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동시장

21세기 광주전남의 새로운 발전 비전이 절실하다.

‘어떤 대안이 있나’라고 묻는다면 “내가 만약 광주전남 시도 행정을 맡은 책임자라면 대대적으로 호남 문화유산을 자산으로 삼을 것”이다.

'한류(韓流)'처럼 남도문화를 '남도류(南道流)'로 세계화해야 한다. 세계시장은 문화 예술이 앞서야 식품·상품시장이 열린다. 정(情)의 문화, 한(恨)의 예술을 세계무대에 올려야 한다. 아울러 지구상에서 제일 자랑스럽게 내세울 수 있는 천혜의 자원인 다도해를 국제적 휴양관광단지로 조성해야 한다.

1200여년전의 장보고 대사는 전국에 구산선문(九山禪門)을 일으켰고, 학문교육을 일으켰으며, 녹차와 청자 및 도자기 산업을 일으켜 문화예술로 경제를 일으켰다. 조선, 해운사업도 일으켰다. 아시아문화중심도시 조성사업이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본다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잘못하면 겉돈다. 문화 소프트웨어를 만들어야 하는데 가만히 보니까 그 주체가 중앙정부이지, 지역이 아니다.

중앙 관료들은 광주전남을 식민지 주변지역으로 생각하는데 그들이 광주전남의 문화콘텐츠를 만들어 낼 수 있겠는가. 이 문제에 대해 지역 언론이 왜 한 마디도 안하는지 모르겠다.남도사람이 쓴 '남도역사를 다시 쓰자‘는 주장을 해야 할 때다. 남도인의 긍지를 문화적으로, 역사적으로, 정신적으로 다시 일으켜 세워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아시아 문화중심도시 조성사업이 성공할 수 있다.

경제발전, 정신적 독립 없으면 예속될 뿐

지역경제를 살리기 위해서는 우선 지역민이 주체의식으로 각성해야 한다는 말이냐고 어떤 기자가 물었는데 난 이렇게 대답했다. “중앙으로부터 정신적으로 독립해야 한다.”

“남도의 지성인들과 언론이 이끌어가야 한다.” 식민지의 노예처럼 서울정부는 신라정권의 지배를 받는 식민근성이 피 속에 박혀 있는 발상을 가지고는 광주전남을 살리는 방안이 나올 수 없다. 경제발전도 정신적으로 독립하지 않고서는 예속될 뿐이다. 장보고식 발상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지방분권, 독자적인 자치를 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중앙에 손만 벌리고 처분만 바라는 개발방식은 이제 그만둬야 한다. 마치 4대강 사업이 그릇된 방향인 줄 알면서도 숙원사업인 영산강 개발 못할까봐 반대도 못한 어리석음과 같다. 그래서 중앙정부와 토건세력의 입맛대로 영산강을 망쳐 놨다.

F1은 외생, 외래적인 것이다. 남도에 맞지 않는 외생변수였다. 그 돈 가지고 다도해 섬 주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는데 투자를 했다면 지역균형발전이라도 좀 됐을 것이다. 정신적으로 독립하지 않으면 중앙 대기업과 중앙 경제의 식민지 밖에 되지 않는다. 현실적으로는 돈을 버는 사업을 해야 하지 않느냐는 말들이 많다.

21세기 탐욕 투성이 신자유주의 천민자본을 뛰어넘어 남도를 회생시키는 방법은 돈만 바라보면 해결이 안된다. 가치(價値), 예를 들어 문화ㆍ역사ㆍ환경ㆍ생명을 중심에 두고 설계하고 추진하라는 얘기다. 당장의 이문과 댓가만을 따지지 말고 좀 더 길게 넓게 봐야 한다. 남도사람은 천생적으로 성격이 심플하다. 정(情)이 많고, 공감(sympathy)능력이 탁월하다. 인정이 앞서고 한(恨)을 문화로 승화 시킨다. 그리고 공유(共有)한다.

