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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10경의 하나, 명기 같은 명소 적벽숲이야기 - 화순적벽
이돈삼 목포 주재기자 | 승인 2018.01.04 08:12

‘적벽동천(赤壁洞天)’이라 했다. 적벽이 신선의 세계와 다르지 않다는 의미다. 조선시대 문신 석천 임억령(1496∼1568)의 얘기다.

조선 10경의 하나, 화순 적벽

기묘사화로 중종 때 능주로 유배 온 정암 조광조(1482∼1519)는 적벽의 절경을 보며 한을 달랬다. 대학자 하서 김인후(1510∼1560)는 적벽시를 지어 화답했다. 방랑시인 난고 김병연(1807∼1863)도 적벽의 장관에 빠져서 오래 머물렀다. 다산 정약용(1762∼1836)은 10대 후반에 아버지를 따라와서 적벽을 만났다.

적벽은 1519년 기묘사화로 화순에 유배돼 온 신재 최산두(1483∼1536)가 중국의 적벽에 빗대 이름 붙였다. 근대까지 ‘조선 10경’의 한 자리를 당당히 차지했다.

 

중·장년층에게 옛 추억과 낭만이 깃든 여행지

화순적벽 옛사진(1976년)

그 적벽을 만나러 간다. 제32회 적벽문화축제의 프로그램인 힐링 건강 걷기대회에 참가하기 위해서다.

굳게 잠겨있던 철문이 열리고, 말끔하게 단장된 임도가 얼굴을 내민다. 길이 비교적 넓고 평탄하다. 대형 버스 한 대가 지날 정도의 폭이다. 1년 만에 적벽을 다시 찾아가는 설렘일까. 평소와 달리 차를 타지 않고 걸어서 들어가는 탓일까. 감회가 남다르다.

마음도 급할 게 없다. 시간도 넉넉하다. 걷기 행사와 상관없이 임도를 따라 솔방솔방 걷는다. 숲길에서 부산한 건 다람쥐뿐이다. 길섶에 피어난 억새와 수크령, 산국이 반겨준다.

한 20분 흐느적거리니 골짜기에 물이 가득 찬 호수가 눈에 들어온다. 동복호다. 30여 분 더 하늘거렸더니 이번에는 시야가 탁 트인다. 옹성산이 품은 노루목적벽과 보산적벽이 눈앞에 펼쳐진다.

평소 버스투어에 참가한 여행객들이 차에서 내리는 곳이다. 왼편으로는 백아산의 기암괴석을 이어주는 하늘다리가 아련히 보인다.

노루목적벽은 산의 형세가 노루의 목을 닮았다고 이름 붙었다. 산길에 노루가 많이 다녔다는 얘기도 전해진다. 한자로는 ‘장항적벽’이다. 망미정 앞에 있었다고 ‘망미적벽’으로도 불린다. 지난 2014년 10월 23일 다시 개방되면서 30년 동안 싸여 있었던 베일을 벗었다.

노루목적벽은 암벽이다. 수직으로 깎아지른 바위가 거꾸로 서있는 모양새를 하고 있다. 높이가 본디 100m 가까이 된다. 그 절벽에서 폭포가 쏟아지며 위용을 뽐냈다.

절벽 언저리에 절집 한산사도 있었다. 절벽 아래로는 물이 흘렀다. 모래밭이고 자갈밭이어서 으뜸 물놀이 터였다. 인근 학생들의 단골 소풍지였고, 대학생들의 MT 장소였다. 삿대를 저어 가는 나룻배가 떠 다녔다. 그 배를 타고 뱃놀이도 즐겼다.

4월 초파일 밤에는 절벽에서 낙화놀이가 펼쳐졌다. 마을의 장정들이 절벽에 올라가 짚덩이에 불을 붙여 아래로 떨어뜨렸다. 장정들은 불꽃송이가 떨어지며 물에 어리는 모습을 보며 탄성을 질러댔다. 노루목적벽은 중·장년층에게 옛 추억과 낭만이 깃든 여행지다.

