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 한옥의 멋스러움을 주고 있는 보성 강골 마을.

인간의 생활에 있어서 가장 기본적인 의식주 가운데에서 쉽게 변화하지 않는 것이 주생활이다. 그러나 우리 민족은 일제강점기와 군사정권을 거치면서 민족 고유 의 한옥 중심의 전통 주거 생활을 일시에 버리고 말았다. 일본인들은 한옥이 비위생적일 뿐 아니라 비근대적이며 더구나 건축비도 많이 든다고 하여 은근히 우리 민족의 한옥 신축 행위를 억압하였다.

게다가 군사 정권에서는 산림녹화를 목적으로 산림의 벌채는 물론 이의 원인이 되는 목재 건축을 짓지 못하도록 규제하였다. 심지어는 목재로 짓지 않으면 안 되는 전통 건축까지도 콘크리트로 짓도록 명령했고 지금도 그 자취를 볼 수 있는 콘크리트로 만든 미색풍의 전통 건축이 한 시대를 풍미했다. 이를 ‘박정희식 건축’이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었고 이러한 건축 형식은 콘크리트형 관공서의 전형이 되었다.

그러다 보니 어느 사이에 우리는 전통 한옥을 버리고 시멘트 벽돌이나 콘크리트 건축에 익숙해져 갔다. 덕분에 우리 목조 건축은 나쁘고 서양 콘크리트 건축은 좋은 건축이라는 잘못된 인식을 갖게 되었고, 결국 전국토가 시멘트 건물로 뒤덮이게 되고 말았다.

도대체 시골의 읍락에까지 거대한 15층 아파트가 들어서는 나라는 세계 어디에도 없다. 그런 시대적 이유로 나무를 다듬는 목수는커녕 누구나 할 수 있었던 초가의 이엉조차도 이을 사람이 사라질 지경에 이르렀다. 물론 그 동안 한옥을 지키고자 하는 노력도 있었으나 한옥이 비싸고 불편하며 현대 생활을 담지 못한다는 편견 때문에 결국 용기 있고 여유 있는 자들만의 소유물이 되고 말았다.

한옥으로 거듭난 한옥 호텔이 각광을 받고 있다.

현대 한옥의 시대가 열리고 있다

과연 한옥이 그러한 존재인가? 한옥에 배어있는 환경과의 조화에 대한 과학성을 살펴보면 웰빙을 구가하려는 현대인들에게 가장 적절한 미래형 주거 형식이 바로 한옥이라는 사실을 금방 알게 될 것이다. 습기와 온도를 조절해주는 흙벽, 지속가능한 재료인 목구조, 겨울 공간인 온돌과 여름 공간인 마루의 조화, 뜨거운 태양빛을 조절하는 천정과 지붕 구조, 습기와 예법을 지켜주는 마루의 높이, 구부러진 부재나 곧은 부재를 적절히 쓰는 재료 사용의 탄력성, 채와 채의 기능적 분절, 남녀와 상하의 위계가 뚜렷한 공간의 위계성 등 수많은 장점이 가득하다. 더욱이 한국인이라면 한옥이 바로 민족적 정체성을 지니며 고유한 아름다움과 기품을 지닌 주거라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광주 전남 한옥, 국부를 창출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근자에 한옥을 활성화 하려고 하는 움직임들이 경향 각지에서 일고 있어 대단히 고무적인 일이라 하겠다. 정부에서는 우리의 미래형 주거 형식을 한옥에서 찾고자 행정적인 기획과 연구과제를 수행하고 있으며, 한옥을 짓고자 하는 사람들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또한 한옥 관련 정보를 제공해주고 있으며 한옥 산업화 및 대중화의 기틀을 마련해나가고 있다. 즉 한옥 관련 통계자료 및 분포 현황, 한옥 지원 정책, 한옥 기술 개발 등의 콘텐츠가 온라인으로 제공되고 있다.

특히 전라남도에서는 도지사 관사를 비롯하여 관공서나 전시관, 호텔과 민박집 등을 한옥으로 짓기를 권장하고 한옥을 지을 경우 7천만원에 상당하는 재정적인 지원도 하고 있다. 전주에는 한옥 마을을 조성하여 수많은 내외국인이 드나들고 있다. 서울의 복촌 한옥마을, 아산 외암마을, 경주 교촌 한옥마을 등은 역사 자원인 고택들을 현대적 기능과 조화를 이뤄 관광 브랜드로 만든 예이다. 또한 공주 한옥마을, 평택 고덕 신도시, 익산 배산지구 한옥마을, 수원 전통 한옥마을 등은 도시형 한옥마을을 시도한 지자체의 도전이 돋보인다.

한옥 무엇이 좋은 것인가

그렇다면 한옥의 특징과 장점은 무엇이며 한옥의 보급을 위해서 어떤 일들이 우선되어야 할 것인가?

