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가 고근호 씨와 샌드 애니메이션 작가 주홍 씨는 결혼 10년차 부부다. 그런데도 주변 사람들로부터 “어, 둘이 부부였어?” “어～! 솔로 아니었어?”라는 소리를 종종 듣는다. 그들은 다른 부부들과는 다른, 또 여느 기혼자와는 다른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지금까지 ‘닭살 부부’다.

그들의 대화법은 독특하다. 농담으로 시작해서 농담으로 끝난다. 웃다 보면 그 안에 서로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다 담겨있다. 특히 고근호 씨의 농담은 주홍 씨를 살살 놀리는 것이다. 옆에 있는 사람들이 오히려 민망할 정도로. 그러나 주홍 씨는 그 말을 “사랑해!”라고 듣는다. 경청 능력이 뛰어나다.

“믿음이죠. 믿음이 없으면 그렇게 들리겠어요. 나는 남편이 내가 어떤 말을 해도 그 말이 ‘사랑해’라고 들려요. 엄마가 아이를 혼낼 때 아무리 화를 내도 미워서 그러는 게 아니잖아요. 그것은 사랑의 다른 표현이죠.”

‘콩떡 같이 말해도 찰떡 같이’ 알아듣는 아내나 그런 아내를 잘 알고 있는 남편. 그래서 이들을 ‘닭살 부부’라고 하는가 보다.

고근호,즐거운 상상2,Steel,2012

뭔가 특별한 영웅을 당신이 해봐요!

“우리는 지나온 일은 말하지 않아요. 지금 내 앞에 있는 이 사람은 전에 그 남자가 아니라는 것. 그래서 우리 부부는 살아가면서 더 깊은 사랑이 생겼어요. 연애 시절에는 남편이 날라리인 줄 알았어요. 가죽 잠바에 히피처럼 긴 머리를 하고 다녀서요. 그런데 겉모습과는 달리 그 안에 군자가 앉아 있더라구요.”

그래서일까 그들은 상대의 장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고근호 씨가 작품 주제를 ‘영웅’으로 할 수 있었던 것도, 주홍씨가 샌드 애니메이션 작가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것도 서로의 장점을 알고 조언을 해주었기 때문이다.

2008년도 일이다. 서울, 부산, 울산 등지에서 로봇 전시회가 많이 개최되었다. 폐품을 이용하여 로봇 작업을 해온 고근호 씨에게도 전시회에 참여해달라는 연락이 왔다. 고근호 씨는 뭔가 특별한 로봇을 만들고 싶었다. 그런데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아 고민하던 차에 주홍 씨가 툭～ 한 마디 던졌다.

“영웅을 해. 영웅.”

“영웅?”

“당신 마음속의 영웅, 나의 영웅은 당신이야.”

장난처럼 건네는 아내의 ‘영웅’이라는 말에 고근호 씨는 자기 안에 있는 ‘영웅’을 찾기 시작했다.

고근호,My Friends,Steel,2011

내 마음속의 영웅부터 찾아보세요!

“소년 시절부터 내 안에 있었던 사람들을 생각해보니 수많은 얼굴들이 떠오르는 거예요. 어린 왕자, 마이클 잭슨, 이소룡, 체 게바라…. 영화에서, 만화에서, 책에서 만났던 영웅들이 생각났어요. 그때 처음으로 ‘내 안에 나를 성장하게 한 영웅들이 굉장히 많이 있었구나’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죠.”

그렇게 해서 영웅 1, 2, 3호가 탄생하게 되었다. 그의 영웅 1호는 ‘어린 왕자’다. 국내전을 마친 그는 그해 일본 도쿄 아트페어에 참여하게 되었다. 해외 전시에 참가하기는 처음이었다.

“그때 어떤 미술 애호가가 오셔서 ‘베트맨’을 보고 ‘이것은 새로운 조각이다’라고 하면서 제 작품을 구입해갔어요. 조립한 조각은 처음 보셨대요.”

그의 첫 해외 나들이는 성공적이었다. 자신감을 얻은 그는 자신만의 영웅뿐만 아니라 대중들이 좋아하는 영웅을 만들면서 관객과 적극적 소통을 시작했고 그런 노력들이 이제는 한국보다는 해외 시장에서 더 알아주는 ‘팝 아트’ 작가로 성장하게 만들었다.

찰리 채플린, 마를린 먼로, 가위손, 비틀즈, 다스 베이더 등 그의 영웅은 이제 수십 명이 되었다. 영화 속에서만 보던 영웅이 때로는 익살스럽게, 때로는 동화처럼 자신들 앞에 나타나자 그의 작품을 보기 위해 줄을 서서 보는가 하면 소장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사람들은 그의 ‘영웅’을 통해 희망을 찾는 것이다.

즐거운 상상이 곧바로 현실이 되다

그들에게 있어 ‘결혼’은 ‘즐거운 상상’이었을까? 2002년, 처음으로 ‘고근호/주홍 합동전’을 가졌다. 전시회 명은 ‘즐거운 상상전.’ 그들은 이 전시회장에서 결혼식을 올렸고 그들의 ‘즐거운 상상’은 ‘화가’를 ‘그림동화 작가’로 변신하게 했다.