하지만 동복댐이 만들어지면서 노루목적벽은 기억 저편에만 자리했다. 절반 이상 물에 잠기고 댐 안에 갇혀버려서다. 댐이 상수원 보호구역으로 지정되고 1984년엔 일반인의 출입마저 통제됐다.

수몰지역 주민에 한해 명절을 전후해 성묘나 벌초를 위해 출입을 허락했을 뿐이다. 그 사이 ‘쌍화점’, ‘근초고왕’, ‘대왕의 꿈’ 등 영화나 드라마의 촬영장으로 쓰였다.

 

적벽가 한 대목 읊조리니 세상이 훤하더라

화순적벽 옛사진(1960년대)

노루목적벽이 다시 모습을 드러낸 게 2014년 10월이었다. 광주광역시와 화순군이 상생 발전을 위해 개방에 합의하면서다. 30년 동안 기다렸던 여행객들의 발길이 이어진 건 당연했다. 다들 ‘천하제일경’이라며 탄성을 쏟아냈다.

노루목적벽은 하늘로 치솟아 우뚝 서 있다. 깎아지른 암벽이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것처럼 장엄하다. 절벽의 높이가 50여m, 물속에 잠긴 건 40m쯤 된다.

폭도 넓다. 하늘과 호수 사이에 펼쳐진 아담한 병풍 같다. 거대한 바위벼랑이 잔잔한 물결에 비친다. 백아산에서 발원한 동복천이 항아리 모양의 옹성산을 휘돌아 나오면서 이룬 절경이다. 노루목, 보산, 창랑, 물염 등 4개의 화순적벽 가운데 으뜸이다.

노루목적벽 앞에서 망향정을 품고 있는 작은 적벽이 보산적벽이다. 노루목적벽보다 규모가 작지만 세파에 깎이고 파인 모양새가 신비롭다. 노루목적벽과 보산적벽의 장관에 한동안 넋을 빼놓았다.

정신을 가다듬고 망향정(望鄕亭)으로 간다. 보산적벽 위의 평평한 구릉에 자리하고 있다. 임도에서 하얀 억새가 길손을 맞는다.

망향정은 수몰지역 주민들의 설움을 달래주는 쉼터다. 망향정 옆으로 수몰된 15개 마을의 유래비가 세워져 있다. 망향탑과 망배단도 놓여있다. 여기서 수몰민들이 명절 때 망향제를 지낸다.

동복댐이 건설되면서 정든 고향을 떠난 주민은 창랑, 월평 등 15개 마을 5000여 명에 이른다. 대대로 이어온 삶터를 떠난 주민들을 생각하니 가슴 한쪽이 아려온다.

적벽의 아름다움을 새긴 적벽동천, 적벽가, 적벽팔경 비도 세워져 있다. 억새에 일렁이는 가을바람이 코끝을 쓸쓸하게 스친다.

망향정에서 대숲 사이로 난 길을 따라 내려가니 망미정(望美亭)이다. 병자호란 때 의병장이었던 정지준이 지었다. 인조가 청태종에 무릎을 꿇었다는 소식에 분개해 은둔하면서다.

당초 노루목적벽 밑에 있었으나 물에 잠기면서 옮겨졌다. 현판을 김대중 전 대통령이 썼다. 노루목적벽을 가장 가까이서 마주할 수 있는 곳이다.

노루목적벽의 자태도 더 매혹적이다. 맑고 깨끗한 물에 비치는 반영도 그림 같다. 언제라도 가슴 뛰는, 누구라도 반할 풍광이다.

한낮의 가을 햇살이 노루목적벽에 쏟아진다. 옹성산을 넘어온 산들바람에 물속에 잠겨있던 적벽도 잠시 춤을 춘다. 가을색으로 물들고 있는 적벽이 파란 하늘과 푸른 물과 버무려져 한 폭의 수묵화를 그리고 있다. 선경(仙境)이다.

이돈삼 목포 주재기자  ds2032@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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