남도사람의 좋은 점이자 약점이기도 하다. 이런 정(情)과 한(恨)의 문화는 가치의 문화다. 가치의 문화는 기존 물질 중심의 '기브 앤 테이크(give and take)' 시대에는 맞지 않기 일쑤다. 고 김대중 대통령도 '생각은 선비의 셈법으로, 행동은 상인의 셈법으로 하라'고 했다. 신자유주의 천민자본을 뛰어넘어 가치 중심으로 행하면, 돈과 경제는 따라오게 돼 있다. 예를 들자면 선식(禪食)은 절간의 음식인데, 채식, 자연식, 유기농과 연결돼 건강식으로 각광받기 시작했다. 농민들 중에 산야에 나물을 재배해 돈을 버는 사람들이 많이 생겨나고 있다.

문화·역사와 균형을 이루는 개발되어야

농림부장관 당시의 구상이 실현되고 있는 사업들도 꽤 많았다. 무안에 지역형 국제공항을 조성하고, 목포, 광양, 완도가 국제항구화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그 개발방식은 막개발이 아닌 자생적 친지역적 방식을 제안했다. 다도해가 아름다운 다리로 연결되면 관광이 활성화되는 것은 물론 이농 문제도 해결된다.

전남은 전국에서 가장 이농이 심하고 그 중에서도 섬 지방, 도서(島嶼)가 가장 심하다. 이농으로 유인도가 무인도로 바꿔진 곳이 상당히 많다. 그런데 그곳엔 어마어마한 문화·자연 유산이 있고 사람들이 살고 있다.당시로서는 선견적인 유기농업을 주장하기도 했다.친환경유기농업으로 차별화해서 제일 낙후된 이 지역을 생명자원의 보고로 바꾸는 구상이었다. 식품 안전은 자신은 물론 가족의 안녕이고 행복이다.

천년만년 안전한 먹거리는 불변의 진리이다. 비록 수익이 덜하다 해도 건강과 생명을 챙기고 환경과 생태계를 살린다. 그것이 남는 것이다. 당장의 돈과 가격으로 따질 것이 아니라 가치로 따져야 한다. 가치는 식생활 안전이고, 가족의 안녕이고, 가족 행복이다. 그 때의 구상을 실현시켜 준 지도자가 박준영 전남지사였다. 박 지사가 보궐선거에 나올 때 내게 찾아와 콘텐츠를 구했다. 선거에서 박 지사는 유기농을 캐치프레이즈로 내걸고, 다도해를 개발해 국제관광리조트화하겠다는 구호를 외쳤다. 박 지사가 10년 동안 무농약 유기농을 확산시켜 지금은 전국 인증면적의 57%가 전남이다.

호남미가 경기미의 3분의 2 값에 불과했던 때가 있었지만, 지금은 전남의 친환경 쌀들이 전국 소비자평가 10대 상품에 5개 이상을 차지한다. 유기농으로 1억원이상 버는 농민이 5000여명이 넘어 전남이 전국에서 제일 높다. 친환경 개발, 생태와 경제가 조화를 이루는 개발, 문화·역사와 균형을 이루는 개발이 돼야 한다. 업자, 정치가, 지도자들에게 부패를 안기는 난개발, 막개발 방식은 막아야 한다. 중앙정부청사처럼 큰 군청과 시청을 짓는 것도 그렇다. 개발의 속성상, 떡고물과 부패를 나눠 먹다보니 자꾸 커진다. '경제와 환경의 조화', '문명과 문화의 조화', '개발과 생태의 조화'를 이루는 개발이고 삶의 질을 높이는 지속가능한 발전이어야 한다.

김성훈 전 농림부장관

* 김성훈 전 농림부장관은 서울대학교 농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하와이대 농경제학 박사, 상지대학교 총장(2005~2009), 농림부 장관(1998~2000) 등을 역임했다. 전국농업기술자협회 고문(현)과 한민족 서로돕기운동 공동대표(현)를 맡고 있다.

[대동문화 92호. 2016년 1,2월호]

김성훈 전 농림부장관  somchanel@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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