한옥의 주된 재료는 사람과 가장 잘 어울리는 흙과 나무이다. 흙과 나무는 사용한 후에는 저절로 자연으로 돌아간다. 따라서 한옥은 가장 환경적이고 생명적이면서 살아 숨 쉬는 집이다. 사람의 성품과 기질이 각각 다르듯이 집도 각각 지역적이며 개인적인 특성이 있어 사는 사람과 조화를 이룬다. 산세가 험하면 지붕 물매도 급하고, 아트막한 산에서는 지붕도 넓적하게 만들었다. 서민들의 민가에서는 나무가 많은 곳에서는 나무 너와를 얹고, 판돌이 나면 돌기와를 하였으며, 볏짚, 갈대, 억새 등이 많으면 초가를 만들었다.

전통적 모둠 살이의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있는 전주 한옥 마을은 이제 한국적 전통의 대표적 관광 브랜드가 되었다.

한옥의 벽은 심벽으로 되어 있어 흙이 굳으면 외와 흙 사이에 공기층이 생겨 전도열이 차단되므로 단열이 잘 된다. 또한 온도를 일정하게 해주는 상온 효과가 있고, 습도를 절절히 유지 해주는 상습 효과도 있다.

창호는 미닫이, 여닫이, 덧문 등 이중창으로 하여 단열 효과를 높이고, 문풍지를 달아 문틈으로 찬바람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했다. 창호에 바르는 한지는 단열 효과는 있으면서 겨울철에 성에가 끼지 않는 장점이 있고, 자연의 소리를 방안에서 느낄 수 있도록 해준다. 구들로 된 바닥 난방은 따뜻함을 저장하고 서서히 방열하여 인체에 적합한 실내 온도를 유지시켜 주고, 원적외선을 방출함으로서 질병을 방지하고 치료해주는 효과도 있다. 외풍이 많거나 아주 추울 때는 화롯불로 보조 난방을 한다. 마루는 천연 통풍의 냉방 시설로서, 여름철에는 시원한 공간으로 활용하고, 겨울에는 추수한 곡식을 저장하는 수납 공간으로 활용하였다.

난방 시설인 구들과 냉방 시설인 마루의 만남은 우리의 슬기가 담겨있는 증거이다. 지붕에 처마를 두는 것은 따가운 햇볕을 막고 흙벽을 비로부터 보호하는 양산이며 우산인 셈이다. 겨울에는 햇볕이 방안 깊숙이 들도록 하고 여름에는 집안에 햇볕이 들지 않도록 하면서 채광은 잘 되도록 집 높이에 따라서 처마 깊이를 결정하였다.

기단은 건물의 격을 높여주고 처마에서 떨어진 물이 튀는 높이로 만들어 집을 보호했다. 담장은 가슴 높이 정도로 하여, 길에서는 집안이 보일 듯 말 듯 하면서도 방안에서는 창문을 열면 담장 넘어 자연이 그대로 펼쳐지게 했다. 바깥에서는 집안의 사생활이 보장되고 내부에서는 집 주변의 풍경을 널리 감상할 수 있었다.(리신호, <전통 살림집을 통해본 주거의 생태 문화> 중에서)

이처럼 한옥은 사람이 자연 속에서 자신을 보호하면서 자연과 더불어 살 수 있도록 되어 있었고, 살아가면서 지켜야 할 모든 것을 저절로 몸에 밸 수 있도록 하는 공간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사람의 생명을 창조하고 유지, 보존하는 집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서는 오랜 세월 동안 발전되어 온 한옥의 기능을 되살려서 집의 재창조적 기능을 회복하고, 가정적 공간과 사회적 공간이 독립하면서 공존하는 방법과 아울러 자연과 더불어 사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보성강공마을 이용욱가옥

자연, 교감 그리고 한옥의 미래 위한 제언

우리 조상들은 방이 세 칸 밖에 안 되는 좁은 집이어도 ‘청풍(淸風) 한 칸, 달 한 칸, 나 한 칸’이라고 하여 허름하고 조그만 집에 살아도 자연과 교감하고 자족하면서 행복하게 살았다. 물질의 추구보다는 정신이 살아있어 여유가 많았고 자연과 함께 하는 슬기를 보여준 것이 바로 한옥이었다. 또한 한옥은 한 채씩 떨어져 있을 때보다 여러 채가 함께 모둠으로 있을 때 보기가 좋을 뿐만 아니라 집합체로서 동양적 규범에 적합한 의미가 커진다. 집은 모여 있어야 공동체 의식이 생기고, 이웃 간에 사랑이 싹튼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우리의 국토는 대략 30% 정도를 이용하고 있고 나머지 70% 이상이 산림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산림이 대기를 정화시켜 줄 뿐 아니라 수자원 및 국토를 보호하고 휴양지를 제공한다. 조만간 우리의 산림도 70, 80년생의 조림목이 생산될 것인데 임산 자원을 보호 육성하기 위해 우리의 임산물에 대한 활용 방법을 모색해 두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이런 차원에서 산림 녹화를 위한 산업적 대안 공간이 바로 한옥이 될 수 있는 것이다.

