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사당 야경

좋은 국회의원을 뽑는 국민의 의무

인간은 혼자서 살 수 없다. 여럿이 함께 살 수밖에 없는 인간은 본질적으로 정치적 동물이다. 정치 행위의 최고봉은 국가를 만들고 운영하는 일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갈파했듯이 국가는 정의를 목적으로 한다. 그렇지 않으면 국민은 그 국가를 무너뜨린다. 그것이 맹자의 ‘역성혁명’론이다.

국가가 정의를 구현해야 할 영역의 첫째는 국민의 안전을 지키는 일이다. 둘째는 정의로운 질서를 통하여 다양한 국민을 통합하는 일이다. 우리가 함께 살 수 있는 권한과 자원을 맡기고 나누는 규율(법, 예산 배분 등)을 정의롭게 정하고 운영함으로써 공정하고 차별 없다는 믿음을 국민에게 심어주어야 하는 것이다. 셋째는 국민이 마음 놓고 먹고 살 수 있도록 공정한 시장을 확립하며 국부(國富)를 증진하는 일이다. 넷째는 생계의 수준을 넘어서 국민이 누구나 자유롭게 자신의 발전을 위해 힘쓸 수 있도록 돕는 일이다.

이 일에는 어렵고 소외된 사람들을 지원하는 복지가 기본 바탕이 되어야 하고, 제대로 된 교육이 넓게 베풀어져야 하며, 문화의 융성을 위한 노력이 경주되어야 한다. 백범 김구 선생이 말했듯이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만이 아니라 남에게도 행복을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국민이 안심하도록 지키겠다.”

그러므로 국가를 운영하는 정치는 국민에게 이런 메시지를 발신해야 한다. “국민이 안심하도록 이렇게 지켜드리겠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현실 정치는 그 참혹했던 세월호 비극을 겪은 후에도 이제까지 전혀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다. 아니다. 안하고 있다!

선거에서 약속했던 국민 통합의 메시지는 완전히 사라지고, 온갖 격차와 지역 차별은 더욱 만연되고 있다. 대통령도 여야 정당도, 협상과 타협을 추구하면 세작이니 배신이니 하며 공격한다. 진영 대 진영으로 싸우면서 공존하는 것이 여의도 정치의 본령인 듯하다.

정치는 시장의 불공정을 건드릴 엄두도 내지 않는다. 성장 동력의 확보, 재벌개혁, 갑을관계 변화는 무망하고, 양극화, 일자리, 비정규직, 연금, 등등 국민 생활과 관련된 모든 문제에서 우리 정치는 적절한 해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아니다. 강자의 편에만 서 있다! 공정하지 않다!

복지, 교육, 문화 분야에서도 근본적 문제는 산적해있으나 우리 국가는 지금 이를 해결할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문화 창달을 위한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자율과 자유는 위축되고 민주주의는 퇴행하고 있는 상황이다.

싸우면서 공존하는 여의도 정치

우리 정치는 정의를 세우지 못하고, 국민에게 행복을 가져다주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국민의 총체적인 불신 대상이다. 적폐이고 개혁의 대상이 되었다. 이런 정치를 담당하는 정치인들도 역시 불신과 비난의 대상이 되었다. 그래서 국민은 정치를 외면한다.

우리의 대표를 뽑는 선거와 투표에 관심이 없다. 능력 있고 진실한 인재들은 정치인으로 나서는 것을 꺼리게 된다. 그러니 부패한 사람, 선동가, 거짓말쟁이들만 정치판에 남아서 조직을 구축하고 권력을 누린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 악순환이다.

이대로 그냥 두어도 되는 것일까? 아닐 것이다. 우리 가족의 생활 안전을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만 지킬 수는 없다. 지역 차별과 온갖 격차가 원칙이 되어버린 불공정한 사회, 불공정한 생활 전선을 그대로 놔둔 채 계속 살 수 있을까?

이 상태에서 세계 기업들과의 경쟁을 이기는 혁신과 성장이 가능할까? 복지, 교육, 문화, 그 모든 것들도 어느 하나 제대로 된 정치의 손 없이 운영될 수는 없다. 무엇보다도 우리 미래 세대에도 이런 비생산적이고 부패한 정치, 이런 불공정한 사회를 물려 줄 수는 없지 않겠는가? 또 다른 세월호 사건을 “가만히 있으면서” 당해서는 안 되지 않겠는가?

2016년 올해 4월에는 제20대 국회의원 총선이 있다. 국민을 대표하여 정치하는 국회의원들을 심판하고 새로 내보내는 이 총선은 그 자체로도 의미가 깊지만, 또한 2017년 대통령 선거를 향한 정치과정의 큰 고비가 될 것이다. 우리나라를 바꾸려면, 그리고 정치를 변화시키려면 올해 이 총선에서부터 우리가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정당을 바꾸고 국회의원을 바꾸는 일이 급선무이다.