“우리 둘 다 전업 작가다 보니 경제적으로 여유롭지 못했어요. 그래도 아이에게만은 뭔가 특별한 것을 남겨주고 싶었어요. 그래서 시도했던 것이 그림 동화 ‘아기 고양이 미로’와 ‘고물 자건거’에요.”

처음부터 그림동화를 구상했던 것은 아니었다. ‘환경 미술제’에 출품한 고근호 씨의 ‘고물 자건거’란 작품을 본 한 출판인이 그림동화로 만들어보자고 제안했다. 당시 네 살 박이인 딸에게 좋은 선물을 주고 싶은 그들은 흔쾌히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렸다.

“고물 자전거는 밖에 나가 놀고 싶지만 몸이 불편한 딸을 둔 아버지가 버려진 고물 자전거로 휠체어를 만들어 딸과 함께 나들이를 간다는 이야기에요. 아주 짧은 동화인데 글은 내가 쓰고 그림은 고근호 씨가 만들었어요. 동화에 어울리는 그림을 만들기 위해 버려진 생선 박스를 주워 가져와서 씻고 자르고 페인트칠하고 그 위에 온갖 폐품들 그러니까 깡통, 나무 토막, 철사 조각, 녹슬고 구부러진 못 등을 올려서 작품을 만들었는데, 그때는 생선 박스 때문에 집안에 비린내가 진동했지요.”

딸에게 좋은 그림, 좋은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은 부모의 마음으로 동화를 쓰고 만들어서 그랬을까 ‘고물 자건거’와 ‘아기 고양이 미로’는 2005년 KBS ‘하나둘셋 유치원’에서 선정한 ‘아이에게 읽어주면 좋은 동화’로, 그해 말에는 ‘하나둘셋 유치원’ 7천 회 특집으로 고근호, 주홍 씨 부부가 ‘만나고 싶은 그림동화 작가’로 선정되었다.

주홍,무늬-19금,35x35cm(부분),혼합재료,2012

미술로 만나는 치유와 삶을 사랑하는 방법

화가로, 작가로 활동하던 주홍 씨는 2006년 말 신안군 안좌중학교에서 1년 간 미술교사로 근무한다. 그녀는 이 기간을 ‘꿈을 이루는 순간’이었다고 표현한다. 그녀는 섬마을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자신의 작업을 하는 ‘즐거운 상상’을 해왔기 때문이다. 또 1년간 의 섬마을 교사 경험은 ‘치료 예술학’ 에 도전하게 만들었다.

“그곳에서 처음으로 특수 아동을 만났어요. 특수 교사는 없고 다른 아이들 수업에 방해를 주니까 제가 수업이 없을 경우 미술실에서 이 아이를 보살펴야 할 상황이 생겼어요. 그냥 저는 이 아이와 재미있게 놀아주는 거예요. 그랬더니 자기 이름도 쓸 줄 모르고 구구단도 모르던 아이가 이름도 쓰고 구구단도 18단까지 외우는 거예요. 깜짝 놀랐죠. 나는 그냥 사랑 하나만 가지고 접근했는데 예술을 접목한 치료법을 찾고 싶었어요.”

그 후 원광대학교에서 예술 치료학 박사를 마친 그녀는 요즘 샌드 애니메이션을 통한 치유 매뉴얼을 제작하고 있다. 그녀가 샌드 애니메이션 작업을 하게 된 것은 고근호 씨의 격려가 큰 힘이 되었다.

“모 방송에서 샌드 애니메이션이 소개되는 거예요. 프랑스 작가였는데 그것을 본 고근호 씨가 불쑥, ‘저거, 주홍 씨가 하면 정말 잘하겠다’ 그래요. 제가 <누드 드로잉> 책을 펴내기도 하고 손이 빠르니까 그런 생각을 했나봐요.”

‘주홍 씨가 하면 정말 잘하겠다’라는 남편의 신뢰가 그녀의 마음을 움직였을까? 주홍 씨는 이제 샌드 애니메이션 작가로 자리를 잡아가고 그녀의 작품은 EBS 시그널로 제작되어 하루에도 7~8회 방영되고 있다.

그들은 굳이 ‘의미’를 앞세워서 무겁고 어렵고 난처하게 하지 않는다. ‘즐겁지 않으면 의미도 없다’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있어 삶은 ‘밥상’이다. 때로는 22첩 한정식이 앞에 놓이고 때로는 김치만 놓은 밥상일 때도 있다. 그러나 ‘즐거운 상상’을 멈추지 않는 한 그 밥상은 메뉴만 바꿔질 뿐 깊고 향기가 있다고 믿는다.

그들은 오늘도 ‘즐거운 상상’으로 하루를 연다.

대동문화 73호 [2012 11. 12월호]

정명혜 남부대 언어치료청각학과 교수  -081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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