한옥 사랑 운동부터 펼치자

그러나 한옥 건립을 독려함에 있어 간과해서는 안 될 일들이 아주 많다. 한옥이 우리민족의 정체성을 잘 간직하고 있고 생태 지향적인 참살이를 위해 좋은 대안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쉽게 접근하기가 어렵다. 이는 결국 대중에게 비싸고 불편하다는 편견이 강하게 뿌리 박혀 있기 때문이다. 평당 7~8백만 원에 이르는 건축비와 현대 생활을 영위하기 불편한 주거 형식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최근에는 여러 지자체에서 한옥 주거단지를 조성하여 국내외인들에게 품격 있는 주거 공간을 제공하고 있음에도 이러한 불편함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한옥 아파트와 한옥 호텔까지 등장하고 있다. 경주의 라궁(羅宮)과 전남의 영산재(榮山齊)가 그 대표적인 예이다.

결국 한옥에 배어있는 과학성과 친환경적인 장점을 유지하면서 어떻게 생활의 불편을 해소하고 건축 비용을 절감하느냐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현대식 주거 생활을 수용하는 표준 설계도서의 작성과 건축 시공 지침서 제공, 부재의 규격화와 경량화, 목수 인력의 안정적 공급, 국가로부터의 재정적 지원과 건축 행정의 단순화, 한옥 사용 메뉴얼 제작, 한옥 연구소 설립 등을 통한 한옥 사랑 운동을 전개하여야 할 것이다. 김치 연구소도 있고, 국악 연구소도 있는데 한옥 연구소는 왜 없는가?

전라남도는 한옥 건립을 지원하기 위해서 조례를 제정하여 법적 장치를 마련하였다. 행복 마을과를 신설하여 한옥 건립에 대한 실무적인 행정 업무를 보고 있으며 한옥위원회에서는 이를 기술 지도하고 심의하고 있다. 그간 전남에 1,500여 동의 신한옥이 건립되는 한국 주거사에 놀라울 만한 일이 벌어졌다. 많은 지자체에서 이를 보고 부러워한다.

그러나 이들이 과연 잘 지어진 한옥인지 냉철히 되돌아보아야 한다. 그간 물량적인 공급이 주된 목표였다면 이제는 질적으로 품격 있는 한옥을 건축할 수 있도록 철저히 지도하여야 한다. 설계 단계에서부터 시공, 입주까지 일련의 매뉴얼을 갖추고 살펴보아야 한다.

전반적으로 부재가 너무 굵고 과대하다. 기둥 간격이 너무 좁거나 상대적으로 넓다. 왜 둥근 기둥을 꼭 써야 하는가? 왜 육중한 팔작지붕으로만 짓고 있는가? 왜 거실 앞에 통유리를 사용하는가? 전통 기법의 장점은 비쌀 수밖에 없다. 과감하게 현대적인 재료와 기법을 도입해야 한다. 신한옥은 문화재가 아니다. 그냥 전통 한옥의 정서와 장점을 현대식 주거에 적용한 것이다. 육중한 들보와 서까래, 지붕에서 약간의 살을 빼면 20% 내외의 경비를 절감할 수 있다.

영암구림

우리 국토에 한옥의 물결이 출렁일 것이다

서구식 현대 주거가 주는 편리함은 건강에 많은 장애를 가져오고 있다. 우리는 이미 현대 건축의 재료인 시멘트와 유리, 철이 주는 해로움이 일상에서 너무나 흔하게 노출되어 있고 이들이 건강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잘 알고 있다.

일본에서는 유치원에서 초등학교까지 교실을 목조 건축으로 건축하도록 강제하고 있다. 이제 우리 산야에서 자라고 있는 나무를 사용할 곳을 찾아야 한다. 우리의 삶이 풍요해지고 우리의 것을 찾고자 하는 노력이 가일층되고 있는 상황에서 건강한 주거에서 살기를 기대하는 바람은 곧 한민족 주거 문화의 정체성을 밝히는 일이기도 하다. 이미 서구화된 주거에 익숙해버린 국민들에게 한옥 생활을 즐기는 생활 방식의 급속한 변화를 기대하기란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한옥의 참된 가치를 밝혀 현대 생활에 적합한 주거 형식을 개발하는 과업들이 진행되고 행정 기관의 지속적인 지원과 계도가 이루어진다면 우리의 산천에서 아름다운 한옥의 물결이 곧 출렁이게 될 것이다.

대동문화 72호 [2012 9.10월호]

천득염 전남대 교수, 문화재위원  webmaster@chkorea.news

<저작권자 © 채널코리아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