청와대와 행정부를 견제·감시해야

그러면 어떤 국회의원들을 우리는 선택해야 할까? 우선은 국가가 응당 해야 할 일과 오늘의 국가 과제를 제대로 인식하고 국민을 위하여 복무할 자세가 되어있는 인사를 가려내야 한다. 우리들의 공동체 살림살이에 관한 약속이라 할 수 있는 지역구 공약도 중요하지만, 시대적 과제를 극복할 총체적인 국가 비전이 있는지, 또 그것을 실현시킬 능력과 의지가 되어있는 지를 살피는 것이 먼저이다.

자기 지역구 예산만 많이 따온다고 훌륭한 국회의원일 수는 없다. ‘나라 국(國)’자 국회의원은 국민 대표로서 국가 정책을 결정하는 역할을 제대로 해주어야 한다. 국회의원은 권력구조상 당연히 청와대와 행정부를 견제·감시하고 그 독주를 막아내야 하는 것이 본질적 역할이다. 그래서 대통령에 굽실거리며 대통령이 주권자인 국민의 목소리를 무시하는 데 일조하고 있다면 그는 국회의원이 아니다.

민주주의를 퇴행시키고, 잘사는 사람은 더 잘살고 못사는 사람은 더 못사는 ‘불공정한’ 사회를 유지하고 악화시키는 데에 앞장서는 국회의원은 반드시 퇴출시켜야 한다.

열린 마음과 합리적인 사고

더불어서, 우리는 국회의원 후보가 책임감과 겸손함과 진정성이 있는 사람인지 판단해 보아야 한다. 이것은 필수불가결한 전제조건이다. 국민의 대표로서의 자신의 본분을 성실하게 수행할 인물인지, 국민의 목소리를 하늘처럼 받드는 인물인지, 그리고 자신의 말을 지키는 인물인지 가려보아야 한다. 국회의원은 특히 자신을 뽑아준 지역 유권자들을 위해 신명을 바치겠다는 태도가 몸에 배어있어야 한다. 그동안 지역주의 정당의 독점 상황 때문에 비교적 편안하게 의원 배지를 달아 온 호남과 영남 의원들은 이 점에 있어서 더욱 가혹한 심판이 필요하다.

우리는 유세장에서 후보의 입술을 살필 것이 아니라 그가 그동안 어떤 일을 하면서 어떻게 살아온 사람인가를 알아보고 그에 대한 세간의 평도 들어보고 따져보아야 한다. 아무리 멋진 국가 청사진을 내놓더라도 소위 “싸가지 없는 진보”는 그것을 실현시킬 수 없다. 보수도 물론 마찬가지이다. 국민의 목소리를 소중히 듣기보다는 국민을 가르치려하는 정치인들은 퇴출시켜야 한다.

한편 우리는 국회의원 후보가 열린 마음과 합리적인 사고를 지닌 인물인지 평가해 볼 필요가 있다. 이념과 아집에 사로잡혀 오직 상대방에 대하여 비난과 반대만 일삼는 사람은 선택에서 배제하는 것이 낫다. 국회는 본질적으로 서로 다른 생각을 하는 다양한 국민 대표들이 모이는 곳이다.

문화산업의 정책적 바탕과 경쟁력

시민운동, 사회운동 같은 데에서는 올바르다고 생각하는 것을 강하게 주장하여 토론의 의제를 만드는 역할이 중요하지만, 국회는 대화와 협상과 타협을 통하여 국가 살림을 해나가고 문제를 해결해내야 하는 곳이라는 점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누구를 비난하고 공격하기는 쉽다. 정치인의 그런 행위는 열성 지지자들의 환호를 유발하지만, 문제 해결은 더 어려워질 수 있다.

올해 국회의원의 선택 기준에 하나만 더 덧붙인다면 문화를 바르게 인식하고 문화산업 발전을 제대로 추진할 수 있는 마인드를 지닌 이를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산업화의 시대, 20세기에는 물질적 풍요만이 강조되었으나, 이미 먹는 문제를 넘어선 21세기는 문화의 세기라고 불린다.

이제 국가는 문화 융성을 통하여 모든 국민이 행복을 추구할 수 있도록 뒷받침해주는 역할을 해야 하고, 자국의 문화산업이 세계 경쟁에서 성장할 바탕을 마련해 주어야 한다.

이를 위해 다양한 노력이 경주되어야 하겠지만, 무엇보다도 국가 정책 결정자들이 문화 전문가와 창작자들의 자율적 노력을 지원해주되 간섭하지 않고, 전국적으로 국민 각계각층의 문화 향유가 잘 이루어질 수 있도록 각종 인프라를 지원해주는 것이 필요하다.

병신년, 올 한해에는 반드시 좋은 국회의원들을 뽑아서, 나쁜 정치의 악순환을 끊고 대한민국을 바꾸어보자. 그것이 우리 국민의 의무이다.

조정관 교수

* 조정관 전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미국 예일대 정치학 박사, 한신대 교수를 역임했으며 제16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정치개혁 연구실 위원, 전남대학교 5·18연구소 부소장, 국회의장자문 국회운영제도개선 자문위원회 위원, 전남대학교 아시아태평양지역연구소 소장을 역임했다. 현 한국NGO학회 부회장이다.

[대동문화 92호. 2016년 1,2월호]

조정관 전남대 교수  somchanel@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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