갔다.

“오정숙 선생님은 다섯 바탕 중 네 바탕까지 끝내고 적벽가만 하지 않았어요. 동초 선생님은 오정숙 선생님께 돌아가시기 직전 누워계시면서도 완창을 하려면 ‘죽는 시늉도 잘해야 쓴다’고 그렇게 가르치셨다고 해요. 이를테면 소리는 목으로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 마음과 몸짓이 같아야 된다는 것이제라. 우리 소리는 진짜 고단해요. 집념이 없으면 못 가는 길이에요. 그란디 우리 소리에 빠져들면 끝까지 갈 수 있어요.”

얼마나 많은 날을 외로움과 싸우며 목을 쥐어짜고 배를 움켜잡았을까? 그의 집념은 강했다. 오정숙 선생이 적벽가 완창을 위해 산으로 들어갈 적에 그도 따라 들어갔다. 그때 오정숙 선생은 빛바랜 책 한 권을 그의 손에 쥐어주었다. ‘춘향가’였다. 스물여덟 그해 ‘사랑가’는 그의 마음과 몸짓으로 옮겨진 것이다. 산 공부를 할 적엔 새벽부터 밤늦도록 한번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얼굴이 퉁퉁 붓고 목이 꽉 쉬어 말을 못할 지경이 되어도 숟가락만 놓으면 다시 책을 들고 산으로 올라가 소리했다.

고단한 소릿길! 소리는 나눔이다!

그는 89년 5월 21일을 잊지 못한다. 남도예술회관에서 완창 발표를 하면서 명성을 얻게 되었다. 동초제 판소리가 불모지였던 광주에서 튼튼한 뿌리를 내리게 된 것이다.

“뿌리가 튼튼한 나무는 가지가 무성하고 가지가 무성한 나무는 열매가 훌륭한 것이다.”라고 제자를 가르친 고 김연수 선생의 명실상부한 제자로서 명분을 지킨 의미 있는 발표회였다는 찬사를 받았다.

서울 국립극장에서 심청가와 홍보가를 발표하면서 서울 시민들에게까지 이미 잘 알려진 방성춘은 91년 11월 3일 전남도립국악단이 주최하고 광주 문화방송이 후원한 동초제 심청가 완창 발표회를 성공적으로 마치게 되었다. 그는 “전주 대사습놀이 전국 대회 대통령상 수상 기념으로 진행된 행사였다는데 그 의미가 있었다”고 말한다.

이 발표회를 통해 그는 민중과 호흡을 함께하는 예술인, 민족 자긍의 예술인이라는 명성도 함께 얻게 됐다. 그리고 94년 11월 6일 한국 국악협회의 후원 속에 김성곤 고수와 함께 동초제 흥보가 완창 발표회를 진행했다. 그 완창 이후 큰 명창으로 반열에 올랐다.

13살 어린 나이에 막연한 호기심만으로 어머니 손에 이끌려 소리 공부를 시작한 지 53년의 시간이 흘렀다. 이제 조금 쉬어가도 될 나이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자신을 다그친다. 오직 오직 연습에 연습만을 거듭한다. 한발이라도 더 내딛기 위해 지금도 고삐를 늦추지 않고 소리 공부에만 집중한다.

그에게 소리는 나눔이다. 그래서일 것이다. 그가 몸담고 있는 전통문화관 (사)서봉 판소리 진흥회는 소외된 노인과 다문화 가정, 청소년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들의 국악 발표를 통해 가능성을 발견하고 자신감도 심어준다. 이주 여성과 다문화 가정에게 한국 생활과 언어 발달의 적응력을 키워 희망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계기를 부여한다.

“우리 선조들은 어려운 시대를 살면서도 판소리에 희노애락을 담아 마음을 달랬어요. 판소리는 우리의 정신이고, 전통 국악예술의 꽃이요 백미예요. 그 소리를 함께 나누면 세상이 조금 더 밝아지지 않겠어요?”

대동문화 72호 [2012 9.10월호]

한경숙 기자  webmaster@chkorea.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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